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일본의 어느 기업가가 8250만 달러를 지불하고 《가셰 박사의 초상》(Portret van Dr. Gachet)을 낙찰받는다. 당시까지의 미술품 경매로는 최고액이었다.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린 곳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고갱과 크게 싸운 후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자르고 병원에 입원했던 고흐는, 동생의 권유에 따라 네덜란드를 떠나 이곳에 정착한다. 1890년 5월 20일,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오베르는 매우 멋진 곳이야. 풍경을 열심히 그리면 이곳에서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이곳은 심각하게 멋지다.”
내가 버스를 타고 오베르에 도착한 그날은 날씨가 나빴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고 대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간단히 요기를 하고 라부 여인숙으로 향했다. 1층 레스토랑은 영업중이었다. 점심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두 시간, 저녁은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한 시간 반 동안 손님을 받는다. 고흐는 거의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여기에서 식사를 했다. 2층 여인숙은, 고흐가 머물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놓고 관람객을 받고 있다.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그가 머물던 손바닥만 한 방이 나온다. 하룻밤 숙박비 3.5프랑을 내고 침대 하나 들여놓기도 벅차 보이는 공간에서 그는 70일을 머물며 80점의 그림을 그렸다.
고흐가 죽기 직전까지 묵었던 라부 여인숙
<오베르의 노트르담 성당>,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고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림을 쏟아냈다. 단숨에,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그렸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무아몽중의 상태로 만들었을까. 오베르의 고즈넉한 풍경으로부터 받은 영감, 술을 절제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되찾은 활력이 이유였겠지만 가셰 박사와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테오가 형의 건강을 염려하여 소개한 가셰는, 의사이자 식견이 풍부한 미술 애호가였으며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고흐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취향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자주 식사를 하며 미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은 생각하지 말고 그림에 전념하라”고 권했던 가셰의 충고 덕분에 고흐의 건강도 점차 좋아지는 듯했다.
가셰박사의 초상 이미지 (출처_『고흐의 다락방』)
라부 여인숙에서 10분가량 걷다가 왼쪽으로 보이는 오베르 교회를 지나 오솔길을 올라가면 마을 공동묘지가 나온다. 그곳에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입구에서 왼쪽 담장을 쭉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몇 발자국 옮기면 그들의 자리가 나오지만 얼른 눈에 띄진 않았다. 두 사람의 묘비를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엉뚱하게도, 고흐의 석연치 않은 죽음 때문에 변변한 안내판 하나 만들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고흐가 동생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또 누군가는 고흐가 마그리트(가셰의 딸)와 특별한 관계가 되는 바람에 가셰 박사로부터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묘
이 대목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베르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고흐의 그림만큼이나 오래된 구조물 하나를 발견했다. 겉에서 보기에 그것은 더 이상 달릴 수 없어 버려진 기차처럼 보였다.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La caverne aux livre. 풀어쓰면 ‘동굴서점’쯤이 될까. 좁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을 때 펼쳐진 광경은, 아마 처음 마주한 이라면 누구라도 입을 벌리고 감탄했을 거라 생각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옛 책’들, 그 안쪽으로 책이 꽉 들어찬 객차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장르를 일일이 열거하는 게 무색할 만큼 종류는 다양했고 어림잡아도 수십만 권이 넘어 보였다. 이곳은 우편 화물열차와 편지를 분류하던 역을 개조하여 만든 중고서점이다.
우편 화물열차와 편지를 분류하던 역을 개조하여 만든 동굴서점의 외관/내부
대관절 어떻게 만들어진 서점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프랑스국제출판사무국의 이재희 씨에게 물었더니 몇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선 동굴서점이 만들어진 건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일이다. 전직 기자가 신문사를 때려 치고 직업상 받은 책들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들을 탈탈 털어 모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팔다가 마침내 오베르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가 다짜고짜 중고서점을 열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불알친구도 재미있겠다며 하던 일을 작파하고 합류했단다. 두 사람은 ‘서점 도서관 골동품 박물관’적인 컨셉으로 내부를 꾸몄고, 몇 년 전부터는 그(전직 기자)의 아들이 운영을 맡고 있다. 이 서점에 대한 《Le Parisien》의 2006년 1월 25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La caverne aux livre에 발을 딛는 순간,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몇 시간이고 서점의 책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오베르 역 근처에 자리 잡은 이 서점에는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10만 권의 책들이 있다. 고전부터 요리책까지 다른 책방에서는 살 수 없는 희귀한 책들도 물론 있다. 두 남자의 의해 만들어진 서점은 세월이 지나며 특이한 골동품상점처럼 되어 버렸다. 이 참신한 책방은 가장 큰 역량을 발휘한 정치인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던 책을 사기 위해 이 책방에 왔고, 희귀한 책을 찾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편지도 잊지 않았다.”
오베르 교회
고흐가 파리에 사는 테오(는 유명한 미술 화랑인 부쏘 발라동에서 화상으로 일했으며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았다)에게 부탁한 물감이며 화구가 도착한 곳이 현재 ‘동굴서점’이 있는 그 자리일 거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며칠간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 오르세 미술관 등을 비롯하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많은 명소들을 두루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오베르 교회와 ‘동굴서점’이다. 파리에 다녀 온 덕분에 좋은 추억이 생겼다. 만약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다면 좀 더 느긋하게 오베르를 구경해 보고 싶다. 참고로 ‘동굴서점’의 운영시간은 다음과 같다. 목요일~일요일, 11시부터 18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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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감귤
2016.04.08
iuiu22
2016.04.08
이 칼럼 읽으려고 요즘 예스.. 많이 들어오고 있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