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의 한 장면
(* 영화 관람에 방해를 줄 만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에는 읽어낼 거리가 꽤 많다. 앤트맨이 (크기가) 늘었다가 줄었다가 (세계를) 왔다 갔다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앤트맨과 와스프>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제기됐던 앤트맨 부재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아 전 세계 인류의 반을 없애버린 이후 역시나 멤버의 절반가량을 잃은 마블 히어로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를 재건(?)하게 될지에 관한 힌트도 제공한다. ‘앤트맨 2’대신 '앤트맨과 와스프’, 남과 여 슈퍼히어로를 나란히 배열한 제목은 이 시리즈를 비롯해 앞으로 마블 슈퍼히어로물이 남성 중심의 구성을 벗어나 여성 슈퍼히어로에 더 많은 지분을 할애할 것임을 시사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슈퍼히어로물이되 가족 드라마와 결합한 <앤트맨과 와스프>는 2009년 마블을 인수한 월트 디즈니의 세계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다.
1. ’앤트맨’ 스캇 랭(폴 러드)은 현재 가택 구금 중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팀 캡틴 아메리카 편에 합류하여 팀 아이언맨과 독일 공항에서 싸운 게 발단이다.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 행위로 독일에서 구속되는 대신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지역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바깥 생활과 격리된 채 지내고 있다. 이때 찾아온 ‘와스프’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은 양자영역에 갇힌 아빠 행크 핌(마이클 더글러스) 박사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1대 와스프인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을 구출하는 임무에 합류를 강제(?)한다. 양자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기술이 필요한데 앤트맨과 와스프는 팀을 이뤄 이를 구하던 중 사물을 통과하는 페이징 능력을 갖춘 ‘고스트’ 에이바(해나 존-케이먼)의 저항에 직면한다.
2. <앤트맨과 와스프>는 제목만 남녀 성비 비율만 맞추지 않았다. 앤트맨과 와스프 각각의 활약도에서도 균형의 추가 어느 한쪽으로 현저히 기울어지지 않는 데 신경을 많이 쓴 눈치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아빠가 커졌어요’를 슈퍼히어로 버전으로 시연한 앤트맨이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중형 트럭을 스케이트보드 삼아 추격전을 벌이는 등의 눈에 띄는 액션을 선보인다. 그에 뒤질세라 와스프 또한 앤트맨은 갖추지 못한 양손 장착 블래스터와 날개 등의 신기술로 그에 못지않은 비중을 가져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거대 헬로키티 캔디 케이스 장면도 와스프(와 스캇 랭의 절친 루이스)의 차지다.
영화는 단순히 와스프의 존재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줄거리에서 언급한 빌런인 듯 빌런 아닌 빌런 같은 고스트에도 사연을 부여한다. 또한, 1대 와스프의 등장을 2대 와스프를 돋보이게 할 액세서리 격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임을 복선으로 깔아놓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후 4기를 맞이하게 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등장하는 인물의 선악이나 비중에 상관없이 여성과 소수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임을 <엔트맨과 와스프>는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의 한 장면
3. 앞서 ‘아빠가 커졌어요’의 슈퍼히어로 버전이라고 말한 건 오직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앤트맨>(2015) 때도 그렇지만, 이 시리즈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족 코믹 드라마 <애들이 줄었어요>(1989)와 <아이가 커졌어요>(1992)를 떠올리게 한다. 교수직에 있는 아빠가 물체 축소기를 만들어 아이를 줄였다가 다시 확대기를 만들어 본의 아니게 아이를 커지게 했다가 소동을 일으키는데 다시 본래 크기로 돌아오게 하면서 이들은 가족 간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애들이 줄었어요>와 <아이가 커졌어요>의 제작사 중 한 곳은 월트 디즈니다. 월트 디즈니가 2009년에 마블을 인수한 건 유명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월트 디즈니의 가족 드라마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은 <앤트맨> 시리즈다. 기껏해야 생계형 도둑에 불과했던 스캇 랭은 <앤트맨>에서 행크 핌 박사를 만나 앤트맨이 되면서 딸에게 멋진 아빠의 자격을 획득했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스캇 랭은 반대로 1대 와스프 재닛이 임무 중 ‘양자 영역’에 갇히면서 이산가족이 된 반 다인 가족의 결합을 돕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면서 획득하는 가치는 일종의 가족의 탄생이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슈퍼히어로로 짝을 이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정 관계의 기미를 모락모락 피운다. 그래서 <앤트맨과 와스프>는 ‘반 다인 가족의 재탄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앤트맨은 이 영화에서 몸만 커지는 게 아니라 가족 관계의 범위도 점점 더 커진다. 딸과 전처의 부부와 반 다인 가족까지!
4. 근데 양자 영역이라니?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의 세계로 시공간의 개념이 사라진 영역을 말한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과학 자문을 맡은 물리학자 스피로스 미칼라키스(Spiros Michalakis)는 양자 영역을 두고 “캡틴 마블과 연관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자 케빈 파이기도 양자 영역에 관해 길게 덧붙였다. “양자 영역은 마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 확장과 더불어 앞으로의 스토리에 큰 변화를 암시하는 발언이다. 어떻게? 이 질문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주역들이 총출동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앤트맨의 배경과 직결한다. 여기까지. 이에 관해서는 <앤트맨과 와스프>의 첫 번째 쿠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쿠키는 첫 번째 쿠키에서 벌어진 상황을 풀 수 있는 열쇠라는 생각도 든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사이즈’가 얼마나 더 크게 확장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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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