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하연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다. 연예인 인스타 구경이야 원래 흥미로운 거라지만, 하연수의 인스타그램은 여느 연예인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예인이 인스타그램에 주로 ‘자신이 찍힌 사진’을 올리는 것과 달리, 하연수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올리는 쪽에 더 집중했다. 스크롤을 하다 보면 어느덧 화면 한가득 자신이 찍힌 사진 한 장 없이 오로지 자신이 바라본 풍경으로만 가득한 것이, 연예인으로서의 자의식보다는 자기 작업에 몰두한 작가의 자의식이 더 많이 묻어나는 계정이라 신기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언제나 그랬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을 때 사람들은 거북 등껍질 모양의 배낭을 메고 꼬북이 흉내를 내며 웃던 그의 모습을 기억했지만, 정작 하연수가 가장 공들여 준비했던 콘텐츠는 그림을 그리고 냉장고용 자석을 만드는 미술 콘텐츠였다.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 그가 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으로 가득했던 인스타그램 계정은 그런 그를 퍽 닮았다.
하연수는 꾸준히 그리고, 꾸준히 찍는다. 사진은 “진지하게 임하지만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생각”한다며 겸양의 태도를 취했지만, 그가 오랜 친구인 포토그래퍼 리에와 함께 작업한 사진집 『On the way home : 집으로 돌아가는 길』 (1984 출판사. 2017)은 3쇄를 넘겼다.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은 “예술을 하는 시간만큼이나 돈 버는 것도 중요”하며 “사실 배우는 불안한 직업”이라 말하는 “영락없는 현실주의자”(이상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19년 2월호 ‘하연수를 주목해’ 中)이지만, 그는 민화를 배운 지 반년 만에 수묵 책거리 4폭 병풍을 완성해 전시할 만큼 깊이 몰두해서 치열하게 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하연수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안과, 웃을 때 극적으로 밀려 올라가는 볼살과 반달 모양이 되는 눈 같은 외양에만 집중하느라, 그가 몇 년째 인스타그램 피드를 온통 자신의 작품으로 채워 온 것이나, 사진집이 1만 부 가까이 팔렸다는 사실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연수는 자신이 작업한 화조도 족자를 판매한다고 올린 글에 ‘직접 작업한 건가’ 묻는 댓글이 달렸을 때, “500번 정도 받은 질문이라 씁쓸하네요... 이젠 좀 알아주셨으면... 그렇습니다. 그림 그린 지는 20년 되었고요.”라고 답했다. 일생을 걸고 꾸준히 자신을 표현해 온 작가가 그 점을 알아 달라고 단 이 건조하고 진지한 답글 하나에, 트래픽을 노리는 가십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또 ‘댓글 논란’, ‘인성 논란’을 운운한다. 그가 어떤 말을 들어도 그저 언제나 꼬북이처럼 웃기만 하기를, 다른 심사는 표현하지 말고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상만 수행하기를 바라는 세상 앞에서, 하연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했다. 그가 제 작업실에서 찍어 올렸던 셀카 속에서, 하연수는 더는 웃지 않는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