선과 손이 뒤섞인다
선이 손을 넘고
손이 선을 넘는다
- 이수명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저자 서문 전문
시인의 인상과 기억
소설가 김훈은 그의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어떤 사람의 차림이나 행색에서 그의 직업이 보인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불행이란 노동의 일상적인 억압에 짓눌린 나머지 그 고통이 외형에 투사된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결례인지는 모르지만 시인 이수명의 외형에서는 시인이 읽히지 않는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혹은 공원이나 시장 같은 곳에서 이수명과 마주쳤고 그의 직업을 상상해보았다면, 당신은 십중팔구 그를 반듯한 공무원이나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원 정도로 짐작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수명의 인상은 매우 단정하고 곧은 매무새의 호위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의도하지 않았을 이 트릭은, 그의 시적 진실을 밝히는 데 매우 유용한 힌트를 준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수명을 두고 외형에서 시인이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은, 김훈이 말한 맥락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매우 귀한 치사로 사용한 것이다.
이수명의 첫 시집은 등단 이듬해인 1995년 출간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이다. 내가 이 시집을 읽은 것은 아마 그 해이거나 그 다음해쯤일 것이다. 시인이 어떤 의도로 이런 제목을 자신의 첫 시집에 붙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장은 내게 하나의 선언처럼 들렸다. 1980년대의 자욱한 포연과 붉은 화염을 걷어내고 ‘정독’의 언술로부터 시작된 도그마의 사슬을 끊어내는 선포의 문장. 그러니까 이수명식 표현대로라면 ‘프런티어’의 발언처럼 들렸던 것. 그 기념비적인 선언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최초의 발언을 한 시인을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언명인지도 모른 채.
시인들에게는 보통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그것은 태도와 연결된다. 그 태도란 이 세계와 맞서는 어떤 스탠스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무장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인의 스타일은 각자 고유한 시세계를 특정하게 반영한다. 다시 말해 시인들이 쓰는 시가 시인의 스타일을 간섭하는 것이다. 혹여 당신이 ‘시인’과 ‘스타일’이라는 말에서 곧장 이재나 광기, 기행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면 당신은 어지간히 낭만주의 시대 문학관에 길들여져 있는 셈이다. 시인의 스타일은 그렇게 밖으로 넘쳐 흘러내리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에 두루 반응하거나 혹은 그 두 세계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심원한 인식이나 감각의 지평에 닿아 있지 않고서는 매혹적인 스타일이 창조되지 않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시점에서 미리 작정을 하고 얘기하면, 시인 이수명에게서 나는 무척이나 고유하고 매혹적인 스타일을 보았고, 그것이 그가 쓰는 시와 일치하는 것 또한 확인했다. 그것은 현대성을 쟁취한 첨단의 전위에 서 있는 시인이 공무원이나 연구원의 단정한 가장을 쓰고 있을 때의 그 아찔한 괴리만큼이나 빛나는 것이다. 그러니 짝사랑을 감행한 나의 안목이 영 엉망은 아니었던 셈.
만남과 대화, 20년 동안의 재미
마침내 시인과 마주 앉았다. 장소는 그를 처음 보았던 바로 거기, 연희문학창작촌이었다. 그의 가장 최근 시집은 작년에 출간된 『마치』(문학과지성사, 2014)로 본인에겐 여섯 번째 시집에 해당한다. 공교롭게도 작년은 그가 등단한 지 정확히 20년 된 해였다. 20년 된 해에 여섯 번째 시집을 냈다면, 그의 시업은 과히 빠르다고도 느리다고도 할 수 없는 보통의 보법을 연상시킨다. 그의 시집은 1995년 첫 번째 시집이 나온 이후 네 번째 시집까지 일정하게 3년 주기로 출간되다가 7년이라는 공백을 거쳐 2011년 다섯 번째 시집, 그리고 또 3년의 공백 후에 예의 『마치』가 출간됐다. 나는 먼저 20년 동안 중단 없이 진행된 그 시업의 추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 수상한 7년이라는 공백도 궁금했고, 어떤 결핍 같은 게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로 매우 ‘미니멀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수명 : 2004년에 네 번째 시집이 나오고 다섯 번째 시집은 2011년에 나왔어요. 7년 정도의 공백이 있는 셈인데 네 번째 시집을 낸 직후부터 박사논문 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2007년에 논문을 썼죠. 논문은 하나의 긴 터널 같은 것이었어요. 들어가는 데 2,3년 그리고 쓰고 나서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또 2,3년 걸리더라고요. 공백은 설명이 됐고, 20년 동안 중단 없이 시를 쓴 추동력이 뭐냐는 물음에 제가 약간 뜸을 들이는 이유는 언뜻 저도 잘 모르겠어서예요. 글을 계속 쓰게 하는 추동력 같은 것, 그러니까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어떤 욕구라든지 강한 의지라든지 그런 게 있는 것 같지는 않고요. 결핍 얘길 하셨는데 어렸을 때 겪은 결핍이 그 사람에게 내적인 파워를 일으키고 그게 계속 작동해서 글을 쓴다고 얘기하는 것도 적절하지가 않은 것 같고. 그냥 지금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적절한 답인지는 모르겠는데 시 쓰는 게 재미가 있어서에요.
유희 같은 게 있었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의 시집 중에는 ‘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가진 시집이 있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놀이란 응당 재미를 추구하는 법인데. 과연 무엇이 그가 시쓰기에서 발견하는 재미일까.
이수명 : 계속 새로운 걸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어제 물건을 만들었는데 어제 만든 물건을 오늘 또 만들고 이렇게 하면 얼마 못 갈 것 같아요. 재미가 없어서. 내가 만든 것이지만 자기 안에서는 그것이 계속 갱신되고 혁신되는 면이 있어야 계속할 수 있죠. 그런 게 재미가 있으니까요.
김도언 : 그때 그때 접신이 된 거라고 볼 수 있네요. 시가 온 것일 수도 있고요. 네루다의 말처럼.
이수명 : 누가 나를 재미로 끌고 가주면 좋겠지만 그걸 너무 기대하는 건 욕심인 것 같고. 영감이라는 게, 사람의 일생 동안 계속 지속되는 게 아니거든요. 영감에만 인도되기보다는 이것저것 조작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를 찾아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단단한 뭔가를 구축하고 건축하기보다는 모르는 길로 자꾸 옆길로 새가면서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재미’라는 말, 참 신기하게도 그토록 평속한 말이 시인 이수명의 입을 통해 발음되는 순간 놀라운 변개를 보여준다. 늘 듣던 말이 낯설게 들리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섭리일까. 재미란 쾌감을 수반하는 것일 텐데, 늘 새로운 걸 만들고 익숙한 걸 갱신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을 아는 이라면, 그의 말대로 그만두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 처음 이 쾌감의 징후를 포착했던 것일까. 자연스레 그가 최초의 시를 만나게 된 순간이 궁금해졌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김도언 : 최초로 시를 만나게 된 순간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이수명 : 중고등학교 땐 앞뒤로 다 문학소녀였어요. 백일장 나가고 교지 만들고 문학의 밤 주최하고 이런 거에 거의 6년을 보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국문학과로 진학했고. 문학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어서 그랬는지 문학을 벗어난 적이 있어요. 대학 졸업하면서 몇 년간은. 취직도 했고요. 그러다가 6년 만에 돌아와서 등단을 하게 됐죠. 시를 만난 최초의 순간을 물어보셨는데, 그 순간이란 게 한 편의 완성된 시를 내놓은 순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최초는 아마 시의 수상한 냄새를 감지한 순간일 거예요. 내가 기억하는 것은 초등학교 한 3,4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식구들을 막 찾았는데 그날 무슨 일이 있긴 있어서 집이 비었던 것 같지만 그건 다 잊어버렸고요. 당시 집에 약간 후미진 복도가 있었는데 그곳의 벽에 그냥 기대 앉아 멍하니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갑자기 강하게 죽음을 느꼈어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죽음이었냐고 물어보면 아이의 감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엔 어려운 것이었는데 다만 모든 게 정지된 것 같은 그런 것. 한 두어 시간 복도에 기대고 앉아서 그때 노트를 꺼내서 거기다가 뭐 죽음이라든지 이런 단어를 처음 발설하고 썼어요. 그때가 이 세상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경험한 최초의 순간이 아닐까 해요. 근데 그게 좀 빨리 찾아왔던 것 같아요.
시인, 자신의 좌표에 대해 말하다.
이수명은 지금 우리 시단을 대표하는, 이의를 달기 어려운 모더니스트며 아나키스트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부모나 네 명의 형제들도 다들 평범한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란다. 집에서 예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자신밖에 없다고. 가족으로부터 억압이나 상처를 받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국적성, 무의미성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독특한 시적 개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그가 지향하는 태도의 입각점 같은 것은 어떻게 촉발된 것인지 말이다.
이수명 : 저는 제 안에 뭔가 말할 거를 쌓아놓고 그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 자신도 스스로에게 고향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저의 관심은 밖으로 향해 있고, 근데 이 밖이라는 게 리얼리즘에서 말하는 현실적 관심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단지 외부세계에요. 현상세계 말예요. 세계가 그렇게 무심코 무한해서, 거기서 재밌는 얘기를 하고 싶고 뭐 이런 쪽인 것 같아요.
외부세계를 향해 있다는 발언, 그것은 지극히 이수명다운 발언이다. 그것은 ‘현대성’이라는 개념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수명은 수많은 글에서 현대성에 대한 언급을 한다. 이를테면 이런 발언이다. “현대성은 주류와 필연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 주류를 이룰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시의 현대성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류, 당대성과는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이것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현대성의 중요한 관건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개척성을 가리킨다. 프런티어를 가지지 못한다면 현대성이 아니다. 현대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혁신이며, 혁신을 멈추는 순간 현대성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의 현대성, 그것은 시를 미개간지에 서게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계간
김도언 : 2000년대에 시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환기된 적 있었잖아요. 미래파니 해서 김경주, 황병승 등 강한 개성을 가진 젊은 시인들이 등장했고요. 현대적이고 전위적인 상상력이 펼쳐지고 활달한 시적 담론이 이어졌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어떤 대세나 시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본인의 의지였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요.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시인들이 한참 주목을 받던 2000년대적 현상을 어떻게 보세요. 혹시 소외 같은 걸 느끼진 않으셨나요?
이수명 : 부득이 시사(詩史)적인 얘길 할 수밖에 없네요. 90년대에 들어 80년대적인 자아, 거대한 싸움과 투쟁을 했던 그런 자아가 아니라 좀 다른 자아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거대한 자아의 물결이 너무 셌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어요. 갑자기 하루아침에 빠져간 게 아니죠. 그래서 90년대에 등장한 시인들이 80년대 정서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겉으로는 투쟁 같은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상처받고 소외된 세계를 품어야 한다는 그러한 거대 자아를 계속 펼쳤던 거지요. 90년대에 유명했던 대부분의 시인들의 경우 정서상으로는 사실 80년대 정서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되요. 90년대에 독특하게 90년대적인 정서로 나타난 시인들은 거대한 자아를 갖지도 않았고, 밀접하게 세계와 붙어서 싸움을 한다든지 저항한다든지 하는 것에 유보적인 태도를 가졌죠. 투쟁도 정서도 강렬했던 그런 자아가 아니라 세계와 거리를 갖고 관찰하고 개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90년대라고 하는 시기가 80년대랑 2000년대 사이에 끼인 시대인데, 90년대에 씨앗을 뿌렸던 이러한 시인들에 힘입어 2000년대 시인들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2000년대 말씀하신 미래파라든지 젊은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 바탕에는 90년대 시인들의 작은 목소리, 새로운 목소리가 역할을 한 것이지요. 집단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영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이러한 시인들에 의해 2000년대가 뜨겁게 올라올 수 있었단 생각이 들고요.
김도언 : 그러면 선생님 말씀하신 80년대와 절연하고 90년대에 나타났던 새로운 시적 상상력의 씨앗을 뿌리신 분들. 선생님을 포함해서. 한두 분만 말씀 좀 해주시죠.
이수명 : 두 분이요? 음. 일단 약간 시기적으로 안 맞을 수 있는데. 우선 1987년에 시집을 낸 장정일이 있어요. 장정일이라는 작가는 나중에 소설을 썼지만 87년에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라는 인상적인 시집을 냈죠. 문학사라는 게 좀 이상해서 90년대에 등장했어도 80년대 정서를 여전히 갖고 있을 수 있고요. 80년대에 등장했지만 90년대를 미리 보여줄 수가 있어요. 이러한 시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저는 장정일이라고 생각해요. 장정일에게는 싸우는 자아가 없어요. 그냥 무위와 세속의 자아거든요. 무위와 세속, 향유와 쾌락의 자아에요. 이 자아는 80년대적인 자아는 아니에요. 장정일의 시는 자본주의 시대, 소비 사회, 상품문화를 향락하는 개인을 보여줘요. 지고한 이상을 추구하고 투쟁하는 자아가 아니라 그냥 방에서 뒹굴면서 광고나 모델에 빠지고 햄버거 만드는 방법이나 궁금해 하는 자아에요. 이런 것이 90년대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90년대는 광장이 사라지고 각자 골방으로 들어가는 시기거든요. 진실과 윤리에서 자유로운 누추하고 개인적인 공간이지요.
김도언 : 저도 시인으로서 좋아해요.
이수명 : 네, 또 90년대적 특질을 보여주는 대표적 시인들로 박상순과 황인숙 시인이 있어요. 두 시인 모두 90년대의 고유성을 가능하게 하고 90년대를 만든 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상순이 90년대의 인식의 층위를 대별한다면 황인숙은 감각의 층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박상순은 80년대적 집단의식, 공동체, 이데올로기적 속박을 벗어던지고 날카롭고 과감한 개인을 보여주었고요. 역사의 맞은편에 개인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인숙은 무겁던 80년대 공기를 경쾌하고 발랄한 호흡으로 환기시켰어요. 다른 호흡을 문학사에 들여온 겁니다. 황인숙은 장정일처럼 80년대에 등장했지만 90년대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에요.
개척자의 발화법
명민한 비평적 작업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이수명은 현재 월간 <현대시학>에 ‘시집으로 읽는 시문학사 1990년대편’을 연재하고 있다. 자신의 시대를, 다시 말해 현대성의 개척자의 시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살고 있는 당대적 조건에서 자신의 좌표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미덕인가. 자신의 좌표에 자신이 어떤 동선을 그리며 도달했으며 또 어디로 내달릴지 상상해보는 것, 아무런 지점도 모르고 음풍농월(김정환식 표현)하거나 퇴행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리는 것, 선언하고 나아가는 것, 그게 바로 현대성을 획득하는 좌표의 풍속 아니겠는가. 이수명이 이처럼 시인 또는 시의 소여에 첨예한 자각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수명을 가장 이수명답게 하는 어떤 배후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이수명이 이수명의 시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들어봐야겠다. 이것은 매우 드문 기회일 것이다.
김도언 : 신형철 같은 평론가는 선생님 시를 해설하면서 일반적인 발화의 노선에서 탈선하는 문법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저에게도 선생님 시는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개연성이 차단돼있는 어떤 발화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시적 진실을 의도해서 그렇게 하시는 건지 궁금해요. 아니면 그게 의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도요. 의도한다면 어떤 시적 진실을 위한 것인지. 선생님은 시대를 불문하고 시란 비결정적인 것이고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신 적도 있고. 제가 대략은 짐작은 하는데 독자들한테 선생님이 조금 더 쉽게 설명을 해주신다면. 너무 친절하겐 마시고요.
이수명 : 차단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물론 일부러 차단하고 그러지 않아요. 그보다 제 관심은 좀 새로운 걸 해보는 데 있어요. 그게 재미가 있으니까요. 이해라는 것은 한 번 갔던 길을 갈 때 생기거든요. 먹었던 음식을 먹고 갔던 길을 가고 익숙한 일을 할 때 이해에 가장 근접하지요. 문학에서의 이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는 것들을, 알고 있는 렌즈로 보는 것이지요. 근데 알고 있는 일을 다시 해보는 건 아무래도 좀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는 사각형으로 뭘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역삼각형으로 만들어보고 하지요. 차단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선입견과 달리 저는 오히려 정확한 문법 구조에서 말을 하기도 해요. 그런 문장이 더 많아요. 그러다가 못으로 말하자면 여기에 박아야 될 못을 하나 빼본다든지 하지요. 못을 하나 빼도 제대로 작동을 하면 못을 여러 개 박을 필요가 없는 거니까,
또 여기 박았던 못을 저기에 박아보기도 하고요.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까 박혔던 못이 빠지기도 하고 전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에 이르기도 해요. 못은 그동안 물건을 방해했던 거지요. 못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말들이 탈골되거나 문장이 휘기도 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곤 해요. 그러면 아무래도 예전 방식에만 익숙한 눈에는 어, 여기 박혀 있던 못인데 어디 갔어, 그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죠. 청바지를 처음 찢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옷은 낡으면 버리는 게 보통의 생각인데, 옷을 찢어서 입는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혁명적인 발상이지요.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잖아요. 그래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요. 최초로 옷을 훼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평범한 가치지만 자유를 발견한 거예요. 그 자유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이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보통은 이렇게 하는 걸 저렇게 해보는 거,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거, 그거에요. 그래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고 가능하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가능한 것으로 되기도 하잖아요. 시라는 건 바로 어떤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니 가능을 바로 지금 행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가능이 가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화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새로운 감각, 발화,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김도언 : 그럼 이 질문은 선생님한테 조금 괴로운 질문일 수 있는데. 선생님은 시단이나 문학장 안에서는 매우 유니크하고 독자적인 감수성과 개성을 가지신 분으로 그런 시인으로 인정받고 계시는데요. 그런 만큼 일반 대중 독자들한테는 비교적 덜 알려져 계시잖아요? 근데 보통 예술가들은 어쨌든 타인의 평가에 완벽하게 무심할 순 없잖아요. 민감할 수도 있고. 선생님은 대중 독자들의 그런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라든가 평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세요.
이수명 : 괴로운데요. 하하. 음. 제가 소통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진 않아요.
김도언 : 네 어떤 글에서 교란을 위해 쓰신다고 하셨죠.
이수명 : 왜 염두에 두지 않냐면요, 단순해요. 아무리 소통되지 않는 텍스트도 결국엔 여러 길이 생기고 많은 문이 달리게 되기 때문이에요. 길과 문은 접촉의 흔적으로 생기는 거지 처음부터 일부러 만들면 재미없잖아요? 소통의 문제라면 제 경우가 아니라 이상이나 김구용 같은 시인을 예로 들어 볼게요. 제가 어디서 그런 말을 쓴 것 같은데 시대가 시인을 만드는 게 아니고 시인이 시대를 만든다, 뭐 그랬어요. 그러니까 무슨 시대가 됐다고 해서 그 시대에 걸맞는 시인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앞선 시인이 나타나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고 분위기를 형성하는 거지요. 근데 그런 시를 쓴다는 건 사실은 독자와 동떨어질 수 있는 작업이에요. 아니 심지어 엘리엇은 동떨어져야 한다고까지 했어요. 문화의 발전이란 건 한 세대 이상 뒤떨어지지 않은 주요 독자층을 거느린 정예부대를 유지하는 것, 좀 거창하지만 그렇게 말했거든요. 이 말은 충분히 고독한 작업을 알아보는 소수의 독자가 있고, 이 소수의 독자에 의해 매개된 시인의 시도나 감각들이 저변으로 전파되는 것을 뜻해요. 그럼으로써 시대 전체가 결국은 이 감각을 흡수하는 것일 테고요. 문화나 예술이라고 하는 건 이러한 도약이 있어야 계속 발전하는 거라는 얘기에요. 모두들 알고 있다시피 이상 시인이 처음에 오감도를 발표했을 때 독자들 항의 때문에 중단을 했잖아요. 지금은 이상의 수수께끼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모두들 좋아하지 않나요. <오감도>나 또 <건축무한육면각체>란 난해시의 제목을 가져다 만든 영화도 있지요.
마지막 목소리
개척자에 대한 추수와 매혹이 잇따르고 그것을 중간에서 매개자가 옮기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 그 개척의 작업이 바로 현대성과 전위성을 확보해야 하는 시인의 소명일 것이다. 이러한 소명들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다양한 의미들의 상호 침투와 간섭 속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겠지. 현대의 시인은 개인을 온전하게 개인으로 호명하는 작업의 수행자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타락한 세속적인 세계에서 구원에 대한 꿈은 모든 개인들이 모두 온전한 문제적 개인일 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지금 온전한 문제적 개인이라는 말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일까. 그것은 억압이나 착취의 구조에 묶이지 않은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을 말하는 것이다. 90년대적 현대성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예를 든 박상순의 시를 분석하는 글에서 이수명은 이렇게 썼다. “개인이 전적으로 개인이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대한 뚜렷한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가장 그럴 듯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이 선명해지는 방식이다.(<현대시학> 2015년 2월)” 이수명은 온전한 문제적 개인을 뚜렷하게 호명하는 우리 시대의 프런티어다. 그가 앞으로 보여주는 작업은 또 다른 곳에 계속 못을 박거나 빼고, 옷장 속에 처박힌 어떤 옷들을 찢는 일일 것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문학의 위상이 어떤 추문 속에서 추락하고 있는 요즘, 문학의 힘에 대한 이수명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문학은 사실은 힘을 가지려고 하는 거예요. 언어로 힘을 가지려는 거지요. 어떤 시인이나 소설가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이 의미가 있고 영향력이 있을 때, 그것이 문학의 힘이거든요. 힘 있는 문학은 사회에 어떤 충격과 영향을 주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뭐 권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문학의 권력은 정치나 행정상의 권력과는 다릅니다. 문학의 순수한 권력이나 권능, 파워는 무엇을 도모한다, 작용해서 뭘 얻는다는 그런 것과는 달라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문학의 권력은 다른 데 있어요. 문학에서의 권력은 사실은 작품을 쓰는 순간 이미 실현이 되어 있어요. 빈 텍스트 앞에서, 텍스트를 완성하면서 문학인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권력을 체험하지요. 그것은 바로 텍스트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텍스트가 권력이라는 뜻이에요. 텍스트의 권력은 현실에서처럼 그 권력을 소유한 사람을 파괴시키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시인과 작가는 텍스트가 유토피아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우리가 문학을 계속하고 문학이 계속되리라 믿는 이유입니다.”
이수명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작가세계』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붉은 담장의 커브』『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과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 현대시』『마치』, 시론집 『횡단』, 번역서 『낭만주의』『라캉』『데리다』『조이스』등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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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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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https://www.facebook.com/yoll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