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서 생활 탐구
[요즘 독서 생활 탐구] 프란츠 김동연, 관객과 독자의 경계를 허물며
음악 애호가와 입문자 모두가 드나들 수 있는 책과 공간을 만드는 출판사 프란츠의 김동연 대표 인터뷰.
글: 박소미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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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이력의 출판사가 있습니다. 프란츠의 김동연 대표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다 기존 교재로 충족되지 않는 갈증을 느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교본과 악보집을 출간한 뒤 2017년에는 직접 출판사 프란츠를 차렸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집을 개조해 ‘아파트먼트 프란츠’라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뒤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동연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프란츠


벌써 프란츠를 시작한 지 8년이 지났는데, 처음 생각한 모습에서 얼마나 같고 다른 곳으로 와있나요? 

시작할 때의 마음은 소박하고도 막연한 열정이었어요. 음악에 관한 좋은 콘텐츠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지요. 두루뭉술한 목표였지만 ‘처음 몇 년간은 번역서만 내겠다'는 것만큼은 선명했어요. 국내의 좋은 저자분들과 새로운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만들 수 있는가를 먼저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출판인 출신이 아니니까 더 잘해야 한다 싶었죠. 그렇게 한 권 한 권 책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프란츠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그분들 덕분에 지칠 때마다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주로 다루는 것이 음악이니까 음악을 알아가는 긴 여정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꽤 내향인인데도 프란츠의 독자분이라면 기꺼이 집으로도 모시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그렇게 2019년에 문을 열게 된 아파트먼트 프란츠에서는 음악 감상 모임부터 강연이나 하우스 콘서트 등을 하고 있습니다. 

 

시작하던 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렴풋이나마 프란츠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긴장감은 처음과 같고, 기대하시는 이상의 것으로 놀라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이에요.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 낼 책이 이미 지금부터 ‘마음속 주력 도서’인 책인데(웃음) 이탈리아에서 나온 시각 예술 서적입니다. 너무 흥미로운 책이라 얼른 보여드리고 싶어요. 프란츠의 중심은 앞으로도 음악이겠지만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를 통해 시도한 적이 있듯이 예술로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를 조금씩 하고 싶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출판사 이름은 ‘프란츠’가 아니라 비발디의 곡 <레스트로 아르모니코>로, 번역하면 ‘조화의 영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프란츠의 활동에 영감을 준 레퍼런스들이 궁금합니다.

네, 그때는 <레스트로 아르모니코>라는 발음과 뜻, 원어의 모양새에 꽂혀 꼭 그걸로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요, 가까운 사람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고 아쉽지만 마음을 접었답니다. 

 

저는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나 공들여 만들어진 물건에 자주 매료돼요. 최근에는 어느 운동화 전문 세탁소에서 만난 사장님이 인상 깊었습니다. 집에서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이곳은 다르다’는 사람들의 감동 후기를 보고 일부러 찾아가 봤어요. 가져간 운동화들의 재질을 살피며 친절히 설명해 주시고, 지저분한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만지며 면밀히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 모든 운동화를 손으로만 세탁한다는 말씀을 눈을 반짝이며 하시던 모습이 종종 떠올라요. 며칠 후 찾아온 운동화는 당연히 매우 깨끗했고요. 많은 영감이나 영향을 주는 레퍼런스가 있다면, 요즘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프란츠를 떠올리면 어쩐지 ‘독자’와 ‘관객’이라는 단어가 함께 생각납니다. 최근 아파트먼트 프란츠 바깥에서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독자분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독립서점의 행사부터 크고 작은 북페어까지, 현장에서 독자분들을 만나며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사무실에만 있으면 어떤 분들이 저희 책을 읽으시는지 알기가 어려운데요, 그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사가 점점 늘어나 참 좋습니다. 헤아려보니 평균적으로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네요. 초기에는 ‘나 여기 아는데’ 했던 분들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면 ‘나 이 책 가지고 있어’로 조금씩 바뀌었다 최근에는 ‘이 책들 전부 다 가지고 있다’거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출판사’라고 친구분에게 소개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완전히 새로 충전되는 기분이 들어요. 물론 아직 프란츠를 모르는 분들이 훨씬 많죠. 한 분이라도 더 뵙고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고 직접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계속 바깥으로 나가게 됩니다. 체력만 허락한다면 사실 매달 나가고 싶어요.

 

서울국제도서전 ⓒ프란츠


프란츠에는 독자뿐 아니라 관객도 있가령 아파트먼트 프란츠에서는 1년 동안 하나의 작품을 매달 다른 연주자의 레코딩으로 감상하는 ‘살롱 골든베르크’를 운영 중입니다. 독자와 관객이 서로 포개지고 갈라지는지 지점이 있을 텐데, 실제로 어떤지 궁금합니다. 

프란츠 책의 ‘독자’였다가 아파트먼트 프란츠의 ‘관객’으로 오시는 경우가 1/3 정도 되는 것 같고요. 오로지 음악에만 관심있는 분들이 1/3, 그리고 음악 때문에 왔지만 공간을 계기로 출판사인 프란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시는 분들이 1/3 정도라고 느껴져요. 오시는 분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불편함이나 부담(왠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해서 음악이 중심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는 책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요.  

 

한편 독자와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도 하시죠. 김연수 소설가를 두 번째 호스트로 섭외한 새로운 음악감상회 ‘더 옐로우 체어’는 프란츠가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을 확장하는 시도로 느껴집니다. 앞으로 프란츠를 통해 어떤 분들과 연결되고 싶나요?

네, ‘더 옐로우 체어’의 경우에는 호스트분이 누구냐에 따라서 듣는 음악의 장르도, 하는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얼마 전 김연수 작가님이 진행해 주셨을 때는 작품을 낭독하시며 소설에 관한 말씀도 많이 들려주셨거든요. 행사 후에, 예고하지 않았던 사인회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모든 분이 다 책을 가지고 오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날은 그야말로 책과 음악의 경계가 없어지고,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도 없어지는데, 그게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느껴져 좋더라고요. 작은 계기로라도 프란츠와 연결되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스며들듯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을 잘 몰라도, 책을 잘 안 읽어도 관심만 있다면 편안하게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25년 9월 김연수 소설가가 진행한 <더 옐로우 체어> ⓒ프란츠


프란츠가 사람이라면 디테일한 뉘앙스에도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쏟는 성정일 것 같습니다. 외투의 안감이나 구두 굽의 모양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랄까요. 사람들이 프란츠를 통해 감각하길 바라는 뉘앙스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렇게 봐주셨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네요. 저희가 만든 굿즈 중에 ‘론도’라는 원목 북엔드가 있어요. 표면을 쓰다듬어보면 놀랄 만큼 부드러운데, 이것을 만들어주신 공예가 남미혜 작가님의 의도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 맨들맨들해진 계단 나무 손잡이의 촉감’이거든요. ‘닳고 닳다’라는 건 주로 좋지 않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긴 시간, 많은 사람, 수없는 순간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 주는 닳고 닳음은 무엇보다 귀한 것 같습니다. 한순간에 흉내 낼 수도 없고요. 프란츠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엇일지 지금은 저도 알 수 없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프란츠의 책이나 활동에도 오랜 시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남는다면 좋겠고, 그걸 느껴주는 분이 계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디테일에 주목하는 한편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도 많이 만날 것 같아요.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종종 예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곤 합니다. 둘의 불일치로 인한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우연의 즐거움도 있죠. 

행사를 진행할 때는 ‘기대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한 적이 대부분인데, 책을 만들던 초기 1-2년 동안 책 제작에 관한 변수들에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나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지금은 간혹 파본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작은 일에도 벌벌 떨었습니다. 

 

첫 단행본인 『음악 혐오』가 완성되어 몇 권을 받았는데 그중 한 권의 가름끈이 작은 힘에도 쑥하고 빠져버리는 거예요. 책의 대부분에 비슷한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창고에 가서 몇십 권을 무작위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하고 돌아왔어요. 또 다른 어느 날, 감리를 볼 때 분명 진하게 찍히던 글자들이 후반부에 옅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도 비슷했죠. 다량의 책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생긴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제작처에서는 늘 잔소리 많은 저를 안 좋아하실 거예요.(웃음) 인쇄소를 직접 운영하는 망상을 해보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츠가 주목하는 다른 출판사나 서점의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출판사 운영하시는 분들도 대단하시지만 서점 사장님들 중에도 인상적인 분들이 많은데요. 요즘엔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이 인상적입니다. 정말 열심히 하세요. 손님의 발길이 뜸하면 서점 티셔츠를 만들어서 관심을 유도해 본다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 기획하시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실행하시는 것이 느껴져요. 와중에 독립출판 북페어인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을 기획, 운영까지 하시고요. 그런 분들 보면 정신이 번쩍 나죠.    



요즘 독서 생활 탐구

우리는 요즘 책을 통해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요? 온갖 종류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날 변함없이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유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 뉴스레터, SNS, 출판사와 서점, 북페어 운영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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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저/<김유진> 역

출판사 |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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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