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의 멤버 키가 새로 발표한 솔로 앨범
“어우, 지겨워.” 평소에 키가 출연한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중 두세 개만 시청했더라도 이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대는 그는 자신이 이번에 내놓은
사실 이런 그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늘 지루한 매일을 한탄하면서도 꿋꿋이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을 키에게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겹지만 어쨌든 공부는 해야 하고, 지겹지만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고, 그렇게 참고 참으며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처럼 보여도, 순간순간 마주하는 여러 개의 감정들이 나를 점차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팬들의 질문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며 웃고, 연속되는 수 개의 무대가 끝난 뒤에 오랫동안 숨을 고르며 “오랜만에 하려니까 쉽지가 않네요. 전 더 이상 열여덟 살이 아니다 보니까”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키는 막 그가 자유롭게 입을 떼기 시작했을 무렵, JTBC ‘말하는 대로’에서 “나는 우아한 백조가 아니라 닭”이라는 말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을 얘기했을 때보다도 훨씬 커진 사람이다. 그는 더 나이를 먹었고, 자연스레 더 먼 곳까지 헤엄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난 뒤, 우울하고 복잡한 삶들이 얽힌 2021년의 한국에 자리하면서 누군가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래서 키는 늘 번지는 불길 같다.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뜨겁게, 빠르게 번지는 불길. 노래 ‘BAD LOVE’의 가사 속 “번지는 불길처럼”이라는 표현은 자기 안에 퍼져가는 사랑의 감정을 얘기할 때 쓰인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오랫동안 음악, 춤, 패션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고 살아온 그는 종종 찾아왔던 견디기 벅찬 날들을 이기고 나와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지겹다”는 투덜거림 뒤에 가려진 거친 불길은 샤이니라는 팀의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끝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겠다는 그의 집념에 여전히 힘을 더한다. 종종 키가 뱉어내는 말들, 그의 거침없는 행동들을 보며 느끼는 쾌감이 땔감 위에서 타오르는 불을 구경하면서 느끼는 쾌감과 비슷할 것도 같다. 아니면 반대로 굳은 심지를 지닌 키 자신이 불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키가, 키라는 사실이다. 솔직한 말로, 키가 불이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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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