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핑] 국경을 넘는 한국 문학
책의 날을 맞아 언어의 장벽을 넘어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 한국 문학을 소개합니다.
글 : 채널예스
20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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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저 | 래빗홀


치졸하고 우스꽝스러운 세계의 모순을 들추면서도 서로를 보살피며 서툰 사랑을 배워가는, 사랑을 잃는 순간에는 멈추어 애도하고 기억하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폐허의 오늘로부터 더 나은 세계를 향해 가는 꾸준한 노력을 담은 정보라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가 『너의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개정 출간되었다.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작가의 말) 기억하고 애도할 것이 끊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어내는 소설로,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꼽히는 필립 K. 딕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에 참석한 정보라 작가는 각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수록작 「그녀를 만나다」의 마지막 대목을 직접 낭독하며 울림을 주었다. 

 



『한 글자 사전』

김소연 저 | 마음산책


‘감’에서 시작해 ‘힝’에 이르기까지 310개의 한 글자 단어를 섬세한 시인의 언어로 정의한 사전 형식의 책이다. ‘갑’에 관해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게 갑이지!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지만 ‘그게 을이지!’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는다." (16쪽) 읽다 보면 시인의 사전이 다른 언어로 어떻게 옮겨졌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2022년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했을 당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도 함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두 작품 모두 번역본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일 것이다.



 

『식물, 상점』

강민영 저 | 한겨레출판사


“판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 여자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여자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이야기가 탄생했을까? 데이트폭력, 스토킹, 불법촬영, 로맨스 스캠 등 현실 세계의 문제에 시선을 정확히 맞추고 정면으로 돌파해 나간다. 작년 출간 이후 9개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출판 준비에 돌입해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책 속의 한 문장으로 답해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일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풀』

김금숙 글그림 | 창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생애를 그린 만화로, 35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알렸다. 『풀』은 ‘위안부’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운동가이자 인권 운동가로 살아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낸다. “『풀』을 사랑해 준 수많은 독자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게 『풀』에 공감하고 나보다 더 깊이 나의 의도를 이해했다.” (작가의 말) 한국전쟁 이산가족, 조선 최초 여성 볼셰비키의 삶, 발달장애 청년 등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로 시대의 보편성을 전하는 김금숙 작가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김혜순 저/이피 그림 | 문학동네


시와 산문, 두 장르에 발 걸친 ‘시산문’ 179편이 수록되었다. 『날개 환상통』, 『피어라 돼지』 등과 함께 다국어로 번역되어 열렬하게 읽히고 있다. 김혜순 시인이 2014년부터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으로, 연재 당시 독자들이 짐작할 수 없도록 본명 대신 ‘쪼다’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름과 장르를 모두 벗어나 낯선 땅에 도착하려는 시인의 시도가, ‘애록(AEROK)’이라는 나라에 사는 마녀-여성-시인 ‘않아’를 통해 분출된다. ‘않아’가 타국의 “않아”들을 만나 나눴을 대화가 궁금하다. 


 


『성소년』

이희주 저 | 문학동네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의 모양을 가장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 이희주의 두 번째 장편 소설. 한 아이돌을 각자의 방식으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흑화’한 네 여자의 납치극을 따라가는 범죄 소설로, 파멸로 이끄는 광기와 욕망의 폭력적인 사랑을 섬뜩하고 유려하게 표현한다. 영미권 대형 출판 그룹과 판권 계약을 체결하며 다시 화제가 되었다. K-pop 음악에 몸을 내맡겼던 사람들과 함께 『성소년』을 읽고 난 뒤, 우린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여름이 온다』

이수지 글그림 | 비룡소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 모티프를 얻은, 생명력 넘치는 여름 그림책. 콜라주, 크레용, 선과 점, 담채, 아크릴 물감 등 이수지 작가의 다양한 기법을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다. 나이와 언어의 장벽을 성큼 넘어버리는 생생한 그림책의 매력을 느껴 보자. 이 책은 2022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되었고, 같은 해 이수지 작가는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저 | 이야기장수


『가녀장의 시대』가 여러 나라에서 러브 콜을 받는 이유를 복잡하게 분석할 수도 있지만 한 마디로 심플하게 답할 수도 있다. 그만큼 많고 많은 가녀장들이 오랫동안 가녀장의 이야기를 기다려왔다고 말이다. 아주 뒤늦게 문이 활짝 열린 가녀장의 시대에, 맵고 달고 짠 낮잠 출판사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언어로 옮겨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딸에 대하여』

김혜진 | 민음사


퀴어 소설이면서 모녀 서사이고, 여성 노동과 여성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 집에 시간 강사로 일하는 딸이 동성 연인과 함께 들어와 살게 된다. 딸과 딸의 연인은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를 위해 시위하고, 엄마는 병원에서 자신이 돌보는 여성 노인 환자에게 마음을 쓰면서 펼쳐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대만, 중국, 유럽 등에 널리 소개된 『딸에 대하여』는 2024년 가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국내외 관객과 새롭게 만났다.


 


『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윤이나 저 | 세미콜론


‘첫째, 라면을 끓이기 전’부터 ‘열두째, 계속 라면을 먹으려면’까지 라면을 끓이는 과정으로 구성된 음식 에세이. 윤이나 작가의 30년 라면 인생의 주요 사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가장 맛있고 간편하게 먹일 수 있는 1인분의 라면 끓이는 법을 안내한다. 대한민국 1인 가구 여성의 맵고 짠 인생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2023년 대만에서 『나의 라면 타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2024년 영미권에서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라면, 여성, 1인 가구 이야기가 문화적 차이를 넘어 어떻게 모두의 이야기로 읽히는지 주목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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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사전

<김소연>

출판사 | 마음산책

식물, 상점

<강민영>

출판사 | 한겨레출판

<김금숙> 글그림

출판사 | 창비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김혜순> 저/<이피> 그림

출판사 | 문학동네

성소년

<이희주> 저

출판사 | 문학동네

여름이 온다

<이수지> 글그림

출판사 | 비룡소

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민승남> 역

출판사 | 을유문화사

날개 환상통

<김혜순>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피어라 돼지

<김혜순>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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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아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머리」가, 2008년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너의 유토피아』는 영문판이 2024년 발간된 이래, 2024년 미국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고, 2025년 1월 현재 필립 K. 딕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밤의 시간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작은 종말』,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호』 『고통에 관하여』 『밤이 오면 우리는』, 에세이 『아무튼, 데모』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 『탐욕』 『창백한 말』 『어머니』 『로봇 동화』 등이 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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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 시인은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였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2019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를 수상했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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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장 고흥에서 태어나, 세종대학교 회화과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주로 굵직한 역사적 주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세계에 알린 『풀』,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 박완서 원작을 만화로 재구성한 『나목』, 발달장애 뮤지션 이야기를 담은 『준이 오빠』,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의 삶을 기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자전적 만화 『아버지의 노래』와 어린이 만화 『꼬깽이』(전3권)를 쓰고 그렸다. 제주 해녀 이야기인 『애기해녀 옥랑이, 미역 따러 독도 가요!』와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 이야기인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등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으며, 『우리 엄마 강금순』 등 여러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다. 현재 [한겨레]에 「김금숙의 강화일기」를, [서울신문]에 「김금숙의 만화경」을 연재 중이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일어 등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유럽과 남미, 북미, 아시아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담은 『풀』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 최고의 만화, 영국 가디언지 최고의 그래픽노블, 미국도서관협회/미국청소년도서관협회 청소년을 위한 그래픽노블로 선정되고, 2020년 크라우제 에세이상, 빅아더북 그래픽 노블 부문 상,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최우수출판만화상을 수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단편 만화 「미자 언니」로 2016년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