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끔 밥알이 기도를 막아 위험해질까? - 최재천 『다윈지능』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어내는 공학자와 달리, 자연 선택은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크고 작은 제약 조건의 한계 안에서 이뤄진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는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에서 진화론의 발전 과정, 진화론의 다양한 주제와 입장들, 진화론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준다.
글ㆍ사진 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201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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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응급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다. 명치를 강하게 압박하는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 기도가 식도 뒤에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기도 뒤에 있는 식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행히 음식을 삼킬 때는 기도를 막았다가 숨 들이마실 때에 열어주는 후두개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실수를 저지른다.

물고기는 입으로 물을 들이마셔 아가미를 통해 빠져나갈 때 산소를 걸러 마신다. 이른바 아가미 호흡니다. 그런데 물고기들 중 일부가 뭍으로 올라가 숨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콧구멍이 생겨났다. 숨 쉬기 위한 콧구멍이 배에 있는 것보다 등에 있는 물고기가 유리했을 것은 당연한 일. 결국 먹는 입과 숨 쉬는 통로의 위치가 엇갈리며 진화되어 온 끝에 지금과 같은 식도와 기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화에서 자연 선택은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어내는 공학자와 달리, 자연 선택은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크고 작은 제약 조건의 한계 안에서 이뤄진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는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에서 진화론의 발전 과정, 진화론의 다양한 주제와 입장들, 진화론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준다.

한편 오늘날의 생물학자라면 한 번 이상 들어보았음직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유전자 결정론자입니까?’ 최재천 교수는 그렇다고 대답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매 순간 유전자가 모든 것을 조정한다는 의미의 결정론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 인간 유전자가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깔아 준 멍석 위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문화를 ‘한 개체군의 모든 행동 유형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문화도 유전자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종교는 또 어떤가? 서열 높은 자에게 복종하는 동물들의 의례화된 행동이 인간 사회에서 종교 행동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 있다. 또한 종교를 다른 적응 현상에 연계되어 나타난 부산물로 보기도 한다. 예컨대 숲 속을 가다가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등 뒤에서 난다면, 일단 줄행랑치는 게 안전하다. 그 자리에서 소리가 뭘까 분석하는 건 위험하다. 요컨대 이성의 영역에서 본능의 영역으로 넘기는 게 유리하다는 것.

그밖에도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일정한 유형을 찾아내고 인과 관계를 밝히려는 두뇌 메커니즘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이 종교를 가능케 한 일종의 믿음 엔진이라는 주장도 있다. 진화론과 종교, 특히 기독교의 관계는 늘 어느 정도의 긴장과 갈등이지만 최재천 교수는 종교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동의 표현일 수밖에 없으며, 좀 더 긍정적인 차원에서 종교와 과학의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느 신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신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신에게는 기도하지 않겠다.’

다윈 진화론을 주제로 한다지만 그것과 관계있는 무척 다채로운 주제들을 담고 있는 책이어서 책장이 비교적 술술 넘어간다. 그런데 왜 제목이 ‘다윈 지능’일까? 다윈 진화론은 생물학, 지질학, 환경과학, 의학, 공학, 복잡계 과학 등 과학 분야는 물론이거니와 문학, 철학, 종교학, 역사학, 윤리학, 경제학, 법학, 정치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윈 진화론에 대한 정확하고 폭넓은 이해야말로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교양이자 분야를 막론하고 학자라면 갖춰야 할 전문 지식이기도 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지적이다. ‘다윈 지능’이란 찰스 다윈이라는 한 생물학자의 학문적 이론만을 가리키는 협소한 개념이 아니며, 다윈 이후 진화론을 중심이자 매개로 하여 이뤄진 다양한 분야의 이론적, 실천적 성과들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좋은 책의 기준 가운데 하나. 그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들도 찾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요컨대 추가적인 독서를 유발시키는 책, 독서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 『다윈 지능』도 그러하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 생물학이나 진화론 관련 책들을 읽고 싶게 만든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한 저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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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지능 최재천 저 | 사이언스북스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출간한 『다윈 지능』은 150여 년간 진화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과 진화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뇌들의 설전, 그리고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담은 최고의 진화 생물학 교과서이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과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해진 21세기 지식 생태계의 전망을 총망라했다…

 


#최재천 #다윈 지능 #다윈 #진화론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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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2012.10.01

진화론 과 철학.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함께 거론되고 있는 책. 좀 어려울 듯 싶지만 꼭 읽어보고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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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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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지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와 『과학자의 서재』를 비롯하여 수십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학자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번역하여 국내외 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1995년 이래로 시민단체, 학교, 연구소 등에서 강연을 하거나 방송출연, 언론기고를 통해 일반인에게 과학을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1953년 강원 강릉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고향의 산천을 찾았다.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1979년 유학을 떠나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학위, 199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 미시간대의 조교수가 됐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과학자상, 2000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1992-95년까지 Michigan Society of Fellow의 Junior Fellow로 선정되었다. 200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 한국생태학회장 등을 지냈고, 2006년 이화여대 자연과학대로 자리를 옮겨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소장과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고자 설립한 통섭원의 원장이며, 기후변화센터와 136환경포럼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국제환경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고,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을 비롯하여 4개의 국제학술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해외에서는 주로 열대의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국내에 머물 때면 "알면 사랑한다!"라는 좌우명을 받쳐 들고 자연사랑과 기초과학의 전도사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하버드 시절 세계적 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있었으며, 그의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였다. '통섭'이라는 학문용어를 만들어 학계 및 일반사회에 널리 알리고 있다. 1998년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과학기술부 과학교육발전위원회의 전문위원을 맡아 청소년의 이공계 진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수많은 어린이책에 과학적인 내용을 감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최 교수는 영장류연구소를 설립하여 침팬지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생태계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도 이곳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생물학자에서 출발하여 사회생물학, 생태학, 진화심리학 등 학문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언제나 공부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을 꿈꾼다. 학문 간 벽을 허물고 통합적으로 사고해야만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온 최재천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지식의 대통합』을 번역 소개하여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으며, 저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를 통해 생물학적인 시선으로 고령화 사회의 해법을 제시하여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시하여 극단적인 경쟁과 환경 파괴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여성의 세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 새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결국 여성과 남성이 더불어 잘사는 길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자의 서재』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비롯하여 30여 권의 책을 저술하거나 번역했다. 그가 한국어로 쓴 최초의 저서 『개미제국의 발견』은 2012년 봄에 영문판 The Secret Lives of Ants로 존스홉킨스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한 영문서적을 비롯하여 다수의 전문서적들과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인간의 그늘에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통섭』, 『알이 닭을 낳는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알이 닭을 낳는다』, 『벌들의 화두』, 『상상 오디세이』,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21세기 다윈 혁명』, 『개미』, 『인문학 콘서트』,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호모심미우스』, 『다윈지능』,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등의 저 · 역서 외에도 여러 책에 감수자로 참여했다. 2019년 출간된 『동물행동학 백과사전(Encyclopedia of Animal Behavior)』의 총괄 편집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