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곤충학자 정부희 저자는 늘 사람과 곤충이 함께 살 꿈을 꾼다. 150년 전쯤 파브르가 곤충기를 썼던 것처럼 정부희는 우리나라 토박이 곤충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오늘도 우리나라 곳곳을 누빈다.
지구에는 약 150만 종의 동물이 사는데 그 가운데 약 100만 종이 곤충이다. 곤충이 없다면 우리 지구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곤충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명체다.
『정부희 곤충기』는 곤충학자로서 평생 연구해 온 수많은 곤충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마다 삶터에서 가문을 잇고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저자가 직접 찍은 생생한 사진과 보리 세밀화가 어우러져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2021년 『곤충의 밥상』, 『곤충의 보금자리』에 이어서 2022년 1월에는 정부희 곤충기 3 『곤충의 살아남기』가 출간돼요. 각각 어떤 이야기를 담으셨나요?
우선 곤충기 10권 가운데 『곤충의 밥상』, 『곤충의 보금자리』, 『곤충의 살아남기』는 곤충의 의·식·주를 주제로 썼어요. 『곤충의 밥상』은 먹고 사는 일, 즉 식물, 버섯, 시체, 똥, 육식 따위의 먹을거리에 초점을 맞췄고, 『곤충의 보금자리』는 삶터를 정하고 사는 일, 즉 물, 바닷가 모래, 흙 등 삶의 터전을 이야기하고, 『곤충의 살아남기』는 제 몸을 지키며 사는 일, 즉 보호색, 경고색, 화학 폭탄 제조 같은 다양한 옷과 무기를 지니고 사는 방어 전략을 담았어요.
늦깎이로 곤충을 공부하셨는데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요. 해마다 미기록종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실 정도로 왕성하게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계시는데요, 한 해에 야외 관찰을 얼마나 가시나요? 또 그런 자료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정리하시나요?
한 해에 얼마 가는지는 계산을 안 해 봤는데요... 대략 곤충들의 활동기인 4월부터 10월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야외에 나가니, 한 달에 적어도 10번 이상은 나가는 것 같아요. 장소는 우리나라 곳곳인데, 집에서 가까운 곳은 당일치기하고, 제주도처럼 먼 곳은 최소 2박 3일 정도 머무르면서 그 지역의 곤충을 조사하고 관찰해요.
자료 수집은 두 가지 방법으로 동시에 진행해요. 첫 번째 방법은 봄부터 가을까지 트랩을 설치해서 제 연구 분야의 곤충들을 조사해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의 곤충들은 몸집이 아주 작은 데다가 숲속의 썩은 나무나 균에 서식하기 때문에 이 방법이 미기록종이나 신종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두 번째 방법은 곤충의 서식지를 찾아 직접 눈으로 보고 관찰해요. 이 방법은 다양한 생태적 정보를 많이 확인할 수 있어서 제가 매우 좋아하는 방법이에요. 『정부희 곤충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했어요.
논문출간용 종의 자료는 표본 확보부터 그 종에 대한 모든 분류학적 히스토리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게 엑셀이나 한글파일에 기록해요. 그 밖의 종은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고, 특이한 정보는 간단하게 한글 파일에 기록해 두는데, 사진처럼 좋은 기록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종을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사진 기록은 먼 훗날 한반도의 종 분포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예요. 무엇보다도 야외 관찰을 하면서 얻는 대부분의 기록은 거의 제 머릿속에 있어요. 머릿속 기록에는 곤충과 처음 만났을 때의 세심한 감정까지 들어 있으니 국보급 기록이지요.
『곤충의 보금자리』에서는 개발로 인해 삶터를 잃을 위기에 처한 곤충들도 여럿 보여요. 우리가 곤충의 보금자리를 위해 작게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곤충이 징그럽다고 기관에 민원만 안 넣으셔도 곤충이 살충제 세례를 맞지 않아요. 징그럽다, 예쁘다의 차이는 손바닥과 손등의 양면 차이와 같거든요. 당장은 안 되겠지만, 곤충도 엄연한 생명체란 것만 생각하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징그럽던 곤충도 때로는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어요. 맘을 어찌 먹느냐에 따라 한 생명체를 몰살시킬 수도, 살려낼 수도 있지요.
또 사람이 불편함을 조금만 견디면 돼요. 곤충은 방 한 칸만큼의 공간에 풀만 자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은 조금이라도 편하려고 편의 시설을 만들고, 멀쩡한 땅을 깎아 길을 내고, 흙길을 포장해요. 게다가 지방자치단체 같은 정부 기관에서도 겉으로는 친환경적인 생태 공원, 하천 공원, 자연 휴양림 들을 조성하지만, 관리는 친환경적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산책로는 모두 포장되어 있고, 산책로 둘레에서 자라는 많은 풀과 나무 들을 시민의 안전과 민원을 이유로 정기적으로 제초 작업과 소독을 해요. 사람이 다니는 길만 빼고 나머지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면 그곳에 많은 곤충들이 터를 잡고 살 수 있거든요. 또 어린이 학습장으로 쓰는 곳에서도 ‘곤충이 문다, 징그럽다’는 이유로 소독을 하니 그 둘레의 곤충이 사라져 학습장의 기능을 잃게 되는 곳도 있어요. 좀 불편해도 참으면 나 아닌 다른 생명과 공존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 참 안타깝지요.
연구소 앞 텃밭에 직접 곤충의 밥상을 가꾸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간인지 소개해 주세요. 정부희 곤충기 시리즈'에 나오는 곤충 가운데에서 연구소 텃밭에서 만난 곤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야외 연구소는 단순한 텃밭이 아니에요. 연구소 자체가 곤충이 머물러 사는 ‘곤충 정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정원을 ‘곤충의 밥상’ 또는 ‘곤충 사랑방’이라고 불러요. 이곳에는 얼추 200여 종의 식물이 있는데, 150여 종은 곤충들의 먹이 식물로 직접 선별하고 구해 심은 종이고, 나머지 50여 종은 둘레에 사는 다양한 풀들이 끼어들어 정원의 식구가 된 것들이에요. 곤충과 식물은 뗄 수 없는 관계라서 곤충은 먹이 식물의 생애 주기에 맞춰 찾아와 살아요. 철마다 이 정원을 찾는 곤충들이 다 다른데, 때 맞춰 피고 지는 꽃들에 많은 곤충들이 모이고, 계절 따라 돋아나는 식물 잎에 초식성 곤충들이 찾아와 한살이를 무사히 이어가요. 봄에는 꽃들이 우르르 피어나기 때문에 꽃을 먹는 나비, 파리, 하늘소류 들이 날아오고, 또 연한 잎을 먹는 나방 애벌레들도 많이 찾아와요. 여름에는 호랑나비나 제비나비 같은 어른 나비들이 많이 찾아오고, 가을엔 귀뚜라미, 사마귀, 방아깨비 같은 메뚜기들이 판을 치지요.
특히 현재까지 정원의 진객은 반딧불이인데, 얼마 전부터 연구소 둘레에 개발 바람이 불고 있어요. 대단위로 나무를 베어 내고 토목 공사를 하고 있어서 수 년 내에 이들이 사라질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워요. 또한 정원을 찾는 곤충들도 줄어들 것으로 보여 속이 쓰립니다.
『정부희 곤충기』에는 곤충 정원에서 만난 곤충이 꽤 많이 나오는데요, 50퍼센트 남짓쯤 돼요. 중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은 대부분 찾아와요. 예로 붉나무 잎에 오는 왕벼룩잎벌레, 버드나무에 오는 버들잎벌레, 팽나무에 오는 왕오색나비와 홍점알락나비, 유럽나도냉이에 오는 배추흰나비와 큰줄흰나비, 제비꽃에 오는 표범나비류, 괭이밥에 오는 남방부전나비, 길앞잡이가 뛰어다니고, 여러 식물에 박각시 애벌레가 계절에 맞춰 찾아와요. 정원 곳곳에 집을 짓는 쌍살벌류가 굉장히 많고, 먹잇감이 풍부하니 왕사마귀가 많고,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운문산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를 볼 수 있지요. 그 밖에 노랑무늬의병벌레, 다리무늬침노린재, 긴날개여치, 밑들이, 꿀벌, 고추좀잠자리, 참매미, 풀무치, 대모벌 들이 살아요.
『정부희 곤충기』를 쓰시면서 가장 만나기 어려웠던 곤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는 이 시리즈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종이 있을까요?
소똥구리과 곤충이나 수염풍뎅이처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이 땅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곤충들이죠. 또 버섯 속이나 나무속에서 사는 곤충들은 실제로 육안 관찰에 어려움이 많아요. 지나친 개발과 기후 변화 탓에 생태 환경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몇 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을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현실에 위기감을 많이 느끼지요. 이런 속도대로 환경이 나빠진다면 아마 『정부희 곤충기』에 나오는 곤충들도 머지않아 멸종 위기종 수준이 될 지도 몰라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무지 걱정이에요.
이 시리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곤충은 없어요. 국내에 처음 발표하는 종을 ‘미기록종’이라고 하는데, 보통 미기록종은 학술지를 통해 정식 절차를 밟아 논문을 출간해야 세계적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아요. 그래서 대중서에 미기록종을 발표하지 않지요.
하지만 국내에서 곤충의 생태를 다룬 책이 '정부희 곤충기 시리즈'가 처음이기 때문에 이 책들에 실린 대부분의 종들 생태 정보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면 『곤충의 보금자리』에 나오는 수염풍뎅이, 연물명나방, 모래거저리, 큰집게벌레, 남생이거저리 들의 생태 기록은 국내 최초예요. 특히, 출간 준비 중인 ‘식물과 곤충의 관계’와 ‘버섯살이 곤충’은 대부분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내용이고요.
보리출판사와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정부희 곤충기 시리즈'를 펴내고 계신데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첫 출간하면서 생겼던 소소한 오류를 바로잡았어요. 심리적으로 피 말리게 만든 오동정을 바로잡고, 첫 출간 뒤 10년 동안 모아 두었던 새로운 관찰 내용과 정보들을 보완해서 내용이 더 풍성해졌어요. 곤충 사진도 생생하고 정감 있게 잘 나온 것으로 교체하거나, 참고가 될 사진을 더 넣어서 볼거리가 많아졌고요. 또 보리출판사의 얼굴인 세밀화가 책의 요소요소에 들어가 곤충의 생김새를 훨씬 또렷하게 보여 주고, 책의 느낌이 훨씬 따뜻해져서 마음이 정화됩니다.
이 책을 읽으신 독자님들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끝으로 『곤충의 살아남기』 이후에 다음 편으로는 어떤 책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세상 만물에 다 존재 이유가 있듯이 곤충이란 생명체에도 존재의 의미가 매우 커요. 그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인간의 기준일 뿐이에요. 하루살이는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아요. 되레 애벌레는 물의 청정도를 가늠하는 지표곤충이에요. 다만 일주일도 살지 못하는 어른벌레들은 대를 잇기 위해 잠시 물가의 뭍 위에서 사는데, 사람들이 하루살이의 터전을 차지했을 뿐이지요. 또한 파리는 분식성 곤충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배설물과 시체를 먹어 치우는 환경 정화 곤충이에요. 만일 파리가 지구에서 사라지면 아마 지구는 시체밭이 될지도 몰라요. 이렇게 생태계의 수레바퀴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우리 이웃이요, 때로는 상생하고 때로는 경쟁하는 절친 같은 사이이지요. 앞으로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고, 우리네 사람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곤충의 미담과 애환을 곤충기에 담아내고 싶어요. 또 혹독하고 험난한 환경을 극복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곤충들의 생존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곤충의 살아남기』 출간 뒤에도 한 해에 두세 권씩 곤충기가 꾸준히 나올 예정이에요(이하 가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곤충과 먹이 식물의 공진화’를 다룬 『풀 먹는 곤충』, 『나무 먹는 곤충』, 『갈참나무의 죽음과 곤충 왕국의 번성』, 『버섯살이 곤충』, 『버섯 곤충 도감』, 『집 짓는 목수곤충』, 『곤충의 짝짓기』 들이 줄줄이 나올 테니 많이 기다려 주세요.
*정부희 부여에서 나고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성신여자대학교 생물학과에서 곤충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대 초반부터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전국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자연에 눈뜨기 시작한 저자는 이때부터 우리 식물, 특히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식물을 공부했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새와 버섯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생태 공원인 길동자연생태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자연과 곤충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갔고, 우리나라 딱정벌레목의 대가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성신여자대학교 생물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석사 학위를 받고 이어 박사 과정에 입학한 저자는 ‘버섯살이 곤충’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고,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한국의 버섯살이 곤충들을 정리할 원대한 꿈을 향해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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