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2년, 첫 단편집 『옆집의 영희 씨』를 낸 정소연 작가. 딛고 선 땅을 아주 조금 기울여 벌어지는 세계의 내밀한 틈을 그리는 정소연의 작품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지난 11월 26일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는 정소연 작가, 배명훈 작가와 함께 SF 소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진행을 맡은 배명훈 작가는 추운 날씨에도 자리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여러분들이 계셔서 저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명훈 작가가 정소연 작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소연 작가는 이에 “반응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라면서 “놀라웠어요. 지금까지 단편집에 참여하든가 번역하든가 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날마다 찾아보진 않았거든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배명훈 작가는 먼저 “질문에 악의가 없다는 건 알지만 대답할 때는 분명 방어적이 되는 질문”이라고 덧붙이며 행사 전 미리 받은 질문 중에서 어려운 질문 하나를 골라 정소연 작가에게 물었다. 왜 하필 SF 작가인가, 에 대한 질문이었다. 정소연 작가는 “좋아한 것을 쓰게 된 것”이라고 상쾌하게 답했다.
“SF 작가가 돼야지, 라고 생각한 적은 없고요. 이 책에 15편이 실렸는데 그중 「디저트」하고 「마산 앞바다」를 쓸 때까지도 SF를 쓴다고 생각 안 했어요. 어느 시점부터 SF 작가라고 말하게 된 건 역시 제가 SF를 좋아하고 그러니까 쓰는 것도 SF 형태로 나오게 된 거예요.”
단편집 『옆집의 영희 씨』의 가장 앞에 실린 단편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편집자가 순서를 정하긴 했지만 이 작품이 맨 앞에 실린 것이 “납득이 됐다”는 것이었다.
“작품이 다 조각조각 발표됐었기 때문에 전체를 읽은 최초의 독자가 편집자님이었어요. 그 분이 배치하는 게 편집권에 포함된다고 생각했어요. 짧고 가볍기 때문에 앞에 어울리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다만 읽으신 분들 중에 ‘디저트는 맨 끝에 먹는 건데 왜 앞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발견하고, 그렇구나(웃음) 생각하기는 했어요.”
배명훈이 묻고 정소연이 답하다
배명훈: 특이한 것들과 일상적인 것들이 잘 조화가 되는 것 같아요. 「마산 앞바다」의 경우 지명이 ‘마산’이잖아요. SF에서 ‘뉴욕에서 외계인이 나타났다’고 하면 특이하지 않아요. ‘서울’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지’ 할 텐데 ‘마산’정도 가면 특이해져요. 본인만의 조합하는 방법 같은 게 있을까요?
정소연: 일단 「마산 앞바다」 같은 경우에는 현실이 많이 들어간 글이에요. 그 글은 배경뿐 아니라 정서 같은 것들이 그냥 저예요. 엄청 저예요. 조금 민망할 만큼 저예요.(웃음) 「마산 앞바다」는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2003년에 태풍 매미가 마산에 있었어요. 사상자도 많이 나고요. 저는 그때 서울에 있었는데 그걸 TV를 통해 봤던 정서가 그 글에 그대로 들어있어요. 처음 대목에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부산이라고 대답한다는 내용도 제가 실제로 했던 거예요. 마산이 고향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부산에서 왔다고 하면 대충 비슷해요. 그런 느낌부터 시작해서 그런 면이 많이 들어가 있고요.
그 외의 작품들 경우에는 원래부터 조그만 바꾸려고 노력해요. 현실과 다른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고 현실에서 최소한의 것만 변형시키는 방식을 더 취하는 것 같아요.
배명훈: 제목을 정하실 때 어떤 고려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우주류」나 「앨리스와의 티타임」이 제목으로 정하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고민을 했나요?
정소연: 제목 정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배명훈 작가님 말씀처럼 제목으로 제일 나다운 건 「앨리스와의 티타임」인 것 같아요. 교정지 단계까지도 「앨리스와의 티타임」으로 나왔었어요. 그런데 제가 원치 않아서 기각이 됐어요. 한국적이지 않은 딱 한 작품이 「앨리스와의 티타임」이에요. 그게 표제작으로 오는 걸 원치 않았던 부분도 있고요. 이 작품은 다른 SF 작가에 대한 헌정작인데요. 첫 책을 내면서 헌정하는 단편의 제목을 붙일 정도로 그 작가의 엄청난 팬은 아닌 거예요.(웃음) 결국 제목은 소거법으로 정해진 거예요.
「옆집의 영희 씨」는 제가 지향하는 어떤 지점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글 자체는 제가 좋아하는 SF의 거의 모든 게 들어있어요. ‘영희 씨’, ‘옆집’, 한 사람이 살며 겪는 아주 작은 변화, 돌이킬 수 없는 변화지만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렇지만 나의 우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죠. 그런 정도의 인간이 가지는 크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사람 하나가 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냐, 어떤 글을 쓰는 작가로 받아들여지고 싶냐고 묻는다면 이 글과 같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이긴 했어요.
배명훈: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많았어요. 하나는 한국어로 쓰는 SF작가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이에요. 그 부분이 독자가 읽을 때 리얼하게 느끼게 된다는 게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 나름의 어떤 관점이 있으세요? 늘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마이너리티를 다루신다는 것이거든요.
정소연: 트랩이죠?(웃음) 글쎄요.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많이 생각해요. 이 질문은 배명훈 작가님이 아니어도 많이 주시고, 그때마다 뭔가 답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생각을 해요. 무의식적인 부분도 있고 의식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무의식적인 부분은 내 삶에서 겪은 소수자로서의 경험에 대한 공포 같아요. 여성이라는 것 자체에서 나오는 공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주류가 아니구나, 하는 감각 같은 것이요. 의식적으로 말하고 싶어서 넣을 때도 분명히 있어요.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짚어주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걸 넣고 싶어서 넣을 때도 있고요.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도 있고, 일부러 할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배명훈: 감히 책의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 어떤 사람이 세계를 대면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인공의 상태가 글마다 굉장히 달라요. 다양한 사람들인데 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똑같은 반응을 해요. 세계를 대면해야 된다고 했을 때 오래 망설이죠. 이 반응이 인상적이에요. 애착 가는 주인공이라든지 나와 닮은 주인공,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요?
정소연: 「마산 앞바다」가 전체적으로 제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어요. 애착과는 조금 다른데요. 그 글은 선명하게 원형에 가깝다고 할 만큼 저의 여러 가지 면이 다 들어있거든요. 어쨌든 가장 마음이 가는,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주인공은 「마산 앞바다」의 주인공이라고 할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주인공은 또 조금 달라서 「우주류」의 주인공 같아요. 그 글을 썼을 때 22살이었어요. 또한 그 다음에도 소설을 쓴다는 걸 가정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 다음 나온 「마산 앞바다」까지는 그냥 나온 거거든요. 22살의 내가 무언가에 대해, 우주에 대해, 인생에 대해 쓴다고 했을 때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남겨놓지 않고 다 집어넣은 거예요. 다음에 이 부분을 써야지, 하고 아껴놓은 게 하나도 없는 상태 있잖아요. 그런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주류」의 주인공을 좋아해요.
배명훈: 「우주류」의 주인공이 정소연 작가님 같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세상의 제약 같은 것을 본인이 다 뚫고 가는 사람이에요. 이에 비해 뒤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게까지는 안 되는 사람들이잖아요. 「우주류」의 주인공은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주인공이랄까요. 왜 일까요?
정소연: 본인의 피로는 아닐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시기적으로는 제가 기억하기에 「우주류」와 「마산 앞바다」는 거의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엔 그게 있고, 하나엔 그게 없다면 그냥 쓰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보다 뒤에 나온 글의 경우에는 소설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인공이 난관, 역경을 한 번 거쳐줘야 이야기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해서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주인공이 불도저처럼 직진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뭔가를 생각해서 넣은 부분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것이 아마도 제가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종류의 피로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다른 사회라면 다른 식의 장애물을 만들었겠죠.
배명훈: 책이 1, 2부로 나뉘어 있는데 2부는 카두케우스 이야기라고 더 큰 이야기예요. 카두케우스라는 기업이 우주 여행을 독점하고 있어요. 이 시리즈로 묶인 네 편의 단편들은 이 일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는데요. 우주가 주는 가혹함 같은 게 있죠. 재미있게 읽는 지점은 그 가혹함에 대한 열망이 카두케우스를 지탱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어요.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싶고요.
정소연: 카두케우스의 세계는 분명 가혹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세계의 크기를 얘기할 때 그것이 시간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우주 단위로 가면 시공간이라는 게 동일해지기도 해요. 그 중에서 시간적인 것에 확실히 더 집중하게 되는 지점이 카두케우스에는 있고요. 멀리 간다기보다 미래로 가는 거죠. 그 부분은 그런 가혹한 시대를 살면서 그런 설정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 있어요. 왜냐하면 카두케우스 시리즈는 전부 2011년 이후에 쓴 글들이거든요. 그 시점을 봤을 때 내가 살면서 경험한 가혹함이 이야기의 설정이 될 정도의 수치에 이른 거죠.(웃음)
한편으로는 많은 시스템들은 그런 개인적인 열망으로 지탱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카두케우스가 기본적으로 그런 거예요. 지구에서 달을 가는 건 돼요. 그런데 이 태양계에서 저 태양계로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은 카두케우스라는 회사가 갖고 있어요. 이 회사가 원하는 사람만 우주선에 태울 수가 있어요. 나는 아무리 그런 종류의 도약을 체험하고 싶어도 얘들이 나를 선택해주지 않으면 내가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또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나쁘면 안 돼요. 그런 식의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배명훈: SF를 쓰다보면 ‘세계’부분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정소연: 이렇게 되면 ‘세계파’에 동참해야 할 것 같은(웃음) 기분이 드는데요. 일단 SF에는 세계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해요. SF가 불러일으킨 경이감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이 세계를 기울이면서 나오는 어떤 종류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세계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저도 어떤 식으로든 세계를 변형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죠. 그런데 제가 소설을 쓰는 방식에서는 세계보다 관계가 중요한 것 같아요. 관계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글을 써요. 그 관계의 배경으로써 세계를 움직이죠. 세계에 대해 딱히 말하고 싶다기보다는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관계를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려면 현실 세계에서 플랫폼을 이동시켜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세계 소설이 된다는 느낌 정도인 것 같아요.
배명훈: 저는 한국어로 소설을 쓴다는 자각이 있어요. 한국어를 쓰는 등장인물이 한국 지명이 있는 우주 어딘가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 작가들은 어떤가요?
정소연: 미국 SF는 확실히 자연스럽게 미국인이긴 한데 그 부분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존 스칼지 책에서 인상 깊게 봤던 게 어떤 행성이 지구의 어떤 지역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정을 해서 사람 이름들이 비슷한 계통의 이름을 갖고 있는 설정이었어요. 르귄은 항상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새로운 세계에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름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요. 저는 배명훈 작가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요. 한국 이름이고, 한국말을 쓰는 것이 어색해보이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히 있고요. 단지 저는 조금만 바꾸니까 원래 별로 안 어색하게 독자에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배명훈: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쓴다는 것은 말이죠.
정소연: 쓰고 싶은 것, 인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내가 한국어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책을 내고 가장 놀랐던 게 제가 이렇게 읽히고 싶었구나, 하는 것에 스스로 되게 놀랐어요. 단편집을 몇 번이나 내자는 말이 있어도 생각 없다고 하고 그냥 원고들을 끌어안고 있었는데 막상 내기로 하니까 엄청 읽히고 싶은 거예요.(웃음) 이건 팔아야 한다, 하고요. 팔아야 다음이 있으니까요. 그걸 엄청 생각하게 돼서 스스로 좀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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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영희 씨 정소연 저 | 창비
견고한 과학적 얼개를 앞세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일부 SF와는 다르게, 정소연의 소설은 지극히 소박한 삶 속에 파고든 기묘한 출렁임을 서정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담아내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점이 특징이다. 청소년, 성정체성, 장애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답게 수록작 대부분이 ‘타자성의 문제’를 화두로 던지면서 다름에 대한 사유를 진지하게 녹인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SF의 색다른 재미를 전하고 문학을 통해 소수자를 향한 온기 어린 시선을 경험하게끔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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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