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만남의 재구성 - 수다쟁이 정이현의 천재적 작별 방법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다. 정이현의 말을 약간 바꾸자면, 어떤 만남은 헤어지고 난 후에 더 애틋하게 아로새겨진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200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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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가 알립니다
이 글은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작별의 밤’에 참석한 사유리와 히로키 님(blog.yes24.com/jslyd012)이 쓴 글입니다.
며칠 전, 그리고 작년, 수다를 사랑한 소녀가 만났다. 누구를? 나를, 그리고 그 수다를 사랑한 사람들을. 홍대 앞. 사람들은 북적북적, 차들은 꽉꽉. 그 홍대 앞은, 여느 때보다 더욱 들떠 있었다. 핑계는 아마 ‘연말’이었으리라. 궁금했다. 저들은 무엇과 ‘작별’하기 위해, 저리도 걷고 달리고 있을까. 거리는 웃음 짓고 있었다. 좋은가 보다. 어떤 만남들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그 만남은 역시 작별을 전제하고 있지 않았을까. 태어남이, 스러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부여받듯, 만남 역시, 작별과 자웅동체.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연말인걸. 휘유~
사실, 이건 어쩔 수 없이, 듬성듬성, 띄엄띄엄, 엄벙덤벙, 핀둥핀둥한 기록이다. 나는 단지 ‘작별’이라는 단어에 꽂힌 게다. 정이현 작가는 뒷전이었다고 실토해야겠다. 말하자면, 정이현 작가가 이토야마 작가(『바다에서 기다리다』)를 만나기 전과 먼지만큼 엇비슷한 상황? 그래서 인용하자면, “그전에도 대형서점 서가에 꽂힌 당신의 책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손을 뻗을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은 국내외 좋은 작가의 책들이 출판되고 있지만, 저는 그것들을 일일이 찾아 읽을 만큼의 열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요. 고백건대 정이현은 여성의 미니멀한 일상과 감정을 다룬, 내가 좋아하고 감탄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아류일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물보다는 모임 테마가 나를 우선 이끌었다. ‘가장 소박하고 아름다운 2007년 작별의 밤.’ 시끌벅적, 거창한 명분의 모임이 아니라는 점이, 쪼아~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건네고픈 ‘선물’이었달까. 2007년이라는 시간을 잘 견디고 버틴 나에게, 어떤 ‘작별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작은 파티에 보내고 싶었다. 시간의 나이테가 품은 수액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2007년에 작별을 고하는 내게 보내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괜히 용감했던 것이다. 정이현 작가의 책 한 권 읽지 않은 주제에, 이벤트에 응모하는 무모함이라니. 짧은 에세이는 종종 접했다지만. 나는 용케 그 ‘밤’에 초대받았다. 아, 아름다운 밤이에요~~~
그런데 그 밤이 오기 전 오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작별의식에는 눈이 어울리건만, 이런 젠장. 그날 여기저기 엉켜 다니고, 동선 짜느라 골머리를 앓던 나로선, 낭패였다.. 내 생애 정이현 작가의 첫 책 『작별』도 밤 어스름이 깔리기 전, 부랴부랴 손에 넣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손에 든 순간, 부제가 끌렸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오호라. 나를 위한 것이었더냐. 괜히 싱글벙글. 나는 문득 그 비가 외롭지 않았다. 혼자 씨부렁거렸다. ‘너도 날 위해 흘러내리는 게지?’
솔직히 이 기록을 긁적이는 나는 약간은 무안하다. 보는 당신도 민망할지 모르겠다.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좋다면 작별을 전제로 한 이 ‘수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시라. 그리고 내 ‘곤궁함’과 ‘찌질함’을 우선 토로한 이유는, 알겠지? 이후에 닥칠 당신의 따가운 눈총을 순화시키기 위한 자기방어의 기제.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다. 정이현의 말을 약간 바꾸자면, 어떤 만남은 헤어지고 난 후에 더 애틋하게 아로새겨진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참고로, 정이현은 ‘YES24’를 통해 이미 독자들과 만나 수다를 떤 바 있다.
‘오늘의 거짓말’은 계속된다
‘작별의 밤’에 대한 기대로 약속 장소를 찾았다. 멍청하게도 가풰 바로 앞에서, 푸우처럼 헤매다가 문을 열었다. 가게는 조촐하고 소박했다. 흠, 이 정도면 작별의식을 치르기엔 무난하겠다, 생각했다. 정이현 작가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을 엮어 준 출판사 ‘마음산책’ 관계자들이 반겨줬고, 함께 작별의식을 치를 몇몇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배가 아우성을 쳤고, 샌드위치에 우선 정신을 팔았다. 그리고 듬성듬성, 『작별』의 어떤 이야기를 흡수하고 있던 찰나,
7시 25분, 정이현 작가가 등장했다. 늦.었.다. 무려 25분. 세상에, 세상에, 작가가 늦다니, 감히 독자를 기다리게 하다니, 하고 우리는 호들갑에 육갑을 떨었다, 고 하면 물론, 오늘의 거짓말. ^^; 나는 그가 늦게 와서 되레 좋았다. 샌드위치 먹을 시간을 더 벌었다는 1차원적인 생각. 칵테일 와인도 달콤했다.
한 해의 마지막 금요일, 지독한 교통 체증이 발목을 잡았다는 정이현 작가의 변명. 뭐,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 했다. 정작 그도 속으로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인가.
정이현 작가의 건배 제의와 함께 날아온 코멘트. “연말이라 약속도 많고, 한 해를 정리하는 날인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와의 만남이 가끔 있는데, 이렇게 단출하고 작은 모임은 처음이에요. 눈을 보고 얘기할 수 있어서 오늘 이 자리가 의미 있게 기억될 것 같아요.” 그럼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정이현 작가는 이틀 전, 기절했다고 했다. 한겨레 ESC의 필진이 함께하는 송년회에서 위스키, 와인 등을 섞어 마시고선. 그랬던 그도 칵테일 와인은 홀짝홀짝 잘 마셨다. 이런 이런, 거짓말쟁이. 알코올 앞에선 누구나 다 거짓말쟁이가 된다. 귀여운 오늘의 거짓말!
이런 그를 향해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처음 (들어오는 것을) 봤을 때, 앳되고 해사했다. 여동생 보는 기분이었다.”부터 “아름다우시고….” “사랑스럽다. 잠 못 들 것 같다.” 등등 애정이 넘실댔다. 이런, 시작부터 구애 모드라니.
센 질문도 들어온다. “혹시 독신주의자세요?”라는 물음. 정이현 작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주의’라는 말은 신념을 지키고 산다는 말인데, 난 너무 약해요. 욕망도 많고 조변석개예요. 복잡하게 생각도 많고 우유부단하거든요.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못 하는 게 많아요.” 작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못했다면, 결혼까지 생각해봤으나, 결국 미끄러진 경험도 있다는 뜻이렷다. 삶은 역시나 거짓말투성이. 오늘의 거짓말은 그렇게 영원하다. 오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만드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그렇다면 결혼에 대한 정이현 작가의 생각은? “‘(결혼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하는 말은 여기저기 붙일 수 있어서 위험한 것 같아요. 이 사회가 결혼에 대해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결혼해도 분명 순간순간 후회하겠지만, 후회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빙고~ 에쿠니 가오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결혼은 ‘struggle’이다. 만신창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상처도 마르니, 일일이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 결혼한(또한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결혼은 낭만으로 덮어씌울 것도, 무덤으로 덮을 것도 아닌 그 무엇.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단 말, 역시나 나로서도 절.대.공.감. 잘 안되면, 무릎팍도사라도 부를까 했지만, 뭐 스스로 고민타파 다 했던걸. 그는 ‘스스로 어린이’?
앞선 질문이 자연인 정이현을 향한 것이었다면, 소설가 정이현에게 소설은 무엇일까. 소설은 낭만? 천만에. “소설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통속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통속은 속(俗)과 통(通)하는 것이잖아요. 소설은 구질구질하고 속된 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건너가는 것이 아닐까 해요.” 이 말은 앞선 독자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문학은 진실과 거짓의 작은 틈새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정이현 소설 속에는 자신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소설 입문 초기부터 지인과 자신의 얘기는 않겠다고 언급했고, 큰 원칙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단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여야 해요. 뜯어먹을 것도 없지만, 내 이야기를 쓰면 이내 바닥날 것 같았고, (지인의 얘기를 써서) 주변에 상처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죠.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의 변화는 담을 것 같아요. (소설 속에 나나 지인들이) 조금씩 묻어날 수 있고, (지인이나 자신의 얘기를 하는 쪽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요.”
흠, 정이현의 소설적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수다, 인터넷뉴스, 신문 등 곳곳에서 소설의 소재를 발굴한다는 그에게, ‘부음란’도 옹달샘이다. 아무도 와서 먹지 않을 법한 깊은 산속 옹달샘. “엉뚱한 걸 좋아해서 신문 부음란을 보고 상상을 해요. 한 집안의 가계도를 들여다보기도 해요. 가령, 큰 아들이 의사, 작은 아들이 무직이면, 그 집안을 혼자 상상해요.” 소설 집필을 위해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나, 특정 직업은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보강을 한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그런 면에서 약간은 부끄러운 작품이란다. 시대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공부를 더 했으면, 소설이 좀 더 풍요로워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이현 작가에게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복잡하고 의미 있는 작품이다. ‘욕망의 충돌’을 보여주고 싶어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써봤던 작품이, 등단작, 표제작이 될 줄이야. 세상엔 그런 병적인 유머센스가 뜬금없이 발현하고, 켜켜이 쌓이는 법이다. “20대 초반의 ‘성’ ‘순결’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이 당선작이 돼서 당황했어요. 다른 작품과 함께 공모를 했는데,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에, ‘딴 걸 (당선작으로) 하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어머니도 읽어보시곤 깜짝 놀라셨어요.(웃음) 어쨌든, 호오도 확연히 갈리고,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소설의 낭만도 어쩌면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을 아닐까. 정이현 작가의 소설창작론의 핵심은 개발이 가능한 ‘상상력’이 아니다. ‘관찰력과 관심.’ 이것은 대상에 대한 욕망이 똬리를 틀어야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문학적 상상력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콤플렉스도 많았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단점이면 어때, 그것을 다른 부분으로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은 ‘관찰 상상력 엉덩이의 힘’ 같아요. 특히, 엉덩이의 힘은 앞선 두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고요.(웃음)” 그래. 엉덩이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도 ‘욕망’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이 글을 통해 소통하겠다는 욕망이 아닐까. “욕망이 있는 사람이 좋”다는 말에서 그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흘긋 엿본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누구나 낭만을 꿈꾼다. 그러나 사회가 마냥 그 사랑과 낭만을 온전하게 받아주진 않을 터. 그럼에도 우리는 욕망하고, 욕망해야 한다. 정이현 작가의 말마따나 “다시 이 무감無感한 생을 이어가”기 위해. 그저 그것뿐이다.
‘타인의 고독’에 침투하는 방법
정이현 작가 또한 때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단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한 독자가 마침 물었다. 글을 쓸 때 두렵거나, 쓰기 싫을 때 어떻게 하느냐고. 자연인과 글을 쓰는 자신을 분리하고 싶은 때가 있단다. 그땐, 엉덩이의 힘도 쓸모없다! 다른 욕망이 추동하는데, 따라줘야지. 그래서 그는 일단 그 모든 것을 접고 도망간다고 했다. 약속을 잡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라지만, 그것으로 채워지고 새로운 활력이 돋는단다. 고독은 그렇다. 혼자일 때의 고독은 때론 이렇게 선물을 준다. 그러나 둘일 때, 셋일 때, 군중 속에서의 고독은 종종 끔찍하다. 내 고독이, 타인의 고독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정이현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부탁’ 때문이리라.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를 키운 것의 팔 할은 부탁이었다.” 남이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소설과 산문은 편집자 때문에 탄생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사람. 그의 고독을 깬 것은 편집자들이다. 타인의 고독을 읽은 눈 밝은 편집자들. 그 덕에 우리는 정이현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고 소통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는 부탁이 없었다면 억지로 무기력을 타파할 생각은 없었으리라.
정이현 작가는 타인의 고독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것도 서른이 넘긴 여성의 고독을. 감정이입이 가능했을 법한 어떤 고독. 그날, 작별의 밤 이전, 한 행사.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2005)를 ‘다시보기’하던 자리. 그는 그 자리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사랑니>는 그에게, 각별하다. 그 자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두세 편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떠올릴 작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 영화에서 30대의 여성 조인영(김정은)에게서 무엇을 느꼈는지. “제겐 ‘치유의 영화’였어요. ‘인생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었어요. 당시 모든 것에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고, ‘더 이상 뭘 하지, 이 나이에 뭘 다시 하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어요.”
조인영은 그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라고 했다. 대개 30대 여성의 캐릭터는 전형성에 갇혀 있게 마련인데, 조인영은, 연락은 끊겼지만 어딘가에서 생생히 살아가는 친구인 것 같은 실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상의 결을 세심하게 드러내면서, 열일곱 소년과도 사랑을 과감히 시도하는 용기 있는 캐릭터.
그래서였을까. 서른 즈음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달콤한 나의 도시』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주인공이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혹시 그는 조인영이 가진 고독에 좀 더 내밀하게 침투할 수 있는 DNA를 가졌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고독에 침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귀한 재능이다.
90년대에 대한 예의, ‘삼풍백화점’
그런 정이현 작가에게도 한심한, 암울한 20대가 있었다. 그 시기는 또한 1990년대였다. 할말이 없으면서도, 할말이 많은 그 20대 혹은 90년대. 졸업반 시절, 그는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단다. 유령회사에 취직도 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난 왜 잘하는 게 없을까’와 같은 생각이 가득하던 그때. 그는 스물아홉에 습작을 시작했고,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했다. “인생을 길게 길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것을 잊고 사는 일이 많아요.” 그렇다. 아들딸 인생만 긴 것 아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네 인생은 기이일~다.
훌쩍, 그 시절을 관통한 그가 90년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단다. 그 욕망이 낳은 작품이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것이 1995년 6월 29일이에요. 1995년을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 청춘은 그대로 있는데, 나는 아닌 것 같았던… 90년대라는 시대를 지내온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90년대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요. 10년 이상이 지난 후 좀 더 덤덤해지고 거리도 생겼지만, 울 수 없는 슬픔 같은 것도 있어요.”
그는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했다. “슬픈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돌아서 벽을 보고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도 울었다고 했다. 앞선 독자와의 대화에서 그는, 마감을 며칠 앞두고 3일 만에 「삼풍백화점」을 쓰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인물에 푹 빠져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의 거리 조절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의 청춘은 90년대의 상황과 궤를 같이했다. “삼풍백화점과 함께 폭삭 주저앉았고, IMF와 함께 펑 터져버린.” 너무도 일상적이던 공간이 다른 사회적 이름(사치와 향락의 강남 백화점, 한국 부실건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으로 명명되는 순간, 그의 청춘은 휘청거렸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그 시절을 관통했다. 미련도 없는 척, 나직하게 ‘안녕’.
한겨울밤의 꿈, ‘달콤한 나의 도시’
아직 읽진 않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 은수는 서른하나라고 했다. 나는 ‘서른 전후의 (싱글)여자’를 둘러싼, 혹은 떠도는 어떤 담론들이 간혹 거북살스럽다. 그 대부분은 미디어 혹은 결혼정보업체 등이 만든 상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스물아홉이라는 한 여성이 건넨 이런 말.
“연인이 없이는 무척 외로울 나이. 내 또래의 여자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전제로 한 무거운 연애로 친구 따위에겐 나눠줄 시간이 거의 없고, 아주 가끔 내주는 시간에도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마련한 시간인가를 설명해가며, 역겨운 우정을 들먹이곤 하지. 그럴 때마다 난 내가 구걸하는 동냥아치가 된 기분을 느껴야 해.”
그런 ‘서른 전후의 (싱글)여자’에 비견할 만한 남자 나이는 아마 ‘서른다섯’일 것이다. 왜 차이가 나느냐고? 그건 남자들이 늘 여성에 비해 늦되기 때문이지. 그러면서 일찍 죽고. 주변 둘러보면 깜깜하다. 친구들은 거의 결혼했고(시즌1), 돌잔치에 수시로 불려가 자리를 채우고(시즌2), 알코올과 니코틴 정도가 배신 않는 애인? 배는 불러오고, 월급은 마약이다. 과감한 포기가 진짜 더 큰 행운을 준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노예의 편안이 솔깃한 나이. 나도 이미 더 이상 달콤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나의 도시도 점점 팍팍해진다. 성장과 성공이데올로기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그리고 그 환상을 심어대는 어떤 이들.
정이현 작가의 도시는 어떨까. 그런데 그의 도시는 해저도시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점을 본 그에게 점쟁이는 말했단다. “당신은 배”라고. 그것도 한겨울에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허허. 섬이 아니라 다행이다. 섬은 옴짝달싹 못하지만, 배는 옮겨 다닐 수 있으니까.
그의 도시에서 ‘남자’를 묻자, 그의 대답은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에요. 알고 있는가 싶은데 또 모르겠고. 한편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보다는 개개인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난 남자친구가 더 많은데, 남녀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어요. 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는 “한국 여자인 나는 언제나 한국 남자가 궁금하다”(『작별』에서 「‘남자’, 『남자의 탄생』(전인권 지음, 푸른숲 펴냄)을 읽고」)는 여자다. 언젠가 남자를 탐구한다고 현미경을 들이댈지 모르니, 준비하고 계시라.
그리고 정이현의 도시에선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은 믿지 않는 게 좋겠다. 대신 그는 “간절히 원하면 후회는 않을 것 같”단다. 그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로는 “후회하지 말자”가 꼽혔으며, “사랑은 순간!”이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사랑을 위해, 간절하게 구하고 간절하게 두들겨도 보고, 좋으면 말도 해보고. 예전엔 생각도 못했는데, 이젠 뜨겁게 즐거울 수 있으니까 해본단다. 그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자기 의심 많고, 겁 많던 이십 대의 소녀는 90년대를 관통하면서 훌쩍 삼십 대의 여인으로 변모했나 보다.
들려주고 싶은 노래, ‘풍선’
정이현 작가는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좋아했다. 이두헌, 임형순이 한창 활동하던 그 시절의 다섯손가락. 동방신기의 ‘풍선’은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없어 싫단다. 나도 완전 동감. 그의 눈이 정말 반짝거렸다. 좋아하는 것을 수다로 뱉을 때의 그 찬란함, 바로 그것이었다. 오락실도 정말 좋아했었다며, 몇몇과 잠깐 타임머신을 탄 그의 눈은 초롱초롱 그 자체(나는 오리지널곡 ‘풍선’ 특유의 아우라를 전혀 ‘리메이크’하지 못한 동방신기의 ‘풍선’을 완전 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직하게 고하는 ‘작별’
우리는 그렇게 시간 옆을 흘러갔다. 만남으로써 작별은 피할 수 없다. 정이현 작가가 2007년에게 건넨 작별사. “별일 없었던 한 해였지만, 작은 일이 모여서 변화가 있었어요. 한 해 동안 모두 고생하셨어요. 다 잘됐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만, 넘어지는 순간, 후회하는 순간, 좌절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리고 넘어지면 일어나는 순간이 있고 절망이 있으면 희망이 생기는 순간도 있어요. 즐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겁내지 말고. 이건 나한테 건네는 주문이기도 해요. 자기만의 발걸음으로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물었다. 『작별』의 부제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에서 ‘너’는 ‘나’로 바꿔도 무방하냐고. 정이현 작가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또한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같은 것이다. 너와 나는 그렇게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94년, PC통신 시절 그의 ID는 ‘myself’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구인지 확인받고,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었던 그는 지금 ‘소설쓰기’라는 ID를 쓰고 있지 않을까. 물론 그때처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면서 그는 ‘yourself’도 알고 싶어 한다. ‘남의 인생에 대한 오버’는 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예술이라고. 그래서 언젠가 생과 영영 작별할 때, ‘나’라는 작품에 감동받고 싶은 소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누군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했으리라. 2007년, 작별의 밤, 정이현 작가, 그리고 자신에게. 가게 문을 나왔고, 여전히 홍대 앞은 흥청거렸다. 버스를 탄 나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안녕….’ 스탕달의 비석엔 이런 작별인사가 있단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당신은 어떤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가.
그런데, 묻고 싶었는데 그 자리에서 잊고 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작별』에는, “네가 작가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편지를 보내온 옛 친구에게 아직 답장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책을 통해 그는 답을 건넨 셈이지만, 그런 공개적인 답변 말고, “친구에게 답장 보내셨쎄요?”(유재석 씨 톤으로)
아울러, 내가 확실히 알아낸 한 가지가 있다. 정이현은 수다쟁이. 또 하나가 있다면, 2007년 12월 28일은 한 남자가 수다에 빠진 날. 이것 하나는 권한다. 김정은 씨를 주인공으로 드라마로 재탄생할 예정이라는 『달콤한 나의 도시』에 수다쟁이 캐릭터가 있다면, 정이현 작가를 캐스팅하라. 아니면 카메오라도. 옆에서 본 그슴 수다를 떨 때 가장 빛났다. 뭐, 남들 다 할 때 하는 건 빛이 나지 않는지라 입 다물고 있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정이현은 (수다 떨 때) 이뻤다.”(‘예뻤다’가 아니다!) 나 역시 뒤늦게 구애 모드~ 진짜 마지막으로 “피부가 좋으세요. 무척 고운 것 같아요. 어떻게 관리하세요?”라는 한 남성 독자의 질문에 그가 답변한 비결. “화장을 지우고 자요.” 기억하시라!
이 글은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작별의 밤’에 참석한 사유리와 히로키 님(blog.yes24.com/jslyd012)이 쓴 글입니다.
며칠 전, 그리고 작년, 수다를 사랑한 소녀가 만났다. 누구를? 나를, 그리고 그 수다를 사랑한 사람들을. 홍대 앞. 사람들은 북적북적, 차들은 꽉꽉. 그 홍대 앞은, 여느 때보다 더욱 들떠 있었다. 핑계는 아마 ‘연말’이었으리라. 궁금했다. 저들은 무엇과 ‘작별’하기 위해, 저리도 걷고 달리고 있을까. 거리는 웃음 짓고 있었다. 좋은가 보다. 어떤 만남들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그 만남은 역시 작별을 전제하고 있지 않았을까. 태어남이, 스러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부여받듯, 만남 역시, 작별과 자웅동체.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연말인걸. 휘유~
사실, 이건 어쩔 수 없이, 듬성듬성, 띄엄띄엄, 엄벙덤벙, 핀둥핀둥한 기록이다. 나는 단지 ‘작별’이라는 단어에 꽂힌 게다. 정이현 작가는 뒷전이었다고 실토해야겠다. 말하자면, 정이현 작가가 이토야마 작가(『바다에서 기다리다』)를 만나기 전과 먼지만큼 엇비슷한 상황? 그래서 인용하자면, “그전에도 대형서점 서가에 꽂힌 당신의 책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손을 뻗을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은 국내외 좋은 작가의 책들이 출판되고 있지만, 저는 그것들을 일일이 찾아 읽을 만큼의 열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요. 고백건대 정이현은 여성의 미니멀한 일상과 감정을 다룬, 내가 좋아하고 감탄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아류일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물보다는 모임 테마가 나를 우선 이끌었다. ‘가장 소박하고 아름다운 2007년 작별의 밤.’ 시끌벅적, 거창한 명분의 모임이 아니라는 점이, 쪼아~
그런데 그 밤이 오기 전 오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작별의식에는 눈이 어울리건만, 이런 젠장. 그날 여기저기 엉켜 다니고, 동선 짜느라 골머리를 앓던 나로선, 낭패였다.. 내 생애 정이현 작가의 첫 책 『작별』도 밤 어스름이 깔리기 전, 부랴부랴 손에 넣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손에 든 순간, 부제가 끌렸다.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 오호라. 나를 위한 것이었더냐. 괜히 싱글벙글. 나는 문득 그 비가 외롭지 않았다. 혼자 씨부렁거렸다. ‘너도 날 위해 흘러내리는 게지?’
솔직히 이 기록을 긁적이는 나는 약간은 무안하다. 보는 당신도 민망할지 모르겠다.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좋다면 작별을 전제로 한 이 ‘수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시라. 그리고 내 ‘곤궁함’과 ‘찌질함’을 우선 토로한 이유는, 알겠지? 이후에 닥칠 당신의 따가운 눈총을 순화시키기 위한 자기방어의 기제.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다. 정이현의 말을 약간 바꾸자면, 어떤 만남은 헤어지고 난 후에 더 애틋하게 아로새겨진다. 작별하고 나서야 한 사람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참고로, 정이현은 ‘YES24’를 통해 이미 독자들과 만나 수다를 떤 바 있다.
‘오늘의 거짓말’은 계속된다
‘작별의 밤’에 대한 기대로 약속 장소를 찾았다. 멍청하게도 가풰 바로 앞에서, 푸우처럼 헤매다가 문을 열었다. 가게는 조촐하고 소박했다. 흠, 이 정도면 작별의식을 치르기엔 무난하겠다, 생각했다. 정이현 작가의 첫 산문집 『작별』과 『풍선』을 엮어 준 출판사 ‘마음산책’ 관계자들이 반겨줬고, 함께 작별의식을 치를 몇몇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배가 아우성을 쳤고, 샌드위치에 우선 정신을 팔았다. 그리고 듬성듬성, 『작별』의 어떤 이야기를 흡수하고 있던 찰나,
7시 25분, 정이현 작가가 등장했다. 늦.었.다. 무려 25분. 세상에, 세상에, 작가가 늦다니, 감히 독자를 기다리게 하다니, 하고 우리는 호들갑에 육갑을 떨었다, 고 하면 물론, 오늘의 거짓말. ^^; 나는 그가 늦게 와서 되레 좋았다. 샌드위치 먹을 시간을 더 벌었다는 1차원적인 생각. 칵테일 와인도 달콤했다.
한 해의 마지막 금요일, 지독한 교통 체증이 발목을 잡았다는 정이현 작가의 변명. 뭐,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 했다. 정작 그도 속으로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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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건배 제의와 함께 날아온 코멘트. “연말이라 약속도 많고, 한 해를 정리하는 날인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와의 만남이 가끔 있는데, 이렇게 단출하고 작은 모임은 처음이에요. 눈을 보고 얘기할 수 있어서 오늘 이 자리가 의미 있게 기억될 것 같아요.” 그럼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정이현 작가는 이틀 전, 기절했다고 했다. 한겨레 ESC의 필진이 함께하는 송년회에서 위스키, 와인 등을 섞어 마시고선. 그랬던 그도 칵테일 와인은 홀짝홀짝 잘 마셨다. 이런 이런, 거짓말쟁이. 알코올 앞에선 누구나 다 거짓말쟁이가 된다. 귀여운 오늘의 거짓말!
이런 그를 향해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처음 (들어오는 것을) 봤을 때, 앳되고 해사했다. 여동생 보는 기분이었다.”부터 “아름다우시고….” “사랑스럽다. 잠 못 들 것 같다.” 등등 애정이 넘실댔다. 이런, 시작부터 구애 모드라니.
센 질문도 들어온다. “혹시 독신주의자세요?”라는 물음. 정이현 작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주의’라는 말은 신념을 지키고 산다는 말인데, 난 너무 약해요. 욕망도 많고 조변석개예요. 복잡하게 생각도 많고 우유부단하거든요.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못 하는 게 많아요.” 작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못했다면, 결혼까지 생각해봤으나, 결국 미끄러진 경험도 있다는 뜻이렷다. 삶은 역시나 거짓말투성이. 오늘의 거짓말은 그렇게 영원하다. 오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만드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그렇다면 결혼에 대한 정이현 작가의 생각은? “‘(결혼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하는 말은 여기저기 붙일 수 있어서 위험한 것 같아요. 이 사회가 결혼에 대해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결혼해도 분명 순간순간 후회하겠지만, 후회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빙고~ 에쿠니 가오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결혼은 ‘struggle’이다. 만신창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상처도 마르니, 일일이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 결혼한(또한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결혼은 낭만으로 덮어씌울 것도, 무덤으로 덮을 것도 아닌 그 무엇.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단 말, 역시나 나로서도 절.대.공.감. 잘 안되면, 무릎팍도사라도 부를까 했지만, 뭐 스스로 고민타파 다 했던걸. 그는 ‘스스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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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질문이 자연인 정이현을 향한 것이었다면, 소설가 정이현에게 소설은 무엇일까. 소설은 낭만? 천만에. “소설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통속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통속은 속(俗)과 통(通)하는 것이잖아요. 소설은 구질구질하고 속된 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건너가는 것이 아닐까 해요.” 이 말은 앞선 독자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문학은 진실과 거짓의 작은 틈새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정이현 소설 속에는 자신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소설 입문 초기부터 지인과 자신의 얘기는 않겠다고 언급했고, 큰 원칙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단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여야 해요. 뜯어먹을 것도 없지만, 내 이야기를 쓰면 이내 바닥날 것 같았고, (지인의 얘기를 써서) 주변에 상처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죠.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의 변화는 담을 것 같아요. (소설 속에 나나 지인들이) 조금씩 묻어날 수 있고, (지인이나 자신의 얘기를 하는 쪽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요.”
흠, 정이현의 소설적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수다, 인터넷뉴스, 신문 등 곳곳에서 소설의 소재를 발굴한다는 그에게, ‘부음란’도 옹달샘이다. 아무도 와서 먹지 않을 법한 깊은 산속 옹달샘. “엉뚱한 걸 좋아해서 신문 부음란을 보고 상상을 해요. 한 집안의 가계도를 들여다보기도 해요. 가령, 큰 아들이 의사, 작은 아들이 무직이면, 그 집안을 혼자 상상해요.” 소설 집필을 위해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나, 특정 직업은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보강을 한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그런 면에서 약간은 부끄러운 작품이란다. 시대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공부를 더 했으면, 소설이 좀 더 풍요로워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설의 낭만도 어쩌면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을 아닐까. 정이현 작가의 소설창작론의 핵심은 개발이 가능한 ‘상상력’이 아니다. ‘관찰력과 관심.’ 이것은 대상에 대한 욕망이 똬리를 틀어야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문학적 상상력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콤플렉스도 많았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단점이면 어때, 그것을 다른 부분으로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은 ‘관찰 상상력 엉덩이의 힘’ 같아요. 특히, 엉덩이의 힘은 앞선 두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고요.(웃음)” 그래. 엉덩이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도 ‘욕망’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이 글을 통해 소통하겠다는 욕망이 아닐까. “욕망이 있는 사람이 좋”다는 말에서 그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흘긋 엿본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누구나 낭만을 꿈꾼다. 그러나 사회가 마냥 그 사랑과 낭만을 온전하게 받아주진 않을 터. 그럼에도 우리는 욕망하고, 욕망해야 한다. 정이현 작가의 말마따나 “다시 이 무감無感한 생을 이어가”기 위해. 그저 그것뿐이다.
‘타인의 고독’에 침투하는 방법
정이현 작가 또한 때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단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한 독자가 마침 물었다. 글을 쓸 때 두렵거나, 쓰기 싫을 때 어떻게 하느냐고. 자연인과 글을 쓰는 자신을 분리하고 싶은 때가 있단다. 그땐, 엉덩이의 힘도 쓸모없다! 다른 욕망이 추동하는데, 따라줘야지. 그래서 그는 일단 그 모든 것을 접고 도망간다고 했다. 약속을 잡거나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라지만, 그것으로 채워지고 새로운 활력이 돋는단다. 고독은 그렇다. 혼자일 때의 고독은 때론 이렇게 선물을 준다. 그러나 둘일 때, 셋일 때, 군중 속에서의 고독은 종종 끔찍하다. 내 고독이, 타인의 고독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정이현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부탁’ 때문이리라.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를 키운 것의 팔 할은 부탁이었다.” 남이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소설과 산문은 편집자 때문에 탄생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사람. 그의 고독을 깬 것은 편집자들이다. 타인의 고독을 읽은 눈 밝은 편집자들. 그 덕에 우리는 정이현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정받고 소통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는 부탁이 없었다면 억지로 무기력을 타파할 생각은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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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는 타인의 고독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것도 서른이 넘긴 여성의 고독을. 감정이입이 가능했을 법한 어떤 고독. 그날, 작별의 밤 이전, 한 행사.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2005)를 ‘다시보기’하던 자리. 그는 그 자리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사랑니>는 그에게, 각별하다. 그 자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두세 편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떠올릴 작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 영화에서 30대의 여성 조인영(김정은)에게서 무엇을 느꼈는지. “제겐 ‘치유의 영화’였어요. ‘인생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었어요. 당시 모든 것에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고, ‘더 이상 뭘 하지, 이 나이에 뭘 다시 하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어요.”
조인영은 그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라고 했다. 대개 30대 여성의 캐릭터는 전형성에 갇혀 있게 마련인데, 조인영은, 연락은 끊겼지만 어딘가에서 생생히 살아가는 친구인 것 같은 실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상의 결을 세심하게 드러내면서, 열일곱 소년과도 사랑을 과감히 시도하는 용기 있는 캐릭터.
그래서였을까. 서른 즈음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달콤한 나의 도시』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주인공이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혹시 그는 조인영이 가진 고독에 좀 더 내밀하게 침투할 수 있는 DNA를 가졌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고독에 침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귀한 재능이다.
90년대에 대한 예의, ‘삼풍백화점’
그런 정이현 작가에게도 한심한, 암울한 20대가 있었다. 그 시기는 또한 1990년대였다. 할말이 없으면서도, 할말이 많은 그 20대 혹은 90년대. 졸업반 시절, 그는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단다. 유령회사에 취직도 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난 왜 잘하는 게 없을까’와 같은 생각이 가득하던 그때. 그는 스물아홉에 습작을 시작했고,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했다. “인생을 길게 길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것을 잊고 사는 일이 많아요.” 그렇다. 아들딸 인생만 긴 것 아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네 인생은 기이일~다.
훌쩍, 그 시절을 관통한 그가 90년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단다. 그 욕망이 낳은 작품이 「삼풍백화점」이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것이 1995년 6월 29일이에요. 1995년을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 청춘은 그대로 있는데, 나는 아닌 것 같았던… 90년대라는 시대를 지내온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90년대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요. 10년 이상이 지난 후 좀 더 덤덤해지고 거리도 생겼지만, 울 수 없는 슬픔 같은 것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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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했다. “슬픈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돌아서 벽을 보고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도 울었다고 했다. 앞선 독자와의 대화에서 그는, 마감을 며칠 앞두고 3일 만에 「삼풍백화점」을 쓰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인물에 푹 빠져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의 거리 조절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의 청춘은 90년대의 상황과 궤를 같이했다. “삼풍백화점과 함께 폭삭 주저앉았고, IMF와 함께 펑 터져버린.” 너무도 일상적이던 공간이 다른 사회적 이름(사치와 향락의 강남 백화점, 한국 부실건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으로 명명되는 순간, 그의 청춘은 휘청거렸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그 시절을 관통했다. 미련도 없는 척, 나직하게 ‘안녕’.
한겨울밤의 꿈, ‘달콤한 나의 도시’
아직 읽진 않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 은수는 서른하나라고 했다. 나는 ‘서른 전후의 (싱글)여자’를 둘러싼, 혹은 떠도는 어떤 담론들이 간혹 거북살스럽다. 그 대부분은 미디어 혹은 결혼정보업체 등이 만든 상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스물아홉이라는 한 여성이 건넨 이런 말.
그런 ‘서른 전후의 (싱글)여자’에 비견할 만한 남자 나이는 아마 ‘서른다섯’일 것이다. 왜 차이가 나느냐고? 그건 남자들이 늘 여성에 비해 늦되기 때문이지. 그러면서 일찍 죽고. 주변 둘러보면 깜깜하다. 친구들은 거의 결혼했고(시즌1), 돌잔치에 수시로 불려가 자리를 채우고(시즌2), 알코올과 니코틴 정도가 배신 않는 애인? 배는 불러오고, 월급은 마약이다. 과감한 포기가 진짜 더 큰 행운을 준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노예의 편안이 솔깃한 나이. 나도 이미 더 이상 달콤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나의 도시도 점점 팍팍해진다. 성장과 성공이데올로기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그리고 그 환상을 심어대는 어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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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도시는 어떨까. 그런데 그의 도시는 해저도시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점을 본 그에게 점쟁이는 말했단다. “당신은 배”라고. 그것도 한겨울에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허허. 섬이 아니라 다행이다. 섬은 옴짝달싹 못하지만, 배는 옮겨 다닐 수 있으니까.
그의 도시에서 ‘남자’를 묻자, 그의 대답은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에요. 알고 있는가 싶은데 또 모르겠고. 한편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보다는 개개인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난 남자친구가 더 많은데, 남녀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어요. 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는 “한국 여자인 나는 언제나 한국 남자가 궁금하다”(『작별』에서 「‘남자’, 『남자의 탄생』(전인권 지음, 푸른숲 펴냄)을 읽고」)는 여자다. 언젠가 남자를 탐구한다고 현미경을 들이댈지 모르니, 준비하고 계시라.
그리고 정이현의 도시에선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은 믿지 않는 게 좋겠다. 대신 그는 “간절히 원하면 후회는 않을 것 같”단다. 그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로는 “후회하지 말자”가 꼽혔으며, “사랑은 순간!”이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사랑을 위해, 간절하게 구하고 간절하게 두들겨도 보고, 좋으면 말도 해보고. 예전엔 생각도 못했는데, 이젠 뜨겁게 즐거울 수 있으니까 해본단다. 그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자기 의심 많고, 겁 많던 이십 대의 소녀는 90년대를 관통하면서 훌쩍 삼십 대의 여인으로 변모했나 보다.
들려주고 싶은 노래, ‘풍선’
정이현 작가는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좋아했다. 이두헌, 임형순이 한창 활동하던 그 시절의 다섯손가락. 동방신기의 ‘풍선’은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없어 싫단다. 나도 완전 동감. 그의 눈이 정말 반짝거렸다. 좋아하는 것을 수다로 뱉을 때의 그 찬란함, 바로 그것이었다. 오락실도 정말 좋아했었다며, 몇몇과 잠깐 타임머신을 탄 그의 눈은 초롱초롱 그 자체(나는 오리지널곡 ‘풍선’ 특유의 아우라를 전혀 ‘리메이크’하지 못한 동방신기의 ‘풍선’을 완전 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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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직하게 고하는 ‘작별’
우리는 그렇게 시간 옆을 흘러갔다. 만남으로써 작별은 피할 수 없다. 정이현 작가가 2007년에게 건넨 작별사. “별일 없었던 한 해였지만, 작은 일이 모여서 변화가 있었어요. 한 해 동안 모두 고생하셨어요. 다 잘됐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만, 넘어지는 순간, 후회하는 순간, 좌절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리고 넘어지면 일어나는 순간이 있고 절망이 있으면 희망이 생기는 순간도 있어요. 즐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겁내지 말고. 이건 나한테 건네는 주문이기도 해요. 자기만의 발걸음으로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물었다. 『작별』의 부제 ‘외로운 너를 위해 쓴다’에서 ‘너’는 ‘나’로 바꿔도 무방하냐고. 정이현 작가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또한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같은 것이다. 너와 나는 그렇게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94년, PC통신 시절 그의 ID는 ‘myself’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구인지 확인받고,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었던 그는 지금 ‘소설쓰기’라는 ID를 쓰고 있지 않을까. 물론 그때처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면서 그는 ‘yourself’도 알고 싶어 한다. ‘남의 인생에 대한 오버’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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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예술이라고. 그래서 언젠가 생과 영영 작별할 때, ‘나’라는 작품에 감동받고 싶은 소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누군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했으리라. 2007년, 작별의 밤, 정이현 작가, 그리고 자신에게. 가게 문을 나왔고, 여전히 홍대 앞은 흥청거렸다. 버스를 탄 나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안녕….’ 스탕달의 비석엔 이런 작별인사가 있단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당신은 어떤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가.
그런데, 묻고 싶었는데 그 자리에서 잊고 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작별』에는, “네가 작가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편지를 보내온 옛 친구에게 아직 답장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책을 통해 그는 답을 건넨 셈이지만, 그런 공개적인 답변 말고, “친구에게 답장 보내셨쎄요?”(유재석 씨 톤으로)
아울러, 내가 확실히 알아낸 한 가지가 있다. 정이현은 수다쟁이. 또 하나가 있다면, 2007년 12월 28일은 한 남자가 수다에 빠진 날. 이것 하나는 권한다. 김정은 씨를 주인공으로 드라마로 재탄생할 예정이라는 『달콤한 나의 도시』에 수다쟁이 캐릭터가 있다면, 정이현 작가를 캐스팅하라. 아니면 카메오라도. 옆에서 본 그슴 수다를 떨 때 가장 빛났다. 뭐, 남들 다 할 때 하는 건 빛이 나지 않는지라 입 다물고 있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정이현은 (수다 떨 때) 이뻤다.”(‘예뻤다’가 아니다!) 나 역시 뒤늦게 구애 모드~ 진짜 마지막으로 “피부가 좋으세요. 무척 고운 것 같아요. 어떻게 관리하세요?”라는 한 남성 독자의 질문에 그가 답변한 비결. “화장을 지우고 자요.” 기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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