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도쿄규림일기』로 SNS에서는 일찌감치 ‘인기 작가’ 타이틀을 얻은 김규림 작가. 이번에는 약 2주간의 뉴욕여행을 마친 후 『뉴욕규림일기』 라 는 여행에세이를 출간했다. 기성출판이지만 작가가 직접 만든 것 같은, 흔하지 않은 만듦새가 눈에 띈다. 포인트만 잡아 쓱쓱 그린 그림과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즐거워지는 글도 독특한 디자인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기록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규림 작가와 ‘여행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부터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나요?
어릴 적부터 문구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문구류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쓰고 그리고 만드는 것 등이요. 중고등학교 때 다이어리에 쓰고 꾸미는 것을 즐겼는데, 당시엔 기록보단 꾸미기에 더 방점을 두었죠. 화려하게 스티커 붙이고 글씨 예쁘게 쓰고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때는 그런 걸 줄여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라고 불렀는데 얼마 전 찾아보니 아직도 그렇게 부르길래 왠지 반갑더라고요.
꾸준히 쓰고 그리긴 했지만, 진짜 저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된 이후예요. 예전에는 어디를 갔다, 뭘 했다 정도만 썼다면 지금의 기록은 그때의 감정과 감상을 함께 씁니다. 지나간 것들을 돌이켜보고 쓰는 과정에서 ‘이건 이래서 좋았구나’, '아, 그래서 별로라고 느꼈구나’ 하며 막연히 느꼈던 감정들의 이유를 알게 될 때가 많아요. 그게 제가 기록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여행을 갈 때는 꼭 필기구와 노트를 챙깁니다. 평소에도 많이 쓰지만, 여행길에 오르면 평소보다도 더 많이 쓰고 그려요. 일상적인 것들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데, 여행을 하다 만나는 것들은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든달까요. 그래서 여행에서 한 생각들과 영감, 그때의 정취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쉴 틈 없이 기록합니다. 노트에 계속 쓰다 보면 여행 말미에는 공책 한두 권 분량으로 채워지는데요, 나중에 펼쳐보면 당시의 생각과 기분을 오롯이 떠올릴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뉴욕규림일기』 도 그렇게 시작된 책이에요. 올 여름 처음 뉴욕에 갔는데, 약 2주간 머무르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썼던 노트를 거의 그대로 복원해 만들었어요. 이것저것 버리기 아쉬운 티켓과 영수증도 간간이 붙어 있고, 저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 뉴욕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좀 더 풍성한 여행을 위해 쓴 개인적인 기록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기록의 시작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으로 공개했습니다.
기록에도 여러 방식이 있는데요. 직접 쓰고 그리는 것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사실 예전에는 사진을 선호했었는데, 영혼 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면 ‘아니, 내가 이런 곳도 갔었어?’ 하는 사진들이 많더라고요. 기억이 남지 않는 기록은 의미가 덜한 것 같아서, 기억을 도울 수 있는 기록방식을 이것저것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쓰고 그리는 그림일기가 저에게 잘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손으로 쓰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리면서 좀 더 세심히 관찰하게 되니까, 그 자리에서 보고 그린 것들이 어쩐지 머릿속에 더 오래오래 남는 것 같아요.
만화, 콜라주, 스케치 등 여러 기록의 형태를 변주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손으로 기록하는 걸 가장 좋아해요. 나중에 한 페이지씩 넘겨보면서 당시의 시간들을 더 세세하고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직접 쓰고 그리는 것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뉴욕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요?
뉴욕공립도서관(NYPL)이 단연코 좋았습니다. 압도적인 웅장함이 돋보이는 뉴욕공립도서관은 뉴요커들의 자랑거리라는데, 정말 멋지더라고요. 백년이 넘은 아름다운 공간이어서 도서관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온 느낌이었어요. 앉아 있는 내내 황송하고 행복했답니다.
문구점들과 길거리에 즐비한 99센트 피자가게들도 무척 좋았습니다. 너무 단순한 이유지만, 제가 워낙 문구류와 피자를 사랑하거든요. (하하) 이럴 땐 소박한 것들에서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돌아다니는 여행길에서는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칠 일이 평소보다 많아서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거든요.
뉴욕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전한다면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번 뉴욕여행의 키워드는 ‘개성’ 이 아닐까 해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에서 공연하는 청년들, 거리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 어디서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상당히 즐거운 충격이었는데요.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과 메시지를 표현하는 뉴요커들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라는 우려 때문에 해보고 싶은 걸 억누르며 살았던 건 아닐까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정작 타인은 저에게 큰 관심이 없는데 말이죠. 다양한 개성이 빛나는 도시 뉴욕에서, 내 방식대로 표현하며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어요. 그게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뭘까요?
저는 ‘죽기 전에 가야 할 곳’이나, ‘머스트해브 아이템’ 등 강제성을 띠는 표현들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도 취향도 다른데 같은 것에 감동을 느낀다는 게 사실 굉장히 어렵잖아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디는 꼭 가보라고 추천을 정말 많이 해주는데요, 받아 적다 보면 이미 책 한 권은 나올 정도로요. 고마운 일이지만, 대부분은 한 귀로 흘려 듣는 경우가 많아요. 그 리스트가 쌓이면 결국 다른 사람들이 좋았던 여행 코스이지, 내게 좋은 리스트는 아니니까요.
아무리 예술이나 건축, 축구 등으로 유명한 도시라 한들 그 분야에 관심이 많지 않으면 감흥이 없을 가능성이 많잖아요. 그래서 여행에서도 관광보다는 그저 평소에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에요. 제 경우는 문구와 빈티지에 관심이 많아서 대형문구점, 동네 문구점, 중고숍이 보이면 틈날 때마다 들어갔어요. 그래서 제게 여행은 이벤트라기보다는 일상의 연장이에요. 여행 내내 돈가스만 먹어도, 누군가는 종일 선탠만 해도, 여행자가 좋으면 그저 좋은 여행 아닐까 싶어요. 정해진 코스 따라 가는 여행 말고, 모두가 각자의 여행과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책은 친절한 여행책은 아니에요. 여행을 하면서 쓴 것이긴 하지만, 여행 정보보다는 개인의 일기라는 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죠. 유명 관광지보다는 제가 평소에 관심 있는 문구와 빈티지 위주로 찾아다녔기 때문에 저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하며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평소에 기록을 하고 있거나 자신만의 기록을 하고 싶은 분들이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기록을 보면서 종종 본인만의 기록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저의 ‘대충대충 그림체’를 보면서 ‘이 정도 가볍게 그리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자신감이 생긴다나요. (웃음) 저의 기록을 통해 누군가의 또 다른 기록이 시작된다면 『뉴욕규림일기』 가 세상에 나온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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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규림일기김규림 저 | 비컷
SNS에 자신의 일상을 재치 있는 그림으로 공유하는 작가답게, 유명 관광지가 아닌 뉴욕의 문구점과 동네서점, 플리마켓 등을 돌아다니며 쓰고 그린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