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블의 영화는 개봉 족족 재미를 보장하는 수준이다. 웬만큼(?) 만들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이 들 정도로 안정적인 콘텐츠의 산실로 기능한다. 왜 아니겠는가, <아이언맨>(2008)으로 스타트를 끊은 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3기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슈퍼히어로 붐을 일으킨 게 바로 마블 아닌가.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토르: 라그나로크>(이하 ‘<토르 3>’)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토르 3>은 당연히 재밌다. 안 재미있을 수가 없다! 바로 이 문장이 이번 글의 포인트다. 먼저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아스가르드의 왕좌 자리에 있었던 오딘(안소니 홉킨스)은 배다른 두 아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와 로키(톰 히들스턴)가 있는 자리에서 헬라(케이트 블란쳇)의 얘기를 꺼낸다. 원래는 오딘의 딸이자 토르와 로키의 누나였는데 성격이 워낙 포악해 지금은 죽음의 여신으로 악명을 떨친다는 거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아스가르드를 지키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토르와 로키 앞에 헬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와라 뿅망치, 아니 묠니르! 토르는 헬라를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한다. 하지만 어벤져스 멤버 누구 하나 감히 들지 못했던 묠니르를 헬라는 한 손으로 가볍게 쥐고 악력으로 산산이 부숴버린다. 작전상 후퇴, 헬라를 피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던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반대편에 위치한 미지의 행성 사카아르에 떨어진다. 검투 대결을 즐기는 그랜드마스터(제프 골드블럼)의 포로가 된 토르는 억지로 검투를 펼쳐야 한다. 상대는 어디 갔다 이제야 나타났나, 다름 아닌 헐크(마크 러팔로)다. 헐크는 제 친구예요, 만남의 기쁨도 잠시. 헐크는 그러거나 말거나 토르를 공격한다.
너무 장난스럽게 묘사한 줄거리인가. <토르 3>의 언론시사회 후 어느 기자는 이 영화를 두고 ‘병맛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을 썼다. <토르: 천둥의 신>(2011)과 <토르: 다크 월드>(2013)에서 토르가 뿜었던 신(神)의 위용은 온데간데없다. 토르는 대신 토니 스타크에 빙의한 양 심각한 순간에도 유머를 남발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는 타이카 와이티티다. 나도 잘 몰랐던 감독인데 보도자료에 따르면,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What We Do in the Shadows>(2014)라는 작품에서 독보적 연출과 유머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마블 제작진은 <토르>의 전작 두 편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를 원했고 그래서 선택된 감독이 바로 타이카 와이티티다.
마블 제작진의 의도처럼 <토르 3>은 이전 시리즈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런데 이는 <토르>의 세계에 한정하는 평가이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3기로 확장하면 개별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워낙 많은 수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보유한 마블답게 고전적인 히어로(캡틴 아메리카), 키덜트 히어로(아이언맨), 신경질적인 히어로(헐크), 미성년자 히어로(스파이더맨) 등 슈퍼히어로들은 각각의 개성을 지녔다. 토르도 마찬가지다. 그는 슈퍼히어로를 넘어서는 용맹한 신이다.
신화에서 차용한 히어로인 만큼 복잡한 가족사와 가족 간에 얽힌 사연이 특징인 <토르> 시리즈는 토르와 이복동생 로키의 반목하는 사이가 영화의 중요한 줄기로 작용한다. <토르 3>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번 영화의 토르와 로키는 서로 대립각을 세워 갈등을 유발하기보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코미디 콤비처럼 웃음을 주며 형제애의 토대를 마련하는 쪽으로 발전해간다.
흐뭇한 광경이기는 해도 뭔가 계획에 맞춰 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건 <토르 3>이 주인공 토르의 단독 이름을 내건 제목과 다르게 아스가르드의 히어로들을 긁어 모아 강력한 적인 헬라에 팀으로 맞서는 구조인 데 있다. 그래서 <토르 3>의 부제를 붙이자면, 토르에, 록키에, 헐크에, 해임달(이드리스 엘바)에, 발키리(테사 톰슨)에, 깜짝 출연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에, ’아스가르드의 토르-벤져스’라고 할까.
<어벤져스>(2012)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는 한 영화에 히어로가 올스타급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추세가 됐다. 슈퍼히어로 단독자의 작품에 익숙해 있다가 마블 대표 슈퍼히어로가 모두 모인 <어벤져스>를 보고 받은 재미의 충격은 대단했다. 이후로 마블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을 발표했고 <캡틴 아메리카> 3편에 해당하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어벤져스>보다 더 많은 슈퍼히어로를 등장시켜 <어벤져스> 시리즈에 편입시켜도 좋을 설정을 선보였다.
인간계와 신계와 우주를 아우르는 스케일로 나간 만큼, 그럼으로써 슈퍼히어로 캐릭터도 많아진 만큼, 무엇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개봉 예정)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3기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의도인 만큼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는 해도 슈퍼히어로 단독 영화에서마저 여러 슈퍼히어로에게 포커스가 분산되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재미를 떠나 편수를 더 할수록 마블 슈퍼히어로물의 신선도 유효기간이 다해간다는 느낌이랄까.
이제 마블 슈퍼히어로물이 개봉하면 전개와 그 구성 요소가 눈에 선하다. 새로운 악의 무리가 등장하면 제목의 슈퍼히어로를 중심으로 동료 슈퍼히어로들이 대오를 형성한다. 그리고 힘을 합쳐 나쁜 놈을 물리치기까지 과정에서는 황금 분할된 웃음과 액션이 관객의 눈과 귀를 현혹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등장하는 쿠키 영상이 다음 영화를 예고한다. <토르 3>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슈퍼히어로 단독 영화 <블랙팬서>(2018 개봉 예정)도 그럴 것이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도 보나마나일 것이다. 이미 검증이 된 마블 슈퍼히어로물의 흥행 구조이기 때문에 관객은 재미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일 것이다. 그 정도면 된 건가. 나는 이제 변화한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을 보고 싶다. 토르마저 토니 스타크의 유머를 닮아가는 게 몰개성한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토르 3>를 재미있게 보면서도 재미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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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redette
2017.11.10
노군X노군
2017.11.10
햄식이 토르는 1편부터 쭈욱 백치미개그 캐릭이 아이덴티티처럼 표현되었습니다만?
글을 두번읽어봐도 그냥 어떻게든 뭔가있어보이는 주제성하나는 꺼내야겠는데 딱히없으니까 억지로 찾아낸게 토니같은 개그케릭터가되어간 토르라서 아쉽다는데...그냥 벙찌네요...돈버는게 쉬운일은 아니죠...
평론글쓰시는분이 히어로영화의 기본아이덴티티부터 다르길원하신다면...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