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께이의 소설 중 가장 발랄(?)한 작품이 출간되었다. 바로 어릴 때 침대 맡에서 친근하게 들어왔던 동화 세 편을 찬호께이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마술 피리』다. 『잭과 콩나무』의 어린 소년 잭은 거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푸른 수염』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할 위협을 느낀 여자는 반격을 준비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쥐잡이꾼이 유괴한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이 모든 과정에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과 위법도 불사하는 박사 라일 호프만이 있다. 전작들과 다른 분위기의 신작이지만 변심이나 전환점이라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찬호께이 추리 세계의 원점이 되는 첫 작품이 바로 여기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프만이 해결하고 안데르센이 써 내려간 범죄사건 추리 파일 『마술 피리』를 읽으며 생긴 궁금증을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되는 신작 『마술 피리: 동화 속 범죄사건 추리 파일』은 작가님의 데뷔작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을 비롯한 동화 추리소설들을 모은 단행본입니다. 동화를 추리소설로 재해석한다는 발상이 독특한데요,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은 대만추리작가협회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입니다. 당시 공모전을 보고 참여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현대판 캠퍼스 사건을 구상했는데, 절반쯤 썼을 때 정해진 분량 안에서 완성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비교적 짧고 전편처럼 복잡하지 않은 사건을 쓰기로 마음먹었지요. 영감을 얻기 위해 방 안 책꽂이를 무심하게 훑어보던 중 『그림 동화 원본의 잔혹성』이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옆에는 삼국 역사에 미스터리 색채를 강하게 덧입힌 홍콩 만화가 있었고요. 그때 동화를 재해석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또한 ‘사실 동화는 실제 사건인데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부풀려지고 나중에 동화 작가에 의해 각색됐을 뿐이라면’이라는 상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의 뼈대를 금세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세 편의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동화들을 고른 특별한 이유, 혹은 동화들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었을까요?
어렸을 때 무척 강렬한 인상을 받은 동화가 네 편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건’이라고 생각했지요. 『잭과 콩나무』절도/모살), 『푸른 수염』(아내 살해/연쇄살인), 『피리 부는 사나이』(아동 유괴/납치와 몸값 요구), 그리고 마리 잔 레리티에의 『피네트의 모험』(성적 사기/모살)이었습니다. 사실 그 밖에도 범죄 요소를 가진 동화는 무척 많지만, 제게는 이들 네 편의 동화가 유난히 강렬했습니다. 그중 네 번째 작품은 별로 유명하지 않아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듯해서 나머지 세 편을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호프만 박사는 지적일 뿐만 아니라 언변이 뛰어나고, 성격 역시 거침이 없습니다. 탐정 중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되는데요,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 봐도 좋을지요.
이 시리즈를 계속 쓸 생각으로 뼈대와 생각을 좀 정리해놓았지만, 지금은 쓰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언제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료 수집에 시간이 좀 걸리는 시리즈이니까요. 역사소설의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16세기 유럽 분위기를 살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책과 웹사이트를 참고해야 하고 심지어 현지 조사가 필요할 때도 있지요.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상상력을 자극받아 속편 구상을 앞당길 수도 있겠지만, 단기간 내에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호프만과 한스의 새로운 여행기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다음 동화는 어떤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인어공주』일 듯합니다. 세 번째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 초반에 보면 주인공들이 덴마크에서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일이 생겨 독일로 달려갑니다. 그들이 덴마크에 갔다면 『인어공주』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요. 하지만 『인어공주』를 추리소설로 각색한 선례가 이미 있습니다(기타야마 다케쿠니의 『인어공주』).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읽고 난 뒤 특정 아이디어나 핵심 요소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포기하고 다른 동화를 기반으로 삼을 겁니다.
작품에서 치밀한 사전조사로 고증을 철저히 하신 작가님의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동화를 모티프로 했고, 창작물이니 좀 더 자유롭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요. 고증을 철저히 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웃음)제가 좀 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은 그나마 꾸며낼 수 있었는데 「푸른 수염의 밀실」부터는 고증된 요소를 많이 넣기 시작했고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은 거의 역사소설을 쓰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경험이 쌓이면서 개인적인 창작 취향이 바뀐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세 편의 동화가 가진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잭과 콩나무』는 민간의 거인 전설에서 창작된 동화인 데 반해 『푸른 수염』은 실제 인물(질 드 레)이 저지른 사건을 각색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 묘사된 아동 실종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미스터리 사건이고요. 제 창작의 자유는 이들 동화의 본질을 기반으로 증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본 작품이 사실적일수록 글을 쓸 때 ‘반드시 사실적 요소를 넣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속편을 쓰게 되면 실질적 배경이 없는 동화를 기반으로 삼을 겁니다. 고증에 들이는 시간을 좀 줄이고 싶거든요.
세 편의 이야기는 원작 동화와 달리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발생하긴 하지만, 권선징악이 이뤄지는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이 역시 의도하신 바인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쓸 때 제 나름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쓰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최대한 긍정적인 플롯과 결말을 설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요소는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추리 사건에서 잔혹한 설정이 빠지기란 매우 어렵지만요. 어쨌든 소설 속 인물들이 나쁜 일을 당하고 현실적 비극을 피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핵심은 용감하게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두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그 외에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노선을 따르며 탐정, 조수, 증인, 범인 등의 설정도 극단적인 수단이나 독자를 속이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젊은 독자들(특히 추리물을 처음 접하는 어린 독자)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기다렸던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한국 독자들의 지속적인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 한국은 제 작품이 가장 많이 번역된 나라입니다. 실제로 한국 독자들의 지지 덕분에 많은 중화권 추리소설이 한국에서 출판되었고 대만 출판사에서도 추리작가에게 좀 더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대만 출판사에서 한국의 미스터리나 추리소설을 출판하게 되었고요. 이는 각지의 추리소설 작가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는 2019년 말에 한국에 가서 독자분들에게 직접 감사드리려 했는데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아쉬웠지만 인터넷과 글로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올해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영상으로 한국의 유명한 SF작가 곽재식 선생님과 무척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인터뷰가 나왔을 때면 그 행사가 끝났을 테니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을까요? 관심 있는 분은 찾아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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