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참, 힘겨웠다. 그러나 일단 읽히기 시작한 시집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모양새다. 박준 시인의 2012년 출간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야기다. 시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시인은 ‘제가 그리운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가상의 나’기도 하다고. 그런 물음표를 앞에 두고 시인은 시를 쓴다. 발신자가 되어,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 세상 수많은 수신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수신자가 있기에 감정과 시가 떠오르니 그 수신자는 시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자 시인의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고 시인은 말했다.
가장 비(非)건설적인 걸 하자
시집 출간일이 2012년 12월입니다. 다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일단 좋아요. 시는 방에서 혼자 쓰는 거지만 타인에게 읽힐 것이라 상정하고 쓰는 거잖아요. 제가 발신자라면 가상의 수신자가 있을 테죠. 그 수신자가 많아지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3년 동안 조용하다가 방송 한 번으로 이렇게 관심 받는 걸 생각하면 좀 씁쓸하죠. 출판과 문학의 인프라가 그만큼 줄었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방송으로 독자층이 넓어진 거잖아요. 시 독자에서 일반 독자로 넘어가는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고요. 그건 또 대중 매체가 하는 일이었다고 깨달았어요. 방송 아니어도 시 독자들은 신간이 뭐가 나왔는지 다 알고 있잖아요. 그 독자 말고 일반 대중 독자에게 전달하는 건 대중 매체가 하는 거라는 걸 말이에요.
시를 시작했을 때 ‘문학의 인프라’가 척박하단 건 아셨을 텐데 이런 서운함은 좀 새삼스럽기도 하네요.
물론 그렇죠. 시를 써서 큰돈을 벌거나 권력을 얻거나 유명해지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알고 하는 거잖아요. 서운함은 어디서 오느냐면요. 기대도 안한 것들이 생겨난 이후의 소외예요. 답변을 드리기가 어려운데요. 좋은 답을 드릴 수가 없는 게 굉장히 애매한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서운함도 있고, 정말 좋은 것도 있죠. 이런 관심이 부정한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다른 시인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이렇게라도 관심을 받으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까지 다 섞여서 ‘좋지만 씁쓸하다’ 이렇게밖에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축하 말을 많이 들었고요. 장난 섞인 비아냥의 말도 약간 들었어요.(웃음)
용기가 없어 시 쓴다는 인터뷰를 봤는데요. 이런 세상에 시를 쓴다는 것, 시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 시를 쓸 땐 단순히 선배 시인들이 멋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었는데요. 현실은 시를 써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시를 잘 써서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미래에 대한 보장이 아무것도 없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종의 패배의식을 늘 갖고 살았거든요. 공부도 별로 못하고, 잘하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가 무용(無用)한 일이기 때문에 확 끌리는 게 있었어요. 부모님도 한 번도 돈을 많이 벌어라, 훌륭한 사람이 돼라, 말씀하신 적이 없어서 정말 그런 것들을 꿈꾸지 않았거든요. 그 시기에 치기 비슷하게 빠지는 일탈, 비뚤어짐에 가장 좋은 게 시였어요. 가장 비(非)건설적인 걸 하자는 치기가 가득했거든요. 그때 선택한 것이 시예요. 세상은 자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로만 돌아가니까요. 깊은 철학은 없어도 느꼈던 것 같아요. 자꾸 돈이 되는 것만 하고, 그럴싸한 것만 하려고 하니까 나는 반대로 하자고요. 그렇게 치기로 시작한 거죠. 치기가 오기가 된 거고요.
시인으로서 뭔가 이루겠다는 포부 같은 게 시작단계에서는 없었던 건가요?
시인으로서는 있었죠. 그때 좋아했던 90년대 시인들, 함민복, 손택수, 김선우, 이런 분들보다 더 좋은 시를 쓰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또는 기형도보다 난해하고, 어려운, 좋은 시를 쓰겠다는 포부는 있었죠. 그 포부는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지만요. 그런 욕망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보다 먼저는 등단하고 싶은 욕망으로 지냈고요.
신기섭, 김광규
몇 명 시인을 언급하셨는데, 처음 본 시집은 무엇이었나요?
시기가 좀 다른데요. 양성우, 문병란, 김지하 이런 분들 시집을 윗집 형이 버렸어요. 책이란 버리면 안 될 물건처럼 생각이 들어 그 시집들을 갖고 왔죠. 뒤늦게 보니 그렇게 80년대 저항시인들의 시집을 봤던 거예요. 김정환 선생님의 시집도 있었고요. 이것들은 처음 봐서 강렬한 게 아니라 주워온 시집들을 못 버린 것이죠.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에요.
그 외에 처음 읽고 좋아한 시들을 생각해보면 뭐랄까, 맥락이 없어요. 동시다발적으로 하루에 몇 권 씩 읽었던 것 같아요. 문학 공부를 대학 가서 시작했으니 좋은 시 목록을 선배들에게 받아 그 시기에 한 번에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가방에 시집만 넣고 다녔어요. 하루에 30권 씩 들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한 권 씩 주고요.(웃음) 헌책방 가서 시집은 다 사왔어요. 어떤 시인이 유명한지, 어떤 계열의 시인지, 심지어 어떤 경향의 출판사인지도 몰랐어요. 밀린 한국 현대시를 학습하듯 특정 시기에 다 봤어요.
그렇게 만나 특별히 좋아하게 된 시인이 있나요?
신기섭 시인의 시집인데요. 유고시집이에요. 요절하셨죠. 그 시집이 하드커버인데요, 하드커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가방에 들고 다녔어요.(웃음) 손으로 봐서 하드커버가 없어질 수가 없거든요. 근데 정말 겉지가 벗겨지니까 종이가 다 떨어졌어요. 몸만 있는데, 그 정도로 갖고 다녔던 시집이에요. 김광규 시인의 문지에서 나온 시집도 있어요. 그분은 참 쉽게 쓰세요. 일상어들을 가지고요. 그 시집을 무척 좋아했는데 시는 이렇게 쉽게 써야지, 하는 생각을 그분 통해서 한 것 같아요. 시가 어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지금도 좋아하죠.
실용이 중요한 시대 분위기에서 시를 읽고 쓴다는 게 굉장히 독특한 일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다니 좀 놀랍네요.
그 지점이 좋았어요. 특별하다고 스스로 마취도 하고요. 글 쓸 때 개성 있는 글을 쓰라고 하잖아요. 시 쓸 때도 개성을 담으라 하죠. 처음에 시를 쓰려는데 선배가 개성 있는 시를 쓰래요. 전 개성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에요. 유행가 좋아하고, 영화 보는 눈도 없어서 추석 특집 영화 보고 그래요. 예술적 취향, 이런 게 하나도 없는데 무슨 개성이 있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태도로 삶에 대한 개성을 취한 것 같아요. 도움 되는 것 하지 말자, 생산적인 것 하지 말자, 비뚤어지자, 지자, 이기지 말자, 이런 것들이요. 그러니까 당연히 학점도 멀리하게 되고, 미래를 위한 생산적 활동도 다 멀리하게 됐죠. 시만 파고들었던 게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 거요.
언젠가 선택 해야겠다
마트 배달,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등의 경험이 있으신데 이것들이 시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 생각하세요?
너무 강렬한 경험은 시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거리 조절이 안 돼서요. 시에 소재적으로 들어오진 않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시에 사람에 대한 얘기가 많잖아요? 일하던 편의점이 노숙인들도 많고, 전투경찰도 많고, 윤락가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는 곳이었어요. 엄청 무섭죠.(웃음) 편의점도 그렇고, 마트 배달도 그렇고, 거기서 본 것들을 시의 소재로 바로 소비한다기보다 그냥 타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데이터로 쌓아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고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지금 저 위치에서 저 말을 내뱉을까 상상하게 될 테니까요.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걸 하기 위해 선택한 게 시라면 그럼에도 생활을 해야 하니 선택한 것들이 그런 경험들이군요.
부모님이 등록금을 안 주셔서요.(웃음) 입학금만 주셔서 일을 해야 했어요. 부모님은 교육도 많이 못 받으셨고, 평생 일만 하셨던 분들인데요. 뛰어봤자 벼룩이다, 이런 슬픈 사실들을 체득하셨는지 인생에 대해 터치를 안 하셨어요. 기대도 안 하시고, 반대도 안 하시고요. 시 쓴다고 하면 반대하는 부모님들 있을 수 있잖아요. 그냥 두셨어요. 어차피 잘 못살 거니까요.(웃음)
낮은 수준의 그 현실인식이라는 게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 준 것 같네요.
적어도 사기꾼은 되지 않을 거고요, 거짓말쟁이는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인식을 하고 살면 남에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잖아요. 남에게 미안할 줄 알고요. 좋은 태도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 균형 잡는 비법이 있나요?
일단 술(웃음) 도움을 받아요. 저한테 시간을 많이 주면 시 쓰는 감성으로 넘어갈 수 있죠. 여행을 3박 4일 정도라도 보내주면 가능해요. 편집자 일을 하니까 글자를 많이 봐야 하는데요. 그렇게 일을 하고 와서 시를 쓰려고 백지를 보면 ‘이게 뭐야?’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인, 생활인 마인드에서 시인 마인드로 넘어오려면 그냥 쓰자고 해서 쓰는 게 아닐 테죠.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건을 생각하는 눈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변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잘 못 쓰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시인들을 보면 다들 고전하고 있더라고요. 생활은 해야겠고, 마감은 해야 하는 그 사이에서 말이에요.
억울한 마음도 있죠. 언젠가 선택 해야겠다 생각해요. 남들처럼 먹는 거 먹고, 입는 거 입고, 타고 다니는 거 타고 살 것이냐 좋은 시를 쓸지는 모르겠지만 시만 쓸 것이냐 하는 선택을 언젠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은 아직 남 하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서 고민하고 시를 쓰려고 하고, 잘 못 쓰고 그렇게 있는 것 같아요.
시만 쓰는 시인이 없다는 건 좋은 신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시인은 그렇기 때문에 시가 자유로울 수 있다고도 했지만요.
소비를 아무리 줄여도 최저생계비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일찌감치 직장들을 잡고 시를 쓰시죠. 한편으로는 시가 대단한 것이 아니니까 시만 쓰며 살 필요 있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시가 ‘직업’은 아닐 테니까요. 무용한 것들을 끝까지 계발하면 그런 기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시를 써서 진짜 얻어지는 게 없다는 걸 오랫동안 겪으면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편해지는 느낌을 갖겠죠.
애매함과 어중간함
시가 어렵다, 고들 많이 하죠.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대부분의 독자 분들이 시에 대한 업데이트가 안 되셨어요. 정지용, 김소월, 서정주, 김춘수 같은 분들에서 업데이트가 끝났다면 지금 시는 어려울 수밖에 없거든요. 한때 시를 읽으셨던 분도 마찬가지고요. 일단 시를 이해하고 싶으시면 시기적인, 물리적인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몇 편의 시를 읽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컬렉션이 돼 있는 시인 중에 잘 고르시면 될 것 같아요. 음반 사러갈 때 ‘노래 들어야지’만 하고 안 가잖아요. 그런데 서점에 ‘시집 사야지’하고 가신단 말이에요. 굉장히 성긴 그물이죠. 젊은 시인, 여성 시인의 시 같은 정도의 분류도 없이 시집을 사러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장르를 고르셔도 좋겠죠. 거칠게 말해 낭만적인 시, 모던한 시, 리얼리즘 시, 이렇게 고르시는 방법도 있어요. 시는 미술, 음악 같은 범위잖아요. 그걸 구체화시켜 마음에 드는 시를 찾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는 정호승, 안도현 시는 꾸준히 읽는다, 이런 것만 하셔도 시가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시인 한두 명 정도는 향유하는 인생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게다가 그것이 자기와 동시대 시인이면 더 좋겠죠. 비슷한 생애주기를 살 거니까요. 그래서 본인이 더 이상 작은 글씨를 읽기 힘든 노안이 오면 그 시기의 시인들도 비슷한 생리적 현상을 겪으면서 비슷한 고민들을 써줄 테니(웃음) 큰 위안이 될 거예요.
그런 방법은 굉장히 재미있는 시 읽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수와 팬들이 같이 늙듯이, 그렇게요.
출간 3년이 지나서 시집이 새로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시인이 같은 세대 시인이라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중간함이 있는 것 같아요. 시적으로 성취를 이루려고, 목표하는 작업을 두고 그 작업에 도달하려고 시를 끝까지 밀고 가서 만족을 얻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쓰다가 수신자가 이해 못하면 어떡하나 해서 에둘러 쉽게 얘기하기도 해요. 또 너무 쉬워지면 어떡하지, 너무 대중적이면 어떡하지, 너무 슬프면 어떡하지, 너무 기쁘면 어떡하지, 고민하죠. 그렇게 어떤 특정한 하나의 위치에 속하지 않으려는 어중간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시를 처음 읽는 독자도 일부는 좋아하실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평론가처럼 한국 문학사를 다 꿰뚫고 있고 예술의 극단에 있는 시도 읽는 분들도 제 시를 폄하하지 않고 좋은 시라고 말해주시는 분이 계시고요. 뒤늦게 보니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지점들을 건드리는 게 제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다 제가 가진 애매함과 어중간함에서 오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방송에서 ‘사랑’이란 코드를 짚었는데 시에 그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박준이라는 시인에게도 일군의 독자들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세 번째 시집 정도까지 잘 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두 번째, 세 번째 시집까지 잘 내면, 독자 분들이 실망하지 않으면 저도 그렇게 고유 명사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이 이렇게 잘 팔릴 거라고 생각도 안 하고요. 그래서도 안 되겠죠. 다만 일차적인 시 독자, 문학 독자들이 좋아해주실 만한 시적 수준을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문학 작품들이 약간 공공재가 되는 느낌이기도 해요. 그러니 잘 써야죠. 잘 쓰면 잘 읽어주시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를 쓰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인가요?
행복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요. 좋은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엄청 행복해요. 이성으로 시를 가늠하고, 시의 수준을 판단하는 눈으로 봤을 때 일정 정도 이상의 시가 써졌고 마음에도 들면 정말 행복해요. 그 쾌감이 살면서 누리는 어떤 쾌감보다 큰 것 같아요. 길게 가진 않지만요. 발표하고 나면 후회되는 것도 있고, 쓴 다음 날 바로 후회할 수도 있고, 시집을 엮고 나서 후회할 수도 있지만 그 성취감과 쾌감은 정말 크죠. 이 쾌감이 끊임없이 향정신성의약품처럼(웃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치기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중독됐다고 할까요?
시인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세요?
이야기가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고, 쓰고 싶어요. 사람들은 어느 시대든 이야기에 대해 굉장히 목말라 하는데 이야기를 들을 곳이 없어요. 대화는 있어도 그게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부족한 이야기를 어디서 얻는지 생각해요. 소설, 특히 긴 분량의 소설은 많이 안 읽잖아요. 그런 것과 별개로 요즘 시가 다시 읽힐 수 있다면 긴 글을 읽지 않는 대중들에게 시라는 분량은 굉장히 매력적이죠. 저는 시가 몸집은 짧아도 긴 이야기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짧은 글 속에 아주 긴 이야기를 담아서 여운도 많이 담는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그것은 꼭 세대론의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요즘 시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 끝 등대 2」
마지막 수록 시 「세상 끝 등대 2」는 사진입니다.
사고로 먼저 떠난 누난데요. 원래 시집 디자인에 쓰는 걸 고려해달라고 하면서 보낸 사진이에요. 편집자께서 표지에 써준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에 넣은 거죠. 제게 동의를 구한 다음 생몰연도를 묻고 넣더라고요. 전 사실 시에 사진, 그림, 기호 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보통 안 하는 일인데 의견을 주셔서 넣었어요.
사진이 누나임이 밝혀지면 이게 재미가 없는 게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시에 있는 ‘미인’이나 ‘당신’이 누나로 읽히면 안 되는 시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시집 나오자마자 알려졌죠.
한 가지 이미지로 읽히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감정인가요?
너무 강렬하면 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여기는 슬픔도 있고, 사랑도 있고, 허무함 이런 것도 있는데 그것들이 친족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다 귀결될까봐 그게 무서운 거죠. 다른 건 없어요. 누나의 죽음 자체를 숨긴다거나 이용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숨길 거면 넣지도 않았겠죠.
그렇다면 이 사진은 시집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방금 부정했지만 절반 정도로 하면 좋겠네요. 절반 정도는 누나를 생각하며 쓴 시고, 절반은 아닌데요. 제가 등단하던 해에 누나의 사고가 있었어요. 그 전부터 당연히 시를 썼죠. 적어도 등단작들은 누나 사고 이전에 쓴 시들이니까요. 거기도 ‘미인’이란 말이 나오고요. 여하튼 그 이후에 쓴 시는 누나의 죽음이라는 영향 안에서 꾸준히 쓴 시니까 어떤 장면이든 다른 상상이든 누나의 영향을 크게 받은 거죠. 이렇게 시집으로 묶이게 해준 고마움도 있었고요. 과거를 이런 방식으로 재생해야 하는 슬픔도 있었어요. 어쨌든 한 권으로 털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같이 썼다’는 심경으로 넣기도 했어요. 헌시, 헌사 같은 것이죠. 누나가 만든 슬픔이니 누나가 가지고 가, 이런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 때문에 사진을 넣었어요. 혼자 쓴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시를 쓸 때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많이 나를 울린 사람이 누나더라고요. 어렸을 땐 맞느라 울었고, 싸우다 져서 분해서 울었고, 죽음 이후에는 슬퍼서 울었고요. 그러니 슬픔이란 감정의 가장 큰 주인공은 누나니 시집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시집은 조연쯤 하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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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저 | 문학동네
2008년 ‘젊은 시의 언어적 감수성과 현실적 확산 능력을 함께 갖췄다’는 평을 받으며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박준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엄숙주의에서 해방된 세대의 가능성은 시에서도 무한하다고 봐요”라 말한 바 있다. 모름지기 성장이란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깨닫는 것일 터, 이번 시집에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순간들에 대한 사유가 짙은 것은, 박준 시인의 깊어져가는 세계를 증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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