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예술계의 편견에 강주먹을 날린 책 - 『빛나는 아이』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흑인 예술가’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글ㆍ사진 이유리(번역가)
2018.02.01
작게
크게

미국의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 검색란에 쳐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그는 ‘검은 피카소’이며 ‘흑인 천재 예술가’였다고. 맞는 말이다. 그는 천재였다. 길거리 낙서를 떠올려보면 왠지 모르게 낙오자들이나 부랑자들이 별 뜻 없이 휘갈기는, 반사회적 일탈이나 반항 같이 느껴진다. 지저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바스키아는 그 흉한 낙서를, 권력에 대한 경고와 비판의 자기 표현으로, 예술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휘두른 듯한 터치, 단순한 묘사, 무질서한 선과 어지러이 쓰인 문자에도 불구하고, 바스키아의 그림은 잘 짜여진 구조로 인해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또한 한눈에 바스키아의 그림인 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다. 그래서 그의 낙서그림은 주류 미술계에 성공적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피카소 같은 천재였다. 하지만 단서를 꼭 붙여야 한다. ‘검은’ 피부색의 ‘흑인 천재’이라는 점이다. 바스키아는 이 수식어를 흡족해 했을까? 당신은 이게 칭찬 같아 보이는가?

 

이 수식어에는 함정이 있다. ‘흑인’ 천재 예술가. 아무런 수식어가 없는 ‘위대한 예술가’보다는 한 등급 아래인, 백인이 만들고 있는 기존 예술계에 합류한 예외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말 속에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우를 받는 건 흑인들뿐 아니라, 여성과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의 공통된 운명이기도 하다. 흑인 천재가 나오면 우연이고, 그는 돌연변이일 뿐이다. 그래서 ‘신기한 존재’이다.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도 그런 사람이었다. 세간의 시각 혹은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바스키아는 보통의 흑인 소년들이 그렇듯 가난하고 무식하고 사나운, 불쌍한 거리의 아이로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천재적 예술 세계는 마약 중독으로 인한 망상 때문에 우연히 움텄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자바카 스텝토의 빛나는 아이』 는 그런 예술계의 편견에 보란 듯이 강주먹을 날리는 책이다. 바스키아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사실은 그의 예술 세계가 어머니의 지속적 교육과 사랑 덕택으로 자랄 수 있게 되었음을 조곤조곤 알려주고 있다. 바스키아의 어머니 마틸드는 아들이 어릴 적부터 함께 맨해튼의 미술관에 같이 가는 걸 즐겼던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바스키아를 브루클린의 미술관의 어린이 회원으로 등록시켜 줌으로써 어린 아들에게 예술에 대한 관심을 최초로 불어넣어 주었던 주인공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바스키아가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도 어머니와 함께 간 전시회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마틸드의 모습을 본 뒤라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1.jpg

 바스키아의 삶과 예술을 다룬,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영화 <바스키아>(1996년 작) 중에서. 어머니 마틸드와 함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있는 어린 시절의 바스키아.

 

 

2.jpg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지속적 관심과 독려 덕분에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바스키아 그림에서 흔히 반복되는, 그의 전매특허라고도 할 수 있는 ‘내장’과 ‘해골’ 그림도 어린 시절 어머니 마틸드가 건네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일곱 살 때 바스키아는 브루클린 거리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부러지고 내장을 심하게 다쳐서 비장을 떼어냈다. 다행히 목숨은 건져 바스키아는 수술을 받고 병원에 오래 입원해서 지냈는데, 이때 마틸드는 아들이 병원 생활을 지루해 할까 봐 해부학의 고전인 『그레이의 해부학』을 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레이의 해부학 은 의과대학생이나 미술학도의 표준 교본이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술 공부도 할 겸, 자신의 다친 몸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으로 이 책을 건네었을 것이다. 다행히 바스키아는 적나라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그레이의 해부학』을 무서워하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공부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바스키아의 예술에 강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바스키아는 『그레이의 해부학』을 읽은 후 인체, 그 중에서도 특히 골격 구조에 평생 관심을 갖게 되었고, 회화와 드로잉 작품 속 많은 이미지들의 이름을 달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jpg

 잉글랜드의 해부학자이자 외과 의사 헨리 그레이(Henry Gray)가 집필한 인체 해부학 『그레이의 해부학』. 1858년에 최초 발행되었다.

 

 


4.jpg

어머니 마틸드는 교통사고로 입원중인 아들에게 해부학 교과서인 『그레이의 해부학』을 선물했다. 이 책은 이후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에 강한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바스키아의 삶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어머니였는데,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었던 마틸드와 헤어질 때 아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마음에 대못 하나가 박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자바카 스텝토는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바스키아의 심리 상태를 그림 재료로 보여주는 기지를 발휘한다. 빛나는 아이』 의 자랑 중 하나는 바로 그림기법과 재료가 독특하다는 점. 이 책을 제작할 때 자바카 스텝토는 뉴욕 건축 현장과 거리에서 직접 주운 쓰레기, 버려진 전시자재를 가져다가 퀼트처럼 이어 붙인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정신병원에 이송되는 엄마를 바라보는 바스키아의 뒷모습을 담은 장면을 펼쳐 보면, 스텝토가 못이 그대로 박혀 있는 거친 목재 위에 그림을 그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스텝토는 바스키아와 그의 어머니 마틸드가 단순한 모자(母子) 관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이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5.jpg

           녹슨 못(붉은 동그라미 안)을 뽑아 내지도 않은 채, 조각난 나무 위에다 그림을 그린 자바카 스텝토.

 

상상해 본다. 이 책 빛나는 아이』 를 읽는 어린이들을.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흑인 예술가’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환하고 멋진 미술관에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만이 예술이 아님을, 예술이라는 것은 그리 먼데 있지 않음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통해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책의 큰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을 아이 손에 쥐어 준 어머니,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한국의 마틸드라고 생각한다. 혹시 아는가. 바스키아에게 『그레이의 해부학』이 있었다면, 우리 아이에겐 빛나는 아이』 가 그 역할을 해 줄지. 이 책이 부디, 어린이들에게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가 가진 모든 기본적인 것들은 어머니가 주셨습니다. 제 예술의 원천은 어머니입니다(I’d say my mother gave me all the primary things. The art came from her).” -장 미셸 바스키아


 


 

 

빛나는 아이자바카 스텝토 글그림/이유리 역 | 스콜라
자바카 스텝토는 바스키아처럼 할 수 있는 용기를, 바스키아의 열정과 생명력을, 그리고 바스키아의 예술적 감각을 어린이들에게 전해 줍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빛나는 아이 #검은 피카소 #장 바스키아 #흑인 예술가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유리(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