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신양명 공부는 이제 그만
물리학자인 형과 법학자인 동생, 누가 봐도 성공한 두 형제가 들려줄 수 있는 ‘공부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학부모들은 ‘박사 학위 취득 과정’이나 ‘사법고시 합격하는 법’에 대해 듣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부 논쟁』은 그러한 기대를 기분 좋게 배반한다. 대신 영재교육과 특목고, 서울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한다.
두 사람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고자 정치 이야기로 첫 장을 열었지만 이 책의 대부분은 공부, 엘리트, 탁월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장원급제 DNA와 장인 DNA의 차이, 과장된 이공계 위기, 영재교육의 문제점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논의는 자연스럽게 비평준화 시대의 경기고와 현재의 특목고로 상징되는 엘리트주의의 한계로 모아졌고, 고교 평준화, 대입 단순화, 서울대 개혁이라는 대안으로 이어졌습니다. (『공부 논쟁』10쪽)
대학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땅의 모든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들으면 대번에 화를 낼 이야기다. 『공부 논쟁』을 집필한 김대식과 김두식 형제 역시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두 저자는 “하늘에 대고 침 뱉기라 욕을 먹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인 김대식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아우 김두식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검사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엘리트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 보너스처럼 주어지는 기득권의 혜택 역시 누렸다. 이 사실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들은 사회의 다수가 알지 못하는 ‘엘리트들만의 세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들려주는 체험담의 결말은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다. 특목고와 명문고 입학을 위한 공부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무슨 이유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됐는지 들어봐야겠다.
지난 6월 30일, 동교동에 위치한 가톨릭 청년 회관에서 『공부 논쟁』의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이 날 형제 저자의 곁에는 특별히 초대받은 두 명의 손님이 함께했다. 『엄마와 연애할 때』 『어떤 날 그녀들이』의 저자인 칼럼니스트 임경선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대표가 그 주인공. 사회를 맡은 임경선 칼럼니스트는 “오늘만큼은 이 땅에서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며 “『공부 논쟁』을 읽고 단순히 공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대표는 우리 사회의 공부가 종교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꿈이 아닌 욕망을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임경선 : 욕망을 위한 공부와 꿈을 위한 공부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송인수 :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상대적 만족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욕망을 위한 공부’죠. 그 반대편에 있는 ‘꿈이 있는 공부’란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절대적 만족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한 거예요. 욕망을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점수를 활용해서 직업을 선택하고, 꿈을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은 직업을 결정할 때 재능과 적성을 활용하죠.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부냐, 아니면 자기 이익의 팽창을 위한 공부냐’에 따라서 공부의 방향과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좌) 임경선 칼럼니스트 (우) 『공부논쟁』 저자 김대식 교수
임경선 칼럼니스트는 김대식 저자에게 ‘특목고 존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김대식 저자는 『공부 논쟁』에 실린 김두식 저자와의 토론에서 ‘만들어진 영재’가 되기 위해 소진되어 버리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13세에 대학에 들어가서 20대 초반에 박사를 받는 애들을 제가 미국에서 직접 봤어요. 미국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애들 대부분 실패합니다. 30대가 되면 다들 무대에서 사라져요. 두뇌를 너무 일찍 태워먹은 거예요. 그게 바로 번아웃입니다. 20대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30대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은 그렇게 번아웃되는 경우가 없어요. 학자들의 정년 보장심사를엄격하게 해서 진짜와 가짜를 갈라내야 한다고 제가 주장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30대 학자들을 쥐어짜야 과학이 발전합니다. (『공부 논쟁』211쪽)
김대식 : 누군가는 특목고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그곳에 가지 못한 90%에 가까운 학생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희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포기하는 일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저는 시장을 넓히자는 측면에서 과학고를 공격하기도 해요. 주변에서 번아웃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는데, 번아웃이라는 게 굉장히 심각한 거거든요. 『공부 논쟁』에서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20대 초반에 박사 학위를 받고 30대에 사라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이제는 박사 학위를 빨리 받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다들 알고 있어요. 이미 검증이 된 거예요. 그런데 지금도 그 망령을 가지고 와서 재생산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특목고를 다니는 사람들은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목고가 필요한가’ 라는 문제에 대한 제 의견은 결국 같이 살자는 메시지예요.
송인수 대표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조사한 결과를 들려주며 김대식 저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과학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60%의 학생이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반면 ‘과학이 재밌어서’라고 대답한 학생의 비율은 9%에 그쳤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고의 존재 이유가 ‘과학 영재의 육성’이 아닌 ‘공과대학 예비 입학생의 육성’에 있다는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고를 졸업한 후 공과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낄까. 송인수 대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회의적이었다. 과학고를 다니면서 이미 공과대학 2학년 교육 과정에 준하는 내용들을 학습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 후 오히려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를 들어 송인수 대표는 과학고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좌)『공부논쟁』저자 김두식 교수 (우) 송인수 대표
사교육은 학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공부 논쟁』의 저자인 두 사람은 형제이면서도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아 보인다. 형은 이과를 선택했으나 동생은 문과를 선택했고, 형은 개과천선형 천재였고 동생은 타고난 모범생이었다. 동생은 가까운 사람과의 충돌은 최대한 피하려 노력했으나 형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상대가 누구든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정치적인 성향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형은 동생의 오른쪽에, 동생은 형의 왼쪽에 서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충돌’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임경선 : 『공부 논쟁』은 진보 혹은 보수로 대표되는 형제가 나눈 대화의 기록이잖아요. 그런데 양극화된 가치관 속에서도 나름의 중간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 부분이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두식 교수님께서도 『공부 논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진영에 갇히는 순간 생각의 동력의 잃게 된다’고요.
김두식 :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한 사람이 가진 진보성, 보수성이라는 것이 굉장히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거고요. 늘 같은 편하고만 어울리다 보면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게 돼요. 그러면 마음속에 안전장치 없이 얘기를 던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죠.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것 같아요. 보수는 보수끼리만 놀고 진보는 진보끼리만 놀다 보니까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거예요. 같은 편끼리 있다 보면 위험한 음모론이나 근거 없는 얘기들이 계속 확산돼요. 그러다 보면 자기 진영끼리 놀다가 자기 진영이 자멸하는 일이 반복되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공부 논쟁』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공부 논쟁』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스펙 쌓기와 취업에 목을 매는 학생과 학부모만 탓하지 마라. 명문대에만 들어가면 사회적 성공이 보장된다는 무책임한 생각, 재능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일찌감치 망가뜨리는 교육이 문제다”. 맞는 말이다. 청소년기에는 대학입시를 위해, 대학생이 되어서는 취업을 위해, 오늘도 학원가를 떠나지 못하는 많은 청춘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저 자식 잘 되라고, 남들보다 더 많이 주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은 주고 싶다고, 희생을 견뎌내며 그들의 뒤에 서있는 부모에게도 잘못은 없다. 지금 이대로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단 하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임경선 :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를 둔 엄마예요. 그런데 학교에 가 보니까, 벌써부터 초등학교 1학년 엄마들도 그룹들을 형성하면서 정보를 교환하더라고요. 그 그룹 안에 들어가야 할지에 대해서 저도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그곳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하나, 궁금해지더라고요.
송인수 : 그럴 때 부모에게는 그러한 그룹에서 이탈하는 데 대한 공포심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아이가 초기의 경쟁 대열에서 빠지면 안 된다’는 공포심도 있어요. 사회가 설정한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려면 대열에서 낙오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루저로 키우면 안 되겠다’는 불안감이 그 대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힘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아이들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루저로 낙인찍히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른바 ‘상류 일자리’라는 것의 기준을 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부모도 여유가 생기고 열아홉 살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생각도 버릴 수 있어요.
송인수 대표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공포에 대해 말했다. 실패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주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전히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나 없이도 아이가 사람대접 받으면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고민 끝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사교육’을 찾는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줘야만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는 것이다. 송인수 대표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과연 지금의 사교육은 실제 생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서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실제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며, 그 인식이 우리 고민의 출발점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 아닌 부모의 게임?
『공부 논쟁』 저자 강연회의 후반부는 독자들과의 대화로 채워졌다. 학생과 학부모, 대학생, 교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독자들이 모여 ‘진짜 공부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그들이 나눈 대화의 한 페이지를 소개한다.
과학고에서 근무 중인 교사입니다. 『공부 논쟁』에서 번아웃에 대해 읽으면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염려스러웠습니다. 일시적으로 번아웃이 되었다가 다시 우수성이 부각되는 경우도 있나요?
김두식 : 『공부 논쟁』은 과학고 또는 특목고에 입학한 이후에 그 앞에 놓인 난관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훌륭한 학자가 되고 싶다면 잘못된 주변의 기대와 생각들을 극복해야 된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식 : 과학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이미 번아웃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고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는 ‘번아웃을 조심해라’라는 말인 것 같아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창의적인 액션을 취하겠죠. 그 결과 앞으로 더 뻗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의 메시지는 일반고와 과학고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학고 친구들도 자극을 받게 되겠죠. ‘저 아이들이 너보다 못한 게 아니다. 너희들의 경쟁자이고,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더 큰 에너지가 있다. 그러니 경계하고 협력하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자’ 라고 이야기 해야죠. 하지만 저는 과학고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지금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전체 국가 경쟁력의 측면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예요. 집현전에서부터 시작된 엘리트주의가 바이러스처럼 작용해서 전체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죽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입니다. 모든 멘토들이 목표와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김두식 :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정말 비슷해지더라고요.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아이나 못했던 아이나 비슷해요. 수입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데, 세상 모든 일에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게 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만 했던 애들도 분명히 얻는 게 있고 그만큼 잃는 게 있어요. 고등학생한테 꿈과 목표를 얘기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도 계속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는 것만큼 애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임경선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고등학교 때 꿈과 목표를 얘기하는 건 그냥 상상의 즐거움 때문에 하는 거죠. 그것이 정말 목적 지향적으로 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송인수 : 꿈이라는 게 고정적인 게 아니라 계속 바뀌어가는 것이거든요. 꿈이라는 건 일종의 장난감인데, 하나의 장난감을 10년 동안 가지고 노는 아이는 없어요.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꿈이 있죠. 다만 그것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는 엄마가 기대하는 꿈이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꿈이든 좋다고 허용해주면 아이들 안에는 언제든지 꿈이 있어요. 그것이 한 달짜리 꿈이거나 1년짜리 꿈일 수도 있죠.
사범대 학생입니다. 저는 입시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교육은 바로 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논쟁』에서 학력고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수능 체제가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 보자고 하시면서, 입학사정관제를 염두에 두고 비판을 하셨는데요. 저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다고 할 때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행되고 보니 부모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 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입시문제 해결방법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두식 : 입시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다루기는 쉽지 않아요. 입시문제에 대한 논의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입시가 너무 복잡해서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차라리 학력고사가 낫겠다’는 얘기를 시작한 것도 아이들의 입시를 겪으면서 ‘이건 미친 거 아닌가, 어떻게 대학을 가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입시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을 단순화하는 일인 것 같아요.
송인수 : 입학사정관제가 소위 강남 혹은 기득권층을 위한 전형이라고 오해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통계를 보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서 대학에 입학한 저소득층 학생들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까 이 전형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기득권층이나 보수 언론에서 계속 폄하하는 거예요. 저는 이 전형이 확대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복잡한 지금의 방식을 단순화시키는 과제는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두식 : 그 통계는 어떤 학교들을 대상으로 집계된 건가요?
송인수 :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모든 학교의 입학생을 조사한 거예요.
김두식 :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목표로 삼는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결과는 달라질 것 같아요. 전체 대학을 조사했을 때와는 또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 제 또래들이 자녀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많은 사례를 보거든요.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입학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 일에 손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아이의 미래가 걸린 일이잖아요. 입학사정관제의 구조는 결국에는 부모가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 사이에 능력을 겨루게 되는 부분은 명백하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또래들이 한창 자녀들 입시를 치르는 시기라 그런지 변호사, 판검사, 의사, 교수 하는 친구들이 그런 불평들을 해요. 여름 내내 자기 애 자기소개서 써주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개입의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아이가 최선의 자기소개서를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손 놓고 있을 부모는 없어요. 자기소개서 쓰는 시기가 한창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애는 공부하라고 시키고 부모가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입시가 사실상 부모들의 게임이 되고 만 거죠. (『공부 논쟁』218쪽)
- 공부 논쟁 김대식, 김두식 공저| 창비
괴짜 과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가 작정하고 다루는 주제는 똑똑한 제자를 유학 보내는 교수들의 심리부터 재능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망가뜨리는 교육 현실, 특목고 네트워크의 폐혜까지 전방위적이다. 형제는 불합리하고 무책임한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그 원인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엘리트집단의 기득권 지키기, 스펙 쌓기와 취업에 목을 매는 학부모, 15세에 인생을 결정짓는 교육 구조와 대학의 서열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교육과 기회의 평등이 무너지고 있는 한국사회 공부 현장을 날것 그대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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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김민희
201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