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세태의 관찰자’라 불리는 소설가 정아은. 헤드헌터의 시각으로 학벌주의 사회의 이면을 포착하고(『모던 하트』), ‘잠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신분 상승 욕구가 투영된 교육의 현재를 발굴해낸(『잠실동 사람들』) 그녀가 대한민국의 성형외과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갖가지 욕망들이 한 데 엉켜 꿈틀대면서 민낯을 드러냈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버리고 싶은 욕망, 그 위로 그럴싸한 가면을 덮어쓰고 싶은 바람, 그리하면 사랑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어쩌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 어지러이 늘어서 있는 감정들 사이로 세 남녀가 걸음을 옮긴다. 한 여자와 두 남자, 서경과 성환 그리고 재희. 모두가 외롭지만 누구 하나 제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이곳의 우리와 꼭 닮았다.
이 시대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의 제목은 『맨얼굴의 사랑』인데 공간적 배경은 성형외과예요. 맨얼굴을 바꾸고 지우는 공간이죠.
성형외과가 우리 생활에 굉장히 많이, 공격적으로 들어와 있잖아요. 마치 성형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것처럼 돼버렸어요. 자신의 발전에 관심이 있고 인생을 성의 있게 열심히 사는 사람은 반드시 성형을 해야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성형외과라는 공간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말해줄 수 있는 첨단적인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하철만 타 봐도 알 수 있죠. 환승 통로에는 엄청나게 큰 액자에 전신 성형 광고가 걸려 있고, 내부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붙어 있어요. 우리 눈을 촉각적으로 찌르다시피 하죠. 성형만 하고 나면 인생이 다 바뀔 것처럼 보여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흥미가 생겼어요. 어느 날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장소로 성형외과가 알맞을 것 같았어요.
사랑 이야기와 성형외과 사이에 어떻게 접점이 생겼는지 궁금한데요?
사랑의 패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전자기기가 우리를 포위하는 듯한 세상이 아니었을 때는 사랑의 색깔도 분명히 달랐을 거예요. 고전 작품에 나오는 사랑을 보면 훨씬 더 단순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제는 온갖 종류의 전자기기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고, SNS를 통해서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을 공유하잖아요.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거죠. 그런데 진짜 자기애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거잖아요. 진짜 자기에 대한 상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거고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타인과 관계를 맺었던 문화가 많이 소멸되고 이상한 형태의 자기애가 남은 것 같아요. 이런 시대에 사랑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경, 성환, 재희의 관계를 보면 피상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성형외과에서 얼굴을 바꾸듯이 각자의 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맺는 관계와도 닮아 있고요.
타인에게 가까이 가는 걸 막는 장치가 너무 많죠. 일단 전자기기들이 그렇고, 사실 SNS도 우리를 가까이 이어주는 것 같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제가 되죠. 요즘 우리는 만나면 각자의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외롭고요. 서경이라는 인물은 항상 외모로 평가 받는 환경에 있었어요. 원래 걸그룹이 되고 싶었던 아이이기도 하고, 연예계에서 일을 할 때도 늘 외향으로 평가 받았어요. 자기 역시 남을 외향으로 평가했고요. 그러다가 성형외과로 간 건데, 그곳은 더한 환경이었던 거죠. 서경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모 중심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측면이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 버림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참을성 있게 사람을 통찰하거나 깊이 다가가거나 꿰뚫어 보는 눈도 없는 거고요.
성형외과라는 공간과 연예계라는 작은 사회를 결부시키신 이유가 궁금했는데, 둘 사이에 그런 공통점이 있었군요.
연예계는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는 곳이잖아요. 성형외과는 그런 문화를 생산해 내는 곳이고요. 그러니까 서로 맞닿아서 이루어지는, 우리 현 세태를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상징적인 산업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예계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취재기가 재밌을 것 같아요.
처음에 생각했던 사랑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먼저 떠올렸었어요. 여자 쪽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와 남자 쪽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교차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막연하게 남자는 유명 인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 안에서 계속 이야기가 자라면서 점점 연예계와 성형외과로 가는 거예요. ‘어떻게 연예인을 인터뷰할 수 있겠어, 포기해야지’ 했는데 이야기가 잊히지 않더라고요. 결국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쪽 방면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원래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연예인을 만나지는 못했고요. 어떻게든 만나보려고 연예인 팬클럽에 다 가입했어요.
연예인 팬카페에 다 가입하셨어요?
그럼요. 팬들과 이야기하면서 연예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연예인들이 쓴 책을 다 읽었죠. 그러다 보니까 연예계에서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그 상태에서 연예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메이크업 아티스트, 매니저, PD, 드라마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책도 읽었어요. 그 자체로 재도 있었고, 누구를 인터뷰해야 될지 감이 오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인터뷰할 만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연락을 했죠. 그 과정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고, 이 이야기를 어떻게 쓸 수 있겠나 싶었는데, 하다 보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제가 한 번도 접해보지 분야의 사람들이 쓴 책을 읽고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제 세계도 넓어진 것 같아요.
인생이 꿈처럼 피어나는 일은 없어요
서경이는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만 계속 등단에 실패해요. 그 과정에서 열등감과 불안감에 휩싸이고요. 작가님도 등단 전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나요?
그럼요.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꿈을 버리지 못하는 제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죠. 우리는 꿈을 갖고 달려가면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꿈꾸지만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죠. 그리고 지금도 그래요. 등단만 하면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등단을 하고 나서 제가 얼마나 많이 부족한지 알게 됐고요. 그러니까 그런 감정은 항상 갖고 있죠. 그런 점에서 꿈에 모든 걸 다 거는 것의 위험성, 꿈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뭔가 하나를 정해놓고 ‘이것만이 나의 전부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다양한 자아를 가꾸고 더 다양한 일상생활에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해 가는 게 우리 삶을 위해서는 더 좋은 것 같아요.
한 순간에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도 ‘수술만 하면 인생이 180도 달라질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없겠죠. 결혼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맞아요. 제가 성형외과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고요. 영화를 봐도 결혼에 성공하면 거기에서 사랑 이야기가 끝나잖아요. 하지만 사실은 결혼한 이후가 더 중요하죠. 성형도 그래요. 성형하고 나면 인생이 바뀔 것처럼 광고하지만, 그 이후의 삶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해야 하죠. 성형이든 결혼이든 꿈이든, 뭐든 다 걸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인생이 꿈처럼 피어나는 일은 절대 없어요. 성형이 상징하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절대라는 건 없잖아요. 우리 삶은 정말 다양한 순간순간으로 계속 흘러가는 거죠.
성형외과를 취재하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충격적이었을 텐데요.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수술 장면은 동영상으로 봤어요. 수술 현장에 참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었죠. 상담실장 분들을 인터뷰했었거든요. 저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수술 장면을 봤는데도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형수술은 절대로 ‘1 1=2’가 아니에요. 수술 전과 후가 너무 달라지는 거죠. 이전의 나라는 사람의 외모를 잃어버리는 거거든요. 제가 성형수술에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성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리고 우리는 성형의 홍수 속에서 ‘성형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성형을 외면하기 힘들어요. 그래도 자신이 뭘 하는지는 반드시 많이 알아보고, 그러고 나서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성형 이후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보고요.
성형외과를 찾아온 환자들의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외모 때문에 오는 것만은 아니에요. 정신적인 콤플렉스나 마음의 병을 외모로 해소하려는 경우도 있어요.
자신의 인생에서 관계로 인해 풀리지 않았던 부분이나 아팠던 부분, 자기는 사랑했지만 사랑 받지 못했던 부분, 혹은 버림받았던 기억들의 원인을 어떤 한 가지에서 찾고 싶은 거예요. 그걸 탓하면서 ‘이것만 해결되면 다 풀릴 거야’라고 생각하고 싶은 거죠. 사람들은 명쾌한 답을 원하잖아요. 특히 우리는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항상 외부에서 누군가가 ‘넌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요. 그러니까 외부 요인을 하나 찾아내서 ‘내 인생이 골치 아픈 건 다 이것 때문이야’라고 말하고 싶고, 그것만 해결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싶은 거예요. 그런 기제들 중 하나가 성형인 거죠. 그렇지만 성형을 하더라도 그런 문제들은 계속 이어진다는 걸 알아야 돼요.
외모를 통해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도 숨어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사랑 받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하거나 미움 받는다고 느끼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해요. 이유를 아는 것과 모르는 건 큰 차이거든요. 만약 잘 사귀던 연인이 갑자기 날 떠났는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자기의 모든 게 싫어져요. 내가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서 싫었나, 큰 웃음소리가 싫어서 떠났나, 하는 식으로 자기의 모든 것에 뒤집어씌우게 되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유를 한정 짓고 싶어 해요. 내가 돈이 없어서 날 떠났을 거야, 라고 믿는 식이죠. 그렇게 믿으면 나는 ‘돈만 있으면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외모만 바꾸면 사랑 받을 수 있을 거야’라고 범위를 한정시켜서 구체적으로 탓하면 훨씬 살기가 편해지는 거죠.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거예요.
성환과의 관계에서 서경이 보여준 모습도 다르지 않았죠.
그렇죠. 그게 유한한 우리 인간들의 한계이고 불쌍한 점이죠. 저도 그렇고 누구나 다 그런 것 같아요. 자본은 항상 그런 부분을 치고 들어오고요. 외모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성형 자본이 가장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거죠. 제가 『잠실동 사람들』에서 교육에 관해 썼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건 좋은 학원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잖아요. ‘우리 아이가 왜 공부를 못하는지 모르겠어’ 보다는 ‘돈 많이 들여서 좋은 학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게 자기 마음이 편한 거예요. 부모의 경우에는 그런 지점에서 사교육 자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기는 거죠.
교육 사업과 관련해서 ‘불안 마케팅’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자본이 침투하는 방식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돈만 내면 당신의 불안을 해결해주겠다’고 말하는 거죠. 거기에 익숙해질수록 ‘불안을 견디는 체력’은 점점 약해지고요.
존재와 관계의 문제, 거기에서 오는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끌어안는 법을 배우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렇게 하는 방법을 점점 모르게 되고요. 그럴 때 사방에서 자본이 치고 들어오는 거예요.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우리가) 어딘가에 불안을 느끼면 바로 다가오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돈을 내고요. 그런 식으로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자본에 묶여서 잘못 투자한 것 때문에 더 끔찍한 결과가 올 수도 있는 거거든요. 성형도 그렇고 사교육도 그렇고, 다 똑같아요.
돈은 개의치 않는다는 말, 위선 아닌가요?
서경과 성환, 재희의 관계에는 감정 외에 물질적인 것이 결부된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랑이 ‘숭고한 정신적 행위’여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물질적인 것이 끼어들면 속물이라고 하고요. 어쩌면 그게 환상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이미 자본이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상태에 살고 있죠. 우리 안에 수많은 자본주의적 욕망이 들어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끌어안아야 되고 속물적인 나를 인정해야 돼요. 그런 상태에서 상대의 속물성과 나의 속물성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래야 더 큰 파탄에 이르지 않을 수 있어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파악하고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파악해야 돼요.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조금이라도 더 비자본주의적인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상적으로 상정해 놓고 ‘나는 돈은 개의치 않아’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그게 위선인 것 같아요.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셨을 때 “통속과 품위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셨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작가들마다 몫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잖아요. 어떤 작가는 굉장히 초현실주의적인 걸 쓰고, 또 어떤 작가는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걸 쓰는데, 그렇게 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몫이 있는 것 같아요. 10년 후의 저는 형이상학적인 걸 쓸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가 쓰고자 하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거예요. 저는 제 삶과 맞닿아 있는,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과 맞닿아 있는 주제에 천착하고 싶거든요. 제가 끌렸던 소설들도 그랬어요.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의 생활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우리의 생활사와 풍속사, 역사가 다 담겨있어요. ‘통속과 품위의 경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작가마다 제 몫이 있다고 하셨는데, 소설가 정아은의 몫은 어떤 걸까요?
늘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현실에서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것을 형이상학적으로 혹은 시적으로 굉장히 아름답게 쓰는 작가들도 있죠. 저도 그런 작가들을 좋아해요. 동시에 현실에 기반을 두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문제들에 천착해서 그 이면을 드러내는 몫을 하는 작가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쪽에 제 몫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일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이면을 파헤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현실을 그대로 쓰려고 노력하는 거고, 그 결과 ‘통속과 품위의 경계’에 있다는 평을 듣게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실동 사람들』을 출간하신 후에 <채널예스>와 인터뷰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집필 중이라고 하셨는데요. 『맨얼굴의 사랑』이 달달하지만은 않은 것 같거든요(웃음).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은 이 소설 전에 쓴 작품이 있었어요. 1400매 정도 썼는데 너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버렸어요. 똑같은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였고 사랑도 훨씬 더 달달했어요. 서경은 더 자신감 있고 합리적인 여성이었고요. 그런데 제 스스로 설득이 안 된다고 할까요, 읽어봐도 몰입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버렸고 『맨얼굴의 사랑』은 서경이라는 인물로 시작해서 서경이의 마음이 가는 대로 썼어요. 그 결과 소설에 그려진 건 아픈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랑하는 마음은 이번 소설이 훨씬 강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도 서경이가 굉장히 사랑했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달달하지 않고 아플지라도, 사랑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이었어요. 서경이라는 인물은 가진 것도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번번이 실패했지만, 한 순간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영혼이에요.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살면서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법도 알지 못했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도 서투르기 짝이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사랑하려 애썼어요. 지금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삭막한 환경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자본에 포위된 채 살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의 가장 핵심적인 본성인 ‘사랑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랑은 인간이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끈질긴 특성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죠.
-
맨얼굴의 사랑정아은 저 | 민음사 |
도시의 갖가지 군상과 인간의 비루한 감정을 절묘하게 캐치해 온 작가는 이번 장편소설 『맨얼굴의 사랑』에서 대한민국 성형외과의 안과 밖을 치열하게 그려 낸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