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주인공은 나이 쉰을 넘긴 평범한 은행 경비원 조나단 노엘 씨다. 그의 일상은 첫 문장에서 이미 암시하듯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조나단 역시 그런 단조로움을 즐기고 있으며, 그렇게 어떠한 심각한 일도 벌어지지 않는 삶을 좋아했다.
“문이나 가끔 열어주거나, 지점장의 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등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휴가도 조금 받고,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도, 월급의 대부분은 세금이니, 임대료니, 사회 보장 보험 분담금 등으로 흔적도 없이 뺏기며 인생의 3분의 1을 은행 앞에 서서 허송하는 일”(61쪽)이 바로 조나단이 여태 해왔던 일이다. 게다가 이제 몇 개월만 있으면 은행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입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정말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여유로운 일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지난 20여 년은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왔다. 그러나 운명의 1984년 8월의 그날, 조나단의 이런 소소한 희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대사건’이 터졌다. 그의 앞에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비둘기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언제나 은행 앞에 서 있기만 하는 경비원 역시 스핑크스와 마찬가지로 그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다. 규정상 은행에 꼭 있어야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역할이 조나단에게 맡겨진 임무다. 심지어 은행 강도라 할지라도 이 늙은 경비를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조나단 역시 달려드는 강도를 향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 나약한 한 인간은 오케스트라 한쪽에 늘 존재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러나 단원들 중에서 가장 큰 악기를 가지고 있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와 다를 게 없다.
그런 그에게 오늘 아침엔 비둘기가 나타나서 자신을 위협한 것이다. 그의 존재를 위협했다. 조나단은 아침에 비둘기 사건을 겪고 나서 자신이 지금껏 일궈온 ‘안정’이라는 목표가 흔들리고 있는 걸 깨닫는다. 오랫동안 사막에 서 있었던 스핑크스는 언젠가는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5천 년의 세월을 보낸 돌 스핑크스처럼 사그라지고, 피폐해지고, 열에 찌들고, 부서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아 완전히 말라비틀어지고, 전소하고, 오그라들고, 부서져서 마치 먼지나 재처럼 가루가 되어, 거기 그가 그렇게 힘겹게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한 무더기 쓰레기로 소복이 떨어져 있다가, 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거나, 청소부가 비질을 하거나, 비라도 오면 그제야 마침내 그곳에서 멀리 날아가 버리게 되리라는 상상이 되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마감될 것 같았다.”(90-91쪽)
조나단은 삶의 후배들에게 인정받고, 은퇴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다가 오랫동안 사용하던 익숙한 침대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런 인생을 위해 크고 작은 삶의 관계맺음을 거부해왔다. 관계는 결국 생활을 복잡하게 만들고 골치 아픈 일들을 생겨나게 할 뿐이다. 그런 그의 앞에 느닷없이 비둘기가 나타났다. 조나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비둘기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일궈온 안정과 평온을 파괴하는 행동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조나단은, “평생토록 착실했고, 단정했고, 욕심도 안 냈고, 거의 금욕주의자에 가까웠고, 깨끗했고, 언제나 시간을 잘 지켰고, 복종했고, 신뢰를 쌓았고, 예의도 잘 지키며 살아왔건만…… 그리고 단 한 푼이라도 스스로 일해서 벌었고, 전기세나 임대료나 관리인에게 주는 성탄절 보너스도 언제나 제때 꼬박꼬박 현금으로 지불했으며…… 빚이라고는 진 적이 없고, 남에게 폐를 끼친 일도 없고, 병에 걸렸던 적도 없고, 사회 보장 기관에 신세를 진적도 없고……. 언제 그 누구에게라도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일생 동안 마음이 평안한 작은 공간을 갖는 것 말고는 절대로, 결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건만”(66-67쪽) 지금은 심지어 자신보다 훨씬 자유로운 영혼인 것처럼 보이는 거지의 용변을 앞에 두고 달팽이 모양 빵을 먹고 있다. 이건 지금까지 어렵게 살아온 조나단에게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가 ‘안정의 추구’라고 믿으며 해왔던 일이란, 실제로는 도시라는 시스템에 완전히 들어맞는 부품이 되는 것이었다. “조나단 노엘이라고 불리는 꼭두각시 인간 기계”(93쪽)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대신 갖고 나온 짐을 들고 근처 호텔로 향한다. 숙소는 그가 살던 집보다 훨씬 작아서 “방의 모양새가 말하자면 관 같았다.”(98쪽) 이야기의 첫 문장에서 벌써 예고했듯이 이제 조나단에게는 “죽음이 아니고는 그 어떤 심각한 일도 결코 일어날 수가 없으리라”(99쪽)는 생각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퇴근할 때 가게에서 사온 정어리와 빵, 레몬, 포도주를 탁자에 풀어놓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저녁식사를 했다. 조나단은 “그것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식사가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99쪽)에 최대한 천천히, 좋은 맛을 음미하려고 노력하면서 음식을 먹었다. 비록 가게에서 사온 통조림이지만 너무나도 맛이 좋았다. 정어리를 다 먹고 남은 빵조각으로 정어리 통조림에 남은 기름까지 다 훑어 먹은 다음 후식으로 배와 치즈를 먹었는데, 그 역시 조나단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맛본 그 어떤 음식보다 훌륭했다.
“내일 자살해야지.”(101쪽)
조나단은 난생처음으로 경험한 훌륭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엔 날씨가 고약해서 천둥과 번개가 온 도시를 집어삼킬 듯 요란했다. 사정없이 퍼붓는 비는 비둘기나 거지처럼 조나단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아침이 왔을 때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고 죽음 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조나단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호텔을 나와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은 곳으로 향했다. 바로 어제까지 먹고, 자고, 생활했던 그의 집이다. 비둘기가 버티고 있는 바로 그 집이다. 복도에 여전히 비둘기 똥이 있을지도 모르는 바로 그 집이다. 간밤에 온 비 때문에 거리에는 물웅덩이가 많다. 평소의 조나단이라면 모든 물웅덩이를 피해갔으리라. 그러나 오늘 그는 “신발과 양말을 훌러덩 벗어 버리고 맨발로 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107쪽) 느꼈다. 대신 더욱 그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오히려 웅덩이를 찾아다니며 걸었고 거기 고여 있는 물을 발길로 차기도 했다. 신발과 바지가 다 젖고 튀긴 물은 가게 쇼윈도와 그 옆에 세워진 자동차에 튀기도 했지만 그는 이게
“정말 신나는 짓”(107쪽)이라고 생각했다. 호텔 문을 나설 때 이미 조나단은 마치 자유 속으로 걸어 나가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이뤄놓은 세계인 방 안이 진정한 자유와 안식, 평온의 공간이라고 믿었다. 그런 공간을, 달마다 주인에게 사용료를 내는 대신 큰돈을 들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계처럼 일하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조나단에게 방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유토피아였다. 오히려 그 문 너머에 있는 광장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타락한 땅이다. 그러나 최고의 저녁식사를 한 다음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 자살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한 조나단에게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삶이 시작되듯 새로운 자유를 선물해주었다. 여기서 독자들은 전날 밤 조나단이 말했던 자살이 사실은 신체의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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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서울 정릉. 작가 박경리가 살던 집 근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 태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시 정릉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부터 헌책방 주인이 되는 것을 꿈꿨지만 대학에선 컴퓨터를 전공했고 오랫동안 IT회사에서 일했다. 서른 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2007년에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활자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책 읽기 기준은 까다롭지 않아서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첫 문장과 깔끔한 마지막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도 절반의 성공이라 믿는다. 헌책방 일을 하는 틈틈이 여러 곳에 글을 쓰고 강연도 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심야책방》,《침대 밑의 책》,《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책이 좀 많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