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있다. 개와 원숭이처럼 사이가 아주 나쁜 관계를 의미하는데, 원숭이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이들이 얼마나 나쁜 사이인지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뜻을 알고 있어도 좀처럼 공감하기는 힘들다. 그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견묘지간(犬猫之間), 개와 고양이의 사이처럼 둘의 관계가 아주 나쁠 경우를 일컫는 말. 이제는 좀 느낌이 오지 않는가?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나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서로 으르렁대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시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는 의미의 영어 관용구 ‘It rains cats and dogs.’는 고양이와 개가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하니, 영미권에서도 개와 고양이는 꽤 사이가 나쁜 동물로 정평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궁금했던 그 이유가 옛이야기로 전한다. 한집에 살며 평소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개와 고양이가 어찌해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앙숙이 되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는 유래담이다.
가난한 노부부가 고양이와 개를 자식처럼 키우며 정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일을 하러 가던 중 아이들에게 잡혀 꼼짝없이 죽게 생긴 자라를 보았다.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자라를 사서 물에 놓아주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밭으로 일을 나가던 할아버지에게 한 초립동이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제가 실은 용왕의 아들인데 바깥세상이 궁금하여 자라로 변신해 구경나왔다가 어제와 같은 변을 당하였습니다. 마침 어르신께서 저를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목숨을 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어르신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사연을 들은 할아버지는 별거 아니라며 두 손을 내저었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하는 수없이 초립동이를 따라나섰다. 물가에 이르자 초립동이는 자라로 변하더니 할아버지를 등에 태우고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금세 둘은 용궁에 도착하였고, 용왕의 아들은 할아버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아버님이 소원을 말씀하라고 하실 겁니다. 그럼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연적 하나만 달라고 하십시오. 꼭 그러셔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연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용왕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연회가 끝날 무렵 용왕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선물을 주고 싶다며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다른 것은 다 싫고, 연적을 주십시오.”
용왕은 깜짝 놀라 연적은 안 되니 다른 것은 어떠냐고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완강하게 버텼다. 자식을 살려준 은인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용왕은 하는 수 없이 연적을 할아버지에게 주었다.
사실 그것은 보물 연적으로, 말만 하면 뭐든 쏟아내는 신기한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용궁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연적을 이용해서 쌀도 얻고 돈도 얻고 집까지 지어 남부러울 것 없이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부부는 그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물장수에게 보물을 도둑맞고 말았다. 이후 가세도 차츰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노부부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자식같이 귀애해주던 할아버지 내외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고양이와 개는 힘을 합쳐 도둑맞은 보물을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물고기 연적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그 모양이 다양하다. 그중 물고기 모양의 연적이다. 대구대 박물관 소장.
여기저기 방물장수의 흔적을 찾던 끝에 해가 저물자, 개와 고양이는 한 곳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마침 수백 마리의 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개는 냉큼 달려들어 그 쥐들의 우두머리를 붙잡아 협박을 했다.
“너희들이 이 녀석을 살리고 싶으면 우리에게 해줄 일이 있다.”
둘은 연적의 생김새며 빛깔, 크기 따위를 쥐들에게 상세히 알려주면서 연적을 찾아올 것을 호령했다. 수백 마리의 쥐들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잡혀 있는 마당인지라 어쩔 수 없이 흩어져 연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물장수네 집으로 들어간 쥐 몇 마리가 연적을 찾아가지고 왔다. 고양이와 개는 신이 나서 연적을 가지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렇듯 애써 찾은 보물을 갖고 돌아오던 길, 강물이 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헤엄을 칠 줄 아는 개가 고양이를 등에 태웠고, 고양이는 연적을 입에 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헤엄쳐 가던 개는 고양이가 연적을 잘 물고 있는지 걱정이 됐다.
“물고 있어?”
“…….”
“잘 물고 있냐고?”
“…….”
“너 혹시 빠뜨린 거 아니야? 물고 있는 거 맞아?”
“물고 있어!”
순간 ‘풍덩!’ 하고 연적이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개가 자꾸 물어대자, 답답했던 고양이가 그만 대답을 해버렸고, 그 순간 입에 꼭 물려 있던 연적이 강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힘들게 다시 손에 넣은 보물을 잃어버리자 개와 고양이는 서로를 탓하며 싸웠다. 그러다가 화가 난 개가 고양이를 놔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혼자 남은 고양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저쪽 물가에 숭어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배고프던 참에 잘됐다 싶었다.
얼마쯤 먹고 있으려니 숭어 뱃속에서 딱딱한 것이 잡혔다. 이상해서 꺼내놓고 보니 보물 연적이 아닌가. 숭어는 연적을 보고 먹이인 줄 알고 냉큼 삼켰다가 죽은 것이었다. 고양이는 연적을 물고 집으로 돌아왔고, 연적을 가지고 온 고양이를 노부부가 예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부부 내외는 다시 잘살게 되었고, 그것이 고양이 덕분이라고 생각하여 고양이를 더욱 귀여워했다. 하지만 개로서는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생고생해서 함께 찾은 연적인데 결과적으로 공은 고양이 혼자서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노부부가 고양이를 예뻐할수록 개와 고양이의 사이는 더욱더 나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노부부에게는 해피엔딩이지만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던 개와 고양이에게는 ‘새드엔딩’이다. 개와 고양이는 노부부의 보물을 함께 찾아 나설 만큼 의기투합이 잘 되었고 사이도 좋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온 개보다 나중에 보물 연적을 들고 돌아온 고양이를 노부부가 더 예뻐하게 되면서 이들은 둘도 없는 앙숙이 되었다.
사실 개와 고양이의 사이가 나쁜 이유는 과학적으로 별 근거가 없다고 한다. 다만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같은 뜻을 반대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개가 꼬리를 세워 살랑살랑 흔들면 ‘네가 좋아’란 호감의 표시지만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면 ‘싸워볼래’란 도전의 뜻이고, 개가 앞다리를 들면 ‘같이 놀자’지만 고양이에겐 ‘저리 비키지 않으면 맞는다’는 뜻이란다. 또 고양이가 만족의 표시로 ‘야옹’하는 것을 개는 으르렁거리는 경계의 소리로 알아듣는다.
이들의 식성도 문제가 된다. 고양이는 다른 포유류들과 달리 단맛이 나는 탄수화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혀에서 단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개가 친하게 지내자고 그 아무리 달콤한 음식을 줘도 고양이는 맛도 없는 음식을 주며 친한 척한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들이 앙숙의 원인이라면 둘은 정말 지독히도 엇갈린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밖에…….
개와 고양이의 악연은 다음 이야기에서도 계속된다. 사실 둘의 앙숙 관계는 사생결단의 대결을 펼치는 다음 이야기에서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옛날 자손이 귀한 어느 부잣집에 삼대독자가 있었다. 아이가 열두어 살쯤 되었을 때 지나가는 중이 잠시 집에 들렀다가 이 아이를 보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이 애에게 앞으로 큰일이 닥치겠구먼.”
우연히 중의 말을 들은 부자가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중이 말했다.
“이전에 혹 고양이를 키운 일이 있으셨는지요?”
“예전에 고양이를 한 십 년간 먹였는데, 하루는 밥상머리에서 자꾸 음식을 탐하기에 얄미워서 담뱃대로 툭, 하고 때린다는 것이, 운이 없게도 그 자리에서 픽, 쓰러져 죽고 말았지요. 하도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 죽은 고양이를 집 뒤 대밭에 던져버렸던 일이 있긴 있었는데…….”
“그 고양이가 다시 살아나서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신 아들을 잡아가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부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일 압록강 근처에 가면 백세 할머니가 강아지 세 마리를 데리고 나와 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소리 말고 강아지 한 마리에 송아지 한 마리씩 쳐주고 사십시오. 그런 뒤에 아주 잘 먹여서 사립문과 마당 가운데, 그리고 마루 밑에 각각 한 마리씩 두십시오. 그 개가 아니면 고양이를 잡을 수 없습니다.”
부자는 중이 일러준 대로 압록강 근처에 가서 백세 할머니에게 송아지 세 마리를 주고 강아지 세 마리를 사왔다. 부자는 중이 시킨 대로 강아지를 아주 잘 먹였다.
한 달이 지나자, 중이 다시 부잣집으로 내려왔다.
“오늘부터는 그 개에게 소 한 마리씩을 먹이셔야 합니다. 사흘 동안을 그렇게 해서, 힘을 바짝 올리셔야 합니다. 사흘 후에 제가 다시 내려오겠습니다.”
부자는 중이 시킨 대로 소를 잡아서 개에게 먹였다. 얼마나 먹였는지 며칠 사이 그 덩치가 정말 송아지만 해졌다.
사흘 후에 다시 중이 내려와서는 오늘 저녁에 그 고양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부자는 방 안에서 문구멍만 하나 뚫어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으니 저 건너 산에서 조그마한 불덩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불덩이가 사립문 가까이에 이르러서는 제법 상당한 크기로 변했다.
불덩이는 먼저 사립문에 있는 개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큰 개가 픽 쓰러졌다. 마당 한가운데 이르러 다시 두 번째 개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개 또한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드디어 부자가 있는 방 마루 앞까지 불덩이가 당도했다. 마루 밑에 있는 개가 불덩이에 달려들어 싸우기 시작하는데 방에 있는 부자의 식구들은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마지막 개도 힘이 다해서 막 쓰러지려는 순간, 사립문과 마당에 있던 개들이 일어나더니 함께 달려들기 시작했다. 개 세 마리와 불덩이 하나가 한데 얽혀 싸우는데 그 형세가 막상막하여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짐이 없었다. 결국 오랜 싸움 끝에 불덩이가 차차 수그러들면서 고양이 모양이 되더니 결국 나자빠졌다.
부자의 식구들은 혹시나 고양이가 다시 일어날까 무서워서 아침까지도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날이 밝아 밖으로 나오니 개 세 마리도 죽어 있고 고양이도 죽어 있었다. 고양이는 불살라 버리고 개는 선산밑에다가 묘를 써서 묻어주었다. 그 뒤 삼대독자 아들은 오랫동안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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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연적을 찾아다준 공적이 큰 것이라 하더라도, 옛이야기에서 고양이는 대체로 복수의 화신이나 요물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개는 그러한 요물로부터 사람을 구해주는 동물로 자주 등장해서 보물 연적 사건 이후 실추되었던 명예를 많이 회복하였고,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는다.
두 동물의 질긴 인연은 여기에서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최근에 애완동물 경쟁에서 개와 고양이는 또 한번의 격돌을 벌이고 있다. 물론 개가 애완동물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애완견보다 손이 덜 가고 조용하며 혼자 사는 사람들이 키우기에 적당하다는 이유로 반려묘(伴侶猫)라는 명칭까지 붙어서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누그러지면서 차츰 고양이를 가까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개와 고양이가 이렇듯 치열하게 대결을 벌이고 있는 그 기저에는 동일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주인의 사랑과 보상이다. 견묘지간이 되도록 만든 것, 즉 그렇게 친하던 개와 고양이의 사이를 망가뜨린 것은 어찌 생각하면 둘의 대접을 달리한 우리 인간의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도 개와 고양이의 악연에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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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여신
2012.10.31
부족하기 때문에 개에 밀린걸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또 일본에서는
고양이도 은혜를 갚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문화적 차이일 것 같네요
prognose
2012.04.23
silverlemo
2008.05.12
개는 사람과 친하고 고양이는 찬밥신세인 것이, 실은 그저 설화 속의 개와 고양이 이미지일 뿐인데 지금도 고양이를 요물취급하는 걸 보면 답답할때도 있고. 설화(우화)가 동물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가지게 해줘 좋긴 하지만 선입견 또한 쉬이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조금 불만이 있답니다.
동물을 빗대어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선인들의 깊은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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