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 칼럼] 존재함을 사과하지 않기
거의 대부분의 장소를 휠체어로 갈 수 있으니, 식당을 찾느라 지칠 일은 없었다. 그에게 미리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하지 않고 만나는 것은 꽤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글ㆍ사진 김지우(구르님)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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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전시 보러 갈래? ]


2020년 겨울이었다. 종강을 앞두고 있을 때, 같은 수업을 들었던 다른 과 학생이 번호를 물어봤다. 며칠 대화를 나누던 그에게서 만나자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대학교 새내기였던 나는 어쩌면 전개될 로맨스 상황을 기대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2020년에 입학한 소위 ‘코로나 학번’이다. 그 말인즉슨, 지금 이 상대는 나를 화상회의 플랫폼에서만 만났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때에도 로맨스는 꽃폈고 만날 사람들은 다 만나곤 했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았다. 네모나고 작은 화면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 가장 크게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했다. 그래야 휠체어 접근 가능한 전시장을 갈 테고, 밥을 먹을 테고, 카페를 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듣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던 상대에게 ‘복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하’는 것마냥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머쓱했다. 일부러 숨긴 것도 아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실처럼 ‘장애를 고백’하고, 내 존재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어쩌면 약속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휠체어 접근 가능한 식당을 찾기 위해 분주해지는 것 모두가 에너지 소모적이었다. 결국 나는 만남 이전에 지쳐버려 연을 더 이어가지 않았다. 많은 만남이 이런 식이었다.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온라인에서 먼저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데이팅 어플, 원데이 클래스 신청, 동아리 가입 등 많은 것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므로, 나는 그때마다 새로 설명하는 사람이자, 계속 사과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은 시작도 하기 전 지쳐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런 내가 호주 여행 중 새 목표를 세웠다. ‘친구 만들기’였다. 3주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나는 또 한 번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브리즈번이었다. 멜버른에서는 함께 여행하던 교환학생 동료들이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도착한 공항부터는 정말 혼자였다. 캐리어를 잡은 왼손에 힘을 꽉 주고, 오른손으로는 휠체어 컨트롤러를 운전했다. 체크인을 혼자 하고, 수속을 밟고, 브리즈번행 비행기에 올랐다.


브리즈번은 멜버른에 비해 한적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작은 중심 도시는 걸어서도 하루 만에 돌아볼 수 있는 크기고,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강이나 조금은 뜬금없이 자리한 도시의 인공해변 등이 여유로운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 일찍 일을 마친 사람들이 강가에서 러닝을 하고, 잔디밭에 그냥 드러눕기도 하고, 아이들과 인공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브리즈번에서는 ‘쉬는 법’ 그리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방법이 ‘친구 만들기’였던 것이다.


우리 만나서 대화할래?


친구를 만들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언어 교환 앱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프로필을 설정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설정해 둔 학습자 몇 명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다 A를 만났다. A는 브리즈번 사우스뱅크에서 살고 있었고, 호주에서 산 지는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브리즈번에서 가볼 만한 식당과 관광지를 잔뜩 추천해 주는 그에게, 카페에서 만나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적극적으로 대면 만남을 추진한 경험은 없었지만, 왠지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거나, 그렇기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말은 부러 하지 않았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카페에 먼저 도착해 A가 배우고 싶다는 한국어 표현을 다이어리에 적으며 그를 기다렸다. 조금 늦는다는 A에게 ‘들어오면 말해줘. 나는 초록 카디건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있어.’라는 채팅을 남겼다. A는 곧 도착했다. 그의 손에는 선물로 준비한 한국 과자가 들려 있었다. 너무 익숙한 포장지의 과자를 선물 받는다는 게 웃기기도 했지만, 아주 반갑기도, 한국 군것질거리가 그리울 것이라고 생각한 그의 발상이 귀엽기도 했다. 그는 음료를 시키곤 내 앞자리에 앉았다.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고, “왜 휠체어를 타고 있냐” 따위의 질문을 건네지도 않았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영어로 실컷 대화하다가 한국어 문장들을 함께 공부했다.


그에게 나는 한글을 읽을 때 어려운 연음 등의 규칙들을 설명해 줬다. A는 특히 내가 한국어 문장 밑에 영어로 적어둔 발음 표기를 아주 좋아했다. A와 나는 금세 친해졌다. 이후 한 번 더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추천한 한국 바비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다. 거의 대부분의 장소를 휠체어로 갈 수 있으니, 식당을 찾느라 지칠 일은 없었다. 그에게 미리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하지 않고 만나는 것은 꽤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또 하나 스스로 벽을 세워두었던 일을 깨뜨린 기분이었다. 막상 부딪혀보니,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즐거웠고, 우려했던 어색한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후에도 몇 차례 언어교환 모임에 나갔다. 큰 생각 없이 불쑥 찾아가기도 했고, 접근성이 궁금하면 ‘휠체어 접근 가능할까요?’라고 공개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러 갈 때 사과부터 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죄송한데요…’로 말을 시작하지 않고 내 소개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2020년 겨울이 된다면, ‘내가 휠체어를 타, 근처에 이 카페 괜찮아 보이는데, 여기서 볼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브리즈번에서의 잊지 못할 만남이 아직 남았답니다.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 ②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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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구르님)

휠체어가 굴러서 ‘구르님’. 김지우보다 익숙해진 이름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한다. ‘구르는’ 삶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쓴다. 쓴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오늘도 구르는 중』,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공저)가 있다. 장애의 과거와 미래보다,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에는 홀로 여행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계획을 세우는 데 소질이 없는 탓에 다음에는 어디로 구를지 알 수 없지만, 멀리 굴러갈 의지와 바퀴만은 탄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