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는 결국 그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지 않을까. 동시대와 동세대의 여타 밴드의 작품들과 놓고 보자면 은 말할 것도 없이 급진적이고 신비로운 앨범이다. 하지만 그 비교 대상이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늘 라디오헤드를 라디오헤드와 견주어왔고 또 마땅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관찰의 시선을 외부 영역이 아닌 디스코그래피라는 밴드의 내부 영역으로 돌려보자. 갖은 실험과 시도가 격정으로 치닫는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과연 이번 앨범은 또 다른 진보성의 상징으로 각인될 수 있을까.
통념을 거부한다는 선언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다. 반복되는 미니멀한 비트와 일렉트로니카에서 가져온 각양의 전자음들, 자유롭게 부유하는 앰비언트 사운드, 아르페지오 위주의 기타 록, 웅장함을 더하는 현악 편곡과 같은 사운드 재료에서부터 변칙이 들어선 전개 구조,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완급을 조절하는 진행 방식, 기복이 심한 감정 표현에 이르는 여러 특이한 요소들 또한 에 들어있으나, 돌이켜보자. 이 모든 것들은 앞선 여러 라디오헤드의 작품들에서 이미 만났던 것들이다. 위의 갖은 소리들을 큼지막하게 부풀려 난해한 구상 위에 쏟아내는 이번 앨범 속에서의 움직임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저편에서가 아니라 지난
게다가 밴드는 각각의 사운드 파트를 파편처럼 흩뿌려대던 최근의 모습이 아니라, 개개의 단위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도출해내던 2000년대의 자신들에 가까이 닿아있는 듯하다. 또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멜로디를 잠식하게 만들었던 바로 전의 방식보다도, 멜로디에 사운드가 충분히 자리를 내어주던 더 이전의 방식과 더 큰 교집합을 형성하고도 있다. 「Burn the witch」를 필두로 앨범 전반에 등장하는 챔버 팝 식 스트링 섹션과 「Ful stop」의 음울한 일렉트로닉 댄스, 「Present dance」의 몽환적인 기타 록, 「Daydreaming」의 앰비언트 사운드가 공간의 뒤편에서 어우러져 선율을 더듬어가는 톰 요크에게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제공한다. 오래 전 「Motion picture soundtrack」과 「Pyramid song」, 「Sail to the moon」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밴드에게 향하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음반 전반의 모양새는 평범하고 심지어는 (라디오헤드를 기준으로) 전통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에는 새로운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없다. 「True love waits」와 「Burn the witch」를 포함한 여러 곡들은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져 있었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라디오헤드를 살리는 것은 그러한 평범함과 약간의 진부함이다. 더욱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려는 집착으로부터 어느 정도 힘을 내려놓은 결과, 적잖은 무게 중심이 멜로디로 이동하게 됐다. 의 주요한 특징은 개개의 곡이 잘 들린다는 데 있다. 자세히 살펴가며 트랙의 세부 요소들을 뜯어볼 때보다도 멀찍이 떨어져 곡을 크게 바라볼 때 그러한 경향이 더 잘 잡힌다. 톰 요크의 보컬과 피아노, 기타, 스트링에는 형태가 분명한 선율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선율들은 심지어 아름답고 유려하기까지 하다. 분위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아 멜로디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Daydreaming」, 「Glass eyes, Decks dark」와 같은 곡들을 이 맥락에서의 좋은 예로 들 수 있겠다. 고혹적으로 침잠하는 멜로디들이 트랙의 전면에 서서 감상의 순서를 다른 요소들보다 먼저 가져간다. 이러한 성질은 단조로운 비트와 분절된 음의 반복에 치중했던 전작의 방향과 다분히 상반된다.
멜랑콜리의 정서가 담긴 멜로디와 각양의 아트 록 사운드가 잘 혼합된 2000년대의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 더욱 괜찮게 들릴 테다. 몽롱한 앰비언스 안에서 톰 요크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음을 옮겨가는 「Daydreaming」과 「Glass eyes」, 깜깜한 저 아래로 침잠해가는 분위기 속에서 피아노 음이 명징하게 울리는 「Decks dark」, 재즈적 터치가 들어선 어쿠스틱 기타가 곡을 이끄는 「Desert island disk」와 같은 앞서 언급한 잔잔한 트랙들에서 선율감이 살아난다. 그러나 반대로, 세기가 강렬하다고 해서 멜로디의 흡입력이 떨어지는 것은 또 아니다. 「Ful stop」내에서 신시사이저 라인이 전하는 밴드 특유의 신경질적인 멜로디와 「The numbers」, 「Tinker tailor soldier sailor rich man poor man beggar man thief」의 웅장한 현악 선율이 계속해서 위력을 자랑한다. 짤막한 현악 연주의 끊임없는 반복이 낳는 긴장 속에서 곡조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Burn the witch」는 또 어떠한가. 음반의 하이라이트에 들어가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멋지다.
어떻게 보면 앨범은 근래의 라디오헤드가 낼 수 있는 가장 대중지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인 지지의 연속이 처음으로 무너졌던
2016/05 이수호 (howard19@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매사냥꾼
201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