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 스틸컷
<스타 워즈>와 <스타 트렉>. 한국에서 <스타 트렉>은 인기가 많지 않지만 <스타 워즈>는 누구나 안다. 하지만 1978년 <스타 워즈>가 개봉하여 인기를 끌었음에도 <제국의 역습>은 개봉하지 않았다. 악이 승리한다는 이상한 이유 때문이었다. <스타 트렉>은 극장판이 거의 개봉도 하지 못하다가 J.J. 에이브럼스가 리부트한 <스타 트렉:더 비기닝>이 개봉을 했지만 미진했다. <스타트렉:다크니스>가 개봉을 앞뒀을 때, 처음에는 ‘스타 트렉’을 뺀 <다크니스>라는 제목만으로 홍보를 했다. <스타 트렉>이라 붙여봐야 흥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차라리 새로운 SF영화로 보이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에서 SF는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다만 영화에서 SF ‘액션’물을 제외하고.
그런데 <스타 워즈>와 <스타 트렉>도 정통 SF라고는 하지 않는다. SF, Science Fiction은 과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소설을 말한다. 현재의 과학 기술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거나, 상상력을 통하여 새로운 기술적 발전과 진화된 사회를 그려내는 것 등을 말한다. 1926년 SF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를 창간했고, 현대적인 SF소설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랄프 124C41 』(아이디어회관 문고에는 『27세기 발명왕』으로 번역된)를 쓴 작가 휴고 건즈백은 SF에 대해 ‘쥘 베르느, H.G. 웰즈, 에드거 앨런 포 스타일의 이야기....과학적인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융합된 매력적인 로망스.’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로망스’는 소설 형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스타 워즈>와 <스타 트렉>은 어떤가. <스타 워즈>는 우주의 어딘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구체적인 시공간은 드러나지 않는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전설이나 민담 비슷하기도 하다. <스타 트렉>의 배경은 23세기이고, 우주 멀리 탐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과학적 상상력에 기초했다기보다는, 신대륙을 개척하고 낯선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서양인의 근대를 흥미롭게 우주 모험담으로 재구성한 느낌이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 소설을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른다. 중세의 기사담, 서부극을 우주로 무대를 옮겼다고나 할까. 최초의 스페이스 오페라인 『화성의 존 카터』를 비롯하여 『플래시 고든』 『버크 로저스』 등이 초기의 스페이스 오페라다.
<어메이징 스토리> , <사이언스 앤 인벤션> ,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 등 20세기 초반의 펄프 잡지에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많이 실렸다. 펄프 잡지의 성격 자체가 대중적인 오락을 위한 것이었다. 킬링 타임을 위해서 활극을 즐기고, 에로틱한 환상을 충족시키는 것. SF 장르의 시작부터 스페이스 오페라는 함께 했고, SF의 하위 장르로서 스페이스 오페라가 존재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이름 자체에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1940년대에 SF팬이자 작가인 윌슨 터커가 처음 쓴 용어로 알려져 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낮 시간에 방영되는 드라마에서는 사랑과 불륜, 배신 같은 통속적인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한국으로 치면 <인어 아가씨>, <아내의 유혹> 같은 일일극과 주말극이다. 이런 통속 드라마들에 광고를 내는 곳이 주로 비누회사였기 때문에 ‘소프 오페라’(Sosp Opera)라고 조롱했다. 마찬가지로 서부를 배경으로 적당히 총 쏘고 말 달리는 드라마는 ‘호스 오페라’라고 했다. 그러니까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극인 것이고.
영화 <스타트랙> 스틸컷
『타잔』을 썼던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가 1912년에 발표한 『화성의 존 카터』는 남북 전쟁에 참전했던 존 카터가 동굴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나니, 화성에 간 것으로 시작된다. 적색인과 녹색인으로 갈려 끝없는 전쟁이 이어지는 화성에서 존 카터는 그들의 전쟁에 휘말리고 영웅이 된다. 어떻게 화성으로 갔는지, 화성에 어떻게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등의 과학적인 추론은 전혀 없다. 그저 화성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 있는 기묘한 생명체들과 싸우면서 영웅이 되는 모험담이다. 기사가 용과 싸우거나, 신화 속 인물이 지옥이나 낯선 세계에서 괴물들과 싸우는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단지 우주가 나올 뿐이지 판타지라 하는 것이 더 좋을 정도다. 화성이 아니라 다른 세계라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페이스 오페라가 처음 시작할 때의 그런 이야기만 답습한 것은 아니다. 1960년대의 뉴웨이브 운동을 거치면서, SF는 전통적인 형식 속에 새로운 생각, 비전을 추가한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형식이지만, 그 안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양하고 독창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도 시도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SF의 모든 것을 시도한 작가였고,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도 『파운데이션』이라는 대작을 만들어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영감을 받아 쓴 『파운데이션』은 거대한 은하제국의 흥망성쇠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과학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 사회의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를 ‘사회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도 비슷하다.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치열한 전쟁 속에서, 제국의 황제가 되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동맹군의 명장 양 웬리라는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를 펼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탁월한 필력으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30세기의 우주를 배경으로, 기형적이고 왜소한 몸으로 태어난 마일즈가 어떻게 장애를 극복하며 성장하는지 보여준다. 그밖에 이언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래리 니븐의 『링월드』 등이 스페이스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힌다.(『링월드』는 하드 SF의 걸작으로도 꼽힌다.)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장되었다. <스타 워즈>는 일본문화를 좋아한 조지 루카스가 동양의 ‘기(氣)’를 변형한 포스를 중요한 키워드로 집어넣었고, <스타 트렉>은 파일 형태로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 같은 커뮤니케이터로 대화를 하는 등 지금은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학기술에 대해 과학적인 예견을 했다. 또한 1966년에 처음 시작한 <스타 트렉>은 탐험대의 구성에 흑인, 외계인 등 다양한 인종을 포함시킨,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시도를 했다. 최근의 걸작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 <파이어플라이> 등은 활극인 동시에 전통적인 SF로 감상해도 큰 무리가 없다.
무한한 우주 어딘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은, 마음대로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런 이점으로 허황된 이야기도 얼마든지 전개할 수 있고 동시에 가상의 설정을 통해 인간의 모든 것을 다른 방식으로 짚어볼 수 있었다. 『파운데이션』 『마일즈의 전쟁』 『은하영웅전설』은 그렇게 우리들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다수는 우주에 있는 행성 국가 간의 조화와 갈등을 다루기 때문에 전쟁이 등장하면서 밀리터리 SF로 나아가는 경우도 꽤 있다.
결국은 어딘가에 강조점을 두는가에 의해 하위 장르가 나뉠 뿐이고,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엄연한 SF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SF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독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서구에서 대중에게 SF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것도 결국은 <스타 워즈>의 대성공 덕분이었다. 정통에서는 조금 빗나가더라도 재미있고, 과학은 아니어도 SF의 본질이라 할 경이감(Sense of wonder)'을 주는 스페이스 오페라 또한 충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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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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