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서울 대학로 한 공연장에 내걸린 ‘대한민국 지성사 최고의 프로젝트’라는 카피는 허풍이 아니었다. 2005년 11월 출간된 『대담』은 그야말로 담대한 프로젝트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두 지성 도정일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국립생태원장)가 장기간 토론을 나눴다. 2001년부터 2004년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 『대담』이었다. 당시 이것은 책의 판매 부수와는 무관하게 한국 사회에 큰 화제가 됐고, 영향을 줬다. 당시 두 지성의 만남은 ‘통섭’을 사회적 언어로 정착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두 지성이 『대담』 출간 후 9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날 휴머니스트 출판사 주최로 열린 2014 인문학콘서트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에서 재회한 것. 무려 3천명이 신청한 이 행사에 독자들은 발 디딜 틈 없이 자리를 채웠다. 아마도 지성이 결여된 사회 혹은 지성에 대한 혐오를 미덕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진짜 지성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감에서였으리라.
두 지성은 『대담』에 대한 소회로부터 얘기를 꺼냈다. 도정일 교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없이 교육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다”며 “너희는 거룩하여라”라는 성경에 나온 말부터 꺼냈다. 그는 기독교도가 아니라면서도 이 말을 꺼낸 것은 인간이 사는 사회가 좀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갖고 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신들의 대화가 이런 사회를 밀어붙이는데 일조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재천 교수는 “『대담』은 통섭의 개념과 필요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라며 감성에 젖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전했다. 물론 대담 준비를 위해 오랜만에 책을 봤더니 그 사이 폭삭 늙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도 교수도 변화가 있었다. 그새 담배를 끊었다. 악화된 건강 때문이었다.
이날 사회는 장대익 교수가 맡아 ‘급변하는 현실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왜,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주제로 두 지성과 말을 섞었다.
지성사 입장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왜 만나야 할까?
최재천 : 통섭 강의를 할 때, 진리의 존재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진리가 우리가 만들어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줄까?”라고 묻는다. 진리는 형체도 없이 모든 현상에 걸쳐 있을 텐데, 학문의 구분은 편의상 만든 거잖나.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어서 쪼개서 할 뿐이다.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다. 방법론적으로 모든 것을 펼쳐놓고 할 것이냐, 각개격파를 한 뒤 모을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
도정일 :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통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질문하는 생물은 아직까지는 인간밖에 없다. 인간의 기원과 현재 모습, 방향과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 없이 우리의 생존은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둘째, 세계는 문제투성이다. 문명의 지속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관심거리다. 문명이 대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은 꼭 필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통섭이고, 융합일까?
도정일 :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이라는 말을 만든 원흉이다(웃음). 윌슨의 예를 들어보겠다. 그의 저서인 『지구의 정복자』는 문제도 있지만, 노학자다운 영감을 던져준다. 세 가지 화두를 던지고 답하는 형식이다. 질문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Where do we come from)? 우리는 무엇인가(What are we)?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are we going)? 등이다.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이다. 인문학이 수천 년 동안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윌슨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을 이 질문을 통해 하고자 한 것이라고 본다.
최재천 :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이라고 하셨는데, 자연과학도 질문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과학이 기술과 공학의 시녀가 되는 바람에 과학기술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면서 과학은 기술의 형용사로 바뀌었다. 자연과학도 원래 질문하는 학문이며 답을 내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한 집안이다. 그래서 오늘도 만남이 아니라 재회다(웃음).
도정일 : 다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질문은 다르다. 자연과학은 답이 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인문학은 답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큰 질문을 던진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자연과학은 빅뱅 등 답을 내놨다. 인문학은 빅뱅은 왜 일어났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것에 자연과학은 질문하지 않는다.
최재천 : 자연과학에서 묻는 질문은 두 가지다. 하우(how) 퀘스천, 와이(why) 퀘스천. 내가 몸담은 진화생물학에서는 와이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자연과학이 와이를 묻지 않는다고 하면 섭섭하다(웃음).
7~8년 전, MIT의 인지로봇을 만드는 랩에 있을 때 깜짝 놀랐다. 랩에서 연사를 초청하는데, 우리나라라면 기계공학, 컴퓨터사이언스, 재료공학 등을 초대하겠지만, MIT는 심리학자, 철학자, 언어학자 등을 연사로 초대하더라. 융합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최재천 : 우리가 생각하는 융합의 폭이 너무 좁다.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지가 문제다. 우리나라는 문과, 이과의 장벽이 특히 심하다. 담을 넘지 않으면 새로운 창조를 하기 어렵다.
도정일 : 인문학도를 뽑는 회사가 점점 늘고 있다. 통섭이 학문 세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 경제 문제 등에서도 통섭과 융합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와 있다. 촘스키가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결코 흉내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기계는 상징 언어를 쓸 줄 모른다. 랭보의 「축제」라는 詩가 있다. “나는 바위를 먹는다/ 나는 바람을 먹는다/ 나는 흙을 먹는다(…)” 대부분 공학도들은 미친놈이라고 말하겠지만, 인문학의 상상력이나 상징 언어의 용법을 안다면 말이 된다며 이해할 것이다.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다닌다는 얘기다. 굶주림의 상태를 바위, 바람, 흙을 먹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올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리메이크됐다. 어떻게 봤나?
도정일 : 『코스모스』야말로 통섭이다. 칼 세이건이 우주과학자여서 우주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코스모스』를 보면 인문학이 있고, 역사가 있다.
최재천 : 인류 문명에서 자연과학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있는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읽히는 책이 『총, 균, 쇠』인데,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원래 생리학자이자 의과대 교수였다. 휴가 때마다 뉴기니에 가서 새를 관찰했다. 생태학, 진화생물학을 거쳐 요즘은 UCLA에서 지리학과 교수를 하고 있다. 총(무기), 균(질병), 쇠(금속)를 통해 인류 역사를 꿰뚫는 것, 이런 것이 통섭이지.
지금 대학은 사교장으로만 존재할 뿐 무용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최재천 : 2006년, 서울대에서 이화여대로 옮기면서 70세까지 정년을 보장 받았는데, 얼마 전부터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대학교수는 예전 은사로 모셨던 대학교수가 있던 시절과 다르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지금 직업훈련소가 됐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학이 과연 직장을 제대로 얻어주는 곳인지 물으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평생 몇 번을 직업이나 직장을 바꾸며 살아야 하는데, 지금 대학은 첫 직장 외에는 챙기지 못한다. 그것만 봐도 지금 대학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재미가 없다.
도정일 : 대학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건물, 잔디밭 등을 가진 대학은 짧으면 20년, 길게 잡으면 50년 후 소멸할 것이다. 아주 상징적인 대학만 빼고. 지식의 수명이 굉장히 짧아졌다. 그러면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운 대학에 가야 하나? 아니다. 지식의 생산과 전파의 양상이 달라졌다. 대학들은 이런 것에 대비해야 한다. 대학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호텔로 바꿔야 한다. 물류 창고로 바꾸던가(웃음).
최재천 : 암울하지만, 대학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본다. 지식은 산재해 있다. 그 지식을 습득해서 갖고 다닐 이유는 없다.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배우는 것이 교육이고, 그런 교육은 모여서 해야 한다. 또 하나, 직업을 대여섯 번 바꿔야 한다면, 대학은 평생 A/S를 해야 한다.
도정일 : 대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 교육은 본성상 지식의 전수, 습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토론과 질문이 최상의 방책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강의는 지식 습득에는 중요하지만, 토론과 질문에서는 젬병이다. 탈무드는 ‘위대한 교육은 언제 발생하는가’라고 물었다. 위대한 스승 앞에 앉았을 때 발생한다고 탈무드는 답했다. 습득한 지식을 어떻게 갈무리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발전시키고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통섭이나 융합의 방식이다.
초중고 교육부터 일반인 평생교육까지, 21세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역할을 듣고 싶다.
최재천 : 문과?이과 통합을 십 수 년 전부터 울부짖고 살았다(웃음). 미루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다. 그런데 통합 과정이 너무 한심하다. 어렵다는 이유로 이과 수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합이 이뤄지고 있는데, 문과?이과 통합의 핵심은 이과 중심의 통합이다. 그런데 이과 과목은 빼주겠다? 아니다. 이과 공부를 하기 위해서 통합하는 것이다. 엄밀하게는 이과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과학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10~20대 초반에 과학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는 힘들다.
도정일 : 맞다. 과학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조선시대 과학의 씨앗이 뿌려지다가 멈추면서 과학의 결핍이 큰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쉬운 것이다. 과학 교육은 삶의 현장에서 어릴 때부터 실시해야 한다. 과학 교육을 일찍 해야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다만 과학만능주의로 빠지면 안 된다. 과학적 지식만이 유일한 지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과학주의의 최고 권위자가 리처드 도킨스다. 그가 쓴 글을 보면 한심한 이야기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취할 수 없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최재천 : 과학만능주의는 옳지 않다. 그것에 빠진 사람 중에 업적을 크게 남긴 사람은 별로 없다. 과학에 대해 워낙 모르는 사회를 흔들고 싶었던 도킨스의 취지는 이해하나, 과학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말하는 과학은 별로 새겨들을 것이 없다. 위대한 과학자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다. 새로운 질문이 나오고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지성들에게 묻고, 지성들이 답하다
자연과학도로서 인문학이 삶을 풍성하게 해줌을 알았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자연과학을 알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정일 :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몸에 붙인 나쁜 버릇들이 많다. 호전성, 그릇된 관습,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맹신 등 이런 것들은 버려야 할 습성이다. 과학 하는 태도로 이런 나쁜 버릇을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 발 붙여선 안 될 것들도 있다.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 광신, 맹목적인 국가주의 등이다. 이것들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인문학도는 어떻게 하면 자연과학을 접할 수 있을까?
최재천 : 자연과학을 백그라운드로 갖고 있는 사람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춰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나, 거꾸로는 쉽지 않다. 자연과학은 입문과정이 쉽지 않고, 돌을 쌓듯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중등교육 과정에서 자연과학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개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셈이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문과이과 통합이 이과 중심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주장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리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기획독서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싶다. 취미독서의 반대말이다. 취미도 좋지만 내가 부족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과학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 두면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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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도정일, 최재천 저 | 휴머니스트
‘대한민국 지식 사회의 열린 횡적 소통’이라는 개념으로 기획된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 (휴먼아이티:HIT, Human Interlogue Terminal)의 1차 완결판.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테마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벌인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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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앙ㅋ
2015.02.15
맞는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