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들은 근성이 참 좋아. 한 번 밭을 갈기 시작하면 끝을 보거든.
이런 고아로 인도 하겠소
그 여자가 ‘다음 목적지는 인도’라고 했을 때 늘 그렇듯이 미간부터 찌푸렸다. 나를 앞세워 이불 밖 세계를 여행하려는 그 여자의 속셈에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오는 반사 행동이다. 더욱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했던 인도는 바라나시 강가, Ganga (갠지스 강의 힌디어 발음)의 모습처럼 종교적인 이미지였고, 힌두교 나라에서 뭘 하려고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에 맞춰 가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매일매일을 특별하게 사는 우리는 그런 날을 특별하지 않게 보내는 것도 재미있는 일상이 될 테지만.
고아로 향하기 위해 먼저 델리에 들렀다. 여행자들의 거리로 유명한 ‘빠하르간지, Paharganj’는 내내 그려왔던 인도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저분한 거리 위에서 내 지갑을 노리는 사기꾼과 자동차와 사람이 서로 엉켜 위태로운 모습. 그리고 길을 점령하고 있는 소를 피하면 다시 찾아오는 지저분한 거리 위에서 내 지갑을 노리는 사기꾼. 마치 끊임없이 구르고 또 구르는 수레바퀴輪廻에 올라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악명 높은 인도 기차의 연착 또한 배신하지 않았다. 플랫폼을 걸으며 ‘그것 봐라. 내가 알고 있는 인도와 다른 것이 없어.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보내냐’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고아는 고아일 뿐 지금까지 경험한 인도와 공기부터 달랐다. 델리의 먼지 냄새와 달리 고아의 풀과 흙 내음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고아’는 인도 중서부에 위치한 주州이다. 1510년부터 쭉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1961년에 와서야 인도 정부에 편입되는데, 400년의 세월을 포르투갈 영향에서 살아서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와 사뭇 다르다. 주민의 많은 수가 가톨릭교를 믿으며 음주와 흡연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힌두교 나라임에도 주류와 담배 판매가 허용된다.
또한 이곳은 어찌 보면 한가롭고 달리 보면 나태한 히피들의 파라다이스이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있거나 빈둥빈둥하는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여행자로 지내는 우리의 모습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질감 없는 고아가 슬슬 좋아지려고 한다.
손가락도 꼼짝하지 않고 숨만 쉬면서 연말을 보내고 싶은데 그 여자는 나를 가만두지 못하고 바닷가로 내몰았다. 나라는 인간은 타고난 능력도 없는 주제에 근성마저 부족하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재주는 있으나 한 가지 일만을 하지 못하니 말 그대로 ‘엉덩이만 무겁다’. 그런 나보고 근성을 가지고 파도를 기다려야 하는 서핑을 배우라고?
하루하루,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는 것처럼 재미도 차곡차곡 쌓여야 취미도 되는 것이다. 한순간 재미가 붙을 리 없다. 하지만 파도를 기다리는 동안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꿈틀거림이 생겼다. 서핑 강습이 끝나고 입술이 퍼렇게 질려 돌아와서도 방바닥에 누워 노 젓는 연습을 했다. 그때의 마음은 뭐랄까. 해가 바뀌기 전에 제대로 파도 한번 타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내 인생에 한순간 정도는 근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도 괜찮은 순간이었다.
천성이 이런 나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불어 넣어주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게 다그치는 게 바로 그 여자다. 서핑도 그렇게 시작했다. 바닷물이 귀에 들어가면 아프니까 싫다는 나를 끌고 서핑 학원에 등록시켜 준 것도 그 여자이고, 매일매일 가기 싫다는 나를 방에서 내쫓은 것도 그녀이다. 물론 그 속내에는 나에게 가르쳐 놓고 뭘 하나 배워도 남들보다 배로 시간이 걸리는 자신만을 위한 특별 강사를 만들자는 속셈이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근성이라는 것을 심어준 사람이니 고마워해야 하나?
고아에서는 애나 어른이나, 인도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배를 깔고 눕는다.
고아는 고아일 뿐
고아는 고아일 뿐 인도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도에 다녀온 게 아닌 그저 ‘고아에 갔다’고 말한다.
델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5시간이나 연착하고 나서야 우리를 플랫폼에 내려놓았다. 다 쓰러져가는 열차는 이 정도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다시 몸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이 도시에서 ‘노 프라블럼’으로 대표되는 ‘인도다움’을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다.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가 우리를 반긴다. 어제 머물렀던 델리만 해도 호객 행위에 질려 앞만 보고 걸어 다녔는데 이곳은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걸까?
“여기도 인도야?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고 클럽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니! 우리 야자 열매 마시면서 한갓지게 연말을 보내다 가세.”
남자가 숙소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노 젓는 연습을 한다. 인도에 가면 ‘사기꾼들과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그였는데 방바닥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는 모양이 웃겨 한참이나 깔깔댔다. ‘저래서 어디 서핑 보드 위에 설 수나 있겠어.’ 남자의 근성을 한참이나 얕보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어깨가 아파 젓가락을 들 힘이 없어질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을 했다.
남자는 여행하면서 근성을 보여준 적이 없다. 2년 동안 ‘한 달에 한 도시’를 옮겨 다니려는 계획이 남자에 의해 여러 번 고비를 맞았다. 일주일마다 도시를 바꾸자고 했고, 굳이 한 달씩 채울 필요가 있느냐며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렸다. 계획한 여행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의지가 여러 번 흔들리면서 남자의 근성 없음을 탓했다. 내게 이 여행은 일상을 겨우 탈출해 얻은 소중한 기회였다.
고아에 온 대부분의 여행객이 밤 거리를 헤매며 흥청망청 술에 취해 혹은 약에 취해 클럽을 돌아다니며 불면의 밤을 보낸다. 연말 분위기에 온갖 소음이 절정을 이루었지만 그 남자는 고요히 페더링(파도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서핑보드 위에서 노 젓는 동작) 연습을 할 뿐이다. 남자가 어깨를 휘젓는 속도는 날이 갈수록 힘차고 빨라졌다. 파도 한가운데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자신을 떠올리며 모든 유혹을 뿌리쳐 가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고아를 떠나기 며칠 전, 남자는 함께 바다에 나가자고 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단단해진 팔뚝으로 2m 높이의 보드를 번쩍 들어 올렸다. 투지 혹은 오기라고 불릴 법한 눈빛이 남자에게서 보였다. 어쩌면 근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밤낮을 안 가리며 몰두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 그랬고 스케줄링을 하는데도 열심이었고 수영을 할 때도 그랬다. 그런 남자가 새롭게 서핑을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감히 그 남자를 ‘근성 없음’이라고 낙인을 찍으면 안 되는 거였다. 고아가 인도가 아니듯 그 남자도 늘 같은 그가 아닌데 말이다.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