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 칸과 새 앨범의 진가
교통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신부의 이야기라는 앨범의 콘셉트,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비애, 분노, 안정 등의 여러 감정들을 아티스트는 개개의 트랙에서 세밀하게 묘사한다.
글ㆍ사진 이즘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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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콘셉트를 잡아 곡들을 풀어나가는 작품 구성 방식에서부터 바로크 팝, 챔버 팝, 드림 팝, 신스 팝 등 각양각색의 장르들로부터 재료를 가져와 미니멀하게 디자인한 사운드,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보컬,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금세 어두운 곳으로 침잠해버리는, 감정 변이 폭 너른 멜로디 메이킹까지. 아티스트 고유의 컬러와 특징이 이번 앨범에서도 내용을 조직한다. 그렇기에 작품을 크게 본다면 사실 이렇다 할 독특함은 보이지 않는다. 디스코그래피를 되감아보자. 위와 같은 아티스트의 작법이 진하게 묻어나지 않는 전작이 없었고, 앨범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전작이 없었다. 나타샤 칸, 그러니까 뱃 포 래쉬스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 작가의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The Bride〉를 대단히 특별한 결과물로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The Bride〉는 분명 좋다. 나타샤 칸과 새 앨범의 진가는 디스코그래피 단위로부터 음반의 단위로 시야를 좁혀야 확연히 보이고, 다시 음반의 단위로부터 개별 트랙의 단위로 시야를 좁혀야 명료하게 잡힌다. 다채롭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화가이자 여러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아는 스토리텔러, 뛰어난 보컬 연기자인 나타샤 칸은 세부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한다. 교통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신부의 이야기라는 앨범의 콘셉트,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비애, 분노, 안정 등의 여러 감정들을 아티스트는 개개의 트랙에서 세밀하게 묘사한다. 나타샤 칸의 목소리와 아티스트가 주조해낸 주변의 사운드는 작중 내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따라가면서 달콤하게 행복을 속삭이기도 하고 처절하게 슬픔을 쏟아내기도 하며 격정적으로 고통을 늘여놓기도 한다.

 

사운드가 부유하는 공간 안에서 차분하고 달콤하게 행복을 속삭이는 「I do」, 큼지막한 베이스 소리와 촘촘하게 배열된 전자음이 긴장도를 높이는 「In god’s house」, 호흡을 빼앗는 변칙적인 드럼 비트 위에서 팔세토 보컬이 불안 섞인 비애를 가중시키는 「Honeymooning alone」, 흔들리는 스트링이 극적인 효과를 더하는 「Land’s end」 등을 주요한 결과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독과 괴로움의 정점에서 서늘한 분위기의 사운드를 배경에 두고 광기 어린 음성으로 읊조려대는 「Widow’s peak」은 또 어떠한가. 뚜렷한 서사와 폭 넓은 스타일을 바탕으로 나타샤 칸은 매 상황에서 일어나는 화자의 내적 상태를 멋지게 구체화한다. 덕분에 다채로운 이야기와 사운드의 존재라는 콘셉트 앨범의 강점도 또한 빛을 발한다. 풍성한 표현력이 각기 다른 감성과 각각의 독백에 어울리는 곡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여러 컬러가 공존하는 작품이 탄생했다.

 

낯설지 않다. 그러나 전과 같지도 않다. 나타샤 칸의 멋이 잘 살아있는 가운데서 전에는 만나본 적 없었던, 또 다른 이야기가 〈The Bride〉에서 펼쳐진다. 희노애락으로 휩싸인 온갖 단상을 써내고 이를 매혹적으로 노래한다. 마르지 않는 창작력이 이번에도 한 편의 영화 같은 음반을 만들어냈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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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 포 래쉬스 #Bat For Lashes #The Bride #나타샤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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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