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신인 보이 그룹 보이넥스트도어에 주목하게 하는 가장 이른 요인은 아무래도 총괄 프로듀서 '지코(ZICO)'의 이름이다. 한국 힙합의 가장 성공적인 아티스트이자 가장 대담한 크리에이터 중 하나인 그다. 그리고 그가 12년 전 데뷔한 그의 소속 그룹 블락비에 이어서 직접 맡은 신인 아이돌이다. 기대하게 되는 바가 많을 수밖에 없다. 특유의 매력적인 비뚤어짐이나 블락비가 보여주던 파격적인 에너지, 영민한 대중적 감각, 알기 쉬우면서도 분명한 혁신 같은 것들 말이다.
첫 싱글
사실 흔하거나 익숙한 요소도 많다. '옆집 소년'이란 뜻의 팀 이름부터, 케이팝은 물론이고 이전 시대 영미권 틴팝에서도 흔하디 흔하게 쓰인 개념어다. 미국 걸그룹의 세계를 코믹하게 다룬 드라마 <걸스파이브에바 (Girls5eva)>에서도 '보이즈넥스트도어'라는 이름의 보이 그룹이 등장한다. 보이 그룹의 기호로서는 너무나 즉각적이라서 현실의 보이 그룹이 이름 삼기는 어려울 정도라는 이야기다.(그걸 보이넥스트도어가 해낸다) 미국의 교외 주택가나 캠퍼스 풍경, 여섯 멤버와 여섯 개의 하이틴 방과 공유공간 같은 이미지도 케이팝에서는 거의 ‘전통미’라 불러도 좋을 것들이다.
곡에서 지코의 향취를 찾아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기도 하지만, 그외에도 많은 '케이팝 모먼트'가 스쳐간다. "돌아버리겠다", "아 진짜 긴장돼 죽겠네"처럼 열불 내며 칭얼대거나 낙천적으로 푸념하는 소년은 아이콘과 위너, 혹은 그 둘의 연결점처럼 들리기도 한다. 가사에서 태양(눈 코 입)이나 아이유(금요일에 시간 어때요)가 인용되기도 한다. 'Serenade'의 가사가 의식하고 있는 이웃사촌이나 그들과 화자의 상호 관계 또한, 현실에서 신기루처럼 되어 가는 한국인의 모든 욕망의 대상을 대리하는 매체답게 거의 K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어떻게 보면
다만 그것이 범상치 않다. 'One and Only'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매끄러운 가성 보컬을 다리 삼아 진입하는 후렴에는 몇 가지 트릭이 포함돼 있다. 못갖춘마디로 시작돼 보컬의 자리도 거의 비운 채 비트 중심으로 흐르는 후렴의 첫 대목은 느긋한 낙천과 단단한 에너지를 제시한다. 뒤이어 화성 진행이 시작되고 유머러스한 백업 보컬이 등장할 때면 앞선 긴장의 해소를 기대하게 마련이지만, 마이크는 랩에게 돌아간다. 그나마 두 마디 뒤에 사운드는 다시 비트 중심으로 바뀌고 보컬이라고는 배경에 깔리는 챈팅만 남아버린다. 이 여덟 마디를 케이팝의 후렴으로 성립시키는 건 마지막의 속삭이는 목소리다. 풀어줄 듯 말 듯 감질난다. 하지만 모든 마디가 청각적인 즐거움을 아주 분명하게 제공하고, 금세 또 새로운 즐거움을 제시하며, 매번 익숙한 기대와는 조금씩 어긋하기에 더욱 즐겁다.
기분 좋고 재치있다. 싱글에 담긴 세 곡이 전부 같은 기조를 띤다. 현재적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절묘한 선에 걸친 입말들이 있고 그것은 매번 음악적으로 정확하게 활용된다. 랩과 보컬과 비트가 한 덩어리로 절묘하게 맞물려 움직인다. 이런 것들은 지코의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기존에 보여줬던 어떤 매섭거나 짓궂거나 능글거리거나 가슴 벅찬 노래들과는 공기가 다르다. 그래서 이 능란한 싱글이 '지코 프로듀스'라는 이름표를 통해서든, 혹은 이름표를 넘어서서든, 무엇보다도 싱그러운 활기를 두드러지게 선사한다. 변칙적인 구석들이 있지만 시원시원해서 걸치적거림이 없다. 대뜸 마음이 가게 된다. 호감형 옆집 소년(이라는 것이 현실에 있다면)이란 그런 식이 아니겠나. 이쯤 되니 그룹 이름도 무책임한 선택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인 아이돌의 뒤에 유명 프로듀서든 대형 레이블이든 거대한 이름이 있을 때, 그것은 때로 두 면의 동전이다. 화제성이나 검증된 매력, 팬덤의 관심을 제공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 이름을 넘어서서 독자적인 존재로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케이팝에서 그러한 '대체 불가능성'은 팬덤과 아티스트 모두가 무엇보다도 강하게, 그리고 언제든 늦출 수 없이 염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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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