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사람들] 서점에 가면 책들이 소리지르는 것 같아요
<채널예스>에서 대한민국 출판계를 이끌고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2편은 디자인하우스 출판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김희정 디자이너입니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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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책의 얼굴이다. 얼굴이 예쁘면 눈이 한 번 더 가고, 선뜻 책을 집게 된다. 예쁜 얼굴을 가졌다고 모두 좋은 책이라는 법은 없지만, 첫인상이 좋지 못하면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어쩌면 독자와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저자가 아닌, 북 디자이너일 수도 있다. ‘사고 싶은’ 책, ‘책장에 꽂아 놓고 싶은 책’을 만드는 김희정 디자인하우스 아트 디렉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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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정 아트 디렉터  사진_ 디자인하우스 김동오

 

최소의 가공과 최소의 디자인으로 오래 갈 수 있는 책을 만든다

 

디자인하우스 출판부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김희정 아트 디렉터는 1년에 20여 권의 책을 디자인한다. 표지는 물론, 내지, 포스터, 웹 광고 등 넓은 범위의 디자인에 관여하고 있다. 디자이너의 하루는 보통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전에는 메일 체크, 웹 서핑, 미팅 등을 하고 단행본 디자인 작업은 주로 오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최근에 가도쿠라 타니아의 글에서 ‘루틴’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일의 리듬을 살리는데 중요한 습관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머릿속으로 하루의 할 일을 시간대별로 정리해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들이 많지만, 중요한 일이죠.”

 

김희정 디자이너는 그래픽디자인회사에서 9년간 일하다가 선배의 소개로 디자인하우스 출판부에서 책을 만들게 됐다. ‘북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특별한 결심은 없었다. 여러 가지 디자인 제작물을 접하면서 인쇄물에 대한 매력을 느낄 때쯤, 기회가 생겼다.

 

“지금 하는 업무를 딱히 북 디자인이라고 한정 짓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메인은 북 디자인이지만 책을 만들고 판매, 유통하는 일련의 디자인 작업을 수행해야 하니까요. 예를 들면 포스터도 만들고 POP도 만들어야 하니까요. 디자이너를 중국집 요리사에 비유하자면 자장면은 기본이고 주문에 따라서는 짬뽕과 탕수육도 만들어야 하잖아요. 북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에요.”

 

최근 디자인하우스에서 출간한 책들을 보면 디자인의 통일성이 느껴진다. 예술, 실용서를 주로 펴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간결한 레이아웃으로 직관적인 멋을 살렸다. 『우리 집 어떻게 지을까?』, 『내 집, 내 취향대로』, 『건축가가 사는 집』, 『건축 만담』 등을 보면 김희정 디자이너의 담백한 취향과 감각이 엿보인다. 김희정 디자이너가 가장 최근에 작업한 책은 ‘칼슘두유’ 윤소연 PD의 『인테리어 원 북』이다. 제목을 영문으로 하고 표지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핑크색을 썼는데 독자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테리어 원 북』은 출간 1달 반 만에 6쇄를 찍었다.

 

“사실 작업하면서는 큰 기대를 못했어요. 대부분의 인테리어 책들이 여러 집을 소개하는 반면, 『인테리어 원 북』은 한 집만 소개하거든요. 저자의 힘도 있었을 거고 ‘독자들이 이런 책을 원하는구나’ 생각했죠.”

 

지금까지 만든 책 중에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책은 2012년에 출간된 샌드위치 레시피를 담은 『아이 엠 샌드위치』다. 저자, 편집자, 포토그래퍼와의 호흡이 좋아 즐겁게 만든 책이다.

 

“제목 아이디어도 직접 냈고 촬영부터 레시피까지 모든 과정이 재밌었어요. 보통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의견을 내거든요. 『아이 엠 샌드위치』의 경우에는 저자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간섭이 많이 적었어요. 내지 같은 경우에는 기본에 충실하게 담백한 레이아웃으로 작업했고 서체도 두 개 이상 사용하지 말자는 원칙으로 작업했어요. 표지 디자인도 요리 실용서에서 쓰지 않았던 포맷을 사용해서 색다른 느낌을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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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정 아트 디렉터가 디자인한 책들    사진_ 디자인하우스 김동오

 

“캘리그라피가 한창 유행이었을 때는 서점에 가면 다 표지가 캘리그라피였어요. 제목 위에는 에폭시를 씌우고. 사실 이건 디자이너, 편집자 욕심이지 에폭시를 씌운 표지는 여름이 되면 쩍쩍 달라붙어요. 유통에는 안 좋죠. 종종 물류창고에 갈 때가 있는데 그런 책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요. 저희는 요즘 표지에 모래무늬 코팅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일단 가격이 싸고 책이 상하지 않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형압도 하고 띠지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사실 낭비거든요. 창고에 가보면 띠지는 다 구겨져 있고 몇 번을 다시 갈아야 해요. 디자이너로 오래 살아 남으려면 후가공, 유통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희정 디자이너는 “최소의 가공과 최소의 디자인으로 오래 갈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북디자인의 지향점으로 생각한다. 기획부터 물류까지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함께하는 이유다.

 

“책은 생명력이 길잖아요. 출간되고 몇 십 년이 지나 새로운 독자를 만날 수 있는데, 어느 시대에 마주쳤어도 촌스럽지 않아 보이려면 너무 유행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양장을 하는 책들도 많은데 책값을 비싸게 만드는 과포장이죠. 가끔 긴 판형의 책도 나오는데, 누구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실용성도 염두에 둬야죠.”

 

김희정 디자이너는 베스트셀러에 욕심을 내기보다 좋은 콘텐츠를 책으로 묶어낸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매번 다른 내용의 텍스트를 다루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는 점은 북디자인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주변 간섭이 너무 많은 책을 진행하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각자 자신의 업무 분장에 충실한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능률도 높고 만족감도 커요. 저자는 콘텐츠의 깊이에 대해 집중하고, 편집자는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하고, 디자이너는 작은 부분의 만듦새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요. 각자의 영역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만드는 책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로서 책을 만나기 위해 서점에 가보면, “책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는 김희정 디자이너. 화려한 표지와 띠지, 알록달록한 POP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서로 다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자극적인 띠지와 화려한 타이포를 보고 있으면 너무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이라는 물성은 좀 차분해야 하는데, 다들 나 좀 봐달라면서 소리지르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서점 인테리어를 한다면, 회색이나 무채색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어요. 그래야 책이 오히려 더 튀어 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띠지가 셀링 포인트라고 말하는데, 이해가 안 가요. 요즘은 표지 겉에 자켓을 또 한 번 두르는데, 그것도 그냥 멋이죠.”

 

점점 책을 사서 보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중고 책 시장이 커지면서 책의 순환이 빨라지고 있지만, 책의 고유한 가치가 잊히는 것 같아 출판계 종사자로서 씁쓸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저조차도 많은 양의 책을 사지 않아요. 하지만 꼭 갖고 싶은 책은 사요. 독자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갖고 싶은, 필요한 책을 만들면 분명히 수요는 있다고 보기 때문에 출판계 전망을 어둡게만 보진 않아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책이 가진 물성을 좋아하고 책을 소장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김희정 아트 디렉터가 뽑은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 BEST 3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 저/주은정 역 | 디자인하우스

미술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여 년에 걸쳐 데이비드 호크니와 만나 대화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에요. 작업하면서도 즐거웠던 책이에요.

 

 

 

 

 

 

 

 

 

동사의 맛

김정선 저 | 유유

20여 년간 교정자로 일한 저자가 헷갈리는 동사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재미난 책이에요. 한 번에 쭉읽는 것보다는 몇 장씩 보는 게 읽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유유 출판사의 책들이 디자인이 좋아 눈여겨 보고 있어요.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

가도쿠라 타니아,요시야 케이코,니시무라 레이코,요시카와 치아키,이여림 공저/송혜진 역

제목에 맘에 들어 보게 된 책이에요. 4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섯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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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디렉터 #표지 #출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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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라

2015.06.05

최소의 디자인으로 오래 가는 책을 만든다는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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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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