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표현이라도 다소 슬펐다.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이후북스 책방일기』 의 제목을 읽었을 때. 언젠가 나는 “커피값에는 그렇게 후하면서 왜 책에는 이토록 인색하냐”는 글을 썼다가 한 독자분께 훈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커피보다 책이 더 위대할 건 뭐람. 한 잔의 커피가 더 위로가 될 때가 많은데.(라고 진지하게 반성했다) 그럼에도 종종 “책을 모르고 살면, 인생이 너무 얕아지지 않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는데, 바로 오늘. 책이 너무 좋아 책방을 열고 책을 쓰고 출판사까지 연 이후북스 책방지기 ‘황부농’의 이야기를 키득키득, 끄억끄억 소리 내며 읽었기 때문이다. 작가 ‘이내’는 이 책을 두고 “연애소설”이라 평했다. “누군가를 매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설레고 토라지고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전전긍긍’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었는데, 어쩐지 쉽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곧 서울 마포구 서강로11길에 자리한 독립책방 ‘이후북스’ 를 다시 한 번 찾아가보려고 한다.
‘북관리사무소’에서 저자 인터뷰는 처음이다.
앗 그런가? <월간 채널예스>에서 꼭 챙겨 읽는 글이 바로 지난달 막을 내린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과 바로 ‘프랑소와 엄의 북관리사무소’다. ‘북관리사무소’는 읽으면서 나 혼자 묻고 답하는 상상도 했다. 『책낸자』 를 보면 서귤님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터뷰 때는 없어 보이니까 조심해야지”라고 혼잣말을 하고 그 아래 ‘없지만’이라고 써있다. 지금 딱 그 마음이다. “없어 보이면 안 되는데(없지만)”
하하! 영광이다. 황부농!(필명으로 책을 썼으니, 이 인터뷰에서는 필명으로 부르겠다) 사실 당신의 책을 오랫동안 기대했다. 우선 궁금했고. 책을 일찌감치 읽은 독자로서 후기를 전한다면, 무척 재밌게 읽었다. (참고로 프랑소와 엄은 책의 재미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어떤가? 책 낸 자의 소감이 궁금하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즐겁고 재밌다. 책방에서 손님이 이 책을 고르면 계산하기가 왜 이리 민망한지. 근데 뻔뻔하게 재밌는 책인데 잘 골랐다고 말하고 있다. 원고는 딱 1년 전, 6월에 완성된 상태였다. 책방을 오픈하고 꾸준히 일기를 써서 올렸고 1년 치가 모이면 책이 될 것 같아서 독립출판물로 내려고 했다. ‘이후북스’ 동업자이기도 한 상냥이가 초고를 교정했는데 내가 쓴 글보다 많은 빨간 줄에 질려서 고치지 않고 한 계절 동안 엉덩이로 깔고 앉아만 있었다. 책 작업은 아무 진척이 없었지만, SNS에 일기는 계속 써서 올렸다. 지난해 9월 말경 ‘알마’ 안지미 대표가 SNS에 올리는 일기를 읽었다며 연락해왔다. 이미 써둔 원고가 있는 상태라 원고 그대로 전달했다. 사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는데, 상냥이가 무조건 ‘알마’로 보내라고 했다. 둘이 같이 독립출판으로 만들었으면 아직도 완성 못 했을 거다. 계속 싸우고 있었겠지.
그렇군. 본격적으로 토크를 진행해볼까? 프랑소와 엄은 지금까지 이후북스를 두 번 다녀갔다. 한 번은 인터뷰 때, 한 번은 스리슬쩍! 우선 선별한 책들이 매우 좋았고, 또 하나 놀란 건! 바로 레몬티와 찻잔. 독립서점에서 이렇게 기품 있는 찻잔을 사용하다니. 설거지가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혹시 음료에 대한 철학이 있나?
철학은 없다. 다만, 음료든 음식이든 음식 장사가 정말 힘들다는 것은 알게 됐다. 이후북스에서 음료를 많이 찾는 사람이 없으니 설거지가 어렵진 않다. 애당초 재료는 소량만 준비한다. 커피나 차 에이드 재료가 떨어지면 그냥 안 판다. 그래서 점점 음료를 안 파는 날이 많아지지만. 하지만 책방이라 책을 팔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음료만 취급하는 곳이었다면 진짜 굶어 죽었을 거다. 매일 꾸준한 맛을 내는 게 책을 파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찻잔은 예전부터 여기저기 커피전문점들을 다니며 눈여겨보던 것들을 구입한 것이다.
아, “꾸준한 맛을 내는 게 책을 파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에 우선 밑줄을 긋고. 책방을 하면서 음료 판매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더라. 이후북스의 입장이 궁금하다.
책을 파는 게 어렵다고는 하지만 더 어려운 건 음식으로 돈을 버는 거다. 책을 보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아무 욕심 없이 음료를 파는 것을 권한다. 난 커피 학원을 두 군데 다니고 핸드 드립도 2010년부터 취미로 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커피숍에서도 일해보고. 이 정도 노력을 하라는 게 아니다. 책은 복제된 상품이라 ㄱ책방에 있으나 ㄴ책방에 있으나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물론 구매 욕구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맛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유일하다 싶지 않으면 정말 입에 풀칠하기 어렵다. 나도 처음엔 음료 팔아서 한몫 잡아야지 생각했지만 지금은 음료로 돈 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음료 판매할 에너지를 책 판매에 쓴다.
서귤 작가가 그린 황부농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서귤 작가가 나를 그릴 때마다 놀란다. 근데 최근에 보니 다른 작가들도 다 비슷하게 그리더라. 하하하! 나란 인간이 단조롭게 생겨서 그리는데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서귤님한테는 분명 독보적인 장점이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지만 특징은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또 스토리텔링에도 탁월하다. 센스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높이 사는 장점은 어떤 철저함이라고 할까? 단단한 구석이 있다. 판단이 흐리면 중언부언하게 되는데 방향을 잘 설정해서 알맞게 키워나간다. 군더더기가 없다. 작품에서도 작업 방식에서도. 그래서 믿고 작업할 수 있다.
너무 장점만 말한 게 아닌가?
단점을 알고 싶다면 ‘이후북스’로 찾아오시길 바란다.
‘황부농’의 ‘부농’이 분홍색을 의미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다른 컬러의 옷은 안 좋아하는가?
아니다. 파란색을 더 좋아한다. 책방을 오픈했을 때 분홍색 남방 두 벌을 새로 구입했는데 새 옷이라 자주 입고 다녔고 그러다 ‘분홍 사장님’이라고 서귤님이 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부농이 부농이 부르면서 자연스레 필명으로 이어진 거다. 별 이유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근데 부농이라고 불리니까 의식적으로 분홍색 아이템을 사게 된다. 나도 점점 더 분홍색이 좋아진다. 이소라 7집 앨범 트랙3 듣는데 ‘모르는 그 누구라도 꼭 손잡아 준다면 외로움은 부농 색깔 물들겠죠’라는 가사가 귀에 확 들어오더라. 예전에 들었을 때는 스치던 말이었는데.
오, 이소라 트랙3! 들어보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탓에 일의 추진력이 떨어져버렸다”(75쪽)고 했다. 지금 가장 많이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후북스에서 만든 출판사 ‘이후진프레스’에서 만드는 세 번째 책 생각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 이내 님이 작년에 독립출판물로 낸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개정판을 내려고 하는데 은유 작가님 의 추천사도 받았다. 너무 좋은 글이라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큰데, 될 수 있을는지. 베스트셀러까진 아니더라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책을 알리고 싶다.
이후북스를 좋아하는 단골들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다들 마이너한 감성이 있다. 나랑 좀 안 맞는다. 하하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또 독립출판제작자들이 수시로 오는데 그들과는 서로 고마워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하는 이상한 사이다. 책이 팔려서 책이 안 팔려서 책을 팔아야 해서 등등의 이유로.
이후북스 사용법을 짧게 세 문장으로 정리해본다면?
와! 질문이 정말 신박하다. (이런 질문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며) “오세요. 사세요. 또 오세요.”
각종 모임을 진행 중에 있다. 책방지기가 아닌 독자로서, 정말 추천하고 싶거나, 나도 참여하고 싶은 모임이 있다면?
글쓰기 모임! 내가 배울 게 천지다. 선생님을 믿고 따라가고 싶다. 하지만 글 쓰는 게 누가 가르쳐 준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후북스 글쓰기 모임도 두 종류가 있는데 많이 알려주는 건 없다. 독촉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시간 정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얘기하고 그 과정을 같이 따라가는 것도 큰 배움이더라.
100쪽에 적힌 글을 읽다 매우 울컥했다. 바로 이 문장. “내 노력을 모르는구나 싶어서.” 이 글을 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우선 사람들이 책 사는데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커피는 쉽게 사 마셔도 책은 잘 안 산다. 책이 비싸면 비싸서 안 사고 얇으면 얇아서 안 사고. 어제 샀으니까 오늘 안 사고. 할인 안 해서 안 사고. 무거워서 안 사고. 안 사야 하는 이유가 너무 많다. 왜 그럴까? 왜 책에 이렇게 엄격하게 굴지? 책방은 책을 사야 할 이유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근데 이유 만들기 너무 힘들다. 책을 사야 할 이유는 재밌다는 것. 나한테는 그것 하난데. 요즘엔 예뻐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하고. 따뜻해야 하고. 전문적이어야 하고. 마아아아아않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근데 결정적으로 책 팔아서 남는 마진이 너무 적다. 유통정가제가 시행되었으면 좋겠다.
책방에서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손님의 유형이 있다면?
책에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손님. 그냥 구경만 하고 뭐가 재밌는지 키득키득거리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책 읽는 척 인증샷 한방 찍고 횡 나가는 손님.
책을 내고 인상적인 리뷰를 읽었나? 또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있었다면 이야기해달라.
재미있게 읽었다는 리뷰들 전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난 쓰는 순간에는 재미있어서 쓴다. 근데 다 쓰고 나면 재미가 없다. 요즘도 종종 SNS에 일기 써서 올리는데 쓸 때는 재밌게 쓰다가 다 쓰면 별로다. 올리기까지 엄청 고민한다. 재밌다 재밌다 이건 재밌다고 최면을 건다. 책이 나왔는데 못 읽겠더라. 그래서 남들도 과연 재미있을까? 싶다. 다 최면에 걸렸나? 특히 인스타그램로 @koejejej님 리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화들짝 놀래서 스크랩해 두었다. 영광이었다.
저자로서, 하고 싶은 이색적인 모임? 강연회? 행사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 책에는 작가 서귤의 삽화, 음악가 이내의 추천사가 들어가 있는데, 셋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있다. 바로 ‘책방 예찬’. 올여름에 녹음해서 음원 등록할 예정이다. 녹음 과정을 상냥이랑 서귤님 단골들 몇 명 등장시켜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허접할 거다.
이후북스를 어떻게 부르는 게 가장 좋은가?
다 좋아하는데 독립책방 이란 명칭을 좀 더 선호한다. 내가 가장 많이 언급하기도 하고. 개인의 특징이 반영되고 자유롭게 운영되는 게 독립책방들의 매력이다. 분명 그 안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고 지킬 것이 있겠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효율성에 어긋나고 자본에 종속되길 거부하는 반항적인 매력이 있다. 있길 바란다. 앞에 수식어 없이 그냥 ‘책방’도 좋다. 정갈한 단품처럼.
얼마 전 <채널예스>에서 연재한 ‘정지혜의 사적인서점’ 칼럼이 끝났다. 이후북스와 근거리 동료 아닌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내고 행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걸로 아는데,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정지혜 대표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한다면?
어제도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같이 북토크 해야 한다고 닦달했는데, 정지혜 대표님! 어떻게 내가 막 사적인 서점 책처방 프로그램 다 예약한 다음에 대표님 글 쓰게 해요? 말아요?!
자, 마지막 질문이다! 예비독자에게 강력한 한 마디를 남겨 달라.
독립책방, 동네책방, 작은책방에서 많이 사주세요. 책방지기들이 지금 굶어가며 책을 팔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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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황부농 저/서귤 그림 | 알마
자신을 낮춰 웃음을 유발한 책방지기는 책방을 찾는 손님들과, 책방에서 진행하는 매력적인 모임들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낸다. 이후북스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음을.
프랑소와 엄
알고 보면 전혀 시크하지 않음.
이 정연
2018.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