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탐정 소설 읽기의 은유 『탐정 매뉴얼』
이 소설은 탐정소설, 추리소설이면서도 환상소설이라는 과업을 해낸다.
글: 심완선(SF 평론가)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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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매뉴얼』

제더다이어 베리 저/이경아 역 | 엘릭시르


제목이 ‘탐정 매뉴얼’이니 좀 특이한 탐정소설이겠거니 했다. 실제로 주인공 찰스 언윈은 탐정회사 사람이고, 살인사건을 비롯한 각종 범죄에 익숙하며, 함부로 의심을 사지 않도록 비밀리에 움직인다. 다만 그는 탐정이 아니라 서기다. 그가 담당하는 탐정이 수사 일지를 보내면 그는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의 입장은 홈즈를 지켜보는 왓슨에 가깝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탐정이 자신의 서기가 누구인지 몰라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는 왓슨의 위치도 되지 못한다. 그는 사건에 개입하지 못하지만 기록을 편집할 수는 있는 사람, 편집자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저자인 제더다이어 베리는 소설 편집자로 오래 일했다. 그런데 보통의 서기와 달리 언윈은 어쩐 일인지 갑자기 탐정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자신이 맡았던 시바트 탐정의 사건을 이어받는다. 자신이 그간 편집해온 내용을 이제는 직접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소설의 메인이 되는 사건은 ‘화요일 도난사건’이다. 도시 사람들은 어느 사기꾼 악당에 의해 단번에 화요일을 도둑맞았다. 시바트 탐정이 언윈의 꿈에 나타나 충고할 때, 그는 자신이 해결한 사건 중에서도 특히 환상적이었던 이 사건을 언급한다. "이넉 호프만이 11월 12일을 훔쳤을 때 자네는 조간신문에서 월요일이 곧장 수요일로 넘어간 걸 보고도 다른 사람들처럼 화요일을 잊어버렸어." 뚱딴지같은 소리에도 언윈은 진지하게 맞장구를 친다. “레스토랑들까지 화요일 특선 요리를 건너뛰었죠.” 둘은 농담이나 비유를 쓰는 중이 아니다. 호프만이라는 악당은 실제로 하루를 훔쳤다. 대체 어떻게? 꿈을 이용해서. 도시의 모든 사람의 꿈에 침입해서. 언윈의 수사는 꿈과 현실을 오간다. 이 소설은 탐정소설, 추리소설이면서도 환상소설이라는 과업을 해낸다.

 

언윈이 수사 중에 반복해서 깨닫는 사실은 “세부사항과 단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시바트 탐정의 일지에는 그의 신세한탄을 포함하여 자질구레한 세부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쳐내고 사실관계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 언윈의 일이었다. 성실하고 재능 있는 서기로서 언윈은 빛이 하나의 길을 가리키듯 일목요연하게 전개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건의 특징을 따서 보고서에 ‘베이커 대령의 세 번의 죽음’ ‘최고령 피살자’ 등의 제목을 붙인 것도 언윈의 공적이었다. 그는 정직했다. 그러나 언윈의 보고서는 거짓이었다. 시바트 탐정을 찾아 거리를 헤매면서 언윈은 자신이 해결 딱지를 붙였던 사건들이 실은 위장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베이커 대령은 멀쩡히 살아 있었으며, ‘가장 오래된 피살자’ 시체로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유물은 비교적 최근에 살해당한 다른 시체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가짜 해결과 가짜 영웅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진상을 파헤칠 단서를 쓸데없는 세부사항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는 미스터리라는 장르 자체에 내재된 문제이기도 하다. 고전적인 탐정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을 의식했다. 탐정과 독자가 정정당당하게 추리 대결을 벌일 수 있다는 거였다. 소설에서 탐정이 발견하는 모든 단서는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으므로, 추리력이 있다면 탐정이 설명해주기 전에 진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이는 기만적이다. 독자는 작가가 작성하지 않은 내용은 모른다. 정정당당한 승부가 되려면 정말로 모든 것이 서술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제목)만 봐도 이는 상당히 기만적인 정정당당이다. 저자는 중요한 사실을 열심히 보잘것없는 것으로 꾸미고, 탐정의 설명을 정답으로 처리한다. 세부사항을 단서로 회복시키는 재수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윈의 승진처럼, 탐정을 쫓아내고 바깥 세계의 인물을 사건 한복판에 집어넣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언윈이 꿈이나 헛소리로 치부한 사항은 문자 그대로 정확한 기술이었음이 드러난다. 작중 칼리가리 서커스의 모토인 “내가 당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사실 / 당신이 보는 것도 당신만큼 현실”은 소설 전체에도 들어맞는다. 화요일 도난사건은 꿈이 현실로 침입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꿈속의 경고는 현실의 연장이다. 탐정회사 로고에 그려진 ‘잠들지 않는 눈’을 뜨려면 정작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아야 꿈속을 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들려주는 『탐정 매뉴얼』의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하는 탐정소설의 메타픽션이며, 모자를 쓰고 시가를 피우는 명탐정이나 복잡한 전적을 지닌 수수께끼의 미녀 협력자 등은 하나의 등장인물이면서 동시에 탐정소설의 집합체에 존재하는 아이콘이다. 언윈의 수사는 탐정소설 읽기의 은유다. 『탐정 매뉴얼』에 줄곧 등장하는 ‘탐정 매뉴얼’은 탐정회사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안내서지만 한편으로는 독자가 읽어온 탐정소설의 법칙을 추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매우 즐겁게도, 이를 작성한 사람은 탐정회사에서 서기로 일했을 뿐 탐정이었던 적은 없다. 매뉴얼의 멋들어진 문구는 실용성이라곤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알고 있는 탐정의 모든 것이다. 현실의 사립탐정보다 탐정소설의 탐정이 진짜 탐정이니까. 비록 거대한 허구에 불과하더라도.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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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매뉴얼

<제더다이어 베리> 저/<이경아> 역

출판사 | 엘릭시르

열 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사 크리스티> 저/<이윤기> 역

출판사 | 섬앤섬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저/<김남주> 역

출판사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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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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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1890년 9월 15일 영국의 데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뉴욕 출신의 아버지 프레드릭 앨버 밀러와 영국 태생의 어머니 클라라 버머 사이의 삼남매 중 막내로 어린 시절을 애슈필드라 불리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에서 보냈고 이때의 경험이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열여섯에 파리로 건너가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했다. 1912년,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2년 뒤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 남편이 출전하자 자원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던 그녀는 1916년 첫 작품으로 『스타일즈 저택의 수수께끼』를 썼는데 이는 4년 뒤인 1920년 출간되었다. 그녀의 처녀작인 『스타일즈 저택의 수수께끼』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헤이스팅스가 옛친구의 어머니 집인 스타일즈 저택을 방문하면서 독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황한 헤이스팅스가 순간 떠올린 것은 계란형 얼굴에 콧수염을 자랑하는 벨기에에서 망명한 에르큘 포아로. 회색 뇌세포로 불리는 불후의 명탐정 포아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책으로, 추리 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계속 소설을 발표하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한 뒤, 이듬해 메소포타미아 여행을 하던 중 고고학자 맥스 멜로윈을 만나 1930년 재혼하였다. 1967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영국 추리협회의 회장이 되었고, 1971년에는 뛰어난 재능과 왕성한 창작욕을 발휘한 업적으로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데임(Daem) 작위(남성의 Knight에 해당하는 작위)를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받아 데임 애거서가 되었다. 1976년 1월 12월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생애 동안 장편 66권, 단편집 20권을 발표하여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추리 소설 작가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크리스티 여사와 탐정 에르퀼 푸아로는 묘한 인연을 갖고 있는데, 푸아로는 크리스티의 작가 생활을 처음과 끝에서 장식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 [타임스]를 비롯한 영국과 미국의 신문들은 ‘벨기에 사람 에르퀼 푸아로 별세’라는 기사를 제1면에 대서특필하여, 마치 작가 자신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슬픔과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