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은 출판사 편집자, ‘부캐’는 작가 솜숨씀. 사이다처럼 톡톡 튀는 감성으로 인간관계에 써 내려간 글이 SNS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제가 쓴 글인 줄 알았어요”, “안 봤으면 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읽었어요” 등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누구도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아빠와, 맨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엄마를 반반씩 닮아 사람을 쉽게 믿고 또 쉽게 의심해왔다는 그는 하지만 여전히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일 땐 눈물부터 나오는 소심한 사람이다. 이리저리 치인 끝에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는 걸 겨우 알게 된 30대, 비로소 겨우 인간관계 편집의 필요성이 보였다. 슬프지만 시간도 체력도 점점 떨어져 가는 현실이 일깨워준 진리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신데, 이번에는 직접 첫 책을 쓰셨어요. 그동안 많은 책을 세상에 선보이셨을 테지만, 이렇게 자신의 책을 출간하게 되는 감회는 또 남다를 것 같은데요. 직접 책을 쓰게 되기까지의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요.
직업 특성상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SNS 헤비 유저가 되었는데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는 넘치게 많은 반면, 내보내는 이야기는 현저히 적어서 갑갑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인풋과 아웃풋의 불균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록을 하면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지만 긴 호흡으로 평상시에 스치듯 했던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브런치를 선택했고요.
일기장에 쓸 법한 이야기였지만 공감해주고 댓글 달아주는 분들이 제법 생길 때쯤, 기획 제안 메일을 받았습니다.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망설여졌지만 담당 편집자님께서 넘치는 애정과 용기를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편집자님께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한 권의 책에 많은 분의 수고로움이 담겨 있다는 걸 한 번 더 깨닫게 되는 계기였고요, 아무래도 전 작가보단 편집자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웃음).
인간관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일까요. 본명 대신 ‘솜숨씀’이라는 필명을 쓰셨어요. 독특한 이름인데, 필명의 의미를 들려주신다면요.
작가 소개에 사랑이나 순간 같은 시옷으로 시작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지은 필명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솜숨씀이라는 글자 모양 자체가 예뻐 보였어요. 시각적으로요. 시옷 네 개와 미음 세 개로 이루어진 모양이 도형으로 치면 세모와 네모의 조합이고요. 단순하면서 귀엽지 않나요? 그리고 필명을 통해 현실의 내가 되고 싶은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걸 요즘엔 부캐라고도 하잖아요. 본캐에서 분리되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편집자의 인간관계 편집이라니, 어떤 원칙이 있을까 궁금해져요. 40여 편의 글에는 관계를 편집하며 깨닫게 된, 더하거나 빼거나 그대로 두어야 할 태도들이 제목들로 제시되어 있는데요. 모든 태도들이 다 값지지만, 그중에서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출간 후 몇몇 후기를 접했어요. 두 번째 장인 '더하기' 영역에 실린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무척 기뻤는데요.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일'과 '나라는 사람' 간의 관계를 건강하게 맺고 싶다는 저의 바람을 담으려 유독 신경을 많이 쓴 글들이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빼기'보단 더하고 싶은 태도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책 속에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어서 온몸으로 생을 밀고 나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오래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사람, 호박도 고구마도 아닌 호구마로 자신을 표현하셨어요. 책을 읽은 독자들 중, 특히 작가님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소소하지만 기발한 작가님만의 팁에 재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살짝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저는 사회성 쿠폰을 만들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쿠폰 도장 찍듯이 열 번 혹은 열다섯 번의 친절 도장을 찍는 건데요. 일주일 동안 내가 베풀 수 있는 친절을 최대 몇 번으로 설정해서 다 쓰면 더 이상의 친절은 베풀지 않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줘야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감정과 에너지를 소진해서 기진맥진해지는 일이 자주 있었거든요. 20대 때는 특별히 체력 관리를 하지 않아도 활력이 넘치니 상관없었는데, 서른이 넘어서면서부터 나의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즉, 효율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사회성 쿠폰을 만든 데에는 불필요한 관계는 정리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일주일에 딱 열다섯 번의 친절이라면 누구에게, 어디에 쏟느냐가 중요해지죠. 일이든 관계든 소중히 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은 곳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커다란 고양이가 인상적인 표지 일러스트를 직접 그리셨다고요. 어떤 의미를 담으셨을까요. 표지뿐 아니라 직접 그린 본문 일러스트들이 무척 귀여운데, 작업하며 중점을 둔 부분이 있을까요?
표지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눈으로 레이저를 쏘면서 테이블 위에 손을 뻗고 있죠. 선 넘는 고양이와 도망가는 인간을 그려서 제목처럼 ‘솔직과 무례 사이를 넘나드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표지뿐 아니라 본문에 들어가는 고양이 일러스트는 보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네 고양이를 모델로 삼아서 그렸답니다. 보통아, 보고 있니?
코로나 시대,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때이기도 해요. 심심하고 외로운 반면 홀가분하게도 느껴지는데요. 작가님의 요즘 인간관계는 예전과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요즘에는 인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숨은 뜻이 있을 거야’라며 비꼬아서 듣거나,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며 선입견을 갖고 상대를 판단하는 등의 태도는 지양하고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는 장착하되 정확하게 말하는 법도 함께 연습 중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으로 일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직접 만나서 소통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확하게 의사 표현하는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독자는 어떤 분들일까요? 솔직한 척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남겨주세요.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맺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좋은 관계 맺기의 첫 번째는 어쩌면 내가 나한테 가혹하게 굴지 않고, 내가 나를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나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지는 것도 문제지만요. 역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답이겠습니다. 나에게든 남에게든 말이에요.
*솜숨씀 시옷으로 시작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지은 이름. 사랑이나 순간, 시인이나 소설가, 슬픔이나 실패 같은 것들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 출판사에서 좌충우돌 책 만드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책은 아직 사지 않은 책이며,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게 많아서 탈이지만, 좋아하는 게 많아서 편집자 일이 스스로에게 딱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매일 조금씩 근력과 글력을 기르며 심신을 단련 중이다. brunch.co.kr/@vom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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