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5주년 특집 "내가 좋아하는 것 5가지"
한자, 단호박, 그냥이 좋아하는 것 5가지 (feat. 좋아하는 책 속 문장)
글ㆍ사진 임나리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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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황정은) : 저희가 다시 특집 방송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특집이죠?

단호박 : <책읽아웃> 5주년 기념이죠. 

한자 : 이번 방송의 아이디어를 단호박 님이 주셨어요. 소개를 좀 해주시죠?

단호박 : 특집으로 뭘 할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그러면 5주년이니까 다섯 가지를 소개를 합시다" 해놓고 다섯 가지를 뭘 소개할까 하다가 "그럼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해서, 오늘의 특집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다섯 가지 이야기'입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저 | 지식공작소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저 | 민음사



요즘 저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룹 GX를 하는데, 줌바를 하고 있어요. 제일 뒷자리에서 하거든요. 아침에 항상 모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말 즐겁게 운동을 해요. 그 뒷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무언가를 끝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제가 원고 집필을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마감인데, 원고를 쓰는 과정도 물론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해서 재미가 있고 좋아하지만, 다 쓴 원고를 출판사에 송고하는 순간을 제가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끝내는 것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이 특집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고. 그런 이유로 제가 <책읽아웃> 녹음 끝내는 순간을 매우 좋아합니다. 보름에 한 번씩 마감을 치르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제 키보드를 좋아합니다. 이 키보드에서 나는 소리와 촉감이 원고 작업의 또 다른 강력한 동기이기도 해요. 항상 같은 회사에서 출시된 키보드를 샀고 이번이 세 번째인데, 첫 번째 키보드는 20년 전에 제가 소설 발표를 하기 시작하면서 선물 받은 키보드를 10년 정도 썼고요. 그 뒤에 두 번째 키보드는 제가 제 원고료를 들여서 샀습니다. 그걸 또 다시 10년을 쓰고,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는 10년에 이 키보드를 저에게 주는 선물로 구매를 해서 요즘 열심히 이 키보드를 사용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책갈피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이런저런 종이를 모으고 있어요. 그중에서 한 꾸러미가 이 필통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게 유젠 염색지라고, 일본 전통 염색 색종이에요. 그걸 잘라서 이렇게 책갈피로 사용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사용을 해요. 명함입니다. 10년 전에 제가 <문장의 소리>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는데, 그때 PD였던 김중혁 작가님이 만들어 주셨어요. 

제가 많은 책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이번에 방송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라는 책이었어요. 곽복록 번역가가 옮기고 지식공작소에서 2014년에 출간한 책인데 되게 재밌는 책이에요. 슈테판 츠바이크가 유대인 작가거든요. 세계대전 이전의 빈이라는 도시하고 그 도시의 시민들이 잃어버린 풍요, 사람들 사이의 여유, 예술적 번영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기록한 대단히 지적인 에세이들이 실린 책입니다. 츠바이크가 만나고 또 많이 좋아한 작가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고, 그리고 두 번째 대전을 예감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통찰한 그런 에세이들도 실려 있는, 제가 무지 좋아하는 책이에요. 제가 츠바이크의 모든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어제의 세계』는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책이에요. 그리고 민요상 책꽂이의 맨 위칸을 차지한 책입니다. 저는 이 책으로 츠바이크가 너무나 궁금해서 잘츠부르크에도 다녀왔어요. 여행의 목적이 오로지 츠바이크였습니다.

오늘 저희가 좋아하는 것 네 가지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문장을 낭독하기로 했죠. 제가 고른 책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이인규 번역가가 번역을 했고 민음사에서 출간된 번역본으로 가지고 있고요. 본래 제가 낭독하고 싶었던 부분은 21페이지부터 22 페이지에 걸쳐서 있었는데요. 낭독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소설의 초반인데요. '핍'이라는 소년이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에게 맡겨져서 결혼한 누나의 집에 살고 있는데, 누나와 결혼한 남성인 '조 가저리'와 핍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고른 부분은 이 집의 저녁 먹는 시간입니다. 이 집의 (음식) 분배권은 누나에게 있어요. 식사용 빵으로 되게 밀도가 높고 딱딱한 커다란 빵을 잘라서 먹는데, 그 빵을 누나가 칼로 잘라서 두 사람에게 나눠주는데, 가슴에 빵을 대고 칼로 눌러서 자릅니다. 두 사람을 몹시 미워하면서. 근데 이 누나가 입은 앞치마에 핀이나 바늘 같은 것들이 꽂혀 있어서 빵 덩어리에 꽂히기도 해가지고 빵을 먹는 사람의 입에 들어가서 씹히기도 하는 거예요. 핍은 집 바깥에서 쇠사슬을 차고 있는 어떤 남자를 만나서 그 사람을 숨겨둔 상황이에요. 그에게 빵을 가져다 줘야 돼서, 모두의 눈을 속이고 누나의 감시를 피해서 자기 몫의 빵을 슬쩍 숨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페이지에 빵 이야기가 계속 나와요. 누나가 빵을 어떤 자세로 쥐고 나이프에 어떻게 버터를 묻혀서 발라서 나눠주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한 페이지 이상 나와서, 저한테는 축복 같은 장면입니다.(웃음) 제가 빵이 나오는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빵과 사람이 나오는 소설 중에서는 이 장면이 으뜸이에요.



그냥의 선택

『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저 / 이승민 역 | 문학동네



제가 좋아하는 다섯 가지 중에 첫 번째는 고양이, 특히 저의 반려묘인데요. 저는 고양이들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좋아요. 다른 존재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중심을 두고 있고 자기 의사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부분이 좋습니다. 보통은 고양이가 애정 표현을 잘 안 한하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의 애정 표현이 진짜 진해요. 아주 농밀하고 은근한데, 저는 그때 정말 큰 사랑을 느껴요. 그리고 저의 반려묘를 만난 후에 보호자라는 역할을 갖게 됐는데, 보호자가 돼보는 경험이 가치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내가 기꺼이 원해서 무언가를 내어주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그게 마냥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내가 행복한 경험을 처음 해봤어요. 그것이 굉장히 저에게 의미가 있고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집인데요. 제가 집순이이기도 하고, 집은 내가 편안하게 안전함을 느끼면서 독립되어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에게는 굉장히 오랫동안 집이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고양이랑 살다 보니까 더 집순이가 된 면도 있습니다. 

저는 잠을 정말 좋아해요. 아무도 깨우지 않고 어떤 일정도 없으면 하루 이상도 잘 수가 있는 사람인데요. 학창시절부터 갑자기 잠을 많이 자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시기에는 약간 현실 도피의 성격이 있었던 것 같고요. 나중에는 꿈꾸는 게 좋아서 잠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잠들 때의 순간과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노곤노곤한 상태에 있는 걸 좋아하고 또 이불을 되게 좋아해요. 그리고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잖아요. 그 고요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또 자게 됩니다.(웃음)

네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요즘 한창 빠져 있는 재봉인데요. 제가 직접 쓸 것들을 만들어요. 그런데 정말 엉터리거든요. 실밥도 튀어나와 있고 선도 삐뚤삐뚤하고 잘 맞지도 않아요. 그런데 내가 쓸 거니까 망쳐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실패해도 된다는 걸 경험하는 시간인 거예요. 그게 되게 해방감을 주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할게요. 제가 가지고 온 책은 게일 콜드웰이 쓰고 이승민이 번역하고 문학동네에서 2021년에 새롭게 출간한 『먼길로 돌아갈까?』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캐럴라인 냅과의 이야기가 차지합니다. 두 사람이 7년여 정도 우정을 나누었어요. 아시다시피 캐럴라인 냅은 200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책에는 두 사람이 만난 순간부터 어떻게 친해졌고, 무엇을 교류하며 시간을 보냈고 어떻게 이별했고, 그 이후에 그 상실을 게일 콜드웰이 감당해냈는지 나옵니다.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친구가 있는데, 최근에 보낸 편지에 이 책의 한 구절을 적어줬어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지금 뭐해?" 글 쓰는 시간이 끝나고 아직 산책 시간은 되기 전인 이른 오후, 나는 전화를 걸어 묻곤 했다. "전화 기다리고 있었지." 반쯤 농담처럼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면, 우리는 수다로 뛰어들었다. 조간신문 기사(각자 두 종류씩), 로잉과 수영 기록(강에서 8킬로미터, 수영장에서 1500미터), 하루의 끝에서 끝까지 '스물네 시간' 사이에 사건사고 일지까지. 통화를 마치고 해가 지기 전에 물가에서 만나면 캐럴라인은 네팔에 팔짱을 끼고 물었다. "그래서어어……?" 그럼 우리는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끝없는 대화의 또다른 문장을 시작했다.  _132쪽



단호박의 선택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저 | 교양인



제가 가장 최근에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에 올린 건 게임입니다. 닌텐도에서 나온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인데요. 세상의 물리 법칙을 이렇게 가상 현실에 구현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제가 (게임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다 이 세계의 중력과 연결이 돼 있어요. 풍향과 풍력에 따라서 저의 속도가 느려지고, 무기들로 마모도를 구현해놨고, 메뉴 선정에 따라 내가 만드는 음식과 그 음식이 나한테 줄 수 있는 효과가 다 달라집니다. 절벽에서 낙하산으로 떨어졌을 때 보이는 풍경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이런 기분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요. 자유도가 굉장히 높고, 몬스터를 잡는 건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싸우고 무엇을 쟁취하고 목표를 설정해서 누군가와 경쟁하고 이런 게임보다는 평화롭게 채집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요새는 그냥 거기(게임 속) 가서 풍경을 보면서 사과를 따고 버섯을 따고 메뚜기를 잡습니다.

그리고 요새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버려질 위기의 음식인데요. 소비자한테 가닿지 못하고 폐기되는 음식들이 있잖아요. 요새는 '어글리어스'라는 쇼핑몰을 보는 게 약간 취미가 되어서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가 봐요. 갑자기 농가에서 팔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면 괜히 그것을 사다가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동물권보다는 탄소 배출 관점에서 계속 채식을 생각하거든요. 버려지는 음식으로 인한 전 세계 탄소 배출이 몇 프로라고 한다면 이 버려지는 음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요새 자주 합니다. 그래서 유통 기한이 임박한 상품 같은 걸 소비하고 나면 그렇게 성취감이 들어요. 혼자서 뿌듯해합니다. 저는 요리의 관점도 냉장고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비울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어요. 냉장고의 재료를 효과적으로 소진했을 때 뿌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돈을 좋아합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돈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돈 자체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불리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약간 다람쥐의 마음으로 돈을 (모으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을 좋아해요. 비정기적인 돈보다는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도토리가 좋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직장을 다니나 봅니다. 

그리고 저는 침대와 이불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불 중에서 좋아하는 것은 아그네스 초극세사 항균 담요를 좋아합니다. 몇 년 전에 트위터에서 유행이 불고 이제는 조용해진 담요인데요. 그것의 질감을 좋아합니다. 특히 날씨가 추워졌을 때 그것을 두르면 무적이 됩니다. 

제가 꼽은 문장은 『페미니즘의 도전』에 나온 머리말 부분이고요. 『페미니즘의 도전』은 제 나이 때 사람이 대학에서 페미니즘 공부를 할 때는 경전처럼 받아들여지던 책이었어요.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_31쪽

10대랑 20대 초반 당시에 받았던 문장은 약간 새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후에 그 책을 다시 보지 않아도 계속해서 그 문장만 가지고 곱씹는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이 문장을 읽은 게 스물한 살 때인데 아직도 좋아하는 문장을 꼽으라고 하면 이 문장이 생각나긴 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이야기하면서 저 스스로도 약간의 문제를 느끼게 되는 거죠. 내가 20대 초반에 읽어서 감화 받았던 내용을 더 이상 곱씹지 않고 다시 내보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었습니다. 이 문장을 꺼내들고 나서 '내가 또 안다는 것을 피해 다니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시금 꺼내들고 좀 생각을 해보게 되는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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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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