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녀의 월급은 얼마였을까?
궁녀는 상궁이라고 해야 5품에 불과하다. 그런데 제조상궁의 경우는 당상관 이상의 양반 관료보다도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 상궁과 나인들이 받는 쌀과 콩이 양반 관료에 비해 조금 부족해도 반찬값으로 받는 북어가 있었다. 궁녀들의 월급이 결코 적지 않았던 셈이다. 상궁과 나인들의 하녀격인 방자, 파지, 무수리, 수모 등의 월급도 궁금하다. 이들은 또 얼마나 받았을까? 상궁과 나인들에 비해 얼마나 차이 날까?
글ㆍ사진 신명호
201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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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의 월급을 조선 후기 양반 관료들의 월급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나 될까?

궁녀는 상궁이라고 해야 5품에 불과하다. 그런데 제조상궁의 경우는 당상관 이상의 양반 관료보다도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 상궁과 나인들이 받는 쌀과 콩이 양반 관료에 비해 조금 부족해도 반찬값으로 받는 북어가 있었다. 궁녀들의 월급이 결코 적지 않았던 셈이다. 상궁과 나인들의 하녀격인 방자, 파지, 무수리, 수모 등의 월급도 궁금하다. 이들은 또 얼마나 받았을까? 상궁과 나인들에 비해 얼마나 차이 날까?

여기에 대해서는 고종 3년에 궁녀들에게 지급한 월급 명세서가 유용한 정보를 주고 있다. 이 문서에는 상궁과 나인들뿐만 아니라 방자, 파지, 무수리, 수모 등의 월급 액수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자(방청소 담당) : 쌀 6두, 대구어 4미
파지(심부름과 청소 담당) : 쌀 6두, 콩 1두 5승, 대구어 4미
무수리 : 쌀 6두, 콩 3두, 대구어 4미
수모(물 담당) : 쌀 6두, 콩 1두 5승, 대구어 4미

─ 『병인 대전 분료도丙寅大殿分料圖』, 장서각 도서 분류 2-3169




위의 내용을 보면 궁녀의 하녀들 월급은 오직 기본급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월급 액수는 노동의 강도에 따라 다르다. 가장 힘든 노동을 하는 무수리가 최고의 임금을 받고 상대적으로 노동이 헐한 방자들이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아울러 반찬용으로 지급된 생선이 북어가 아닌 대구어라는 사실로 보아 생선은 북어나 대구어 중에서 형편껏 지급했으리라 짐작된다.

방자, 파지, 무수리, 수모 등은 비록 상궁이나 나인들의 하녀지만 월급 수준은 최하위의 기본급인 반반공상만 받는 나인보다는 오히려 높았다. 반반공상만 받은 나인의 기본급이 쌀 4말, 콩 1말 5되, 북어 13마리인데 방자의 월급은 쌀 6말, 대구어 4마리로서 쌀이 약간 많았다.

고종 연간 궁녀들의 월급은 조선 시대 내내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양반 관료들의 월급 체계를 규정한 조선 전기의 『경국대전』과 조선 후기의 『속대전』의 규정이 거의 변화 없이 적용되어왔기 때문이다. 유독 궁녀들의 월급 체계만 변동했을 이유가 없다.

예컨대 위의 두 사례는 고종 3년과 고종 32년의 궁녀 월급으로서 30년의 시차가 있는데도 쌀과 콩의 수량은 전혀 변화가 없다. 반찬거리인 생선의 종류와 수량이 조금 달라지지만, 이것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이상의 내용으로 본다면 조선 시대 견습 나인은 물론 상궁과 나인의 하녀인 방자나 무수리로 들어가도 매달 곡식으로 5~6말의 수입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3~4말의 쌀을 위해 궁녀로 들어갔다고 하는 궁녀들의 증언이 매우 정확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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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궁녀>의 한 장면 (1972, 신상옥 감독)



최하위의 궁녀들이 한 달에 곡식으로 5~6말의 수입을 올린다면 1년에 근 10가마에 이르는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궁녀들은 기본급 이외에도 옷값과 밥값을 받고, 또 특별 상여금 명목의 격려금을 수시로 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종 연간 연말 보너스로 궁녀들에게 지급했던 세찬歲饌을 보면 상궁들에게는 각각 쌀 2석과 돈 40원, 나인들에게는 쌀 2석과 돈 20원을 주었다. 6 나인이 연말에 받은 세찬이 쌀만 해도 2석인데, 2석은 30말에 해당한다. 이처럼 연말이나 명절에 궁녀들에게 특별히 지급하는 보수는 일종의 특별 수당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웬만한 시골에서 1년에 쌀농사 10가마면 어지간히 사는 집으로 간주되었다. 자신의 논을 가진 지주가 많지 않았고 대다수가 소작농인데, 소작농들이 세금 떼고 도지 떼고 나서 쌀 10가마를 남기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쌀 10가마만 있으면 대여섯 식구가 1년 내내 쌀밥을 먹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배는 곯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궁녀로 들어가기만 하면 1년에 적어도 10가마의 곡식이 보장되었다. 시간이 흘러 상궁이라도 되면 매년 수십 가마의 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조선 시대의 궁녀는 예상 외로 높은 수입을 올렸던 여성 노동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가난한 부모들이 딸들을 나인은 물론 궁녀의 하녀인 방자나 무수리로라도 들여보내려 했던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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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신명호 저 | 시공사

드라마 「여인천하」 「다모」에서 「대장금」 「동이」, 최근에는 영화 「후궁, 제왕의 첩」까지.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작품에서 무수한 궁중 여인들을 만나왔다.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만나볼 수 없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많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열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궁녀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궁녀 #월급 #조선 시대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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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여신

2012.08.29

게다가 어느 궁이나 마찬가지겠지만..권력자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혹은 보이지 않는 권력자일 수도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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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oli2002

2012.07.01

아..흥미롭네요.!^^*<궁녀>영화소재도 있고...사극에서보면..궁녀들의 삶이 언뜻 언뜻 비춰지지만..우와..이 책은...그야말로 내가 궁금한..혹은 알고싶은..<궁녀의 모든것>이 담겨있네요.! 읽어보고싶어요~^.~ 이런거 좋더라고요.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의 생활상..삶의모습등..이런거 알려주는 책들..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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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unbora0821

2012.06.30

생각보다 많이 지급이 되었군요. 기사를 통해 궁녀의 삶을 더 들여다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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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