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 스스로가 근사하게 느껴지나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의적 예단인지 모르겠지만, 자신 있게 YES라고 할 수 있는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심리학적으로 아침, 눈을 떴을 때 드는 첫 느낌이 감성 시스템의 가장 솔직한 표현이라고 하니, 지금 당신의 상태, 감정(심리)상태가 어떤지 각자가 진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잠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가. 짜증이 늘고 때로 화가 치미나. 주말이면 집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는가. 그리고 다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번아웃(Burnout)증후군, 즉 탈진(소진) 증후군의 붉은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번아웃, 말 그대로 감정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고, 감정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다.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면 의욕도, 자신감도 떨어지고, 성취감을 느낄 수 없으며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떨어진다고 한다.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위인 나라, 최근의 한 조사결과 근로자의 80%가까이가 만성피로를 느끼는 나라,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어려서부터 학원 돌림에 시달리는 나라이니,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않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출간된 『마음성공』의 저자인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흔히 사람들은 피곤하면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쉬는데, 그렇게 해서는 절대 뇌의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뇌의 피로를 풀고, 감정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뇌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현재에 몰입하고, 자연으로 나가고, 취미 활동을 하고, 놀고, 문화를 즐겨야 한다.” 윤교수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시시하다고 하지만 이 평범한 것을 하루에 몇 분이라도 꾸준히 해보면 놀랄만한 변화가 생긴다고 했다.
서문이 좀, 아니 너무 길었지만, 머리를 얼마나 썼던지, 일을 끝내고도 머릿속이 윙윙 거릴 때, 말 그대로 녹초가 됐을 때, 프레데릭 망소의 그림책 『나무를 그리는 사람』은 진짜 뇌를 어루만져주고, 즐겁게 해 준다. (물론 자연으로 직접 나가, 나무 아래 길을 걷는 것, 자연 속에서 자연에 집중하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며 걷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이 그림책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가로 250mm, 세로 320mm의 큰 판형의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는다. 커다랗게 펼쳐진 나무와 숲의 그림에, 나도 모르게 큰 호흡을 하게 된다.
그림책은 종이가 아닌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 프레데릭 망소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야기는 자신의 친구인 뤽 자케 감독의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원스 어폰 어 포레스트'(2013)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국내에선 개봉되지 않아, 환경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현지에서 개봉당시 30만명을 동원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림책의 주인공 프랑시스 아저씨는 매일 종이와 연필을 들고 거대한 숲으로 간다.
“흠 좋다!”
향긋한 꽃향기와 구수한 열매 냄새, 축축하고 따뜻한 흙냄새에 기분이 아주 상쾌해진 프랑시스는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집 앞 왼쪽, 숲속으로 이어지는 바다 포도나무와 케이포수, 망고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따라, 아저씨는 성큼성큼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저씨는 비스듬히 누운 마호가니 나무의, 땅 뒤로 드러난 뿌리를 밟고 줄기로 올라가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붉은 무화과나무를 더 그리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좀 먼 곳에 있는 무화과 나무 앞으로 가서 무화과 나무를 그린다. 무화과 나무를 그리고 나니 모아비 나무를 그려넣고 싶어, 이번에는 풍선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 모아비 나무를 내려다 본다.
이 행복한 순간. 숲속에서 요란한 불도저 소리, 절단기 소리가 울리고 숲에선 까만 연기가 피어오른다. 열기구에 타고 있던 아저씨도 정신을 잃고, 숲 속으로 떨어진다. 깨어난 아저씨는 숲의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모아비 나무는 강인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고, 자기 뿐 아니라 숲 전체를 다시 살려낸다. 아저씨는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숲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리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집을 나올 때 아내가 부탁한 바케트를 사들고 말이다.
프레데릭 망소는 실제로 다큐멘터리 촬영지인 아프리카 가봉으로 건너가 책 주인공인 파란시스 알레를 만났다고 한다. 거대하게 하늘을 향해 뻗은 어마어마한 두께의 나무들, 초록, 연두 나뭇잎, 붉고 노랗게 타오는 꽃들…. 이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찬 숲의 그림은 생동감 넘치게 꿈틀거리면서도, 오묘하게 평온감을 준다.
책장을 넘기며 주인공 프랑시스를 따라가며,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뿌리에 걸터앉아보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 그림을 그려보고, 풍선열기구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 숲을 한 눈에 내려다보길. 할 일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할 많은 감정들,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이 다져지고 다져져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마음, 반대로 이들로 팽팽하게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긴장된 마음, 그 한 구석에서 피식하고, 시원하면서도 조용하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날 것이다. 편안한 압력과 긴장이 적당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같이 보면 좋은 책
장 지오노 글/프레데릭 백 그림/햇살과나무꾼 역 | 두레아이들
숭고한 노력으로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가 아름답고 거대한 숲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이야기이다. 소설가 장지오노가 1953년 발표한 작품을 세계적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바크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책에 실린 그림은 프레데릭 바크가 애니메이션 그림 중 소설의 내용에 맞는 것을 뽑아 다시 손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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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 세계에 매료됐다. 그림책 『불할아버지』 어린이책 『알고 싶은 게 많은 꼬마 궁금이』 『1가지 이야기 100가지 상식』 등을 썼고,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을 공저로 출간했다. 현재 문화일보 문화부에서 영화와 어린이ㆍ청소년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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