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조종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여인 『히토리 시즈카』
대체 우리는 뭘 한 걸까? 이 사건을 17년이나 조사했는데 대체 무얼 밝힌 걸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오리무중이었어. 뭔가를 알아내면 알아낸 만큼 시즈카는 더 멀리 가버렸고. 결국 우리는 그녀를 잡는 데 실패했지. 이게 대체 뭘까, 후지오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옳았던 걸까?
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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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먼저 봤다. 정확하게 말하면 드라마로 만들어진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먼저 보고, 그 후에 『히토리 시즈카』를 봤다. 혼다 테츠야의 소설을 하나도 안 읽은 상태에서 드라마만 먼저 봤던 것이다. 두 편의 드라마는 여성을 개성적으로, 주의 깊게 다루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히메카와는 직관적인 추리가 발군인 형사다. 억센 아니 거칠거나 교활한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 히메카와는 ‘여성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워 나간다. 그녀의 강함은 터프하거나 물리적인 면만이 아니다. 그녀는 강인했고, 그 강함에는 과거의 상처가 들어 있었다. 『히토리 시즈카』는 소위 ‘악녀’의 이야기다. 세상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폭력으로 질주하는 그녀의 내면이 참 궁금했다.
특히 『히토리 시즈카』를 본 후, 혼다 테츠야의 원작을 꼭 읽고 싶어졌다. 4부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히토리 시즈카』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토 시즈카란 여인이 매번 등장하긴 하지만, 늘 이야기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주인공들이 겨우 그녀를 만나고, 대화를 해도 단지 겉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이토 시즈카가 연루 아니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그녀의 진정한 의도나 이유 등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가 알고 싶어졌다.
혼다 테츠야의 『히토리 시즈카』는 각 장마다 화자인 ‘나’가 이야기를 한다. 1장 ‘어둠 한 자락’에서는 경찰인 기자키다. 자신이 맡은 구역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 건달이 사망한다. 용의자가 잡혔는데, 그는 방안에 여자애가 있었다고 말한다. 2장 ‘반디거미’에서는 다른 경찰, 3장 ‘썩은시체나비’에서는 탐정이 화자가 된다. 각 장의 ‘나’는 사건을 수사, 조사하다가 이토 시즈카에 다다르게 된다. 현직 경찰의 딸인 이토 시즈카에게. 1장에서 시즈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후 시즈카는 각각 다른 사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각각의 화자가 보게 되는, 알게 되는 것들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떠오르기도 한다. 10대 시절부터 십년이 넘게 갖가지 범죄를 저질러 온 남자가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뒤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그녀의 행적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오로지 그의 범행을 통해서,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의해서만 묘사된다. 그녀 역시 악녀다. 사람을 조종하고, 마음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여인. 『히토리 시즈카』를 읽다 보면 『백야행』이 떠오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이 표정에서 요염함을 느끼겠지만 내 눈에는 사악하게 보였다. 몹시 기분 나쁜 미소였다. 악녀다.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인간 같지도 않다. 마치 벌레 같다. 사마귀나 거미 같은 공격적인 부류의 벌레.
장을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이토 시즈카의 얼굴은, 악녀다. 겨우 중학생인 그녀는 배후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치않는다. ‘정말 형편없어.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나에게 덤빈 거야? 주도면밀함이 모자라군. 당신, 죽어줘야겠어.’ 그리고 말한다. ‘난 가가 같은 놈도 혐오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약한 사람도 싫어요. 그보다 더 싫은 건.....경찰! 당신 같은 위선적인 사람이 제일 싫다고.’ 그녀를 만나 대화를 했던 경찰의 말처럼, 그녀는 ‘사회에 뭔가 정체 모를 원망을 가득 품’고 있다. 대체 왜인지는 4장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녀가 여덟 살 때부터 무슨 짓을 당했는지, 그녀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했는지 보여준다. 이토 시즈카는 희생자였다.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고, 돌보지 않았다. 홀로 선 그녀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복수하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다. 해설을 쓴 추리소설 평론가인 세키구치 엔세이의 말처럼 ‘수동적인 쪽의 인간이 수동적인 형태 그대로 가해자가’ 된 것이다.
나는 폭력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아요. 단지 이용할 뿐이죠. 내 나름의 방식대로 폭력을 다루는 거예요.
그런데 묘하다. 『히토리 시즈카』는 마지막 장 ‘혼자서 조용히’에서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린다.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여성. 그녀는 폭력을 이용하여 타인을 조종하고, 때로 죽여버렸다. 그녀는 분명 악녀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자명한 사실들이 다시 역전된다. 그녀의 진짜 얼굴이 무엇이었는지, 애매해진다. 각각 다른 사건을 쫓다가, 다시 서른이 넘은 이토 시즈카에 다다르게 된 형사들. 과거에 시즈카를 만났던 혹은 쫓았던 이들이 다시 모인다. 그리고 허탈하게 말한다.
대체 우리는 뭘 한 걸까? 이 사건을 17년이나 조사했는데 대체 무얼 밝힌 걸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오리무중이었어. 뭔가를 알아내면 알아낸 만큼 시즈카는 더 멀리 가버렸고. 결국 우리는 그녀를 잡는 데 실패했지. 이게 대체 뭘까, 후지오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옳았던 걸까?
겨우 시즈카를 손에 넣기는 했으나,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고 그녀는 영원히 떠나버린다. 시즈카에게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수사한 사건, 그녀를 바라보면서 얻은 인상만이 있을 뿐이다. 시즈카가 폭력을 선택한 악녀인 것은 분명하나, 그녀가 누구였는지는 알 길이 없어진다. 그 모호함 혹은 불투명함이 더욱 더 시즈카란 여인에게 끌리게 만든다. 그녀가 알고 싶어서, 위험한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혼다 테츠야는 『히토리 시즈카』를 대단히 건조하게 쓴다. 원래 스타일이 그런 건 아니다. 히메카와 시리즈인 『스트로베리 나이트』 『소울 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은 꽤나 풍성하게 상황이나 감정을 묘사한다. 혼다 테츠야의 문장은 탁탁 끊어 치며 힘차게 전진하지만 메마르진 않다. 하지만 『히토리 시즈카』는 다르다. 의도적으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며, 시즈카라는 인물의 퍼즐에 집중하기를 원한다. 섣부르게 판단할 단서를 내비치지 않는다.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때, 혼다 테츠야는 이런 코멘트를 했다.
『히토리 시즈카』는 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변칙적인 구조를 가졌습니다. 어쩌면 시즈카는 가장 난해한 주인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쫓으려고 하면 할수록 시즈카는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깊은 어둠 뒤에 숨어 있습니다. ‘시즈카라는 수수께끼를 푼다’라는 점에서는 시청자, 촬영자, 연기자 모두 같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시즈카. 그건 드라마를 다 본 후에도,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궁금하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악녀, 팜므 파탈인 시즈카에게 너무나도 끌릴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기에 두렵고, 그래서 더욱 끌린다.
[출처: http://www.wowow.co.jp/dramaw/hitorishizuka] |
특히 『히토리 시즈카』를 본 후, 혼다 테츠야의 원작을 꼭 읽고 싶어졌다. 4부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히토리 시즈카』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토 시즈카란 여인이 매번 등장하긴 하지만, 늘 이야기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주인공들이 겨우 그녀를 만나고, 대화를 해도 단지 겉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이토 시즈카가 연루 아니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그녀의 진정한 의도나 이유 등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가 알고 싶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이 표정에서 요염함을 느끼겠지만 내 눈에는 사악하게 보였다. 몹시 기분 나쁜 미소였다. 악녀다.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인간 같지도 않다. 마치 벌레 같다. 사마귀나 거미 같은 공격적인 부류의 벌레.
장을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이토 시즈카의 얼굴은, 악녀다. 겨우 중학생인 그녀는 배후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치않는다. ‘정말 형편없어.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나에게 덤빈 거야? 주도면밀함이 모자라군. 당신, 죽어줘야겠어.’ 그리고 말한다. ‘난 가가 같은 놈도 혐오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약한 사람도 싫어요. 그보다 더 싫은 건.....경찰! 당신 같은 위선적인 사람이 제일 싫다고.’ 그녀를 만나 대화를 했던 경찰의 말처럼, 그녀는 ‘사회에 뭔가 정체 모를 원망을 가득 품’고 있다. 대체 왜인지는 4장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녀가 여덟 살 때부터 무슨 짓을 당했는지, 그녀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했는지 보여준다. 이토 시즈카는 희생자였다.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고, 돌보지 않았다. 홀로 선 그녀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복수하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다. 해설을 쓴 추리소설 평론가인 세키구치 엔세이의 말처럼 ‘수동적인 쪽의 인간이 수동적인 형태 그대로 가해자가’ 된 것이다.
나는 폭력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아요. 단지 이용할 뿐이죠. 내 나름의 방식대로 폭력을 다루는 거예요.
그런데 묘하다. 『히토리 시즈카』는 마지막 장 ‘혼자서 조용히’에서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린다.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여성. 그녀는 폭력을 이용하여 타인을 조종하고, 때로 죽여버렸다. 그녀는 분명 악녀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자명한 사실들이 다시 역전된다. 그녀의 진짜 얼굴이 무엇이었는지, 애매해진다. 각각 다른 사건을 쫓다가, 다시 서른이 넘은 이토 시즈카에 다다르게 된 형사들. 과거에 시즈카를 만났던 혹은 쫓았던 이들이 다시 모인다. 그리고 허탈하게 말한다.
대체 우리는 뭘 한 걸까? 이 사건을 17년이나 조사했는데 대체 무얼 밝힌 걸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오리무중이었어. 뭔가를 알아내면 알아낸 만큼 시즈카는 더 멀리 가버렸고. 결국 우리는 그녀를 잡는 데 실패했지. 이게 대체 뭘까, 후지오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옳았던 걸까?
겨우 시즈카를 손에 넣기는 했으나,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고 그녀는 영원히 떠나버린다. 시즈카에게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수사한 사건, 그녀를 바라보면서 얻은 인상만이 있을 뿐이다. 시즈카가 폭력을 선택한 악녀인 것은 분명하나, 그녀가 누구였는지는 알 길이 없어진다. 그 모호함 혹은 불투명함이 더욱 더 시즈카란 여인에게 끌리게 만든다. 그녀가 알고 싶어서, 위험한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혼다 테츠야는 『히토리 시즈카』를 대단히 건조하게 쓴다. 원래 스타일이 그런 건 아니다. 히메카와 시리즈인 『스트로베리 나이트』 『소울 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은 꽤나 풍성하게 상황이나 감정을 묘사한다. 혼다 테츠야의 문장은 탁탁 끊어 치며 힘차게 전진하지만 메마르진 않다. 하지만 『히토리 시즈카』는 다르다. 의도적으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며, 시즈카라는 인물의 퍼즐에 집중하기를 원한다. 섣부르게 판단할 단서를 내비치지 않는다.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때, 혼다 테츠야는 이런 코멘트를 했다.
『히토리 시즈카』는 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변칙적인 구조를 가졌습니다. 어쩌면 시즈카는 가장 난해한 주인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쫓으려고 하면 할수록 시즈카는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깊은 어둠 뒤에 숨어 있습니다. ‘시즈카라는 수수께끼를 푼다’라는 점에서는 시청자, 촬영자, 연기자 모두 같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시즈카. 그건 드라마를 다 본 후에도,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궁금하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악녀, 팜므 파탈인 시즈카에게 너무나도 끌릴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기에 두렵고, 그래서 더욱 끌린다.
- 히토리 시즈카 혼다 테쓰야 저/한성례 역 | 씨엘북스
혼다 테쓰야는 『히토리 시즈카』에서 ‘경찰 소설’이라는 자신의 장기를 잠시 내려놓는다. 한 사람의 여성, 이토 시즈카의 8세부터 31세까지의 인생을 테마로 해서 전개되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다룬 이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건을 통해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하여 독자들을 자극한다.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의 배후에 서 있는 그녀, 그렇다면 그녀는 악인가? 사회로부터 농락당했을 뿐인 선의 결정체인가? 아마도 그 정답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마다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혼다 테쓰야가 의도한 것은 뚜렷한 해답이나 메시지라기보다 많은 이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하나의 ‘이야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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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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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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