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대하여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경주가 아닌데도 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로에 빈 공간이 생기면 차들은 묘하게 갈등한다.
글ㆍ사진 박현주(번역가)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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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나 자신이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경쟁에 자질이 없는 자신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잘하는 게 없었다. 달리기도 못 하고, 공기놀이도, 고무줄도 젬병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라 상관은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잘하는 분야에서도 경쟁심이 생기지 않았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있으면 만족했다. 경쟁심이 강했다면 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망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제치고 나아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나의 주제 파악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쟁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누가 나를 앞질러 가도, 내가 끼어들 때 양보를 받지 못해도, 내 앞으로 마구잡이로 끼어들어도 화를 내지 않았으리라. 온화한 성격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노를 발산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도로 위에서 수없이 많은 개를 찾았고, 그만큼 후회했다. 거친 인간을 다정한 개에 빗대어 욕하는 건 옳지 않다. 블랙박스에게도 미안했다. 블랙박스는 세상으로 나가지 못한 나의 험한 표현들을 다 담고 있는 비밀 상자가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경주가 아닌데도 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로에 빈 공간이 생기면 차들은 묘하게 갈등한다. 그리고 이런 다툼은 위험하다. 경쟁이 싫은 이유는 필연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큰 차들이 밀고 들어오면 그 덩치로 나를 누르려 하는 것 같았고, 내 차 뒤의 초보 딱지를 얕봐도 된다는 허가증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경쟁 자체를 피하는 평화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 실은 경쟁이 주는 위협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이길 수 있다면, 안전할 수 있다면 경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지고, 내가 생각한 대로 나아가지 못한다. 도로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기에.

 

아사이 료는 또래 집단의 미묘한 경쟁에서 오는 불안감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작가이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누구』 는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자기 합리화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는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자기를 정의할 수 있는 고등학생의 고민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세 여자의 세 이야기를 모은  『스페이드 3』  또한 작가의 꾸준한 주제 의식을 잇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어딘지 익숙한 미치요의 사연이다. 현재의 미치요는 뮤지컬 배우 츠카사의 팬클럽 ‘퍼밀리어’의 운영진이다. 모든 일에 침착하고 능률적이라 회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미치요는 이 그룹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보람을 느낀다. 유명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사실 미치요는 협력 업체에서 자잘한 사무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런 그녀의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초등학교 동창이 나타나 균열을 일으킨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무쓰미는 미치요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학창시절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미치요의 자비로 무리에 낄 수는 있었지만 친구가 없었던 무쓰미는 중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소속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앞의 두 편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배우 츠카사의 속마음이 그려진다. 각광 받는 스타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배우가 되어버린 츠카사. 어렸을 때 함께 입단했던 마도카가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갈 때 츠카사는 수수하게 뒤에 남아버렸다. 그녀에게는 마도카의 빛나는 스토리가 없었기에 주목받을 수 없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존재를 정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나의 노력이나 곧은 원칙이 언제나 이해받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어렵다. 내가 원하는 애정과 호의를 받으려고 해도 미묘한 경쟁이 존재한다. 나는 쭉 나의 길만을 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내 앞으로 끼어든다. 혹은, 내가 그들 앞에 끼어들고 만다.

 

나는  『스페이드 3』 의 세 번째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츠카사는 퍼밀리어 회원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나 다름없지만, 현실은 배역 하나 따내기도 쉽지 않다. 츠카사는 스타에게는 다 있는 서사가 왜 자기에게는 없는 것일까를 깊이 생각한다. 마도카는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지금은 병에 걸렸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불행이지만, 스타에게는 이런 역경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사연이라고 츠카사는 생각한다. 수난이 없는 사막을 건너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대명사는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우리 대부분이 츠카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적잖은 사람들이 자신의 평범한 재능과 배경에 좌절한다. 나 또한 그랬다. 고만고만한 재능으로 그럭저럭 잘해와서는 버틸 수 없다. 누군가 치고 올라오고, 혹은 저 멀리 앞으로 가버린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치미는 어떤 불안한 감정, 이것이 경쟁심의 뒷면이다. 이기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빨리 달려나가는 건 괜찮았다. 그러나 내 앞으로 껴들어 나만 혼자 뒤처진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건 싫었다. 딱히 남을 밀어내고 나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뒤처지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니까. 같은 길 위의 차들은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나를 방해꾼 취급한다. 결국에는 혼자 남아 아무 데도 닿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다 각자의 길로 간다. 마도카와 같은 나이에 출발했지만 뒤처지고 말았다고 느낀 츠카사가 결국에 깨달은 건 그 점이었다. 서로 같은 노선에 있는 듯해도, 언젠가는 헤어지고 만다. 길이 겹쳤을 때 밀릴 수는 있지만 경쟁심을 품는 건 의미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경쟁한다면 세계는 거대한 경주장일 뿐이었다.

 

나를 위협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에 몰두하지 않고 달려나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차를 운전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깨닫는 중요한 교훈이다. 나는 은밀하고 조용히 나와 같은 길에 서 있던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안정되고 성공한 삶을 가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삶과 비교하고 나를 혐오했다. 내가 지고 있다는 기분을 주는 사람들이 싫었다. 하지만 남이 빨리 가든, 밀고 들어오든, 나의 속도와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이 간단한 일을 해내지 못하고 휩쓸려버린 나는 이미 졌다.

 

불안하고 싫고 미운 감정을 완전히 없앨 순 없다는 걸 안다. 같은 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몰래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것이고, 내 감정이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하지만 경쟁심은 오로지 차 안에만, 그리고 순간의 마음속에만 가둬야 한다. 그들은 자기 갈 곳으로 가고, 나는 내 갈 곳으로 간다. 경쟁에서 벗어나는 길은 승리가 아니라 망각에 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드는 무례한 자도 있지만, 먼저 기꺼이 보내줄 수 있을 때 도로는 비로소 나의 길이 된다. 물론 나는 매번 화를 낼 것이다. 되도록 짧게.


 

 

스페이드 3아사이 료 저 | 이야기가있는집
세 명의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교차하여 보여주면서, 심리적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살면서, 성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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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스페이드 3 #나의 앞길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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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번역가)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로맨스 추리 소설을 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다.