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불길처럼, 샤이니 키(KEY)
오랫동안 음악, 춤, 패션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고 살아온 키는 종종 찾아왔던 견디기 벅찬 날들을 이기고 나와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글ㆍ사진 박희아
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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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솔로 앨범 콘셉트 포토_SM엔터테인먼트 제공

샤이니의 멤버 키가 새로 발표한 솔로 앨범 는 타이틀곡 ‘BAD LOVE’를 포함해 비주얼적인 부분에서 그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성이 매우 확고한 작품이다. ‘스타워즈’, ‘스타트렉’과 같은 SF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는 세대와, “가부끼 극장에서의 공연 때 우주인같은 메이크업과 괴상한 장화, 물들인 머리 등은 많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팝스타소사전’, 삼호뮤직)”고 기록된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를 기억하는 세대, 혹은 시대를 뒤늦게 접하고 비슷한 에너지를 지닌 아티스트들을 찾아 헤매는 누군가들을 위한 2021년의 화려하고 장난기 가득한 콘텐츠. 심지어 'BAD LOVE'의 뮤직비디오를 보다 보면 데이비드 보위가 SF영화에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진 우주인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까지 떠올리게 된다. 재미있다.

는 거울 속에 보이는 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즉 지독하게 얽힌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 지쳤고, 사랑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고, 사랑의 정의 따위에는 더 이상 낭만적인 관심조차 보이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에 담겨있다. 그는 “제 멋대로인 잘난 Logic 속에 삐뚤어져 가는 내 맘이 보여”라고 한탄하면서, “선택한 벌을 난 받았어 미워할 바에야 삼켜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화려한 단어들로 겹겹이 포장돼 있지만, 이것은 단어를 조합해 멋진 문장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음악가의 일일 뿐, 사실 그 안에 담긴 하나의 진심은 집요하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한 화풀이에 가깝다. 지겨운, 짜증나는.

“어우, 지겨워.” 평소에 키가 출연한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중 두세 개만 시청했더라도 이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대는 그는 자신이 이번에 내놓은 처럼 짜증 가득한 말속에 진심을 숨겨놓고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최근에 진행된 그의 단독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 - 키 : 그록스 인 더 키랜드’에서도 그는 팬들과 함께 소통하기 위해 마련된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들을 보다가 팬에게 핀잔을 주며 웃음을 터뜨렸다. “채팅창에 ‘Where is 민호’는 왜 적어. 내가 어떻게 알아. 헬스장에 있겠지. 나도 지금 민호가 어딨는지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콘서트가 시작할 때만 해도 “입국을 환영합니다!”라며 반갑게 맞이하던 이가,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만큼 의미 없는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하며 지겹다는 듯이 눈을 흘기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MBC ‘나혼자산다’에서 집을 치우는 동안 계속 “지겹다”며 진절머리를 내고, tvN ‘놀라운 토요일 – 도레미 마켓’에서 가사를 맞히며 못하는 출연진들을 구박하는 모습과 겹쳐지는, 그런 키의 말과 행동들은 늘 한결같았다.

사실 이런 그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늘 지루한 매일을 한탄하면서도 꿋꿋이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을 키에게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겹지만 어쨌든 공부는 해야 하고, 지겹지만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고, 그렇게 참고 참으며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처럼 보여도, 순간순간 마주하는 여러 개의 감정들이 나를 점차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팬들의 질문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며 웃고, 연속되는 수 개의 무대가 끝난 뒤에 오랫동안 숨을 고르며 “오랜만에 하려니까 쉽지가 않네요. 전 더 이상 열여덟 살이 아니다 보니까”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키는 막 그가 자유롭게 입을 떼기 시작했을 무렵, JTBC ‘말하는 대로’에서 “나는 우아한 백조가 아니라 닭”이라는 말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을 얘기했을 때보다도 훨씬 커진 사람이다. 그는 더 나이를 먹었고, 자연스레 더 먼 곳까지 헤엄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난 뒤, 우울하고 복잡한 삶들이 얽힌 2021년의 한국에 자리하면서 누군가들에게 위안을 준다.


키 솔로 앨범 콘셉트 포토_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서 키는 늘 번지는 불길 같다.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뜨겁게, 빠르게 번지는 불길. 노래 ‘BAD LOVE’의 가사 속 “번지는 불길처럼”이라는 표현은 자기 안에 퍼져가는 사랑의 감정을 얘기할 때 쓰인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오랫동안 음악, 춤, 패션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고 살아온 그는 종종 찾아왔던 견디기 벅찬 날들을 이기고 나와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지겹다”는 투덜거림 뒤에 가려진 거친 불길은 샤이니라는 팀의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끝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겠다는 그의 집념에 여전히 힘을 더한다. 종종 키가 뱉어내는 말들, 그의 거침없는 행동들을 보며 느끼는 쾌감이 땔감 위에서 타오르는 불을 구경하면서 느끼는 쾌감과 비슷할 것도 같다. 아니면 반대로 굳은 심지를 지닌 키 자신이 불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키가, 키라는 사실이다. 솔직한 말로, 키가 불이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키인데.



키 (KEY) - 미니앨범 1집 : BAD LOVE [BOOKLET ver.][2종 중 랜덤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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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어스컴퍼니SM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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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