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임솔아, 깨어난 나사로의 생을 위해
임솔아 작가에게 소설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일'이다.
글ㆍ사진 기낙경
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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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작가에게 소설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일'이다. 장편 소설 『최선의 삶』『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와 2017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등을 출간하며 소설과 시를 써왔다.



임솔아 작가는 태풍 힌남노가 오기 전 빵을 구웠다. 글이 막히자 시작한 일이었다. 오후 6시에 시작한 빵 만들기는 다음 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빵인지 떡인지 모를 형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름 모를 빵을 꾸역꾸역이 아니라 맛있게 기꺼이 먹었다.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소설 『최선의 삶』과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를 펴내는 동안 그는 몇 번의 빵 만들기를 해야 했을까?

"제가 빵을 잘 만들지 못한다는 걸 자꾸 잊어버려요. 빵을 만들어야지 하고 만들었다가 세상에 이름 없는 망한 떡 같은 빵이 되고 나서야 '내가 이래서 빵 만들기를 안 했지'가 떠올라요. 그러고는 한동안 만들지 않다가 또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빵 만드는 동안 나는 냄새는 참 좋아요. 맛없는 빵도 냄새는 좋거든요."

임솔아 작가는 요즘 장편 연재를 하고 있다. 글을 쓰고 반려견 바밤바와 함께 산책을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글쓰기의 루틴을 만들고 싶지만 잘 안된다. 하루에 5매씩 쭉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하루 30매를 열흘 내리 쓰고 나면 방전이 돼버리는 습관 아닌 습관이 영 마뜩잖다. 그나마도 그런 경우는 어떻게든 글이 써졌다는 얘기인데, 마감은 다가오는데 진도가 안 나가고 글이 멈춰버리면 그 역시 그 벽 앞에서 멈춰 선다.

"보통 구조적으로 막히는 경우는 풀기가 쉬워요. 금방 뚫을 수 있는데 사실 막히는 대부분은 제 심리적인 어떤 문제 때문이에요.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게 힘들 때가 있잖아요. 저에게 어떤 주제가 힘들거나 어떤 인물상을 쓰는 게 힘들다든가 이런 심리적 장벽 때문이죠. 그럴 때는 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쓰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러고 나면 이전에 썼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 되는데, 늘 훨씬 나아지더라고요."



처음 등단을 했을 때 임솔아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잊고 싶지 않은 뭔가를 새겨 넣고 싶었다. 

'나사로야 너는 잠 자고 있는가.' 

지금 그의 오른팔에 새겨진 문장이다. 러시아어로 쓰여 있어 그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작가 자신만은 글자 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10대 때 앙리 미쇼의 시를 만난 후로 시 속의 구절을 마음에 새겼고 자주 중얼거렸다. 몇 년이 지나서야 나사로가 궁금해졌는데 성경 속 예수의 기적이, 렘브란트의 회화와 소설 『죄와 벌』이 딸려 왔다. 죽은 나사로를 살린 예수의 기적은 그 자체로 위대한 기적이다. 하지만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고 손과 발도 천으로 덮여 있었다고 했다. 렘브란트는 부활한 나사로를 시체와 다름없이 그려 놓기도 했다. 부활한 나사로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 예수는 부활하고 하늘로 갔지만 그는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어릴 때 자주 나사로를 상상하곤 했는데, 어쩌면 막연히 문학의 형체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등단 후 10년간 글쓰기를 놓지 않은 임솔아 작가에게 문학은 어쩌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살아 나오길 바라는 염원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그 이후를 감당해야 하는 살아 있음의 얼얼한 풍경일지도.

최근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희고 둥근 부분」과 젊은 작가상을 받은 「초파리 돌보기」 등이 수록돼 있다. 예스24가 선정한 젊은 작가상 수상을 두고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정말 이렇게 많은 걸까 생각했어요"라며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는 지금 가장 핫한 젊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책을 낸 후 그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계속 제자리를 맴돌며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대던 날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책 뒤쪽에 실린 발표 지면을 보니까 많은 글을 썼더라고요. 내 생각만큼 게으르거나 무기력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책을 내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전과는 달리 소설 안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 있더라고요. 그 전에는 거의 혼자였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이 필요한 몇 년을 보낸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소설에 반영되었을 거란 생각은 못 했어요."



혼자가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이 있고, 혼자로도 충분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임솔아 작가는 후자다. 뒷모습조차 외로움보다는 존재의 충만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더불어 살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으며 관계의 온기가 필요 없는 이가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를 지나오며 작가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 혼자인 내가 잃어버리는 것에 관한 것이다.

"글쓰기는 원래 혼자 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 오래 혼자 있을 수 있게 됐거든요. 처음에는 제가 사람 만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라 좀 편하기도 했는데 그걸 몇 년 했더니 사람이 점점 편협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단절된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자극에 예민해지고 나가서 사람들을 대할 때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고 오면 너무 피곤한 거예요. 예전에는 돌아와서 제 일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것도 잘 안되고요. 이런 부분들이 염려스러워요."

그의 말처럼 대화를 잇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방법을 글로 익힐 수는 없다. 온라인상의 소통이나 관계는 언제나 내가 취사선택의 키를 쥐고 있다. 취향대로 골라 타인의 삶을 감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세상에 익숙해진 사람이 편협해지고 직접적인 관계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염려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두려움이자 걱정거리다.

태풍이 지나간 후 함께 나무 사이를 걸었다. 말 없는 듯 보이지만 무수한 생들과 교감하고, 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겸손하게 제 품을 내주는 고목 앞에서 찰칵! 오래된 양버즘나무의 수피에 기대어 귀 기울이는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그의 근심이 글에 닿고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임솔아

1987년 대전 출생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를,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신동엽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장편 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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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