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끝과 시작 - <6번 칸>
<6번 칸>은 어느새 전화조차 잘 받지 않는 연인의 이별 신고식을 애써 무시하면서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인 출발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한 여자의 여행기다.
글ㆍ사진 김소미 <씨네21> 기자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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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김소미가 극장에서 만난 일상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살아가는 30대로서 체감한 영화 속 삶의 지혜,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영화 <6번 칸> 포스터 

고고학을 전공하기 위해 러시아에 온 핀란드 학생인 로라는 교수이자 연인인 이리나와 곧 러시아 북서부의 외딴 지역 무르만스크에 가기로 약속한 상태다. 그곳에서 그들은 수천년된 신비한 암각화를 보고 인생을 바꿀 만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지도 모른다. 영화 <6번 칸>의 출발지는 이 원대했던 낭만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다. 로라가 부르주아 연인의 파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리나가 여행 계획에서 스르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어린 연인을 삶의 궤도에서 조용히 밀어내려는 것 같은 파트너의 움직임을 감지한 로라는 결국 혼자가는 춥고 머나먼 길로 떠난다. 덜컹거리고 혼잡하며 대체로 불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를 매혹하는 힘이 있는 구식 열차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6번 칸>은 어느새 전화조차 잘 받지 않는 연인의 이별 신고식을 애써 무시하면서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인 출발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한 여자의 여행기다.


내면의 동물과 동행하다

<6번 칸>의 또다른 주인공 료하(유리 보리소프)는 무례하고 난폭하다. "러시아판 <비포 선라이즈>"라는 소문을 듣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적잖이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유는, 혹한의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퀴퀴한 횡단 열차 안에서 주인공을 기다리는 남자가 러시아판 '제시'(에단 호크)가 아니라, 침엽수림에서 도망쳐나온 한 마리의 야생곰에 가까워서다. 무르만스크의 탄광에서 일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은 그의 혈관엔 종일 일정 수준의 알콜을 함유한 피가 흐른다. 그는 순박한 얼굴로 미소지니(Misogyny)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발언을 일삼고 암각화를 보러 먼 곳까지 여행하는 여자의 선택을 도무지 공감할 수 없어 악의없이 비웃는 그런 남자다. 바짝 깎은 머리에 건장한 체구, 다양한 종류의 욕설을 보유한 이 위협적인 백인 남자를 "서구 사회는 더이상 러시아 문화를 소비하지 않는다"라고 막연한 억하심정을 토로했던 블라디미르 푸틴의 코멘트를 풍자한캐릭터로 해석한대도 괜찮을 정도로, 아무튼 비호감이다. 부르주아 지식인 연인의 그늘에서 막 쫓겨난 주인공에게 이런 짝을 맺어주다니, 이건 너무 고약한 처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때쯤 <6번 칸>은 아슬아슬하게 매혹과 설득을 이어나간다. 현실에 대입하자면 더더욱 공감하기 어려운 어떤 관계의 진전을 이 영화는 끝내 희한한 방식으로 설득하고 감싸안는다.

기차가 반나절 정차하는 틈을 타 두 사람이 료하의 할머니가 사는 통나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이 나올 때쯤 나는 이 이상한 만남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로라의 술잔에 독주를 쏟아붓는 할머니가 말한다. 우리 여자들의 몸 안에는 저마다 다른 '내면의 동물'이 존재한다고.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말고 자기 안의 동물이 내는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 이 고독하고 덤덤한 할머니의 지혜다. 시종 소심하고 방어적인 태세였던 로라는 즉시 자신과 할머니가 동류임을 알아차린 사람의 얼굴로 끄덕인다. 이 순간 온순해진 료하는 먼저 잠자리에 들겠다며 사라진다. 과음과 숙취에서 깨어난 다음날, 로라는 조금 달라져있다. 그는 이제 거친 발톱과 이빨을 가졌으나 주인 앞에서는 기꺼이 길들여질 용의가 있는 내면의 동물 료하와 동행하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핀란드가 1917년 독립 전까지 약 100년 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떠올리면, 영화 속 로라-료하의 관계를 핀란드 감독인 유호 쿠호스마넨의 묘한 정치적 비꼬기와 유머가 맺은 결실로 읽어볼 수도 있다.


영화 <6번 칸> 스틸컷

저게 다예요

동행자가 되는데 성공한 남녀는 조금씩 목적지에 다가간다. 곧 암각화가 등장할 무렵, 번뜩 한 편의 다른 영화가 떠올랐다. 수잔 올린의 책 <난초 도둑>을 모티브로 펼쳐지는 영화 <어댑테이션>이었다. 메릴 스트립이 탁월하게 연기한, 뉴요커  매거진의 저널리스트 수잔 올린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비로운 유령 난초를 마주한 순간 온몸으로 허무를 토해낸다. 

"그냥 난초잖아." 

완전한, 아주 완전한 실망감 밖에 없다. 그 사이 수잔은 일면 료하와 비슷한 구석이 꽤 있다고 할만한 앞니 빠진 밀렵꾼 존(크리스 쿠퍼)과 동행하던 중 사랑에 빠졌고, 그를 비웃는 디너 파티의 뉴요커들을 환멸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고독해졌다. 고독이 수잔이 온몸에 진흙을 적셔가며 늪지를 건너는 여정에 동행하도록 했다. 신비한 유령 난초가 아니라 그것을 만나러 가기까지의 일 자체가 수잔을 바꾸었지만, 그 과정이 자기 삶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직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어댑테이션>은 이 지점에 다다라 열망의 또다른 얼굴인 허무를 깊이 파고드는 영화다. 한편 비슷한 여정을 걷는 <6번 칸>은 그보다 담백하고 낙관적인 태도로 고독이 우리를 데려다놓는 곳을 비춘다. 무르만스크에 간신히 도착한 로라는, 악천후로 암각화가 있는 곳까지는 접근이 힘들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하다가 료하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암각화가 있는 외딴 섬까지 진입한다. 로라가 수천년된 고대 유물과 만날 때 내가 기대한 것은 어떤 복잡한 감흥과 인문학적 성찰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권태와 불화에 허우적대던 부부가 1700년 동안 잿더미에 파묻혀 있던 폼페이 유적을 보면서 느꼈던 미묘하고도 날선 직감같은 것. 그러나 카메라에 담긴 것은 발 밑의 암각화를 대충 훑어보며 어슬렁거리더니 이내 돌아 나오는 로라의 모습 뿐이었다. 로라 뒷편에서 멀찍이 앉아 기다리던 료하도 덩달아 일어섰다. 이어지는 짦은 문답.

"저게 다예요?" 

"네. 저게 다예요."

도착 완료의 순간에 대단한 상징이나 해법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으며, 그런 것 따위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허무함 조차 무덤덤하게 처리해버리는 이 영화가 그제야 통쾌하리만치 좋아졌다. 이어지는 로라와 료하와 헤어짐 역시 이렇다할 의례도 없이 홀연하다. 둘의 만남과 이별 역시 ‘이게 다’다. 시시한 끝을 마주한 여자가 다시 어딘가로 향하는 차 안에서 <6번 칸>은  거의 세례처럼 내리꽂히는 찬란한 햇빛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물들인다. 로라의 표정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새 행선지를 찾는 사람의 것이고, 이 장면의 햇빛은 무르만스크의 것이 아니라 영화의 것이다. 여자는 이제 출발지에 두고 온 연인을 완전히 잃었다. 료하라는 이름의 낯선 남자를 만났고 내면의 동물을 깨웠다. 고작 그것이 전부일 뿐이다. 백치같은 얼굴을 한 고고학도가 암각화 앞에서 배운 것은 어쩌면 한없는 겸손인지도 모른다. <6번 칸>이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떠오를 때서야 나는 이 싱거운 영화의 좋은 짝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끝과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 구석의 어둠 위로 더듬더듬 떠오르는 구절들을 혼자 그려 넣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그보다 더 알지 못하는,

결국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  

_「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문학과지성사



끝과 시작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 | 최성은 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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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 <씨네21> 기자

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