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드는 사람인 나는 멕시코 치아파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룬다. 한국에서는 사회적기업 행복한나눔이 수입한다. 행복한나눔의 제품 중에는 ‘공기 좋은 치아파스의 맛있는 커피’가 있다. 간결하고 예쁜 캐릭터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이달우 디자이너가 ‘재능기부’한 작품이다. 10만 원짜리 백화점상품권 한 번 받은 이 재능기부는 그의 디자인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어줬다. 차세대 디자인리더로 선정됐고, 이후 다양하고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디자이너 이달우’의 이름이 좀 더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독립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그에겐 공정무역 커피가 좋은 인연이 된 것이다. 지난 8월 7일, 서울 장충동 디자인하우스에서 이달우 디자이너는 치아파스 커피와의 인연을 그렇게 소개했다. 이달우 디자이너 등을 비롯해 디자이너들의 독립을 다룬 『디자인스튜디오 독립기』 출간기념으로 열린 독자와의 만남. 차세대 디자인리더 이달우의 달변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모았다.
오직 디자인을 하고 싶었던 남자
이달우 디자이너, 시골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몇 차례 이야기를 들었다. “내려와서 준공무원 해라.”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무척 디자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디자인스튜디오를 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직장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던 중 2007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마음티(Maum TEA)’를 선보였다. 티백에 캐릭터를 입힌 제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냥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좋았다. 마음티로 수익이 있었지만, 그것을 회사로 돌렸다. 그렇게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어 다양한 콜라보(협업)가 이어졌다. 루시드 폴, 이석원(언니네이발관), 이지형 등의 가수 캐릭터로 만든 티백도 인기를 끌고, 직접 인디레이블 회사를 찾아다니며 앨범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선보인 ‘티백’ 시리즈는 해외 디자인 회사가 표절할 만큼 인가를 끌었다. 다양한 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국내외 전시에서 초대가 쏟아졌다. 회사 일보다 개인 작업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 ‘나만의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절로 생길 수밖에.”( 『디자인스튜디오 독립기』56쪽)
그러다가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나왔다. 마음스튜디오를 세웠다. 독립은 쉽지 않았다. 디자인스튜디오의 자립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기업 등과의 미팅은 많았으나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를 살 돈이 없어서 친구가 대신 사주기도 했을 정도로 그의 상황을 열악했었다. 자신에게 있는 핵심콘텐츠가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으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청년창업에 나서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무실과 활동비가 지원되는 청년창업 지원사업에 응모했다. 첫 시도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심기일전. 다음번에는 절실함으로 어필하면서 창업 지원을 받게 됐다. 마음티백을 갖고 해외 전시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판로 개척에도 나섰다. 호응은 나쁘지 않았다. 동키 프로젝트의 티백 디자인 ‘티 파티(Tea Party)’시리즈는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디자인등록에 소홀했던 바람에 해외에서 이를 카피하는 등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내 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깨달음을 통해 디자인 등록에도 신경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쨌든 동키 프로젝트로 인해 더욱 많이 알려지면서 기업의 프로모션용 콜라보 제품을 개발했다. 2009년 디자인올림픽을 통해 SKT와 협업을 통해 가로수길 팝업스토어에 제품이 들어가기도 했다. 명동 멀티미디어 스튜디어의 공간 인테리어도 그의 손을 거쳤다. N타워 시리즈도 거쳤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했다. 좌충우돌 창업 초기였다.
“당시 개인스튜디오였는데 회계 장부 처리도 못하고, 스튜디오 2~3년은 굉장히 힘들었다. 2년 전부터 라이센스 이야기가 나와서 국내 디자인 등록을 했다. 마음티백은 티젠 마음티 라이센스로 다섯 가지 차를 선보이고 있다. 티백은 내가 즐거워서 시작을 했는데, 앞으로 새터민과 협력해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재능기부가 만들어준 기회
SKT와의 일이 끝나고 한국야쿠르트에서 캐릭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와서 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 즈음 기아대책(행복한나눔)에서 연락이 왔다. 그에게 재능기부를 부탁했다.
“디자이너로서 재능기부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좋은 의도이며 시민단체 입장에서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말이다. 그런데 간사들과 이야기하다보니 공정무역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 재능기부 요청을 받아들였다. 멕시코를 상상하면서 캐릭터를 그렸다. 산의 모습도 멕시코 느낌이 나게 그리고(웃음). 무엇보다 이 일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뿌듯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당시라고 일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재능기부가 알려지면서 신문에 나왔고, 차세대 디자인리더로 선정됐다. 기사를 보고 피죤에서 연락이 왔다. ‘보쥴’이라는 어린이 로고를 리뉴얼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기한은 일주일. 처음엔 그 시간으로는 못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5일 만에 마무리했다. 피죤에서 이를 좋게 봤는지, 전체 리뉴얼 경쟁입찰에 참여해보라고 권했다. 제일기획 등 쟁쟁한 곳에서 입찰에 참가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뽑혔다.
“다른 곳에서는 트렌드 중심으로 얘기를 했는데, 나는 철학은 트렌드가 아니라며 용기 디자인을 했다. 그것이 주효해서 낙찰을 받았다. 계약을 하고 일하면서 아트디렉터(디자인 전략팀장)로 입사를 권유하더라. 아트디렉터 비용 1억 6천만 원에 월 200만 원씩 급여가 주어지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았다. 피죤이 여러 문제에 휩쓸리면서 불똥이 그에게도 튀었다. 반기로 한 돈의 반만 받았으며 결국 회사를 떠났다. 더 큰 불똥은 그렇게 일하는 와중에 자신의 스튜디오에 충분한 신경을 쓰지 못하자 일감이 없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가는 것밖에 없겠구나. 다시는 경쟁 입찰에 들어가지 않겠다. 역시 인생은 호사다마였다.
“이 가뭄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유행에 따른 아이템을 추구해서 사업을 변경하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핵심콘텐츠의 차별화와 인내였다. 다시 돌아와서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아닌 사람을 쫓을 것
위기와 기회는 반복됐다. 천호균 쌈지농부 회장을 만났다. 피죤 이전에 쌈지농부에 디자인을 제안한 바 있었으나, 당시에는 채택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달우 디자이너의 작품을 눈여겨봤던 천 회장은 그에게 디자인 실장을 의뢰했다. 몇 번 고사를 했으나 결국 디자인 실장 자리를 맡았다. 농사를 디자인으로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리틀 파머스’라는 브랜드와 딸기 디자인실장을 겸임했다.
송도의 ‘딸기 키즈 뮤지엄’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를 통해 인테리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영역을 확장했다. 콘셉트는 생활에서 길어 올렸다. 당시 그의 어린 아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아빠가 할 수 있는 말로 채웠다. 딸기를 재밌게 활용하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그가 딸기 키즈 뮤지엄을 디자인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네 살 된 아들 상민이다. 상민이가 좋아하는 것, 상민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상민이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을 딸기 키즈 뮤지엄 구석구석에 녹여냈다.”( 『디자인스튜디오 독립기』57쪽)
“이때부터 포텐이 터졌다(웃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아이와 부모가 교감할 수 있도록 뮤지엄을 채웠다.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면서 딸기(회사)가 아닌 내가 한 것으로 이것을 인식했다. 회사와 나의 시너지가 발휘된 경우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손 대고 코 푸는 자리는 아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회사를 나왔고 다시 마음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자체 브랜드가 절실했다. 그래서 ‘NBAG(엔백)’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엔트러사이트와 협업해서 커피가방을 만들었고, 안경, 명함 케이스 등을 만들었다. 또 딸기 키즈 뮤지엄에 왔었던 한 의사가 작업을 좋게 봐서 그에게 키즈 카페 같은 소아과 병원 인테리어를 의뢰했다. 병원 공간을 흥미롭게 꾸몄다.
“엔백(NBAG). 특정 브랜드와 협업한 가방을 시리즈로 선보이는데, 상수동 커피 전문점 엔트러사이트, 수제 안경 브랜드 사가와후지이와 함께 진행했다. 브랜드 특색에 맞게 휴대용 컵받침, 안경 케이스가 각각 포함됐다. 기자를 위한 가방, 아이 엄마를 위한 가방도 준비 중이다.”( 『 디자인스튜디오 독립기』69쪽)
“5년 차 정도가 되니까 소문이 나고 클라이언트가 달라졌다. DDP 앞의 어린이 놀이공간도 만들었고, 카페도 작업했다. 지금 188평에 이르는 오라클 사무실도 만들고 있다. 뽀로로 키지 카페도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탄생하게끔 리뉴얼을 맡았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내실을 다지는 스튜디오로 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약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무리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싶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큰 차이는 약속이고,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더라.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인데,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다. 돈을 쫓지 말고 사람을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회사에 다니면서 독립을 진행하는 것이 나을지, 회사를 나와 스튜디오를 차리는 것이 나을까?
내 주변에도 디자인스튜디오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많다. 그러나 모두가 스튜디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꿈꾸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지 아닌지 우선 알아야 한다. 지금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면 굳이 스튜디오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경우, 스튜디오를 하면서 사람을 뽑는 게 가장 무서웠다. 월급도 줘야 하고. 스튜디오를 놓고 가장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구체화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 스튜디오를 하라고 말하긴 어렵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스튜디오를 하건 그렇지 않건,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보는데, 회사가 주로 관공서 관련 업무를 많이 하는데, 나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한 디자인을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나의 롤 모델이 ‘멜랑꼴리 판타스틱 스튜디오 리타’의 김재화 씨다. 디자이너는 열려 있으면서도 편협한 직업군이라고 생각한다. 김재화 씨는 서울이 아닌 지역의 대학을 나왔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서브로 한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스튜디오를 차린 경우다. 그게 자연스럽다. 관공서 일은 나도 하고 있는데, 변화의 수용 폭을 좁게 하려고 한다. 요즘은 관공서에 일하는 사람들도 과거보다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눈도 뜨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까다롭든 헐렁하든 합의점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인가에 따라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되 말을 들어줘서 좋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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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독립기 김태경,임나리 공저 | 디자인하우스
『디자인 스튜디오 독립기』는 1인 스튜디오부터 조직적인 20인 이상의 스튜디오까지 독립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유명한 11개 디자인 스튜디오 ‘사장님 디자이너’들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어떻게 스튜디오를 내기로 결심하게 되었는지부터, 창업 자금은 얼마였고 어떻게 마련했는지, 사업 계획서는 어떻게 쓰는지 등 소소하지만 독립된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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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