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인 블루스』와 여성 탐정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글ㆍ사진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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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시카고 남부에 탐정사무소를 개설한 코라 M. 스트레이어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냈다. “숙녀 여러분, 법률적이거나 은밀한 도움이 필요할 때, 왜 성별이 같은 사람과 상담하지 않나요?”

 

연구과학자이자 역사 미스터리 작가인 제니퍼 킨첼로는 우연히 발견한 낡은 광고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여성 사설탐정 코라 M. 스트레이어의 삶을 다양한 기록 속에서 추적했고, 그 간략한 일대기를 웹 페이지(http://paulreda.com/corastrayer)에 정리했다.

 

여성은 오랫동안 미스터리 소설 속에서 희생양이었지만, 용감하게 범죄와 맞서온 주체이기도 하다. 1878년 안나 캐서린 그린의 에버니저 그라이스부터 새러 패러츠키의 V. I. 워쇼스키에 이르기까지, 여성 작가와 여성 탐정들은 장르의 초창기부터 줄곧 활동해왔다. 미스터리 장르의 발아와 그 전개는 19세기 내내 이어진 여성의 참정권 운동과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범죄를 다루기 때문에 당대와 밀착할 수밖에 없는 이 장르는, 여성의 권력과 지위 상승에 대한 또 다른 역사이기도 하다.

 

최근 출간된 『코카인 블루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읽는 것이 더 재미있을 듯하다. 이 작품은 호주 작가 케리 그린우드의 대표작 ‘프라이니 피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성공한 호주 미스터리의 수순을 밟으며 영어권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시리즈는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눈덩이처럼 불려가며 25년 넘게 이어졌고, 지금까지 총 스무 권이 출간됐다.

 

잠깐 호주 미스터리를 짚고 넘어가보자.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호주산(産)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나름 뚜렷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호주와 뉴질랜드의 미스터리는 한데 묶이는데, 네드 켈리 상이나 나이오 마시 상 등을 통해 꾸준히 작가가 발굴된다. 작가 네트워크는 그 어느 나라보다 긴밀하며 영어로 창작이 가능한 만큼 전 세계 시장에 즉시 출간되는 장점도 있다. 최근 영국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마이클 로보텀이나 네드 켈리 상을 5회 수상한 피터 템플은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호주 작가이며, 사이코 스릴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미국 시장에 진출한 폴 클리브는 뉴질랜드 출신이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소수이긴 하지만 국내에 출간돼 있다.

 

‘국내 출간된 호주 미스터리’ 리스트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코카인 블루스』는 1920년대 멜버른를 배경으로 한다. 1920년대 호주는 19세기 말 골드 러시를 발판 삼아 급격히 발전하던 시공간이었고, 당대를 가리키는 ‘재즈 시대’라는 말처럼 곳곳에 퇴폐와 향락이 출렁였다.

 

작품의 히로인 프라이니 피셔는 재즈 시대의 맞춤옷 같은 여성이다. 지금은 고귀하고 풍족한 귀족의 영애이지만, 호주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는 굶주림에 시달리던 가난한 귀족이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작위 계승자들이 전쟁으로 사망해 서열 3위인 아버지가 작위를 물려받게 된 것. 이후 그녀는 런던으로 가서 지루해질 때까지 상류층의 삶을 만끽한다. 프라이니 피셔는 밑바닥에서 굴러봤기에 상류층의 가면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적당히 타락했고, 인상적으로 유쾌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기죽지 않는다.

 

프라이니 피셔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건 지루한 사교 파티에서 목걸이 도난 사건을 손쉽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본 하퍼 대령은 자신의 딸 리디아의 문제를 언급하며 신변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한다. 모든 탐정이 그렇듯 그녀가 멜버른에 도착하자마자, 사건이 몰아친다. 불법적인 낙태 시술로 여성을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드는 속칭 ‘도살자 조지’의 범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프라이니는 리디아의 주변에서 코카인 밀거래의 정점에 선 ‘눈의 왕’의 흔적을 찾아낸다.

 

범죄 현장에 뛰어들고, 엄청난 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며, 매끈한 러시아 무용수와 사랑에 빠지는 프라이니는 무척 매력적이다. 그녀가 매력적인 건 멋진 외모와 몸매 그리고 뛰어난 패션 센스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니는 관습과 규율을 보란 듯이 비웃고, 더 나아가서 여성들의 연대를 주장한다. 작가 케리 그린우드는 여성에게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그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자유분방하고 우아하며 용감한 귀족 여성 탐정’이라는 ‘캐릭터’를 선택한 것이다.

 

『코카인 블루스』를 읽으면 시각적인 허기를 느끼게 된다. 프라이니는 옷차림과 메이크업, 액세서리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독특한 탐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시리즈는 ‘미스 피셔의 살인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2012년 호주 ABC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호주 역사상 화당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으로, 현재 3시즌이 방영 중이다.

 

 

제한 보상
새러 패러츠키 저 | 검은숲

전직 국선 변호사이자 시카고 토박이인 V. I. 워쇼스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여성 사설탐정이다. 그녀는 화이트칼라 범죄를 다루며 권력과 돈으로 몸을 감싼 최 상류층의 범죄를 끄집어낸다. 거대 보험사와 거대 노동조합의 비리를 다룬 『제한 보상』은 'V. I. 워쇼스키 시리즈'의 첫 작품이며, 이 시리즈는 30년 넘게 진행 중이다.

 

 

나의 로라
비라 캐스퍼리 저 | 엘릭시르

비라 캐스퍼리는 도로시 휴스, 마거릿 밀러와 함께 1940년대 이후 여성 범죄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로라'의 죽음과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로라』는 범죄소설이 남성 고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걸작 누아르로 꼽히는 오토 프레민저 감독의 영화, 『로라』의 원작이기도 하다.

 

 

 

여탐정은 환영 받지 못한다
P.D. 제임스 저 | 황금가지

원작의 제목은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으로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다. 동업자가 자살해 스무 살의 나이에 사건에 뛰어든 코딜리아 그레이. 그녀 뒤에서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내뱉는다. 거장 P. D. 제임스는 여성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가혹한 현실을 우아하게 풀어낸다. 안타깝게도 절판됐지만, 어떻게든 구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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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