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문화축제’ 김태호 PD, 김주원, 장미여관을 만나다
책과 음악,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예스24 문화축제’가 일곱 번째 밤을 맞았다. 지난 11월 27일 ‘콜라보레이션 파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본 행사에는 1천여 명의 예스24 회원들과 문화계 각층의 명사들이 함께했다. 소설가 김영하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발레리나 김주원, 뮤지션 요조와 장미여관이 축제의 손님으로 초대받아 각자의 ‘첫사랑’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를 공개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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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예스24 문화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그는 ‘오늘은 축제를 하기에 완벽한 날씨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다시 눈이 내리기를 반복했던 날씨가 ‘콜라보레이션 파티’라는 제목의 행사와 더없이 어울린다는 이야기였다. 눈을 좋아하는 사람도,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즐거웠을 법한 날씨처럼 ‘예스24 문화축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그는 단테의 『신곡』 에 대한 이야기로 첫사랑의 느낌을 대신 전했다.




김주원, 내게 첫사랑 같은 책 『오만과 편견』

소설가 김영하의 뒤를 이어 무대에 오른 이는 발레리나 김주원. 최근 <댄싱 9>의 심사위원으로 대중들에게 부드럽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는 ‘첫사랑과 같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이동진 : 이번 주제가 첫사랑이잖아요. 처음 주제에 대해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김주원 : 지금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주제를 고르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진 : 김주원 씨께 첫사랑에 관해서 미리 여쭤봤더니, 정말 모범 답안을 들려주셨어요. ‘나에게 첫사랑은 발레다’라고요.
김주원 : (웃음) 네, 발레가 첫사랑이에요. 그런데 일리가 있는 얘기예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는데, 발레라는 예술을 통해서 모든 감정들을 배우게 됐거든요. 사랑이라는 감정도 먼저 배웠고요, 결혼식도 여러 번 해봤고요. 죽음도 경험해 보고, 질투라는 것도 경험해 봤어요. 제 인생의 리허설 같기도 했던 거죠. 그래서 제 첫사랑은 발레라고 말씀드렸어요.

이동진 : 발레는 대부분 사랑이야기가 많잖아요?
김주원 : 클래식 발레는 100% 사랑이야기죠.
이동진 : 가장 좋아하는 발레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김주원 : 저는 비극을 좋아해요. 죽는 역할이요. 예를 들면 줄리엣, 지젤, 「춘희」에서의 마그리트, 「왕자 호동」에서 낙랑공주 같은 역할들이죠.




이동진 평론가가 사랑을 속삭이는 발레의 몸짓이 보고 싶다고 청하자, 김주원 발레리나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레 마임을 직접 선보였다. 발레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그녀의 미모를 칭송하는 순간, 그리고 춤을 권하는 순간에 약속된 기호처럼 사용되는 동작들을 직접 시범보인 것이다. 그녀의 부드럽고도 특유의 힘이 느껴지는 몸짓들을 따라 이동진 평론가와 관객들의 눈짓과 손짓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동진 : 첫사랑 같은 작품으로 『오만과 편견』을 꼽아주셨어요. 소설을 말씀하시는 거죠?
김주원 : 소설도 있고 영화, 드라마도 있는데요. 작품 속의 다아시 때문에 제가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러시아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을 때 저희 언니가 선물로 보내준 책이 『오만과 편견』이었어요. 그때부터 다아시에게 반한 것 같아요(웃음). 어쩌면 저의 첫사랑의 다아시일 수도 있어요.
이동진 : 어떻게 보면 좋아했던 문학작품이 연애를 망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네요(일동 웃음). 지금까지 다아시 역을 맡은 배우가 굉장히 많은데, 어떤 배우의 다아시가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
김주원 : <브리짓 존스의 일기>『오만과 편견』을 현대화해서 만든 거잖아요. 그 영화에서 다아시를 연기했던 배우 콜린 퍼스가 제일 제 스타일과 가까운 것 같아요(웃음).

이동진 :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김주원 : 저는 몸의 언어로 드라마를 표현하는 연기자나 마찬가지잖아요. 저는 연기자들 중에서 섬세한 감정선을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게 표현하는 무용수들을 좋아해요. 그런데 『오만과 편견』이 그런 것 같아요. 힘 있는 글이나 섬세한 감정 표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재밌더라고요.

이동진 :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는 어떤 장면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김주원 : 아주 로맨틱한 장면인데요. 동이 틀 무렵에 리지(엘리자베스)가 잠이 오지 않아서 언덕 같은 곳을 걸어가는데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장면이 있어요. 그 사람이 다아시였어요. 두 사람이 통한 거죠(웃음). 그렇게 만나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좋아해요.
이동진 : 인생의 비통함이 담겨있는 독일 영화도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영화인지 소개해 주세요.
김주원 : 한국 제목으로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인데요. 슬픔을 드러내 놓고 울게 만들지 않았어요. 저는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감동을 받았는데요. 하나의 스웨터를 같이 입고 있잖아요. (영화 내용은) 부인이 죽고 난 후에 남편이 혼자 일본으로 여행을 오게 되는데요.
이동진 : 부인이 가고 싶어 했던 곳이죠?
김주원 : 네. 지난 기억들, 또 그녀가 떠난 후에 그의 모습들을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담아놓은 영화예요. 보는 중간 중간에 정말 가슴이 뭉클했어요.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가 아마 저렇지 않을까 생각되더라고요. 슬픈 순간도 있겠지만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참 특별하게 본 영화인 것 같아요.

이동진 :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계신 공연을 소개해 주세요.
김주원 : 제가 클래식 발레를 전공한 발레리나지만, 특별하게 12월 초에 국립 현대 무용단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어요. 각 장르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무용수들이 모여서 꾸미는 무대예요. <댄싱 9>에 출연했던 이선태 씨가 현대무용 대표로, 그리고 제가 발레 대표로 참여하고요. 한국무용과 스트리트 댄스를 대표하는 분들도 계세요. 다양한 장르의 무용수들이 각자의 춤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또 함께 모였을 때는 어떤 움직임이 나오는지 보실 수 있는 무대예요. 그리고 이원국 발레리노와 함께 <맥베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원국 발레리노가 맥베스, 제가 그 아내를 맡았고요. 내년 4월 중순 쯤에 대학로 아르코 극장에서 상연됩니다.




김태호, 사랑한다면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알려주세요

‘우리로 하여금 토요일 저녁에 약속을 못 잡게 하는 사람, 토요일 밤의 간장게장 같은 사람’. 네 번째 연사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설명이다. ‘무모한 도전’ 안에서 ‘무한한 도전’을 이끌어내는 사람, 그는 김태호 PD다. 토요일 오후 6시마다 사람들은 TV 앞에서 그의 프로그램을 기다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는 첫사랑이 그러하다고 한다. ‘나에게 첫사랑은 기다림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동진 : 첫사랑에 대해 고전적인 정의를 내려주셨는데요. 왜 첫사랑을 기다림이라고 생각하세요?
김태호 : 제가 기억하는 첫사랑은 항상 제가 기다렸던 것 같아요. 상대와 대화를 나누거나 눈빛을 교환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동진 : 첫사랑이면서 짝사랑이었나요?
김태호 : 그렇죠. 부모님이 걱정하실 정도로 짝사랑을 너무 길게 했어요.
이동진 : 얼마나 오래 하셨는데요?
김태호 : 5년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짝사랑을 하면서 제가 비련의 주인공처럼 보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오래도록 짝사랑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동진 : 짝사랑의 상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김태호 : 고등학교 1년 선배였는데요, 학교의 3대 미녀 중에 한 명이었어요. 제가 올려다 볼 수 없는, 내신으로 따지면 그 분이 1등급 저는 15등급 정도 되는 상황이었죠.
이동진 : 그럼 호칭은 누나라고 부르셨나요?
김태호 : 네, 누나라고 불렀고요. 그때 제가 하숙을 했는데 그 누나네 바로 옆 하숙집을 구해서 살았어요. 인사 한 번 하려고 학교 가기 전에 30분 전에 먼저 나와서 기다렸던 시간들이 기억나요. 그 누나가 음악을 좋아해서 저녁에는 항상 레코드샵에 들린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미리 가서 음반을 고르면서 ‘혹시 그 누나가 오지는 않을까’ 기다렸던 시간들도 기억나고요. 자기 전에는 누나네 집을 향해서 매일 선곡한 음악을 틀어 놓기도 했어요.




김태호 PD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이동진 평론가는 ‘로맨스가 아닌 느와르를 찍었다’고 농담을 건넸다. 만인의 연인을 사랑한 까닭에, 학교 선배로부터 ‘너처럼 생긴 놈이 감히 그 애를 좋아하냐’고 맞기도 했었다는 웃픈 일화 때문이었다. 물론 그 선배는 김태호 PD와 연적의 관계에 있었다고. 마침 대형 화면에는 김태호 PD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공개돼 관객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진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 김태호 PD는 ‘선배에게 맞고 돌아오는 길에도 속으로 너무 기뻤다. <서동요>의 이야기처럼 내 마음이 누나에게 전해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다’고 밝혀 뼛속까지 순정파임을 증명했다.

이동진 : 혹시 이런 경험이 <무한도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셨습니까?
김태호 : 그럼요. 어떻게 보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기다림이거든요. 시청자들의 ‘재밌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준비하니까요. 그 시간 하나하나가 아까울 때가 많아요. 이번 주에 호평을 듣지 못하고 기회를 놓쳤으면 다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죠.

이동진 : <무한도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김태호 : 저희가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이고, 또 토요일 저녁에 방송되다 보니까 한계는 있어요. 하고 싶은 걸 못할 때도 많아요. 매체가 인터넷이면 어떨까, 스크린이면 어떨까, 생각할 때도 많이 있는데요. 그런데 항상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아이템들은 시청자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었던 것 같아요. 시청자는 원하지 않는데 ‘우리가 뭘 보여줄 수 있을지’ 부터 고민하고 접근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시청자가 뭘 생각하는지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시청자를) 100% 이해하지 못하니까 당연한 결과죠. 그래서 항상 변 사람들을 보면서 소재를 찾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무한도전> 멤버들하고 자주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요.

이동진 : ‘첫사랑 같은 영화’로 <시네마 천국>을 말씀해 주셨어요.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시잖아요. 특별히 <시네마 천국>에 애정을 갖고 계신 이유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김태호 : 영화 자체는 알프레도라는 영사실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와 토토라는 꼬마의 관계에서, 꼬마의 성장과 꿈 사랑, 시련, 성공까지의 인생을 다룬 영화잖아요. 인생에 관련된 얘기들이 나오는데 사실 어릴 때는 많은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저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구나’하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요.

김태호 PD와 이동진 평론가는 <시네마 천국> 속 명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알프레도가 어린 토토에게 들려주는 ‘병사의 사랑 이야기’는 김태호 PD의 첫사랑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사랑에 있어서 기다림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알프레도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공주를 사랑하는 병사가 등장한다. 그는 공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공주는 ‘100일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제나 나의 창 밖에서 기다린다면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말한다. 병사는 공주의 말대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그는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그는 왜 마지막 하루를 기다리지 않은 것일까.

이동진 : 영화에서는 병사가 99일째 떠났다는 이야기까지만 나오죠. 뒷이야기는 알 수가 없는데요. 병사는 왜 떠난 걸까요?
김태호 : 그 이야기가 나중에 <신 시네마천국>에서는 잠깐 나오더라고요. 토토가 ‘알 것 같아요. 그 병사가 두려웠던 거예요’라고 말하는데요. ‘100일째 되는 날 공주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을 느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겪었던 신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게 심적인 고통이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멈춘 게 아니겠냐고 얘기해요. 그런데 <시네마 천국> 내용을 보면 토토가 병사처럼 엘레나의 집 앞에서 기다리잖아요. 그러다가 뒤돌아서 걸어가는데 결국 엘레나가 오죠. 토토가 ‘비나 내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데 비가 내리면서 엘레나까지 같이 오는 명장면인데요. 제 생각에는 기다리면 결국 상대방이 오는 게 답이란 걸, 감독이 간접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요.

이동진 : <시네마 천국>에서 어떤 장면들을 좋아하세요?
김태호 :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병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도 좋아하고요. 토토가 누워서 ‘비나 왔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엘레나까지 같이 와서 키스했던 장면도 좋고요. 토토가 군대에 다녀왔을 때 알프레도가 ‘떠나라. 영화는 현실과 너무 다르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힘들다. 여기를 떠나면 금방 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로마로 가게 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제일 유명한 장면은 「Love Theme」가 흐르면서 키스신 모음이 상연되는 부분이죠.

이어서 김태호 PD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된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에 직접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다. 아내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시칠리아를 경유하고 돌아올 계획이었으나, 아내가 작은 화상을 입게 되어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아내가 <시네마 천국>이 내 첫사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나 보다’라고 농담하며 ‘그곳에 가지 못한 걸 보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진 : 첫사랑에 빠졌던 당시로 돌아가서 어린 김태호 소년을 만난다면 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으세요?
김태호 :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알려줘라’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마치 인공위성처럼 계속 주위를 맴돌면서 빛을 계속 쏘고 있지만, 상대가 저를 바라보지 않는 한 저는 계속 (주변을) 돌고 있잖아요. 그러지 말고 나의 메시지를 빨리 전해줬다면 저도 또 다른 사랑을 찾아서 일찍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일동 웃음). 내가 조금 더 리드하는 삶을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10번 다가갔다가 10번 퇴짜 맞으면 어때요. 11번째, 101번째 다가가면 되죠. 그런 삶의 태도를 얘기 해주고 싶어요.




장미여관, 「봉숙이」는 음악에 대한 첫사랑 같은 곡

축제의 마지막 손님은 관객들의 외침 속에서 등장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친 한 마디의 말, 그것을 두고 이동진 평론가는 ‘모든 남자들이 너무나 듣고 싶어 하지만 여자들은 뭔가 필요할 때만 말한다는 두 글자 단어’라고 말했다. 그들이 언제나 이 단어에 목마름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그 뒤에 ‘못생겨서 싫어요’라는 말이 따라붙었을 뿐이다. 여자들에게 홀대받는 건 옛일이 되어버린 다섯 남자들, 대세 밴드 장미여관이다. 그들이 등장할 땐 언제나 ‘오빠’를 목청껏 외치는 걸 잊지 마시길.

이동진 : 이번 축제의 주제가 첫사랑이에요. 장미여관은 첫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창의적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나에게 첫사랑이란 산전수전공중전이다’. 어느 분의 아이디어입니까?
육중완 : 사무실의 아이디어예요(일동 웃음). 저희가 음악으로 사랑받기 전까지 산전수전까지 겪지 않았나하고 생각했는데, 사무실에서 공중전까지 겪지 않았냐고 해서요. 그래서 첫사랑은 산전수전공중전이라고 정했습니다.

장미여관 멤버들은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첫사랑의 흔적을 찾았다. 보컬 강준우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수줍게 자신을 안아주었던 같은 반 여학생에게서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윤장현의 기억은 소설 「소나기」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해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1학년 때 서울에서 전학 온 여학생을 짝사랑했다고. 예쁘장한 얼굴에 서울말을 쓰는 그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여학생이 광주에서 전학을 오면서, 그의 사랑은 서울 소녀가 아닌 광주 소녀를 향해 기울었다고 한다.

이동진 : 「봉숙이」를 첫사랑 같은 음악이라고 고르셨어요. 많은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고, 저도 장미여관의 노래 중에서 「봉숙이」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특별히 이 노래를 고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육중완 : 「봉숙이」는 저희 밴드의 첫사랑 같은 느낌이에요. 세상에 저희를 알릴 수 있게 해준 노래이기 때문이죠. 그 전까지 정말 수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렀는데, 세상에 저희 이름을 알려준 노래가 「봉숙이」예요. 그래서 저희 다섯 명에게는 「봉숙이」가 음악에 대한 첫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동진 : 「봉숙이」를 무대에서 정말 많이 부르셨을 텐데, 그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세요?
강준우 : 「봉숙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르려고 만든 노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육중완 형이 ‘이 노래가 너무 좋으니까 타이틀곡으로 해서 열심히 하자’고 하셨어요. 저는 무대에서 <봉숙이>를 부를 때마다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노래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관객 분들이 행복해 하시고 즐거워하시니까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부를 때마다 ‘오늘도 많이 웃다가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르고 있습니다.

이동진 : <무한도전>에 출연한 경험이 굉장히 특별하셨죠? 장미여관이라는 훌륭한 밴드를 대중한테 소개한 부분이 제일 크겠지만, 그 밖에 또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으세요?
배상재 : <무한도전>을 촬영하면서 ‘배려’라는 걸 배웠어요. 그 많은 스태프들과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 같이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힘이 ‘배려’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멤버들에게 배려를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진 : 처음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들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봉숙이」의 느긋함이나 이전까지 들어왔던 음악하고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파격적인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떠셨나요?
육중완 : 장미여관은 끈적끈적하거나 야한 음악만 하는 팀이 아니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방송에 나온 장미여관만 보셔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클럽 같은 곳에서 저희 공연을 직접 보신 분들은 「오빠라고 불러다오」 무대에 대해서 ‘장미여관스럽게 잘 했구나’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저희 멤버들은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들이 다 달라요. 하드한 것도 있고, 감성적인 것도 있고요. 저희가 추구하는 음악은 한 가지 장르가 아니에요. 여러 장르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거예요. 「오빠라고 불러다오」는 저희 스타일과 노홍철 씨의 에너지를 합친 거라고 생각해요.

이동진 : 연말에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죠?
강준우 : 연말에 공연이 있는데 이미 매진이 돼서요, 말씀드려도 못 오실 거예요(웃음). 12월 28일, 29일, 31일 세 차례 용산 아트홀에서 공연이 있고요. 저희가 ‘록스타앤라이브’ 라는 레이블 소속입니다. 그래서 노브레인(No Brain)과 갈릭스(Garlixx)와 함께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12월 24일과 25일 부산 오즈홀에서 열립니다. 많이 와주세요.




장미여관은 이동진 평론가와의 대화를 마친 후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 관객들 모두가 무대를 즐길 준비를 하는 동안, 이동진 평론가는 감사의 인사로 축제를 마무리 지었다. 그는 장미여관에게 마지막 무대를 맡기며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열정이 타고 없어졌을 때 그 때 남은 감정이다”라는 말이었다. 우리에게 첫사랑이 소중한 것은 실제로 그것이 굉장해서라기보다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그때의 일을 반추하는 우리의 행위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2013년 11월 27일, 1천여 명의 사람들과 다섯 팀의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나눈 시간들은 어떤 기억으로 계속 반추될까. 왠지 포근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축제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는 장미밴드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장미여관이 선보이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무대매너 속에서 그들의 열정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청춘남녀」를 시작으로 「봉숙이」와 신곡 「장가가고 싶은 남자 시집가고 싶은 여자」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모두 같은 목소리와 같은 움직임으로 화답했다. 결국 공연장의 달아오른 열기는 무대를 내려가는 장미여관의 발길을 돌려세우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앙코르 무대가 시작됐다. ‘오빠’를 외치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장미여관의 마지막 곡은 「오빠라고 불러다오」. 노래가 다 끝나도록 축제의 끝을 아쉬워하는 마음들은 옅어질 줄을 몰랐다. 장미여관과 예스24 회원들의 첫사랑은 분명 뜨거운 온도로 기억될 것 같았다.

‘첫사랑 같은 책, 음악, 영화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된 이 날의 축제에는 다양한 빛깔과 향기를 가진 사랑들이 함께했다. 누군가의 첫사랑은 상큼 발랄했고 또 누군가의 첫사랑은 한없이 지고지순했다. 그 모든 이야기는 너의 것이기도 하고 나의 것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써내려간 우리의 첫사랑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거듭 반추하는 행위 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그 사랑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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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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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2013.12.05

기사만 봐도 공연장에 와 있는 느낌이네요.ㅎㅎㅎ 예스24 섭외력, 좀 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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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