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도시 재개발로 들꽃 같은 산동네 집들이 하나하나 쓰러졌다. 포클레인 기어가는 소리에 사람들은 쓰라린 기억들을 가슴에 주어 담고, 하나씩 정든 대문을 나섰다.혼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산동네 아래에 생겼다. 다섯 칸 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벌어진 것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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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개발로 들꽃 같은 산동네 집들이 하나하나 쓰러졌다. 포클레인 기어가는 소리에 사람들은 쓰라린 기억들을 가슴에 주어 담고, 하나씩 정든 대문을 나섰다.

혼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산동네 아래에 생겼다. 다섯 칸 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벌어진 것이다.

김치순 할아버지와 아삼륙 장씨 할아버지가 오드리 헵번 뺨치는 미모의 이복순 할머니를 놓고 사랑싸움을 벌인 것이다. 싸움은 장씨 할아버지의 완승이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장씨 할아버지의 두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짝사랑하던 이복순 할머니를 빼앗긴 김치순 할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막걸리 추렴이다. “이복순이… 네가 나에게 상처를 줘.” 순금처럼 단단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움펑 꺼진 할아버지 눈가엔 눈물까지 그렁 맺혔다.

벚꽃 화사한 어느 봄날, 김치순 할아버지의 연적(戀敵), 장씨 할아버지는 눈치도 없이 이복순 할머니를 데리고 꽃구경을 다녀왔다.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마당을 들어서는 순간, 큼지막한 요강 하나가 마당으로 휙 날아왔다.

‘쨍그랑.’

분을 이기지 못한 김치순 할아버지가 냅다 요강을 들어 마당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곱다시 피어난 생강나무 꽃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다섯 살 아래 장씨 할아버지는 이에 질세라 어깨까지 곱송그리며 맵짤하게 쏘아붙였다.

“아니 보자보자 하니까, 이 성님 너무하시네.”

“뭐가 너무해 이놈아.”
“왜 애먼 요강을 던지고 그래요. 요강 던질 힘 있으면 텃밭에 나가 호박 구뎅이나 하나 더 팔 일이지.”

“이놈아, 호박 구뎅이 팔 힘 있으면 네 놈을 죽사발로 만들겠다. 이놈아,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네놈이 한 짓을 내가 다 훤히 꿰고 있어. 이놈아….”

불콰하게 술에 취한 김치순 할아버지 머리 위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떠름한 낯빛의 장씨 할아버지는 그 기세에 눌려 금세 꼬리를 내렸다. 우두망찰 서 있던 이복순 할머니도 남우세스러웠는지, 불그죽죽한 얼굴을 흔들며 방 안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사나운 꼴 보느니 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김치순 할아버지는 그날로 단식을 선언했다. 단식은 보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옹고집 할아버지를 뜯어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김씨 할아버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마당에서 들려왔다.

“저러다 쓰러지고 말 거구먼. 참말로 딱한 양반일세.”
“봄에는 조쌀해 뵈도 강단은 있는가 보네. 보름을 물만 먹고도 저렇게 멀쩡허니 말이야.”

하지만 그 속내를 누가 알았겠는가. 하루 두 번, 남몰래 맛난 김밥을 나르는 손길이 있었으니, 김치순 할아버지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박점순 할머니렷다. 코 밑 사마귀 실룩거리며 선득선득한 웃음이 매력적인 박점순 할머니는, 쌈짓돈 다 털어 김씨 할아버지를 위해 하루 두 끼 맛난 김밥을 준비했다는데… 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시들지 않는 모양이다.

#이철환 #반성문
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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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1.08.09

노년에 맞닥뜨리는 사랑을 재미있게 썼네요~~~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도 무색한가 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 이후에 아낌없이 주고싶은 마음까지 단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도 전 '사랑'을 뽑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 작가님의 글을 며칠 시차를 두고 읽었는데 잔잔한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스며드는 글을 쓰시는 것 같네요. 롱런하는 작가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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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장자

2007.09.30

젊었을때 사랑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무색할정도로, 나이가 먹어도 사랑은 아름다운것이고, 사랑의 질투도 아름다운것이다, 젊었을때 사랑할수있는게 아니라 나이가 먹어서도, 사랑은 얼마든지 할수 있다 라는 고정관념이 팍하고 꺠지네요,, 부끄럽습니다, 제자신도 저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할아버지, 할머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니 시선을 그렇게가지고 바라보고만 있었다니하구요. 고정관념같은걸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은 안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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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doae

2007.09.20

사람은 참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기를 바랍니다.
빵 한조각이라도 다른 이와 같아야지 다르면 섭섭한 있듯이 ...
두 분의 할아버지와 한 분의 할머니에 갈등 또한 그렇네요...
또한 보이지 않는 짝이 펼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탁월함 등....
우리의 삶 또한 이런 다양한 갈등 가운데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의 두 딸도 아빠가 가져주는 관심에 대한 애착이 크다 못해 시샘으로 서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갈등 가운데서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여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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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소설과 동화를 쓰는 작가이다. 수년 동안 여러 지면에 ‘침묵의 소리’와 ‘풍경 너머의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연재했다. 지난 10여 년간 TV·라디오 방송과 학교, 기타 공공기관 및 기업체 등에서 1000회 이상 강연을 했으며, 풀무야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작품집으로는 『연탄길(전3권)』, 『행복한 고물상』, 『위로』, 『곰보빵』, 『눈물은 힘이 세다』, 『송이의 노란 우산』, 『낙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아버지의 자전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등 20종이 있다. 400만 이상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은 일본과 중국, 대만에 수출되었고 『곰보빵』은 일본에, 『송이의 노란 우산』과 『낙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는 중국에 수출되었다. 『연탄길』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소극장창작뮤지컬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9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의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1편의 글이 영어로 번역돼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KBS 1TV [아침마당 목요특강],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총 3회), KBS 2TV 특강, JTBC 특강, MBC TV 특강 등 여러 방송에서 강연했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했으며,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