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여자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 동래성 전투에서 사로잡혀 일본 히젠나고야 성에서 5년간 포로로 지낸 후 다시 마카오로, 인도 고아로, 혼 곶 너머의 섬 미들버그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20년을 노예로 끌려다닌 기생 엄니 수향. 그리고 헤어진 엄니 수향과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서쪽을 향한 대항해 시대의 범선에 몸을 실은 기생 딸 정현, 또는 ‘세뇨리따 꼬레아’.
역사 속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천착해 온 소설가 유하령은 남편인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와 함께 일본의 고서점까지 뒤져 찾아낸 사료를 바탕으로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기생 ‘세뇨리따 꼬레아’의 이야기를 축조해 냈다. 여성의 관점에서 조선사를 다시 읽는다는 것에 대해,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창조한다는 것에 대해 유하령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전작 『화냥년』에 이어, 이번에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세뇨리따 꼬레아』를 출간하셨습니다. ‘역사 속 여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오신 배경은 무엇인지요?
현대가 능력 위주의 평등 사회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 뒤에 서야 하는 2등 시민입니다. 가족이나 결혼제도로 묶인 관계에서 가부장제의 관습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2등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의 처지를 변화시키려면 유교적 가부장 질서가 시작된 조선의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봅니다.
조선의 지배자들이 어떤 제도를 만들어서 상속과 분배에서 여성을 배제했는가. 배제된 채 소외된 양반과 양인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가의 규제와 통제를 받으며 사적인 성을 공공의 성으로 반납하고 억압당했는가. 또 ‘정절’이라는 미명하에 억압당한 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했는가. 그 역사적 맥락을 밝히고 드러내는 것이 지금도 이어지는 여성 소외의 불평등 구조를 해석하는 실마리라고 봅니다. 다음 세대에게 불평등한 관습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우리 세대 여성 스스로가 비판적으로 깨닫고 단절시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글쓰기는 그런 실천입니다.
주인공은 전쟁포로 중에서도 기생 출신입니다. 기생이라는 신분의 어떠한 점에 주목하셨고, 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양반과 사대부, 권력의 핵심층을 상대해야 했던 기생들은 유교 질서 밖의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술에 능해야 했고 문화에 밝아야 했으며 정염의 화신이어야 했으면서도 오로지 양반 사내들의 욕구 해소를 위한 분열적인 존재였습니다. 당시 기생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양반 사내들의 의도대로 노리개 노릇을 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였습니다.
자신의 분열적 상황을 인식하고 능동적인 사랑을 꿈꾸는 기생이 있다면 전쟁의 상황에서 어떤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상상했습니다.
전쟁 통의 숨통을 옥죄는 사랑, 전쟁 뒤의 더 전쟁 같은 사랑을 겪으면서 대항해 시대 범선에 실려 이 세계 저 세계로 끌려 다녔던 주인공 ‘세뇨리따 꼬레아’. 그는 사랑의 생멸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사랑의 빛을 탐험했고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가혹한 세상을 견딜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실제로 주인공과 같이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포로가 있었을까요?
임진왜란 당시 얼마나 많은 조선 포로들이 나가사키의 노예시장에서 팔렸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그 시기 일본에서 활동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 포로들의 노예화로 마카오, 인도 고아 등 포르투갈 상관(商館)의 노옛값이 폭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일본에서는 1592년부터 남양(南洋)무역이 발달했습니다. 주인선(朱印船)을 타고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와 같은 해외로 건너가서 각종 업무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의 숫자도 늘어났습니다. 상인, 선원, 하인, 용병이 그들입니다. 이 남양 항로를 연결하면 인도 고아까지 가게 되므로 당시 포로들이 이 항로로 실려 갔다는 상상은 합리적인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부터 마카오, 네덜란드까지, 소설 속 배경이 넓고 다양합니다. 그만큼 자료 수집과 고증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남편이자 조선외교사 전문가인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의 도움도 있었나요?
2006년 마카오 답사로 거슬러 올라가서 2015년 나가사키, 데지마 답사까지 10년 동안 간헐적으로 막연히 준비했던 답사자료들을 1년여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소설 얼개가 명확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임진왜란사에 대한 많은 의문을 남편이 충실히 토론해 주었고 안내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2015년 여름 오사카 고서점에서 남편과 『商人カルレッティ』를 찾아냈던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세뇨리따 꼬레아』후반부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집필 기간이 2년으로 길어진 것은 한 문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서였습니다. 읽었으나 긴가 민가 하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확인해 보아야 했기에 쌓아 놓은 사료와 논문을 또 뒤지는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샘이깊은물〉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고, 이후 다큐멘터리 제작, 글쓰기연구소 운영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소설가로 활동 중이십니다. 다양한 글쓰기, 창작의 세계를 거치신 셈인데요, 현재는 소설 집필에 집중하시는 이유, 그리고 그 매력은 무엇인가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지적 도전과 탐험으로 확장된 세계 속에서 굳건한 점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제게는 소설 쓰기입니다.
현재 집필하시는 소설들, 그리고 과거에 작업하신 다큐멘터리들의 중심에는 ‘여성’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2017년 오늘의 대한민국 여성’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인간은 외부의 억압에는 저항했지만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통제해서 사회의 부속품으로 길들여 왔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통제해 온 자신에게 질문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관습이 바라는 대로 길들여 온 자신에게 저항하고 싶다면 용감하게 그래야 하고 그러한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끝으로,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떠신지요? 이번에도 또 다른 ‘역사 속 여성’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해방기 중국, 일본, 미국, 태국, 베트남을 넘나들며 활약했던 여성들의 사랑을 통해 한반도 사람들의 관대했던 기상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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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따 꼬레아 유하령 저 | 나남
역사 속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천착해 온 소설가 유하령은 남편인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와 함께 일본의 고서점까지 뒤져 찾아낸 사료를 바탕으로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기생 ‘세뇨리따 꼬레아’의 이야기를 축조해 냈다. 두 여인의 특별한 삶을 통해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임진왜란 당시 평범한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