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김나리 “여성들의 벽장 속에는 해골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는 여자들끼리도 너무 못나서 못하는 얘기잖아요. 너무 못나서 호명조차 안 되는 것들을 한 번 끄집어내보자 했던 결과죠. 저희 편집자가 보도자료에 ‘만일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듯이 그런 솔직한 말을 해보고 싶었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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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인연으로 두 여자가 만난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짧은 연애만 하다 서둘러 헤어지는 여자와 9년을 한 사람만, 그것도 관계의 회색지대에서 버텨온 여자가 늦은 밤마다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대화는 연애로 시작해 섹스, 가정폭력, 성폭력의 기억, 자존감, 우울, 일그러진 가족 관계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뻗어나간다. 솔직하고 도발적인 이야기, 고통으로 꽉 채운 이야기가 내내 불안하게 나부낀다.


무엇이었을까, 이들을 말하게 했던 힘은.


『육체 탐구 생활』, 『가장 사소한 구원』(공저) 등의 저자이자 여러 매체에서 예민하게 세상을 말해온 칼럼니스트 김현진은 이번 소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에서 “누구한테도 못했던 이야기를 완전한 타인한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종의 폭로전”이었다. 하찮다고, 사소하다고,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하는 ‘큰’ 목소리들 앞에서 내내 지워졌던 여성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고 했다.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의 두 저자 김현진과 김나리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말하길 바란다고 거듭 말했다. 말해도 된다고, 이런 이야기도 한다고 응원하기 위해 더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 보였다. 이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여성들에게 그 자체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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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자, 저런 여자의 이야기


무심코 책을 훑어보고는 오해를 좀 했어요. 작가 소개에 ‘페이지 터너’라는 말도 있고 해서요.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책장이 쉽게 안 넘어가던데요. 밀도가 있었어요.

 

김현진: 김나리 작가와 저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에요. 페이스북에서 알게 됐는데요. 저는 열린 결말 진짜 싫어하거든요. 꽉 닫아야 해요.(웃음) 반면 김나리 작가 글을 보면 굉장히 문학적이죠. 글을 정말 잘 쓴다, 나와 섞어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거의 삼 년 전부터 꼬드기고 꼬드겨서 함께 글을 쓰게 됐어요. 결론적으로는 둘이 적당히 잘 섞인 것 같아요. 저 혼자 썼으면 완전히 엽기였을 텐데 말이에요.

 

알던 사이가 아니었군요?


김현진: 친한 친구의 대학 동기예요. 엄청 가까운 사이는 아니죠. 그런데 페이스북에 쓴 글들과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감정을 쓴 글들을 보면서 이 친구는 나와 굉장히 반대구나, 생각했거든요. 속도는 느리지만 저보다 정교하고요. 그러면서 함께 작업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작업 제안을 받았을 때 김나리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김나리: ‘이게 소설이 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는데요. 내가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단상들을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균형이 잘 맞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이런 여자, 저런 여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처음에는 형식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그렇다면 이 형식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정말 잘 써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많았어요. 그래서 좀 머뭇거렸어요.

 

카톡 대화로 구성된 형태를 말씀하시는 거죠? 의구심은 다 해결이 되었나요?


김나리: 쓰면서 좀 해결이 된 것 같아요. 말 자체가 이야기가 되고, 그 사람이 내뱉은 말이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는 거라 이것을 독자가 신뢰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의심들은 쓰면서 오히려 해소되었어요. 말하자면 나를 내가 관찰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과잉될 수 있는 부분들도 이런 방식 안에서 잘 풀렸던 것 같아요.

 

공동 작업인데요.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요?


김나리: 단문으로 주고받은 대사들은 실제로 그렇게 바로 대화를 주고받았고요. 장문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는 원고를 주고받는 식으로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글의 호흡은 작품 속 시간과 비슷하게 진행되었어요.


김현진: 약간 롤플레잉, 실제 이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는 느낌으로 썼어요. 짧은 이야기는 바로 주고받고, 긴 이야기는 이메일로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김나리 작가는 직장인이라 낮에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 나중에는 원고 달라고 제가 독촉하기도 했죠.(웃음)

 

롤플레잉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수미가 누구인지, 민정이 누구인지 짐작이 되거든요. 인물과 작가가 꽤나 가까운 느낌인데요. 때문에 인물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나리: 살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단상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요. 어떤 상황을 만들어야 하기도 하지만 실제 내 이야기들이 좀 더 증폭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그런 두려움이 많았어요. 완전히 나의 일기 같이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그러면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공감 받지 못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있었어요. 글을 쓰는 중반까지는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이 책을 읽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 책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많이 있었죠. 그렇지만 책이 완성되고 나서는 그 두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들어가서 이야기를 쓸 때는 거리두기가 힘들었는데 완성된 후에 더 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캐릭터를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김현진: 제 얘기도 있고,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죠. 사실 쓰면서는 ‘이거 화자와의 거리 0cm 아냐?’(웃음) 하면서 걱정했었는데요. 저희가 결말을 가장 많이 썼거든요. 여러 버전으로 써보면서 주인공과 내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신하게 됐어요. 결말을 쓰면서 얘는 소설 캐릭터다, 라고 감정 정리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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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도 못했던 이야기


소설 구성이 독특하잖아요. 시작과 끝 부분은 기존 소설 형식을 그대로 따랐지만 대부분은 대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어요. 이건 처음부터 정해두고 작업한 건가요?


김현진: 네, 처음부터 ‘카톡소설’ 한 번 써보자고 했던 거예요. 아직까지 이런 건 아무도 안 해봤잖아요. 전혀 모르는 여자 둘이서 새벽에 ‘자니?’ 이러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면 되게 흥미롭지 않을까 했어요. 누구한테도 못했던 이야기를 완전한 타인한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죠.

 

애초에 한 구상과 다르게 진행된 부분도 있었겠죠?


김현진: 소설을 쓸 때 캐릭터가 알아서 간다고 하잖아요. 저희는 처음에 분명히 이 여자 둘이 아주 친한 친구가 될 거라고 예상했어요. 같이 술도 마시면서 친해질 거라 생각했는데요. 의외로 끝으로 가도 이 둘이 안 친해지더라고요. 그게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항상 제 이야기를 쓰니까 캐릭터가 움직이거나 이런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경험을 한 거죠.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대부분 밤이잖아요. 밤이라는 이미지와 대화 내용이 잘 어울리기도 해요.

 
김나리: 밤이 작품 안에서는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가 돌아오는 공간, 그 시간, 그때 말이에요. 나 혼자 생각하고 정돈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밤 같아요. 오히려 밤이 되어서야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때는 이미 혼자 있는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을 두드리는 이야기인 거죠.  

 

주인공들 이름 말인데요. 수미와 민정, 굉장히 흔한 이름이에요. 아주 가까운 이름이고, 이것이 이야기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해요. 실제로 이 사회의 여성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들이 정말 많거든요.


김현진: 제가 김민정 시인을 좋아하기도 하고요.(웃음) 그냥 정말 보통 여자들의 이름을 쓴 거예요. 지영이, 지혜, 이런 이름처럼 말이에요. 처음에 이름 이야기를 할 때 수미는 ‘숨이 막히게 살아, 숨이 막히게 연애를 해, 숨이 차’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김나리: 민정도 그랬어요. 우스개로 세상 남자들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웃음) ‘만정’이라고 할까도 했었죠. 좀 순화시켰어요.

 

주로 질문하는 사람은 민정이고 고백하는 쪽은 수미예요. 민정은 계속해서 묻거든요. 그 남자 어디가 좋냐, 어디가 모자라냐,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하고요. 무엇이 그렇게 질문하도록 만든 걸까요?


김현진: 주로 제가 민정 파트를 썼는데요. 그냥 진짜로 수미에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요. 소설을 쓴다기보다 편지를 교환하는 느낌이었죠.


김나리: 작품을 시작할 때 결말과 중간에 할 이야기, 아버지라든지 연애 이야기라든지 하룻밤 섹스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은 어렴풋이 생각해두고 시작한 건데요. 민정의 질문이 적절했던 건 항상 당장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적재적소에 물었다는 점이에요. 시간 간격을 두고, 곱씹은 뒤에 대답해도 어색하지 않을 질문들을 던져주었던 거죠.

 

공감해요. 질문이 거침없기는 하지만 가볍지 않거든요. 근본적인 물음이었으니까요.


김현진: 사는 곳이 워낙 멀어서 몇 번 안 만났는데요. 넣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카톡으로 대화 나누면서 그것을 적어두고 썼어요. 할 얘기가 많더라고요. 이를테면 거의 모든 여성들의 첫 경험은 준강간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다른 여자와 나눈다는 것, 그런 경험이 좋았죠. 저는 거의 에세이, 제 이야기만 쓰다가 소설을 썼잖아요. 캐릭터를 만들어서 캐릭터가 말하도록 하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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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작가의 말에서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라고 하지만 여성의 삶에는 ‘그런 일’이 있다고 했어요. 그 대목에 많이 공감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일을 서로 말하는 게 중요해요.


김현진: 세상에 ‘그런’ 여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니까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죠. 한 작가 분께서 ‘나쁜 아버지들이 딸을 어떻게 망치는가에 대해 잘 나와 있다’고 하셨어요. 작가의 말에서도 “‘그런 일’들이 여성들의 삶에는 억지로 닫은 서랍 속에서 금방이라도 삐져나오려고 하는 잡동사니처럼 가득 차 있다”고 썼는데요. 20대-30대 여성들이 실제 부딪치게 되는 것들을 그대로 쓰고 싶었어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것 같지만, 있거든요. 일종의 폭로전처럼 썼어요. 가시화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때론 왜 저런 연애를 하느냐, 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연애가 또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죠. 그 부분은 김나리 작가가 여리면서도 강한 캐릭터를 섬세하게 잘 표현해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메일을 받는 게 굉장히 기대가 됐었어요.


김나리: 저희 어머니께서 읽으시고는 다 네 얘기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앞으로 할 말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웃음) 좀 슬픈 마음도 들었죠. 어쨌든 비장하게 ‘오늘은 꼭 고백을 할 거야’ 라는 투가 아니라 무심히,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었거든요. 매일 하는 생각들이니까요. 다들 말하다 멈추고, 참고, 넘겼던 이야기들을 되도록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말하기가 중요한 건 청자가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나 기억을 정리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정체를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김현진: 라종일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인데요. 고통은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는 거였어요. 말하는 것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는 말씀이셨는데요. 그 말씀이 이 작업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리뷰를 보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내시더라고요. 다들 벽장 속에 해골이 있는데 아무도 그걸 가시화하지 않고, 호명을 안 해주니까 묻어두었던 거구나 생각했죠. 흔히 20대-30대 여자들이 굉장히 꽃 같이 살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쓰면서 깨닫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텐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새로 깨달은 것들이 있었나요?


김나리: 내가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것도 사랑이야, 라고 넘겨 짚어버린 지난 일들 같은 것은 선명히 떠올랐어요. 그건 나한테 나쁜 일이었지, 이런 식으로요. 나쁜 일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런 일을 외면하기 쉽잖아요. 쓰면서 오히려 차분하게, 그때처럼 격렬히 슬프지는 않지만 선명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나쁜 행동이었고, 그는 나한테 나쁜 사람이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걸 받아들여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 같은 게 생겼죠. 


김현진: 여자들이 자기 얘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검열을 굉장히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런 한계를 좀 해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여기까지 가도 되나, 싶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진행이 되더라고요. 저도 쓰면서 그것을 고통으로 인정 안 하다가 이건 고통이야, 하고 인정하게 되는 게 있었어요. 뭐랄까, 이런 이야기는 여자들끼리도 너무 못나서 못하는 얘기잖아요. 너무 못나서 호명조차 안 되는 것들을 한 번 끄집어내보자 했던 결과죠. 저희 편집자가 보도자료에 ‘만일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듯이 그런 솔직한 말을 해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두 분이 생각하는 사랑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작품 안에서 수미와 민정도 같은 듯 무척이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수미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현진: 저는 연애 간격이 짧은 편이라 9년이나 누구를 좋아하는 건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말 그런 궁금함으로 물어본 거예요. 사채 썼니?(웃음) 이러면서요. 누군가를 9년이나 좋아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 아닌지 그런 의심까지 들었죠. 대합실에 앉아서 차가 오면 갈 사람은 가는 식으로 생각을 했거든요. 전 아직까지 진정한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계속 물어본 거예요.


저는 쓰면서 제 사랑의 원형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연애를 길게 하지 못했던 면이 있구나, 새삼 깨달았죠. 원래 훨씬 더 쿨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됐어요.


김나리: 수미와 제가 겹치는 부분 같은데요. 수미는 열렬히 빠지지 않으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24시간 내내 열렬히 그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이죠. 자기 확신이나 자기애가 없기 때문에 빈 공간을 사랑의 열정으로 소진하려고 하고요. 끝내는 걸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요.

 

술이 필요한 이야기네요.(웃음)


김현진: 원고를 쓸 때는 술을 안 마셨는데요. 나중에 다시 보면서 왜 이렇게 술이 생각나는지 말이에요.(웃음) 이 책 읽고 술이 당긴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알코올이 많이 필요한 소설이라고요. 맞는 것 같아요. 푹 적셔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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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어디에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요즘 두 분을 지배하고 있는 질문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현진: 차기작 고민이요.(웃음) 초고 두 개를 출판사에 보내놓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너무 초조해서 어제도 술을 먹었어요. 그것도 여자들의 이야기예요. 찜질방 같은 곳에 모여서 ‘병신 올림픽’(웃음)을 하는, 그런 이야기요. 저는 계속 여자들에게 말을 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캐릭터에게 말을 하게 해주자, 이 캐릭터에게 이야기를 하게 해주자, 그런 생각으로 쓰고 있어요.

 

계속 소설 작업을 하시는군요? 

 
김현진: 네, 예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어째 자꾸 에세이로만 가게 됐었어요. 소설 쓰고 싶어서 문예창작과까지 갔는데 말이에요.(웃음) 사실은 등단을 하지 못해서 콤플렉스가 좀 있었는데요. 주변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등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계속 쓰는 놈이 이기는 거다, 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올 책은 또 나오고요. 저는 앞으로는 계속 소설을 쓰려고 해요.

 

김나리 작가님은 어떤가요?


김나리: 저는 수미 같은 연애를 끝내고 새로운 연애를 2년 째 하고 있는데요. 너무 열렬히 푹 빠져 있어서 계속 그 사람 생각뿐이에요. 지금의 마음을 많이 기록해두려고 해요. 매일 그 마음을 글로 쓰고 있어요. 사랑할 때 나오는 고통이나 슬픔 혹은 정말 날아갈 것 같은 마음, 전부 다 모조리 남김없이 써놓고 싶어요. 항상 그 사람이 질문이죠. 늘 신기하고요.

 

아마 민정의 목소리였던 것 같은데요. 계속해서 ‘너를 아껴라’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반감을 보였어요. 이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자존감이라. 어디 마트에라도 팔면 대용량으로 사올 텐데. 자기 자신을 소중히 대하라고요? 웬걸, 나는 나를 무성의하게 대하고 싶어요. 인생이란 게 너무 무서워서, 마귀를 어깨에 올려놓고 사는 게 무거워서, 나는 좀 더 나를 함부로 대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에게는 나를 함부로 대할 자유가 있다고요.(166쪽)

 

김현진: 특히 여자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너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고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렴. 그 안에 이중적인 메시지가 계속해서 와요. 그 이중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말은 누구한테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말이잖아요. 밥 한 번 먹어요, 처럼 성의 없는 말이죠. 세상에 자기를 안 아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끼느라 그러는 거죠. 아끼다보니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아끼는 방법을 모르고, 누가 아껴준 적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더 아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수미와 민정이 마지막에 헤어지고 돌아가는 게 드디어 자신 아끼기를 시작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이들이 앞으로 조금은 바뀐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언론사 리뷰에는 이 책을 남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었어요. 쓴 입장에서 어떠세요? 이 이야기를 꼭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김현진: 남자들이 읽으면 너무 싫어할 것 같은데요.(웃음) 남자들은 읽어도 절대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야, 라고 하겠죠. 자기한테도 그런 점이 있으면서 말이에요. 계속 말씀 드린 것처럼 너무 못나서 친구한테도 차마 얘기하지 못했던 걸 호명하는 작업을 했던 거니까요. 여자들의 고통이라는 게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많이 찌그러져있는지를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빙산의 일각처럼 아직 가려진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쓰면서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이런 괴로움이 있었다, 하는 공감을 독자들과 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솔직히 남성 독자를 전혀 상정하지 않았죠.


김나리: 이 남자를 같이 욕할 수 있는 남자들은 있겠지만 나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어떤 남자가 읽었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은 많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이야기를 읽은 여성들의 반응은 거의 반반으로 나뉘더라고요. 한쪽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라고 하고 한쪽은 나도 그래, 라고 하는데요. 그 모든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처음에는 공감을 얻지 못하지 않을까,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해서 두려움이 있었던 거고요.


김현진: 너무 특이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결국은 어디에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또 내가 바보였어, 가 아니라 그 놈이 나쁜 놈이었어, 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많이 달라지잖아요. 그렇게 바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혹시 이렇게 못난 연애를 하냐, 난 절대로 이런 연애 안 해야지, 한다면 그것도 수확이라고 생각하고요.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김현진,김나리 공저 | 박하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지금 가장 뜨거운 여혐, 메갈리아, 문단 내 성추행, 문화계 성폭력 등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당한 성적 층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세태 소설이다. 수미와 민정으로 대변되는 30대 여성들이 살면서 겪는 일상 구석구석에 숨겨진 차별적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고질적인 남성 중심의 이기와 폭력을 자세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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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줄곧 글 쓰는 삶을 살아왔고 계속 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영화 시나리오와 서사 창작을 공부했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학교를 7년 만에 졸업, 간신히 영화 [언니가 간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나 전국 18만 8000명으로 종결 후 좌절하였다. 먹고 살기위 해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 등 애써봤으나 여전히 도시빈민 겸 철거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통합과정 전문사에 진학했으나,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달마다 '신불자'가 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휴학 중인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다. MB 정권과 격렬히 불화했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 그 어떤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한다.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앞으로도 구체적 연대를 꿈꾸는 그녀는 강자에겐 얼음처럼 차갑게, 약자에겐 불처럼 뜨겁게 반응하며 거창하게 무슨 무슨 '주의자'로 불리기보다는 항상 지는 편에 붙는 '내 감정주의자'로 살아가겠노라고 강단 있게 말한다. 그녀를 주목받게 한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99년)는 십대에 쓴 글들을 엮은 것으로, 글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소위 일류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책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은 공교육 공간에서 부대끼는 아이들 중 한 사람으로 아프게 혹은 당차게 살아낸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무심코 "참 좋은 때야" 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좋은 시절만이 아닌, 제도와 체벌 혹은 또래 아이들에게 치이는 생활로 인해 아파하고 견디어내야 하는 따갑고 아픈 시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미싱을 돌리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인숙에서 일하는 여성을 자연스레 볼 수 있던 생활환경으로 일찍 '진실'에 노출된 아이가 십대 초반부터 사회문제와 '나'에 관하여 고민했던 생각을 담은 글들은 문화비평적인 성격을 띄기도 한다. 결국 자퇴를 선택했던 자신과 학교에 남은 아이들, 때로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때로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눈으로 바라본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는 그런 그녀가 A급 연애는 못 하고 늘 B급 연애만 하는, 늘 지는 연애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이십 대 여성 동지들의 영혼에 바치는 위로와 동감의 노래이다. 유기견 네 마리를 데려다 기르는 그녀의 성품에서 잘 드러나듯 버림받고 약하고, 작고, 아픈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 의식은 이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청소년 계간지 [풋]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매거진T], [씨네21], [독서평설], [시사IN] 이외에도 다수의 일간지와 월간지 등에 에세이를 기고했다. 『뜨겁게 안녕』,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육체탐구생활』, 『우리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등의 에세이와, 장편소설 『XX 같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 김나리 작가와 공동 집필한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녹즙 배달원 강정민』 그 외 저서로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동물애정생활』, 『새벽의 방문자들』(공저) 등이 있다. 독자에게 직접 글을 보내는 에세이 메일링 서비스 『월간 살려줘요 김현진』을 발행 중이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게임 시나리오, 영화 시나리오, 회사 홍보자료 등등 살기 위해 각종 글을 썼고 한때는 녹즙 배달원으로 일하다 업계의 생리를 약간 터득하고 알코올의존증을 거의 이겨냈다. 다음 20년도 계속,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