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EDM에 반응하기 시작한 퍼퓸
단순한 전자사운드에서 벗어나 기계와 인간이 만나 빚어내는 ‘테크놀로지의 따스함’, 그것이야말로 퍼퓸이 제시하는 미래의 팝이 지닌 제 1의 기치다.
글ㆍ사진 이즘
20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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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저것 고려한 탓에 방향성을 상실한 작품이다. 싱글 곡들로 미루어보아 장르적으로 파고드는 앨범이 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나머지 러닝타임을 점유하고 있던 것은 보코더를 싹 걷어낸 파퓰러한 노래들. 이렇듯 지향점이 이분할되어 랜덤하게 섞여 있는 탓에 첫인상은 어정쩡하기 그지 없다. 팬들 사이에서는 그냥 속편하게 (2013)나 (2016), 것도 아니면 더 과거로 돌아가 (2009) 혹은 (2008)이나 다시 듣자는 의견도 심심치 않은 형국이다.

 

사실 이 작품과 연관된 반응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약 7년 전쯤, 이후 선보인 (2011)에도 비슷한 반응을 목격한 바 있다. 특유의 사운드를 절제하고 보다 캐주얼하게 다가간 이 정규작은 한때 팬들에게 이단으로까지 여겨졌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룹의 입문작으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를 고려해 다시금 차분히 들어보면, 약간 어수선하긴 해도 어느 하나 흘려버리기 힘든 준수한 노래들로 가득하다는 사실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뭔가 변한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건 그들이 추구하는 사운드의 지향점이 변화한 탓이다. (2013)를 변곡점으로, 세계 무대에 발을 내딛는 동시에 영미 EDM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번 역시 퓨쳐 베이스를 도입한 「Future pop」과 「If you wanna」, 트로피컬 하우스가 전면을 장식한 「Everyday」 등, 퍼퓸만의 일렉트로니카는 어느 시점 이후로 그 색이 많이 옅어진 상태다. 다만 까지의 전자음악 트렌드가 기존 그룹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면, 지금의 유행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이 앨범에 쉽게 정을 들이기 어려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반대로 팀 자체는 끊임없이 음악 신의 흐름을 받아들여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Future pop」과 싱글로 선보였던 「If you wanna」가 드랍을 통한 전형적인 EDM 구성으로 승부했다면, 그 외 신곡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주목해야 할 노래가 바로 「Fusion」이다. 오리엔탈의 정서가 스며있는 선율과 미디엄 템포의 비트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와중에, 보컬은 최소한의 추임새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감지. 덕분에 뻔하지 않은 긴장감이 최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곡에서 확인되는 동양의 기운은 「Tokyo girl」과 「超?輪(초래윤)」을 통해서도 발현되는데, 세계속에서의 일본을 강조하는 그런 모습이 나라의 성향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 같아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방향성이 상실된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이 반복청취를 통해 내린 또 다른 결론이다. 「Tiny baby」나 「Let me know」 같은 평범한 팝튠은 다소 아쉽지만, 들을 때마다 다른 각도로 다가오는 음악과 멜로디엔 ‘인간이기에 발할 수 있는’ 확연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장르적인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이란 거창한 타이틀에 맞서는 팀의 노력과 애티튜드는 확실히 투영되어있음은 확실하다. 단순한 전자사운드에서 벗어나 기계와 인간이 만나 빚어내는 ‘테크놀로지의 따스함’, 그것이야말로 퍼퓸이 제시하는 미래의 팝이 지닌 제 1의 기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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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퓸 #Future Pop #영미 EDM #If you w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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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