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골목, 낡은 책방을 한 평생 지켜온 아버지(최희도). 아들(최대국)은 무능력하고 무뚝뚝한 아버지를 잊고 산지 오래다. 이미 제 삶 하나 건사하기도 부친다. 아내는 딸과 함께 떠났고, 빚 독촉은 끝을 모르고 그를 괴롭힌다. 꼬인 인생을 한탄하며 죽음을 생각하던 순간, 낯선 이의 방문을 받은 최대국. 자신을 아버지 거래처의 김 부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아버지가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고 말한다. 어딘가 삐걱대는 이야기다. 최대국은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달라는 김 부장의 의심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름 아닌 그가 제시한 3억 때문이다. 그렇게 열어젖힌 최희도와 수첩이라는 비밀의 문. 그 뒤에는 책방 주인의 삶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1회 대한민국 콘텐츠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갤럭시탭-텍스토어 디지털 콘텐츠 공모전 대상 수상으로 선 굵은 이야기를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은 박성신 작가가 장편 『제3의 남자』를 기획했을 때 작가가 떠올렸던 장면은 명확했다. “한쪽에는 70년대의 명동 한복판에 아버지가 서 있고, 2017년의 명동 한복판에 아버지(과거)를 추적하는 아들이 서 있는 장면”이었다. 『제3의 남자』는 현재와 과거가 숨 막히게 교차하며 마찰음을 낸다. 간첩, 고문, 비리와 음모, 소설은 한국 사회가 살아낸 불합리한 세상을, 어쩌면 현재진행형일 그 세상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간다. 아버지와 아들 외에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권력의 복판으로 들어간 가수 ‘윤숙희’, 이리의 시선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폭주하는 형사 ‘서중태’, 한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끝내 실패한 ‘문자’까지. 생생한 캐릭터과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이 소설은 마치 이야기의 힘을 증명하는 듯하다.
70년대와 2017년의 명동
다 읽은 후, 새삼 표지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마음에 드세요?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처음 표지 시안을 보내주셨을 때, 소설을 참 잘 이해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소설이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중심축을 담당하는 이야기는 또한 사랑 이야기이거든요. 때문에 남자 안에 여자의 모습이 있는 표지 이미지가 굉장히 소설을 잘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득 찬 이야기란 생각을 했어요. 장면이 꽉꽉 차 있거든요. 인상 깊은 장면도 많고요. 풍성한 책읽기가 되었는데 쓰면서는 어땠나요? 힘들진 않으셨는지 궁금했어요.
실은 더 썼는데 많이 덜어낸 거예요. 욕심 같아서는 다 넣고 싶었지만 진행을 고려해 많이 뺐죠. 아깝긴 해요. 원래 시나리오와 드라마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장면을 쓰는 데에는 그렇게 어려움이 많진 않았어요. 다만 힘들었던 건 감정 부분을 쓸 때였어요. 가령 후반부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장면에서 독자가 큰 울림이나 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부분을 쓰는데 애를 많이 썼죠. 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사랑을 독자가 믿지 못하면 소설을 따라가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도 쓰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랬어요.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걸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고심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취재도 많이 하셨죠? 이번 작품에 도움이 된 것도 있나요? 가령 어떤 뉴스나 참고한 책이 있었을까요?
모티브가 된 사건들은 있었어요. 윤숙희 실종 사건 같은 경우는 ‘정인숙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실제로 정인숙 사건은 1970년대에 일어난 일인데요. 정인숙 씨가 총에 맞았고, 오빠가 범인으로 밝혀져 형을 살다 나왔어요. 그런데 형을 살고 나와서는 범행 일체를 부인했거든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이죠. 그런 부분을 모티브로 삼았고요. 나머지 거리 풍경이나 이런 것들은 사진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거리 사진과 CF가 도움이 됐죠. CF가 의외로 시대상을 많이 알려주더라고요. ‘다이알 비누’도 그랬고요.(웃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저한테는 많은 도움이 됐어요.
맞아요, 다이알 비누. 그 세대 분들에게는 또 새로운 공감 요소가 될 거예요.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된다면 감사한 일이에요. 비누라는 것 자체는 또한 후각에서 오는 감각도 깨우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시게 된다면 정말 좋겠죠.
공간이나 배경이 세밀하죠. 시각적인 부분을 꼼꼼하게 담아내려고 한 것 역시 “독자가 큰 울림이나 공감을 느꼈으면” 했다는 앞의 말씀과 같은 의미겠네요.
이 소설을 기획하고서 생각했던 장면 중 하나는 한쪽에는 70년대의 명동 한복판에 아버지가 서 있고, 2017년의 명동 한복판에 아버지(과거)를 추적하는 아들이 서 있는 장면이었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닮았을 거예요. 어쩌면 같은 모습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배경은 완전히 다르죠. 그런 다른 부분의 디테일을 살리고 싶은 의도가 있었어요. 열심히 썼죠.(웃음)
결국, 가족의 이야기
아버지 최희도(월출)가 살던 세상, 그러니까 1980년 전후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소설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예요. 이것은 어쩌면 현재진행형일 이야기들이기도 하고요. 아들 최대국은 아버지가 살아낸 불합리한 세상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과연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는 화해할 수 있을까요?
소설 안에는 1970년대의 현대사도 들어갔고,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도 들어갔죠. 그런데 제가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가족의 이야기였어요. 가족은 늘 서로를 오해하잖아요. 미워하고, 미워하지만 또 애증하고요. 소설 속 아버지와 아들도 마찬가지 같아요. 소설의 껍데기는 분단의 비극, 고통의 산물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지금도 겪고 있는 가족 간의 오해와 화해라는 숙제가 있어요.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건 희망이에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낚시하는 것도 희망을 상징하죠. 어쨌든 낚싯대를 던져야 낚을 수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무언가 시도를 해야 희망이든 뭐든 낚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작품에 앞서 한 줄 ‘모든 아버지들에게’라고 적은 부분이나 작가 소개글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가족이라는 테마에 천착하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취미가 프로파일러 분석 읽기, 관련 팟캐스트 듣기, 연쇄살인범 연구하기예요.(웃음) 보면 범죄자들이 공통적으로 어렸을 때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런 데서 오는 호기심도 있고요.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많이 했죠. 가족이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태어난 이상 싫든 좋든 그 가정 안에서 살아야 해요. 가족에게 영향을 받고요. 저는 가족이 사람의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부분을 늘 고민하고, 고심했죠. 그것이 제가 가족이라는 것에 천착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그런데요. 어렸을 때부터 늘 했던 고민이 ‘내가 왜 태어났지’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또 살다 보니 좋은 사람도 물론 있지만 나쁜 사람도 너무 많은 거예요. 그들은 왜 이렇게 나쁘지? 사회는 왜 이렇게 더럽고 부조리하지? 그런 것을 계속 고민하다 보니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 이유를 찾아보게 된 것 같아요.
아들이 가진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참 안타까워요. 특히 정강이에 관한 기억은 해결되지 못한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까 싶거든요. 이런 마찰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일단은 오해죠. 가족 간에는 그런 오해가 많아요. 놀라운 것은 그런 거예요. 예를 들어 엄마가 예전에 했던 차가운 말 때문에 30년 동안 트라우마에 갇히는 경우를 봤는데요. 나중에 엄마한테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내가 언제?”라고 해요. 늘 이런 식이에요. 소설적 장치로 정강이 사건을 그리긴 했지만 이런 오해는 우리 일상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거죠. 부모님이 너무 심하게 싸워서 평생 방황하며 살았는데 정작 부모는 “싸울 수도 있지, 뭐.” 이러는 거고요. 1도 틀어졌던 각도가 점점 크게 벌어지는 거잖아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런 문제가 너무 많죠. 진심 어린 소통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었어요.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예전에 범죄학자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부모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말 공감했어요.
저도 정말 거기에 동감해요. 늘 그런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곤 해요. 왜냐하면 부모가 되는 건 누구나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그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 커요.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초보자가 책임진다는 게 너무 무서운 일이죠. 이건 무조건 의무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온보현 사건’에 대해 들었어요. 1994년에 벌어진 일인데요. 택시를 탈취해 여자를 태웠고요. 두 명을 죽이고, 네 명을 강간했어요. 그 사람이 자기 나이만큼 사람을 죽이겠다고 했거든요. 그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어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자기를 때리고, 그 때문에 엄마가 음독자살을 했대요. 가족이 한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또 한 번 느꼈어요.
말씀하신대로 범죄란 가족 안에서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번진 결과로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가족 바깥, 즉 사회와 구조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어쨌든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피해자들의 이야기란 생각도 들어요. 서중태도 그렇고 문자도 그렇고, 물론 주인공도 역시 피해자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당연히 사회가 해줘야 할 것들을 안 해줬을 때 이들은 더 고통을 받았죠. 소설 자료조사를 하면서 북파공작원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했어요. 거의 산속에 들어가서 살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일단 가족 문제로 접근한다면 그들 밑에서 자란 자녀들 또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을 테죠. 그런데 무조건 그 아버지의 잘못인가, 그건 또 아니거든요. 나라에서 마땅한 보상 등을 해줬어야죠. 그런 게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악화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구조적인 모순이나 불합리에 대해서는 저도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욕망하는 여자들
북파공작원 이야기를 하셨는데, 항상 마음이 쓰이는 그런 사람들인 것 같아요. 상황이 나빠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요. 자기 잘못이 아닌데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서중태를 그리기 위해 고문기술자의 삶을 많이 찾아봤어요.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고문기술자들은 고문하는 상대가 진짜 잘못을 저질러서 고문하는 게 아니잖아요. 역사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죠. 아무 잘못도 없이 말이에요. 저도 그걸 보면서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마음이 쓰이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 외에 특히 마음이 쓰이는 등장인물이 있을까요? 물론 주인공이 가장 그렇겠지만요.
주인공 외에는 문자라는 인물이 마음에 남아요. 문자라는 인물은 잘못이 없어요.(웃음) 어떻게 보면 사랑한 게 죄인 사람이에요. 자기 욕망에 너무나도 솔직한, 주체적인 여자인 거죠. 주체적이되 사랑에는 약했던 여자예요. 사랑의 피해자죠. 문자는 인간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정도 좀 가고 그래요. 한 남자를 너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사랑을 얻지 못하고 비극적 운명이 되어버려서요. 그런 점이 정이 가요.
문자의 비극은 척박한 세상을 억척스럽게 살아내야 했던 부모 세대 여성의 비극이라는 점에서도 여운을 많이 남겨요.
저희 어머니 경우도 가수가 되기 위해서 집을 나오셨었대요.(웃음) 밤기차를 타고요. 저희 어머니가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는 누구나 탈출을 꿈꾸고 변화를 꿈꿨던 시기 같아요. 문자는 어찌보면 전형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문자의 집안 배경을 설명하며 ‘시집을 보내졌다’는 표현이 한 구절 나와요. 그 시절 가족 안에서 여성의 존재란 그런 거였죠. 특히나 우리 부모 세대의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 권력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네, 가족 권력의 피해자죠. 그런 걸 쓰고 싶었는데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소설 속 여자들이 피해자이지만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자도 억척스럽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불도 지르고 그러잖아요. 윤숙희는 더 강해요. 피해자이지만 권력자 혹은 가해자와 거래를 하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그런 주체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피해자이지만 발버둥치고 계속 노력하는 부분을 보여주려 했어요. 자세히 보면 등장하는 여자들이 한 명도 가만히 있지 않거든요.(웃음) 심지어는 형사 ‘오진복’의 잠깐 등장하는 여동생조차도 정말 주체적이고, 욕망에 솔직해요. 잘 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주로 어떤 장면을 보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특별한 순간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 소설은 길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봤을 때 떠올랐어요. 그 할머니는 비가 내려도 나와서 나물을 파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담배를 태우시더라고요. 심지어 비닐장갑을 끼고 담배를 태우셨어요. 정말 프로였던 거죠.(웃음) 저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정말 프로다, 저분의 과거가 궁금하다, 저분은 언제부터 나물을 팔았을까, 생각한 거예요. 할머니에게도 찬란하고 대단한 시절이 있었을 테죠. 그 정도 디테일이면 참 대단하셨을 것 같았어요. 그 할머니를 모티브로 삼은 게 ‘미스 박’ 캐릭터예요. 그래서 처음 기획했을 땐 미스 박이 큰 자리를 차지하는데요. 이야기를 덜어내는 바람에 많이 없어졌어요. 그렇게 어떤 장면에서 소설의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다른 소설의 한 문구에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번뜩 하는 순간들은 여러 순간인 것 같아요. 늘 메모하고요.
역시 작가란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많은 작가들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하잖아요.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요. 만나도 가만히 있으면서 사람들 관찰을 하죠.(웃음) 관찰하는 게 재미있어요. 그래서 프로파일러에게 관심이 가는 것일 수도 있고요.
쓰기 전부터 관찰을 좋아하셨어요?
왜 태어났는지 고민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럴 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간이 어떤 사정이 있으니 나쁜 짓을 했겠지, 이유가 있어서 나쁘게 되었겠지, 하고 자꾸 이해하려고 하다보니까 그것이 관찰로 이어졌을 수도 있어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인간의 어떤 면도 있을 텐데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계속해서 파고 들어가보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왜 그럴까, 파보고 싶긴 해요.
그렇다면 끝내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이해하려고,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 너무 살아가기 힘든 곳이 아닐까 싶고요.
책, 도피처이자 안식처
지금 몰두하고 있는 이야기는 뭔가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혹은 쓰기의 최종 목표랄까,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최종적으로는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독자가 접근할 수 있잖아요. 재미가 있으되 읽은 후에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고요. 그래서 철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정유정 작가님이나 마쓰모토 세이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이런 작가들을 좋아하는데요. 그 이유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나 철학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예요. 그런 것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부분을 좀 더 깊게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인 거죠.
지금 쓰고 있는 것은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거운 주제지만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죽기 시작한다고 하잖아요. 늙음과 죽음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에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지루한 주제지만 지루하지 않게 쓰는 것이(웃음) 저의 목표예요.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웃음)
이 이야기도 한 남자의 실종으로부터 시작이 돼요. 실종 사건을 추적하다가 거대한 조직과 음모, 진실이 벗겨지는 이야기죠. 재미있게 쓰고 싶은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제3의 남자』는 무엇보다 굵은 서사가 큰 매력이었는데요. 말씀하신 차기작 역시 기대되는 이야기예요. 앞서 재미를 말하기도 하셨는데 역시 서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겠죠?
사실은 문체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소설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도 하고요. 아직 부족하죠. 그런데 서사나 플롯, 이런 것들은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익숙한 면이 있어요. 첫 장면을 쓰면 자연스럽게 끝이 떠올라요. 끝과 클라이맥스가 떠오르거든요. 그것은 훈련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이것이 소설가로서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는 저만의 색깔이 있는 문체를 갖는 것이 중요한 숙제일 거예요.
드라마, 영화에서 소설이라는 도구로 자리를 옮겨왔는데요. 어떠세요? 소설이 주는 특별함이 있었나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 군상에 대한 것은 드라마로든 소설로든 영화로든 만들고 싶긴 한데요. 분명히 소설은 정말 큰 매력이 있어요. 영화와 드라마, 소설은 전혀 다르거든요. 저도 처음 소설에 도전할 때 정말 큰 장벽에 부딪치면서(웃음) 썼는데요. 앞으로는 소설 작업을 계속 할 예정이에요. 그만큼 매력이 있어요. 일단 소설은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요. 또 시나리오는 장면을 응축하는 작업이라면 소설은 풀어내기 같아요. 응축만 하다가 풀어내기를 하니까 자유로움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매력이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워낙 책이 안 읽히는 상황이잖아요. 고민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정말 안 팔린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구조적인 문제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인 작가들이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소설이 출간되거나 하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거든요. 소설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책을 한 권 낸다고 돈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고요. 그런 건 사회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정말 절실히 생각해요. 콘텐츠를 생산하는 신인 작가들이 일어서야 이쪽도 두꺼워지고 발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야기에 대한 갈증은 분명히 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개발하려면 이런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이 반성할 부분도 있죠. 웹툰은 연재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작가들에게 보상도 적절하게 이루어져요. 그런데 소설은 등단이 아니면 힘들고, 플랫폼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것을 고려한 다양한 기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 인터뷰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된 분들도 있을 텐데요. 독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제3의 남자』를 묵직하고 무겁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안에는 흥미진진한 추격도 있고, 하나 둘 씩 드러나는 진실도 있고, 미스터리도 있으니까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어릴 때, 책이 제게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였어요. 세상이 아무리 진흙탕이고 아수라장이었어도 이불 속에서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그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거든요. 또 신기하게도 책을 보고 나면 그 아수라장이 좀 달라져있어요. 내가 달라져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제3의 남자』가 읽는 분들께 잠시나마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신연선
읽고 씁니다.
jijiopop
2017.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