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는 저리 비켜
풀을 뽑는 이유는 너무 많기 때문인가? 무엇에게? 인간에게. 인간은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어깨까지 오는 밉살스러운 쑥을 잡아 뜯는다.
글ㆍ사진 사노 요코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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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apsella-flowers.jpg

 

봄이 끝날 무렵 마당을 둘러보면 녹색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그제야 ‘아, 여름이 되면 풀이 자라지’ 하고 놀란다. 매년 깜짝 놀란다. 그러고 잡초를 뽑는다.


겨울이 끝날 무렵 자그맣고 부드러운 싹을 보면 ‘아, 봄이 왔구나’ 싶어 기쁘다. 매년 기쁘다.


나무가 싹을 키우면서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쁘면서도, ‘식물은 좋겠다, 매년 새로운 삶을 사는구나, 나는 봄이 왔다고 해서 얼굴이 새로워지는 것도 아니고…’라며 불평한다. 매년 불평한다. 새싹을 볼 때마다 조금씩 더 할머니가 된다.


쭈그리고 앉아 풀을 뜯는다.


개망초를 쑥쑥 뽑으면서 왜 나는 뜯을 풀과 남길 풀을 구별하나 생각한다. 쑥도 뽑고, 쇠뜨기도 뽑고, 삼백초도 뽑는다. 삼백초를 뽑은 후엔 반드시 손가락 냄새를 맡아본다. 쑥을 뽑다 보면 히나마쓰리 때 먹는 쑥떡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쑥이 송이버섯만큼 귀하다면 싱글벙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풀을 뽑는 이유는 너무 많기 때문인가? 무엇에게? 인간에게. 인간은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어깨까지 오는 밉살스러운 쑥을 잡아 뜯는다.


크면 뭐든지 밉살스럽다. 아들이 아기였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정강이에 털이 수북하게 자란 아들도 이 쑥만큼 밉살스러운가? 힘껏 뽑아버린다. 괭이밥을 캔다. 괭이밥이 가련하게 생긴 노란 꽃을 피우고 지구에 섬세한 뿌리를 박고 잎을 펼친 채 제법 끈질기게 매달려 있다. 나는 실 같은 줄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살살 파내며 조심조심 땅에서 떼어냈다. 사르르 벗겨질 때의 쾌감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런 여자, 있다. 가련해 보이고, 연약하고, 그런데도 끈질긴 여자, 눈에 띄지 않게 끈적끈적 달라붙는 여자가. 그런 여자는 풀로 치면 괭이밥일까? 나는 괭이밥은 아니군, 하며 냉이를 뽑는다.


혹시 냉이일까? 냉이를 가난뱅이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성장은 엄청 느린데 비나 바람에 잘 휩쓸리지 않는다고. 자세히 보니 작고 하얀 꽃이 귀엽다. 언뜻 보면 먼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세모난 냉이 잎을 아래로 쭉쭉 당겨 떼어내어 귀 언저리에서 흔들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차르르차르르 소리가 났던가? 그 작은 소리를 언제까지나 듣고 싶었다. 그럴 때 아이들은 꼭 쭈그리고 앉는다. 친구도 쭈그리고 앉아 똑같은 행동을 하며 “내 것도 들어봐” 하고 자기 냉이를 내 귀 옆에서 흔들었다. 차르르차르르 똑같은 소리가 났다. 그 아이, 누구였더라?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냉이를 뜯으며 어릴 때처럼 흔들어볼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럴 여유가 없다. 너무 많이 자라서, 냉이를 절멸 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에잇, 에잇, 역시 나는 꽃이 먼지처럼 보이고 거칠기만 한 냉이다. 에잇, 에잇. 냉이를 뽑다가 꽃이 떨어진 은방울 잎을 발견하고 ‘오, 오, 여기 있었어? 다행이다, 아아, 밟았으면 어쩔 뻔 했어’ 하고 소중히 지켜주다가, 다시 냉이를 보면 비록 내 몸과 같은 존재라도 역시 ‘성가시다, 없애버리자’라며 함부로 하게 된다. 지켜주고 돌보고 비료를 주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은방울꽃을 바라보는 건…. 맞다, 남자가 미인을 대하는 태도다. 위쪽을 쳐다보니 부용이 하얀 꽃을 곱게 피워놓았다. 이쪽이 더 예쁘고 화려하네. 내가 남자였다면 은방울꽃보다 화려한 부용꽃이랑 자고 싶어 하는 알기 쉬운 남자였을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을 테지. 음, 저리 비켜, 냉이.

 

 



 

 

문제가 있습니다사노 요코 저/이수미 역 | 샘터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는 게 뭐라고』의 작가 사노 요코가 가장 그녀다운 에세이집으로 돌아왔다. 중국 베이징에서 맞이한 일본 패전의 기억부터 가난했던 미대생 시절,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거쳐 홀로 당당하게 살아온 일생을 그녀 특유의 솔직함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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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새싹 #할머니 #봄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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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j314

2017.03.02

이 글을 읽다 보니 봄이구나 생각이 드네요. 사노요코 에세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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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1년 《염소의 이사》를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주요 그림책으로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의 우산》 《내 모자》 등이 있고,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시즈코 상》 등의 수필을 썼다. 《내 모자》로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수필집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로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받았다. 2010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