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 요즘 ‘아들 성교육’이란 책이 인기입니다. 그 책에 “소변 참기 연습을 꾸준히 시키면 (성적) 욕구조절능력을 배우게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는 분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바로 책을 구해 읽어 보았습니다. 몇 권의 책처럼 유해한 내용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는 책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적은 원고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일찍부터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젠더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등 좋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저자가 몸과 성(性)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는 점입니다.
소변 참기와 성적욕구조절을 연결시킨 것은 좀 심하게 황당합니다. 남근중심적 사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가 요도 길이가 길기 때문에 소변을 더 잘 참을 수 있다”는 말은 해부생리학을 조금만 알아도 잘못된 정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정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1) 성적욕구와 소변 참는 건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2) 남자든 여자든 소변을 참으면 안 됩니다. 참을수록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절을 못하게 됩니다. 성적욕구 얘기가 아니라 배뇨 얘깁니다. 제가 쓴 “오줌을 참으면 방광이 커질까?”(http://ch.yes24.com/Article/View/34318)라는 글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요즘은 너도나도 커피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요실금이 많거든요.
우리가 올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데서 잘못 배운다
섹스는 거의 모든 문화에서 오랫동안 터부였습니다. 섹스에 관한 말이나 행동을 피하거나, 꺼리거나, 금지해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유교 문화권이라 훨씬 심했지요. 반드시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일은 그렇게 된 내력과 사정이 있으니까요. 성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다고 부모들을 비난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하니 누구나 얼떨떨하고 혼란스럽지요. 분명치 않은 상황 속에서 자녀를 보호하려다 보니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강요하듯 행동하는 겁니다. 확실한 건 옛날에는 그렇게도 잘 살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고, 성적 자극이 넘쳐납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 돼버린 탓에 청소년도 손만 뻗으면 성적 쾌락을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이건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옳은 걸까요, 그른 걸까요? 그런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대응하는 게 먼저입니다. 모든 게 개방되어 있는데 감추려고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위험이 높아집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섹스는 왜 그렇게 강력한 금기와 결합되었을까요? 섹스 자체가 아주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과 후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계속 살아가려면 뭔가를 먹어야 하고(식욕), 후손을 남기려면 섹스를 해야 합니다(성욕). 인간과 가축을 제외한 동물들에게 먹이를 구한다는 건 무척 어렵고 피곤한 일입니다. 하루 종일 그 일에만 골몰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뭔가를 먹는 것보다 편안히 쉬거나 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편안히 쉬다가 굶어 죽겠지요. 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쉬고 싶은 욕구가 성욕보다 강하다면 후손이 태어날 일이 없을 테지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자연은 식욕과 성욕을 가장 강력한 욕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동물들은 식욕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급하면 자식을 잡아먹고, 동료를 해칩니다. 터부, 즉 금기가 없다면 우리도 비슷할 겁니다. 그래서 아주 강력한 금기가 생긴 거지요.
문제는 금기가 너무 강력하다 보니 입에 올리기조차 불편해져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는 배꼽에서 나온다는 둥, 아빠 엄마가 손을 꼭 잡고 잤더니 네가 태어났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나온 거지요. 너무 오래 이렇게 살다 보니 결혼한 사람도 섹스와 관련된 지식이 부족한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어른도 지식이 부족한데 자녀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지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개방된 사회에서는 성적 자극이 넘쳐나 그렇지 않아도 강한 욕구를 부채질합니다. 그런데 지식이 부족하니 자기가 왜 이렇게 강한 욕구에 시달리는지, 어떻게 조절하고 해소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를 정확히 모릅니다.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거죠. 감추면 감출수록 위험은 높아집니다. 반면에 툭 터놓고 객관적인 사실을 가르치면, 즉 섹스를 터부가 아닌 지식과 결합시키면 위험이 낮아집니다. 자기가 성욕에 시달리는 게 정상적이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 알아도 욕구를 조절하기가 훨씬 쉬워지거든요.
섹스를 터부가 아닌 지식과 결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균이 들어오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듯이, 터부가 생기기 전에 지식을 주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초등 3-4학년만 돼도 이미 의식 속에 터부가 자리잡습니다. 그보다 일찍 몸교육, 즉 신체 구조의 차이,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남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는 거지요. 초등학교 3~4학년에게 남녀 성기의 구조 차이와 그 결합을 통해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은 구역질나고,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 있지만, 1학년이나 그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하나의 사실일 뿐입니다. 캐나다의 유명한 성교육자 샐리마 눈(Saleema Noon)은 일찍 성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첫째, 어릴수록 가르치기 쉽다. 아직 터부와 수치심이 마음 속에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올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데서 잘못 배운다(인터넷, 야동, 광고 등)
셋째, 일찍 가르칠수록 자신의 몸을 지키고, 남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기 쉽다.
일찍 성교육을 시작하면 성적인 행위로 연결될 것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지요. 하지만 수많은 연구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습니다. WHO에서도 선언했듯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청소년은 성교 시작 연령이 늦어지고, 성적모험을 덜 추구하며, 올바른 피임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니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든다면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적절한 때를 봐서 자녀와 성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세요. 아마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아주 어린 자녀라면 약간의 테크닉이 필요한데 책이나 인터넷에 좋은 정보들이 많으니 미리 조금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