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생활자, 비혼과 비출산에 대하여
살면서 반드시, 당연히,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진지하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정말 없다. 법을 준수하며 성실히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다.
글ㆍ사진 신예희(작가)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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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내 짝이다 싶은 인물이 곁에 있어서가 아니라(그런 자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너도 슬슬 결혼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 당시 이미 작업실을 운영하며 혼자 일한 지 6~7년은 된 상태. 혼자 내 공간을 가꾸고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을 온몸으로 충분히 겪은 상태라 독립에 대한 환상 따위는 애저녁에 분리수거한 지 오래다. 현실은 빡세다고요. 하여간 결혼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어디 한번, 결혼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커피 한잔 맛있게 만들어놓고 컴퓨터 앞에 각 잡고 앉아서 시작해보았는데요.

 

결혼 후에도 내 작업실을 운영하려면 결국 집 두 채를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인데, 양쪽 집 관리에 시간과 체력을 충분히 쓸 수 있을까? 비용 면에서 오히려 적자는 아닐까? 논의 끝에 부부가 사는 집 일부를, 방이든 거실 한쪽이든 간에 작업 공간으로 사용할 경우 일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얼마나 빠르게 제거할 수 있을까? 만약 방해 요인이 배우자의 가족과 친구 등 내 손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관계일 경우, 배우자는 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담 마크할 수 있을까(어서 데리고 나가라는 소리죠)? 집에서 노브라로 수면 바지를 걸치고 있지만 엄연히 근무한다는 것을, 당신과 나는 맞벌이 부부라는 것을 배우자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받아들일 것이며, 배우자의 가족은 또 어떠할까?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이것(설거지, 청소, 식사준비, 안부 전화…)도 안 하니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만 꼽아봐도 벌써 까마득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다.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 어떨까? 자유롭게 경쟁하고 공존하는 듯하던 여성 창작자와 남성 창작자 사이에 갑작스레 차이가 생기는 건 대략 이때쯤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남성 창작자들은 이 시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집에선 아무래도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작은 공간을 구했다는 것인데, 그렇군요. 그럼 여성 창작자인 당신의 배우자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고도 결혼을 꿈꾸라니 이거야 원, 미래가 너무 뻔하잖아요. 20대 후반의 나는 그렇게 마음을 살포시 접었다.

 

그래,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이걸로 됐어. 하지만 꿋꿋하게,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비혼 여성은 결혼도 미루고 일에 올인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기혼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가정(자녀가 없을 경우 아이도 추가)을 포기하고 일에 올인했다는 식이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비혼이든 기혼이든, 남성이 이런 소리를 듣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너무 바쁘니 여자가 챙겨줘야 한다는 소리를 듣지. 올림픽처럼 큰 대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획득한 여성에겐 스포츠인으로서 얻은 성취 대신 외모, 연애, 결혼 계획 등 엉뚱한 질문이 쏟아진다. 한참 좋은 나이에 운동만 하느라 여성으로서의 삶을 희생했다는 식이다. 은퇴를 앞둔 경우엔 이제 평범한 여성(아내, 어머니)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남성 스포츠인에게도 이런 말을 가져다 붙이던가? 대체 여성이 꼭 지켜야 할, 소중한 여성의 삶이란 뭘까? 연애, 결혼, 임신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두고 깊이 고민하는 여성에게 어째서 너무 재지 말라고, 눈 딱 감고 하라고 말할까? 깊이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하도록, 대충 빨리 후다닥 정하라는 의도는 아닐까? 제대로 알고 나면 거부할까 봐?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자신을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생활을 꾸릴 줄 아는 사람이 좋겠다. 몸을 항상 깨끗하게 씻었으면 좋겠고, 입었던 옷은 착착 모아 세탁기에 넣고,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적절히 사용하며, 상하기 쉬운 옷은 세탁 망에 넣거나 손빨래를 했으면 좋겠다. 빨래가 끝나면 탈탈 털어 잘 말려 개켜 정해진 자리에 넣었으면 좋겠다. 양말을 벗을 땐 또아리처럼 돌돌 말리지 않도록 잘 폈으면 좋겠다. 직접 세탁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직접 해 먹든 사 먹든, 끼니에 대해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용한 식기를 잘 씻어 물기를 말린 후 찬장에 착착 정리했으면 좋겠다. 음식물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재활용 쓰레기는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었으면 좋겠고 일반 쓰레기 봉지 주둥이는 꽉 묶어서 내다 버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잠깐만요, 아직 멀었어요. 아직 5퍼센트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당연하고 별 것 아닌 소망을 두고 대단히 큰 소망이라고들 한다. 한국에서 이런 남성을 바라다니 욕심도 많단다.

 

좀 더 써볼까?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식품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그런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꼭 술을 마셔야 한다면 주사를 부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길에 침을 뱉지 않으며, 역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 사람이 좋다. 종종 술담배에 찌든 남성을 두고 ‘사람은 참 좋아, 얼른 짝을 만나야 와이프가 챙겨줄 텐데 안쓰럽지 뭐야’라는 이야기를 하는 작자들이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기본적인 자기관리도 못하는 사람은 누구도 만나선 안 된다. 대체 누구에게 무슨 폐를 끼치려는 수작인가? ‘사람은 참 좋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사람은 다 좋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걸로 다른 단점을 모두 덮을 순 없다.

 

여성은 한 손에 빗자루를, 다른 손에 행주를 쥐고 태어나지 않았다. 만약 어떤 여성이 자신과 주변을 깔끔하고 건강하게 관리한다면, 그건 하나부터 열까지 후천적으로 습득한 능력이다. 배우고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지 않다면, 혹은 거기에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전문가에게 정식으로 의뢰하고 적절한 급여를 지급하시라.

 

줄줄이 딸린 동생을 돌보느라 혼기를 놓쳤다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 시집을 못 갔다지, 부모님 병간호하느라 그 나이까지 혼자라지. 비혼 여성에겐 으레 이런 사연이 있을 거라 어림짐작하던 시대는 갔다. 한국 사회는 여성을 겁준다. 늦으면 안 된다고, 어서 막차라도 타라며 윽박지른다. 재지 말고 빨리 시집가야지, 안 그럼 늦어. 몇 살이라구? 아휴, 아기부터 가져야겠네. 안 그럼 노산이야. 애가 하나야? 얼른 둘째 낳아. 그래야 늦기 전에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지.

 

하지만 그렇게 다그치는 사람들은 정작 비혼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훈수를 둔다니, 이상하죠. 써보지도 않은 물건의 리뷰를 정성스레 작성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하다.

 

이쯤에서 40대 비혼 여성인 내 의견을 말하겠다. 삶에서 결혼, 그리고 별책부록인 출산과 양육을 겪지 않으니 여유가 생겼다. 자유로워졌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기회를 만났다. 무엇을 시작하든 무엇에 도전하든 늦은 게 별로 없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살면서 반드시, 당연히,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진지하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정말 없다. 법을 준수하며 성실히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있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결혼하든 하지 않든, 모두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다. 어느 길로 가든, 갔다가 돌아오든, 혹은 삽을 들어 새로운 길을 파든, 내 의지로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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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비출산 #독립생활자 #결혼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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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ee0727

2018.08.25

3. 그냥 나이에 밀려서, 혹은 어른들 성화에 못이겨 그냥 괜찮은 것 같은 사람과 결혼해서는 생기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결혼한 사람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잘 살 수도 있죠. 그 모든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인 것이죠. 그래서, 저 역시도 정말 놓치기 싫은 사람을 만난 게 아니라면 살면서 꼭 결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또한, 결혼을 했다고 해도 꼭 임신과 출산을 남들처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 모든 것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그렇게 미혼 비혼 여성분들께 얘기하고 싶어요.

오늘, 우연히 읽게 된 작가님 칼럼 덕분에 긴 독자 리뷰를 쓰게 되었네요. 작가님 글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가끔 놀러와서 읽고 갈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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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ee0727

2018.08.25

2. 저는 '그래, 이 사람이야' 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고 생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님이 말씀하신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남편 희망사항을 보며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사람을 바라다니 욕심도 많단다'는 말은 한국 아닌 곳에서 성장한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있는 제게도 좀 와닿았거든요. 제 남편은 항상 깨끗하게 씻고 입었던 옷도 착착 접어 놓고 일단 빨래를 돌릴 때면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적당히 넣을 줄 알고 제가 힘들면 가끔은 저녁을 해주기도 하고 일단 설겆이를 하면 키친 타올로 싹 닦아 제자리에 착착 넣을 줄 아는 사람이긴 해요. 하지만 옷을 벗을 땐 늘 안감이 바깥쪽으로 나오게 벗고 양말은 늘 똘똘 말아 벗어 놓고 분리수거 개념이 잘 없어서 재활용 쓰레기통에 코 푼 휴지를 막 버리는 남자이기도 하죠. 또, 일단 빨래를 하면 제대로 하지만 잘 하려고 하지 않고 설겆이도 제가 너무 바빠 쌓아 두어야 '내가 할께'하는 남자에요. 그래도,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을 보며 저 자신을 다독거린답니다. 이렇게라도 해 주는 게 어디야, 하면서 말이죠.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바꾸려는 욕심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거니까요. 그 사람의 장점을 보며 결혼할 마음을 먹었으니 그 사람의 단점을 보며 속상해 하지 않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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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ee0727

2018.08.25

저는 비록 기혼자이지만 작가님의 생각에 제 한 표를 보냅니다. '살면서 반드시, 당연히,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는 이 말씀이 참 와닿네요. 법을 준수하며 성실히 살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제 주변에는 좋아서 결혼을 했지만 힘든 친구도 있고 40이 넘었어도 비혼으로 정말 멋지고 부럽게 생활하는 친구도 있는데 어느 쪽이 옳다고 얘기할 수 없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결혼이라는 것은 정말로 이 사람과 꼭 해야겠다, 혹은 이 사람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더라고 꼭 한 번은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 하고 결혼해도 서로 부딪히고 언성 높이고 맘 상할 일이 생기는 것이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그냥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거나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일종의 의무감 혹은 사회적 압박에 의해 하게 된다면 그건 본인은 물론 본인의 가족 또 상대방의 가족들도 더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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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